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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월 테제 ㅣ 레닌 전집 66
블라디미르 일리치 레닌 지음, 양효식 옮김 / 아고라 / 2020년 3월
평점 :
■레닌전집 읽기 066권 <4월 테제>
이름만 들었던 그 유명한 ‘4월 테제’를 레닌전집 덕분에 읽을 기회가 생겼다.
레닌전집 066권 <4월 테제>는 레닌이 러시아 2월 혁명소식을 듣고 귀국한 4월 3일부터 4월 20일까지 쓴 글들이 수록되어있다. 한 달 전쯤 읽었는데 기억이 더 희미해지기 전에 지금이라도 내용을 정리해본다. 전집과 별도로 당시 상황은 트로츠키의 <러시아 혁명사>를 참고했다.
러시아 2월 혁명 소식을 접한 레닌은 밀봉열차를 타고 러시아에 귀국한다. 핀란드 역에 도착하면 체포될지도 모른다는 레닌의 예상과 달리 볼셰비키들은 그를 마중하기 위해 장갑차 사단과 수천 명의 노동자들을 동원한다. 핀란드 역에 도착한 레닌은 커다란 꽃다발을 받아 안고 ‘차르응접실’의 환영행사로 안내된다. 페트로그라드 소비에트 의장이자 소비에트 집행위원회 대표자격으로 멘셰비키 체이드제가 환영연설로 그를 맞이한다.
“레닌 동지, 페트로그라드 소비에트와 혁명 전체의 이름으로 귀하의 귀국을 환영합니다. ……현재 혁명적 민주주의의 가장 중요한 임무는 내외의 모든 공격으로부터 우리 혁명을 방어하는 것입니다.”
체이드제는 레닌에게 민주파의 결속 역할을 해줄 것을 요청한다. 레닌은 그를 무시한 채 자신을 둘러싼 노동자, 병사 군중들을 향해 외친다.
“여러분의 모습을 통해 승리한 러시아 혁명을 맞게 되어 기쁩니다. ……인민이 손에 든 무기를 자국의 자본주의 착취자들에게 돌릴 시간이 멀지 않았습니다. ……여러분이 성취한 러시아 혁명은 새로운 시대를 열었습니다. 세계 사회주의 혁명 만세!”
■4월 테제
마중 나온 카메네프에게 레닌이 보낸 첫 인사는 핀잔이었다. “당신이 《프라우다》에 쓴 거, 그 쓰레기는 뭡니까? 우리가 몇 호 보면서 정말로 당신 욕을 했소.” 당시 볼셰비키 당 기관지 《프라우다》의 편집국(카메네프, 스탈린, 무라노프)은 2월 혁명의 성과물을 지키기 위한 조국방위전쟁에 찬성하는 입장으로 기울고 있었다. 임시정부에 대해서는 비판적지지 입장에 가까웠다.
《프라우다》는 3월 7일 논설에서 ‘자본주의 타도가 아닌 전제정 타도’를 현 시기 과제로 선언한다. 3월 15일 카메네프는 전쟁에 조건부지지 입장을 내건다. 전선에서 러시아 군대가 먼저 무기를 내려놓고 ‘전쟁 중지’를 선언할 수 없다는 내용이었다. 스탈린은 임시정부에 평화협상 압력을 넣는 것을 해결책으로 제시한다. 이를 위해 노동자, 병사, 농민의 집회를 잘 배치할 필요가 있다.
레닌이 스위스에서 2월 혁명 소식을 듣고 러시아로 보낸 일종의 지침인 <먼 곳에서 보낸 편지들>도 《프라우다》는 제대로 기재하지 않는다. 편지 네 편 중 한 편만이 실리고 그마저도 ‘누구라도 임시정부를 지지하는 것은 노동계급의 대의에 반하는 것’이라는 메시지는 편집되었다. 이처럼 볼셰비키 지도부는 ‘전쟁을 내란으로!’라는 구호에서 점점 멀어지고 있었다.
