온갖 무례와 오지랖을 뒤로하고 페미니스트로 살아가기
화사 외 42인 지음, 한국여성민우회 엮음 / 궁리 / 2017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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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미니즘이 마냥 어려운 이론처럼 느껴졌다. 주변에 적잖은 남성들이 나와 비슷한 연유로 투덜거리거나 따지는 걸 보았다. 하지만 생각해보면 이런 불만은 다소 부당하다. 페미니즘만 그럴까? 어떤 철학이나 사회이론도 내 삶과 접점이 없다면 어려운 말공부처럼 느껴지는 건 마찬가지다.


그러니깐 문제는 페미니즘에 있지 않고 그것을 어떻게 삶과 연결시킬 것인가에 있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당연하게도 삶과 연결시키는 방법은 각자가 누구이고 어디에 위치하느냐에 따라 다를 것이다. 책 속의 이들이 성에 따라 잣대가 다른 등목, 동경에서 시작한 여장놀이 그리고 자녀교육의 어려움 등 삶에서 부딪혔던 부분이 모두 달랐던 것처럼 말이다.    


물론 책을 다 읽은 지금도 삶과 연결시키는 문제는 여전히 어렵지만, 일단은 ‘함께 살기’에서부터 시작해보고자 한다. 


혼자 사는 사람은 없다. ‘삶’이라고 했을 때 그 앞엔 언제나 ‘함께’라는 말이 생략되어있다. 우리의 삶을 인간답게 만드는데서 ‘어떻게 함께 살 것인가’는 중대한 문제다. 우리가 책 제목처럼 ‘무례와 오지랖’에 맞서 온전한 자신을 지켜야할 이유가 여기에 있다. 온전한 개인이 함께 살기의 필요조건이기 때문이다. 온전한 개인이 있어야 진정한 관계가 가능하다. 그러면 도대체 무엇이 우릴 온전하지 못하게 만드는 걸까?


온전함을 정의하기는 어렵지만, 무엇이 온전하지 않은 상태인지는 말할 수 있을 것 같다. 한쪽이 억압하거나 의존하는 관계는 동등한 관계가 아니다. 억압과 의존은 인간을 대상으로 만든다. 인간이 인간답게 사는 것을 방해한다. 


아쉽게도 인류가 유토피아에 도달하지 않은 이상에야 ‘억압’과 ‘의존’은 형태의 차이는 있을지언정 항상 사회에 존재할 것이다. 그리고 인간은 자기의지와 별개로 그런 불의한 사회에 태어난다. 때로 인간은 불가피하게 그런 상황에 체념해 숙명론에 빠지기도 하고, 반대로 상황을 인지하고 극복하기도 한다.


나는 각종 철학과 이론이 인간이 후자로 나아가게 하는 버팀목이라 생각한다. 아니 그래야한다고 멋대로 규정한다. 아마 노예제니, 절대왕정이니 하며 우여곡절 끝에 여기까지 오는데도 우리가 처한 불의한 상황을 직시하도록 하는 어떤 사상, 이론 등이 있었을 것이다. 


페미니즘도 마찬가지다. 성별이분법이나 강요된 여성성, 가부장제, 모성애 이데올로기 등 책 속의 이들은 페미니즘을 통해 무엇이 내 삶을 온전하지 못하게 하는지 인식하고 나아가 극복하고자 했다. 


책 내용을 간략히 살펴보면, 글쓴이는 사회적으로 여성은 공공장소에서 등목을 할 수 없다는 데서 여성의 몸이 남성의 몸과 다르게 정의된다는 점을 지적한다. 여성의 몸은 성적공간으로 환원되고 대상화된다. 인간 존재의 다양한 결이 환원과 대상화를 통해 축소되고 억압된다. 


성별이분법도 인간 존재를 축소시킨다. 퀴어의 존재를 지운다는 당연한 측면을 자처하더라도 남성성/여성성이 강제된다. 여장놀이를 추억하던 글쓴이는 자신의 여장이 오히려 사회적으로 강요된 여성성을 더욱 강화하는 것이지 않을까 고민한다. 결론적으로 글쓴이는 ‘여장하기’가 자신 안의 다양한 특질을 발견하는 기회로, 성별이분법이 강요한 정체성을 뛰어넘는 시도가 되길 기대한다.


다만, 정체성과 관련해선 한 가지 짚고 싶은 게 있다. 특정 정체성(남성성/여성성)이 사회적으로 강요되었는가, 아니면 내 안에서 비롯되었는가를 구분하는 건 가능하지도 않고, 올바른 접근도 아니라 생각한다. 이는 사회적으로 획득된 정체성 자체를 부정하는 결과로 이어질 수도 있다. 문제는 정체성 자체에 있는 것이 아니라 ‘어떤’ 정체성인가에 있다고 본다. 인간 존재의 다양한 결을 포함해가며 확장하는 정체성인가? 아니면 존재를 축소시키는 정체성인가? 인간을 몇 가지 특질로 환원하는 정체성은 인간을 억압한다. 책 속 글쓴이가 고민한 것처럼, 똑같은 ‘여장하기’라도 여성성을 강화하는 행위가 될 수도 있고 성별이분법을 흔드는 행위가 될 수도 있다. 이는 ‘여장하기’뿐만 아니라 때때로 정체성 정치라고 비난받는 개념들인 젠더, 민족, 계급 등에 모두 해당되는 이야기다. 


모성애 이데올로기는 여성성과 마찬가지로 강요되고 인간의 다양한 면을 축소시킨다. 책에서 자녀교육이 잘 풀리지 않는 글쓴이는 모성도 이데올로기라는 인식을 통해 내 인생은 마이너스가 아니라며 스스로를 다독인다. 이처럼 주체의 자기인식은 중요하지만, 근본적으론 특정 이데올로기를 가능하게 한 구조를 극복하는 게 필요하다. 가부장제는 여성의 역할을 사적영역으로 축소하여 의존적 존재로 만든다. 모성애 이데올로기는 존재의 억압이자 의존적 상황의 표현이다. 


홀로 사는 사람은 없다. 우린 함께 살며 관계를 맺는다. 그런데 만약 그 관계에서 한쪽이 온전하지 못하다면? 아니 온전하지 못하게 만드는 관계라면? 페미니즘은 우리가 진정으로 함께 살기 위한 출발점이자, 꼭 거쳐야 할 징검다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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