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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지의 저주받은 사람들 ㅣ 그린비 크리티컬 컬렉션 6
프란츠 파농 지음, 남경태 옮김 / 그린비 / 2010년 5월
평점 :
<대지의 저주받은 사람들> 정리
파농은 알제리민족해방전쟁 경험을 토대로 탈식민화에서 폭력이 가지는 의미를 분석했다. 책은 식민지상황이 민중에게 끼치는 영향부터, 농민계급의 자발성, 저개발국 민족부르주아지의 특성 그리고 민족의식과 민족문화까지 폭넓게 다룬다. 별도로 사르트르의 꽤나 긴 서문(1961년 판)이 있다. 여기서 사르트르는 ‘유럽인 한 명을 죽이면, 억압자가 한 명 줄고 해방자가 한 명 늘어난다’는 미친 멘트를 시전한다.
이 때문인지 2002년판 서문에서 파농의 동료 알리스 셰르키는 사르트르 서문이 파농이 마치 폭력을 정당화한 거처럼 호도했다는 식으로 말한다. 내 짧은 소견으로는 사르트르가 그냥 사르트르했다. 식민지 민중은 식민지구조에서 내면의 자아가 파괴될 수밖에 없고 (왜냐하면 억압에 항복하면 스스로 인간이길 포기하는 것이고, 저항하면 고문과 죽음의 공포가 따른다) 이 소외를 극복하는데 폭력은 불가피하다.
*달리말해 (불합리한) 상황에 종속된 자아가 폭력을 통해 억압적 상황을 극복하는 자아, 가능성으로 나아간다. 표현이 거칠긴 했지만 새로운 인간의 창조라는 측면에선 사르트르와 파농은 일맥상통해 보인다.
(1)폭력에 관하여
탈식민화란 어떤 종의 인간이 다른 종의 인간으로 바뀌는 걸 말한다. 개개인을 근본적으로 변화시키기 때문에 은근슬쩍 전개되지 않는다. 대상화된 사물이던 이들이 스스로를 해방시키는 과정을 통해 인간으로 탈바꿈된다.
식민주의는 식민지 민족의 관습, 전통, 신화를 빈곤한 영혼, 악행의 상징으로 만든다.
식민주의는 역사의 창조자이자, 모든 것의 원인이다. “우리가 떠나면 모든 게 사라지고 이 나라는 중세로 되돌아 갈 것”이라고 으름장을 놓는다.
식민주의는 무력으로 정통성을 유지한다. 식민지에 세워진 동상은 “우리는 총검의 힘으로 여기에 왔다.”는 사실을 말한다.
식민주의는 식민지 민족에 이분법을 강요한다. 탈식민화는 이 강요된 이분법을 제거함으로써 민족의 통합을 이루는 것이다.
민족주의 정당은 식민지 체제에서 작은 이윤을 얻는 시민으로 구성된다. 이들은 노동자 정부라는 추상적인 구호를 가지고 투쟁하지만 자기나라에서 앞세워야 할 구호는 민족주의적인 것이어야 한다.
*파농이 말하는 민족주의 정당은 민족 부르주아지를 말하는 듯하다. 이후에도 그는 계속 민족정당이라는 말을 사용한다. 구호의 경우는 구체적이어야 한다는 것으로 이해했다.
민족해방전쟁에서 민중이 동원되면 개인의 의식에 공통의 대의, 민족의 운명, 집단의 역사 같은 관념이 싹튼다. 해방전쟁을 통해 각 개인이 덩어리로 된다.
*여기서 생각해볼 쟁점은 ‘개인이 어떻게 하나의 공동체로 되는가?’에 있지 않나 싶다. 수카르노는 분쟁은 인종, 종교차이 때문이 아니라 욕망이 달라서 생긴다고 했는데, 파농도 이해관계의 일치라는 측면에서 이와 비슷한 관점이지 않았나 싶다.
(2)자발성의 강점과 약점
(민족)정당은 선진 자본주의 사회에서 노동계급 투쟁을 위해 만들어진 조직으로 도시의 노동계급, 공무원 등 소수세력을 중시한다. 식민지 프롤레타리아는 식민지 체제로부터 수혜를 입는 계급이라는 사실을 명심해야한다. 민족정당은 농민을 불신한다. 식민주의가 지배를 위해 농촌을 정체시켰기 때문이다. 식민지 농민은 기존 사회구조에 집착하지만 규율을 잘 지키고 이타적이고, 공동체를 앞세운다.