4월 4일 볼셰비키 소비에트 대의원들이 모인 집회에서 레닌은 자신의 견해를 짤막하게 정리한 ‘4월 테제’를 낭독한다. 10개 항목으로 구성된 테제는 “임시정부와 전쟁에 대한 태도 문제 및 그와 관련한 권력 및 국가 체제 문제를 제기하고 있다.” 옮긴이 후기에서 정리된 테제 내용은 대략 아래와 같다.
▲임시정부 하에서도 전쟁의 성격은 바뀌지 않았다. 현 전쟁은 여전히 제국주의 전쟁이지 혁명적 전쟁이 아니다. 임시정부를 타도해야 전쟁이 끝날 수 있음을 대중에게 설명해야한다.
▲현 정세의 특수성은 노동계급의 의식화와 조직화가 충분치 못해 권력을 자본가계급에게 넘기는 첫 단계에서 노동계급과 빈농계급에게 권력을 넘기는 두 번째 단계로 이행하고 있다는 점이다.
▲부르주아 의회제 공화국이 아니라 노동자 대표 소비에트 공화국을 수립해야한다.
▲그 밖에 농업강령 개정, 당 강령 개정, 당명 변경, 새로운 인터내셔널 건설 등등
레닌의 연설에 볼셰비키 대의원들은 당황했다. 일리치(레닌의 본명)가 해외에 너무 오래있어서 사태를 잘 모른다고 속닥거렸다. 레닌의 아내 크롭스카야는 “일리치가 미쳐버린 걸로 보일까 봐 두렵다”고 털어놓기까지 했다. 그의 연설에 멘셰비키는 안도했다. “저런 어리석은 말을 하는 사람은 위험하지 않다. 그가 귀국한 것은 잘된 일이다. 이제 그의 권위는 사라졌다.”
■구 볼셰비즘과의 갈등
레닌은 ‘구 볼셰비즘’ 노선을 ‘고물 보관소에나 수용해야 한다’며 당의 쇄신을 촉구한다. 당원들은 ‘4월 테제’의 내용을 좀 더 자세히 알려달라고 요청한다. 이에 레닌은 ‘전술에 관한 편지’, ‘우리 혁명에서 프롤레타리아트의 임무’ 등을 발표한다.
카메네프는 “레닌의 도식이 부르주아 민주주의 혁명이 완료되었다는 가정에서 출발하여 이 혁명을 사회주의 혁명으로 직접적으로 전화시키는 것을 목표”로 하고 있다며 레닌의 테제를 반박한다. 그간 볼셰비키 당의 혁명 노선은 ‘노동자·농민의 혁명적 민주주의 독재’(노농민주독재)가 부르주아 민주주의 혁명을 완수한다는 것이었다. 따라서 현 시기가 부르주아 민주주의 혁명 과정인 만큼 이것을 완수할 노농민주독재를 만들 조건을 조성하는 게 선차적이다. 이는 임시정부에 대한 비판적지지, 혁명적 조국방위입장으로 귀결되었다.
레닌은 반박한다. 공식은 일반적인 줄기만 제시할 뿐이며, 구체적인 상황에 따라 수정되기 마련이다. 그렇다면 우린 현재 당의 임무를 규정할 객관적인 사실에 주목해야한다. 구체적인 사태는 기존 볼셰비키의 예상과 다르게, 또 매우 복잡하게 진행되었다. 실제 사실들을 “연구하는 대신 암송한 공식들을 분별없이” 되뇌는 것은 옳지 않다.
옛 사고방식에 따르면, 부르주아 계급의 지배 이후 노동자·농민의 지배가 뒤따를 것이고 또 그래야만 한다. 그러나 실제로는 전자와 후자가 서로 교차하는, 즉 임시정부와 소비에트가 나란히 존재하는 이중권력 상황이 도래했다. 이중권력이라는 현실에 맞게 볼셰비즘은 보완되어야 한다.
‘노동자·병사 소비에트’야말로 현실화된 노농민주독재다. 그런데 지금 사태는 어떠한가? 이 현실화된 노농민주독재인 소비에트가 오히려 권력을 임시정부에게 넘기고 있다. 자유주의적, 소부르주아적 경향이 소비에트에서 다수를 점하고 러시아 대중정치에 강한 영향을 끼치고 있다. 따라서 현 시기 과제는 이런 경향에 맞서 프롤레타리아적 분자들을 결집하고 이들이 다시 소비에트 내에서 다수를 쟁취해야한다.