민족 부르주아지와 봉건 영주, 도시와 농촌, 서구화된 가치와 봉건적 가치가 충돌한다. 착취에서 수혜를 누리는 원주민과 배제된 원주민 사이에 적대감이 돈다. 식민주의자들은 이 적대감을 이용하여 민족 정당과 싸운다. 부족주의/지역주의를 부추기고 이용한다.
(민족)정당은 농촌지역을 조직하지 못한다. 조직가를 투하하지만 농민의 전통적 사회, 도덕적 권위를 박해할 뿐이다. 이런 조직화 실패가 불신과 적대감을 더욱 증폭시킨다. 이후 독립이 달성된 뒤에도 농촌 주민들은 정부가 제시한 구조개혁을 따라잡지 못한다. 이는 변화를 이끄는 민족정당이 당의 목적, 국가적 추세, 국제 정치 쟁점이 무엇인지 제대로 설명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정당 내부에 두 가지 성향(합법적/비합법적)이 병존한다. 소수파들이 탄압을 피해 도시로 떠나고 농민들과 접촉하기 시작한다. 농민들에게 군사훈련, 정치교육을 하고 무장투쟁이 시작된다. 농촌에서 시작된 반란은 도시 주변부 룸펜 프롤레타리아를 통해서 도시로 전파된다. 각 지방마다 소규모 정부가 구성된다. 민중은 법을 제정하고, 자아를 되찾고, 스스로 주권을 획득한다.
*파농은 이론적인 면보다 알제리 민족해방전쟁 경험을 바탕에 두고 썼다. 민족정당에 대한 그의 설명은 민족부르주아지라는 계급적 측면과 더불어 당시 알제리의 구체적 상황을 고려하고 읽어야 할 듯하다. 이는 농민들의 특성에 대한 그의 언급에서도 드러난다. 농민들은 ‘도덕적 가치관을 유지하고 민족에 대한 순수한 헌신성이 있다’는 언급에서도 근거는 명확치 않다. 다만 민족해방과정에서 공동체에 대한 헌신이라는 측면이 중요한 역할을 한다는 것과 기존 이론과 달리 농민이나 룸펜 프롤레타리아를 주요 동력으로 본 것은 주목할 만하다.
농민과 룸펜 프롤레타리아의 투쟁은 자발적인 충동이라는 점에서 약점을 갖는다. 이런 자발적 충동은 자기부정이라는 점을 명심해야 한다. 지도부는 진정 해방하려면 집단을 계몽해야한다. 정치는 신비화의 수단이 아니라 투쟁을 명료화하는 것이다. 농민봉기는 특정한 방향으로 인도되어야 한다.
“일반 대중의 평균적인 의식 수준을 끌어올리지 않으면 인간은 변화시킬 수 없다. 단지 불굴의 용기나 멋진 구호만으로는 충분하지 않다.”
식민주의는 족장에게 뇌물을 주고 앞잡이로 세운다. 룸펜 프롤레타리아도 활용한다. 각종 유화조치를 통해 일부 지지를 얻는다. 국민적 통합을 무너뜨리려 한다. 이제 대중의 정치교육은 역사적 필연성으로 요구된다. 민중에게 사태를 설명해야한다. 양보를 하는 주체는 식민주의가 아니라 자기 자신이라는 점을 깨달아야 한다.
민중은 무차별적인 민족주의로부터 사회경제적 인식으로 나아가야 한다. 민중 지도부가 조직하고 교육하는 폭력만이 대중에게 사회적 진실을 이해하도록 할 수 있다. 그런 투쟁이 없으면 분화되지 않은 대중은 여전히 중세의 삶을 지내며 제자리걸음만 할 뿐이다.
*자발적 정념으로 시작한 투쟁은 객관적 가치로 보완되어야 한다. 정념에서 스스로 역사적 가치를 선택하고 실천하는 의지로 탈바꿈해야 한다. 실천-이론의 변증법이 작동해야 한다. 지도부가 교육하는 투쟁을 통해 이원론적 민족주의에서 사회적 진실로 나아간다. 새로운 인간은 자발성만으로 탄생되지 않는다.
(3)민족의식의 함정
민족의식은 모든 사람의 내적인 희망을 아우르는 결정체가 아니며, 대중동원의 결과도 아니다. 도리어 민족적 노력과 민족 통합을 해치는 편견이다. 민족 부르주아지의 지적 나태함, 정신적 빈곤의 소산이기도 하다.
식민지 체제 붕괴 후 민족 부르주아지는 저개발 상태의 부르주아지다.
이들은 생산적 산업이 아닌 중개업 분야에서만 활동한다. 이들은 무역부분을 국유화하라고 요구하는데, 이는 새로운 사회관계를 발달시킨다는 의미가 아니라 단지 식민지 시대 유산인 부당 이득을 자신들이 수취하게 해달라는 의미다. 이들은 새로운 방식을 찾지 못하고 식민지 시절 토착 생산물에 의존하던 기존 농업생산 방식에 갇힌다. 독립 후에도 국민경제는 여전히 원료를 수출하며 유럽에 딸린 소농민으로서 미완성 상품을 취급한다. 이들은 부르주아지 특유의 역동적이고 선구자적 특성이 없다.
대지주 계급은 농업 생산 국유화를 요구한다. 식민지 시절 이주민들이 소유했던 농장을 통째로 차지해 자기지역에 영향력을 늘리기 위함이다. 이들은 새로운 농업기법을 도입하지 않는다. 이들은 국가적 노력이라는 명목 하에 농업노동자에게 막대한 노동을 강요한다. 이들은 일체의 위험을 거부하며 이윤을 재투자하지 않고 자기 과시에 사용한다.
지배계급은 민족주의로부터 초민족주의로, 쇼비니즘으로, 최종적으로는 인종주의로 옮아간다. 식민주의에 맞선 아프리카 통일이라는 이념은 이제 미시민족주의에 갇히게 된다. 이런 분위기는 대중에게까지 전파된다. 특정 영토를 중심으로 흑인이나 아랍인의 개념을 국한하자고 요구한다. 식민주의 이전의 지역 간 종족 간 증오심이 다시 등장한다. 아프리카 통일 이념은 지역주의로 변질된다. 민족 부르주아지는 편협한 민족주의의 이름으로 권력을 얻는다.
신생국의 경제노선은 신식민주의로 흐르게 된다. 예산은 기부금과 차관으로 균형을 맞춘다. 외국인들은 매년 차관을 주고 각종 이권을 따낸다. 민족 부르주아지는 민중을 착취해 얻은 이윤을 외국으로 수출한다. 자기 나라에 투자하지 않고 외국 채권을 구입한다. 부르주아지 지배기 동안 구조에는 어떤 변화도 없다. 이들이 한 일이라고는 식민주의자들이 남긴 경제, 사상, 유산을 떠안은 것 밖에 없다. 저개발국의 부르주아지는 외국 부르주아지의 대리인에 불과하다. 이들은 진정한 부르주아지가 아니다. 즉 부르주아 단계 이론은 맞지 않다.
결론적으로 당이 이끄는 대중과 혁명적 원칙으로 무장된 지식인이 공동노력으로 이 쓸모없고 유해한 중간층을 가로막아야 한다.
식민지 경제에서 중개업을 초기에 국유화해야 발전을 이룰 수 있다. 이 국유화란 도매업, 소매업을 민주적 형태로 재편하는 걸 뜻한다. 일반대중을 정치훈련을 통해 끌어들이지 않으면 국유화는 성공할 수 없다. 대중의 정치훈련은 수만 명을 동원하는 대중 집회가 아니다. 대중을 어린이가 아닌 어른으로 만드는 것이다.
역사가 제기한 질문에 진정 답하고 싶어 하는 나라, 주민의 두뇌까지 발달시키고 싶어 하는 나라라면, 믿음직한 정당을 가져야 한다. 당은 정부가 가지고 노는 도구가 아니라 민중의 수중에 있는 도구다. 정책을 결정하는 주체는 바로 민중이다. 당은 권력기관이 아니라 민중이 자신의 권력을 행사하고 의지를 표현하는 조직이다. 당은 행정부가 아니라 대중의 적극적인 대변인이며 청렴한 옹호자다.
*앞서 민족정당에 대한 파농의 비판이 당 일반에 대한 비판이 아니라 민족 부르주아지를 염두에 둔 비판이었음이 여기서 드러난다. 파농은 진정한 정당을 말했는데, 이는 앞서 민족해방전쟁에서 자발성이 가진 약점과 연관되어 보인다. 당은 민중의 자발적인 정념이 역사적 가치를 지향하는 의지가 되도록 해야 한다. 즉 당은 실천-이론(의식)의 변증법을 담보해야한다. 욕망, 이해관계를 뛰어넘으려는 파농의 문제의식이 느껴진다.
당은 민중의 마음속으로 파고들어야 한다. 당 지도부는 농촌 지구에 살아야 한다. 농촌 대중과 접촉하기 위해 모든 기회를 활용해야 한다. 고립된 개인은 문제를 이해하는데 고집스럽지만, 집단이나 촌락은 당혹스러울 만큼 빠르게 문제를 이해한다. 민중은 더 이해할수록 모든 것이 자신에게 달려있다는 걸 깨닫는다. 필요한 건 세포다. 대중이 서로 만나서 토론하고 방향을 잡아야 한다.