“지금 ‘프롤레타리아트와 농민의 혁명적 민주주의 독재’만을 말하는 사람은 실제 상황에 뒤쳐진 사람”이다. 그런데 카메네프는 실제 사실을 연구하는 대신에, 소비에트의 의의를 고민하는 대신에 부르주아 민주주의 혁명이 완료되었는가, 사회주의를 직접 도입하는 게 아닌가, 하는 식으로 “공허한, 자칭 과학적이지만 실제로는 아무 내용이 없는, 현학적인 죽은 문제로 주의를 돌리고 있는 것이다.”
■레닌 노선의 승리
레닌의 ‘4월 테제’는 멘셰비키는 물론이거니와 고참 볼셰비키들에게 마저 외면 받았다. 그는 전쟁의 성격, 계급 역관계, 소비에트의 의의, 당면 임무 등등 하나부터 열까지 설명하고 설득해야했다. 대중의 오도자가 아닌 진정한 국제주의자라면 당분간 소수파가 될 것을 두려워해선 안 된다고 외쳤다. 볼셰비키 당의 모든 지구 및 세포 단위들에서 레닌의 테제가 토론에 붙여졌다. 4월 24일 전국 볼셰비키 당협의회 즈음이 되자 대부분의 당 조직들이 레닌의 테제를 지지하게 된다. 불과 3주 전만해도 고참 볼셰비키들에게서 미쳤다는 평가를 받은 테제였다.
어느 고참 볼셰키비는 이 변화를 이렇게 평가했다.
“레닌이 귀국하기 전까지 우리는 1905년의 노선밖에 알지 못했다. 인민의 창조적인 독자적 투쟁을 보고도 우리는 이들을 지도하지 못했다. …… 우리 동지들은 의회적 수단인 제헌의회 소집을 준비하는 것으로 스스로를 한정시켰을 뿐 이것을 넘어설 가능성을 고려하지 못했다. 레닌의 구호들을 받아들이면서 …… 우리는 이미 노동자 정부를 가지고 있다고 말할 필요가 있다.” <트로츠키, ‘러시아 혁명사’ 중>
‘4월 테제’의 관한 이런 이야기를 읽다보면 놀랍기도 하고 경이롭기도 하다. 어떻게 이런 일이 가능할까? 단지 레닌이 선견지명을 가진 천재라고 결론내리기엔 뭔가 찝찝하다. 레닌은 노동자와 농민들이 자유주의자들보다 1,000배나 좌에 그리고 볼셰비키보다는 100배나 좌에 있다고 했다.
3월에 비보로그 노동자 지구 평당원들은 《프라우다》 편집국의 제명을 요구한다. 비보로그 노동자들은 집회에서 소비에트가 권력을 장악해야한다고 결의한다. 같은 달 노동자들은 8시간 노동제를 요구하며 작업장 복귀를 거부한다. 4월에는 차르가 타도되었는데도 전쟁이 계속된 것에 염증을 느낀 병사들이 전선을 이탈한다. 전쟁을 계속하겠다는 임시정부 입장에 분노한 대중들은 봉기를 일으킨다.
“모든 혁명의 주요 징표 중 하나는 정치생활과 국가 조직에 적극적·자주적·활동적으로 참여하기 시작한 ‘일반민중’의 수가 눈에 띄게 급속하고 급격하고 거세게 증가한다는 것이다.” <92p>
자유주의자들이 공화국 법률안을 기초하는 것을 기다리지 않고, 사이비 사회주의자들의 편견을 뛰어넘어 수백만의 민중들이 창의에 의해, 자기식의 민주주의를 창조해나가는 것. 이것이 소비에트가 가지는 의의였다. 이제껏 없던 새로운 권력이 생겨나고 있었다. 레닌의 노선은 이것을 끝까지 밀고 나간 것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