민중은 아주 빠르게 사회의식을 확립한다. 위험의 가능성은 민족주의 단계 이전에 사회의식 단계에 도달할 경우다. 이 경우 민중은 사회적 정의를 격렬하게 요구하는데, 역설적이게도 이는 원시 부족주의와 통하는 측면이 있다. 반대로 대중에게 민족주의만 제공한 민족 부르주아지는 실패한다. 민족주의가 사회, 정치적 필요에 관한 의식으로 전환되지 못하면 막다른 골목에 봉착한다. 민족주의는 명확해져야 한다.
민족의 살아있는 표현은 민중 전체의 움직이는 의식이다. 그것은 사람들의 일관적이고 계몽된 행동이다. 집단적 운명의 구축은 역사적 차원에서의 책임을 맡는다는 것이다.
*민족주의에 관한 파농의 입장은 양면적으로 보인다. 민족주의가 형식적이고 이원론에서 그치는 것을 비판하면서도 반대로 민족주의를 도달하지 않고 (파농의 표현을 따르면) 사회의식에 도달하는 것을 경계한다. 앞서 파농은 정치는 신비화가 아니라 투쟁의 명료화라고 했는데, 민족주의도 예외는 아닌 것으로 보인다. ‘민족주의’라는 기표는 민족부르주아지에 의해 형식주의(신비화)에 갇힐 수도 있고, 정치훈련과 교육을 통해 구체적 내용(명료화)을 얻을 수도 있다. 그래서 난 파농이 단순히 민족주의를 거부했다고 보지 않는다. 민족주의와 사회의식 한쪽만을 취할 수는 없다. 민중이 지향의 일치를 통해 집단적 운명을 구축하기 전에 사회의식만을 가졌을 때 파농은 부족주의라 표현했지만, 자칫 경제주의가 될 가능성이 있다.
(4)민족문화에 관하여
정당 내부와 주변에 원주민 문화인들이 나타난다. 이들은 식민지 이전 시대를 야만으로 보는 식민주의 이론에 맞서기로 결심하지만 식민주의는 별 반응이 없다. 이들은 식민지 이전 시대 존재했던 민족문화를 탐구하여 서구문화에 위축되지 않는 정당한 근거를 찾으려 한다. 이런 과거 민족문화에 대한 요구는 오늘의 체념을 넘어 희망을 발견하려는 의지다. 심리-정서적 안정이라는 관점에서도 중요하다.
식민주의는 왜곡된 논리에 의해 피억압 민중의 과거를 왜곡하고 파괴한다. 식민지 지배가 원주민 사회의 어둠을 밝혀주기 위한 것이라고 납득시킨다. 자신들이 떠나면 식민지는 즉각 야만과 타락으로 되돌아갈 것이라는 생각을 심기위해 의식적으로 노력했다. 식민주의는 어머니로서 근원적으로 불행한 아이를 보호하는 것이다.
식민주의는 이런 주장을 아프리카 전체를 대상으로 한다. 따라서 원주민 지식인도 서구 문화에 맞서 다른 문화의 존재를 찾을 때 ‘아프리카 문화’라는 이름을 사용한다. 지난 20년간 원주민 문학은 민족 문학이 아니라 흑인 문학이었다. 흑인정신(네그리튀드)라는 개념은 논리적이라기보다 백인의 모욕에 맞선 감정적인 대응인 것이다.
하지만 아프리카 문화인은 민족문화가 아닌 아프리카 문화에 대해 언급해야 하는 역사적 필연성을 지니고 있는 탓에 자칫 막다른 골목에 봉착할 수도 있다. 유럽인들에게 아프리카 문화가 존재한다는 사실만 보여주고, 자신들의 견해와 유럽인의 견해를 비교하는 정도에 그친다. 이런 태도는 통상적이며, 서구 문화인이 퍼뜨린 거짓에서 정통성을 확보하는 것이다.
흑인 정신이라는 개념은 인간의 역사적 특징이 형성되는 과정 속에서 한계에 맞닥뜨린다. 아메리카 흑인들은 아프리카 흑인들과 당면한 문제가 다르며, 주관적 감정이 누그러진 뒤에 서로의 객관적인 문제가 이질적이라는 것을 알게 된다. 두 문화는 다를 수밖에 없다. 왜냐하면 모든 문화는 일차적으로 민족적이기 때문이다. ‘흑인-아프리카 문화’ 혹은 ‘아랍-무슬림 문화’를 향한 운동은 반드시 민족문화를 지향하지 않는다. 문화는 시사적인 사건들로부터 점점 더 멀어지고 있다.
원주민 지식인의 태도는 신앙의 모습을 보인다. 이는 민중과 마지막 연계가 끊어지는 위험에 빠질지도 모른다는 깨달음에 의해 나타난 징후적 행위다. 원주민 지식인은 서구 문화의 우월성에 맞서 자신의 뿌리를 찾아 거슬러 올라갈 필요성을 느낀다. 자신이 점점 소외된다고 느끼기 때문이다. 원주민 지식인은 서구문화를 탐식했기 때문에 이런 탈피과정은 고통스럽지만 불가피하다.
서구 문화에 동화된 단계에서 뿌리를 찾는 단계를 거쳐 투쟁단계에 이른다. 이 단계에서 전투적인 문학, 민족적인 문학이 나온다. 이것은 민족의 증거를 문화로써 보여주는 게 아니라 민중이 식민주의에 맞서 싸우는 투쟁 소에서 민족의 존재를 구체화한 것이다. 그저 과거 유물 몇 가지를 아무렇게나 나열한다고 해서 식민주의가 부끄러워하리라 기대해서는 안 된다.
문화는 본질적으로 관습과 대립한다. 전통에 접근하려는 욕구는 역사의 흐름을 거스르는 것만이 아니라 자기 민족에 반대하는 걸 뜻한다. 민중이 식민주의에 맞서 투쟁을 시작할 때 전통의 의미는 변화한다. 참된 예술 작품을 만들어 내려는 원주민 지식인은 민족의 진실이 우선 민족의 현실에 있다는 점을 인식해야 한다. 과거로 향하는 것은 내적 리듬이 결여된 재현 예술이며, 삶보다는 죽음을 연상시키는 정적인 예술이다. 이미 낡아 거부된, 민중이 도중에 밟고 지나간 것은 아닌지 따져봐야 한다.
민족문화는 민속 연구도 아니고, 민중의 참된 본성을 발견할 수 있다고 믿는 추상적 인민주의도 아니다. 민족문화는 민중이 스스로 창조하고 존속시키는 행동을 사유의 영역에서 묘사하고 정당화하고 찬양하기 위한 모든 노력의 총체다.
문화는 민족의 취향, 금기, 성향 등의 표현이다. 문화가 생존하기 위한 조건은 민족해방과 국가의 부활이다. 비존재의 문화는 현실성을 지닐 수 없고 현실에 영향을 줄 수도 없다. 자아의 의식은 의사소통의 문을 닫아거는 게 아니다. 오히려 자아의 의식은 의사소통을 확실히 보장한다.
*민족문화에 관한 설명은 앞선 <민족의식의 함정>에서 보인 문제의식의 연장선으로 보인다. 민족주의가 스스로를 형식적으로 제한하는 이원론에 빠질 위험이 있듯이, 민족문화의 경우도 흑인정신(네그리튀드)과 같이 고정된 정체성에 갇힐 위험이 있다. 파농은 그럴수록 문화가 시사적인 것과 멀어지며, 문화는 일차적으로 민족적이라는 걸 강조한다. 마찬가지로 민족의 과거 유물, 문화적 증거도 민족문화가 아니다.
난해하기도 했지만, 파농의 이런 입장을 이해하는 데서 ‘비존재의 문화는 현실성 지닐 수 없다’는 말이 크게 와 닿았다. 흑인정신이든 과거유물이든 그것은 비존재의 문화다. 민중이 식민주의에 맞서 투쟁에 나설 때서야 비로소 존재의 문화가 가능하다. 파농이 어떤 의도였는지는 모르겠지만 난 이렇게 받아들였다.
(5)식민지 전쟁과 정신질환에서는 식민지 체제와 해방전쟁으로 인해 생긴 정신질환을 사례별로 소개한다. 해방전쟁 전 알제리인의 높은 범죄율을 토대로 서구는 “북아프리카 원주민은 본능적인 삶을 지니며, 간뇌의 통제를 받는 원시적 생물”이라는 의학적 결론을 내렸다. 하지만 해방전쟁이 시작하자 알제리인의 범죄는 줄어들었다. 해방전쟁이 알제리 민중을 재통합했고, 새로운 인간으로 만들었다.
마지막 결론에서 파농은 동지들에게 유럽을 떠나라, 유럽을 버려라, 유럽을 흉내 내지 말자고 외친다. 유럽을 비난할 필요도 유럽을 따라할 필요도 없다. 왜냐하면 제3세계가 할 일을 새 역사를 시작하는 것이고 새로운 인간을 정립하는 것이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