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버의 중기 단편집 『사랑을 말할 때 우리가 이야기하는 것』에 실린 「목욕」이 「별 것 아닌 것 같지만, 도움이 되는」의 전신이 되는 작품인데, 이 두 작품을 잘 비교하면 그간 카버가 어떻게 변했는지(혹은 편집자 고든 리시 때문에 드러나지 않았던 카버의 면모에 대해서) 짐작할 수도 있을 것 같다.
일단 「별 것 아닌 것 같지만, 도움이 되는」은 '빽빽하다'. 나는 그래서 이 작품을 처음 읽었을 때 조금 놀랐다. '리얼리즘과 미니멀리즘의 대가'라고 불리는 카버치고, 그러니까 채워넣기보다 생략하고 비우면서 작품의 분위기를 이끌어 갔던 스타일이 미묘하게 변했구나, 느껴서였다.
이러한 변화는 작품 초반부터 감지된다. 「목욕」에 비하면 「별 것 아닌 것 같지만, 도움이 되는」에 나오는 빵집 주인은 이야기를 전환시키는 캐릭터이기 때문에 처음부터 스코티 엄마의 시선에 의해서 빵집 주인이 자세하게 묘사된다. 특히, 여기서 카버 식의 인물관찰법이 나온다. 이건 우리나라 손보미 작가에게서도 많이 발견되는 것인데(내가 생각하기로는), 한 인물이 다른 인물의 삶을 자신의 삶과 병치시켜 생각하는 것이다. 예컨대 이런 것이다.
"빵집 주인은 신나지 않았다. 두 사람 사이에는 그저 최소한의 말들, 필요한 정보만 오갔을 뿐 즐거울 만한 것은 없었다. 그 때문에 그녀는 마음이 불편했고 기분이 나빠졌다. 그가 연필을 쥐고 계산대에 몸을 숙이고 있는 동안, 그녀는 그 덜떨어진 모습을 바라보며 평생 빵이나 만들면서 살 사람이라고 생각했다. 서른세 살의 애 엄마인 그녀가 보기에 사람들에게도, 특히 빵집 주인과 비슷한 연배-그러니까 자기 아버지 또래의 중늙인이들-에게도 아이들이 있겠지만 케이크나 생일파티를 준비하는 인생의 특별한 시기는 이미 지나간 게 틀림없었다. 우리 사이에는 그런 차이가 있겠지, 라고 그녀는 생각했다."
여하튼 카버는 스코티 엄마의 시선에 비치는 빵집 장수를 최대한 퉁명스럽게 그린다. 마치 작품 마지막에 빵집 장수가 아이를 잃은 두 부부에게 생각지도 않은 위로를 주는 것을 감안할 때 그 극적효과를 계산해 넣은 것처럼. 이것도 약간 카버치고는 '짜여진 듯' 느껴져서 눈여겨 보았던 부분이었다.
그리고 인물에 대한 묘사와 인물이 하는 생각에 할당하는 부분도 대폭 늘었다.
남자는 병원에서 집으로 차를 몰고 갔다. 거리에서 그는 차를 필요 이상으로 빠르게 몰았다. 지금까지의 인생은 괜찮았다. 일과 아버지의 역할, 그리고 가족이 있었다. 남자는 운이 좋았고 행복했다. - 「목욕」
지금까지 그의 삶은 순탄하기만 했고 어디 하나 부족한 게 없었다. 대학도, 결혼도, 경영학 고급과정 학위를 받기 위해 다시 다닌 일 년의 대학생활도, 투자회사에 하위 파트너로 들어가게 된 일도, 아빠가 된 것도. 그는 행복했고, 지금까지는 운이 좋았다. 그도 알고 있었다. 부모님은 여전히 살아 계시고 형제자매들은 다들 자리를 잡았으며 대학친구들은 모두 사외에 나가 나름의 위치를 차지하고 있었다. 지금까지는, 그 어떤 쓰라린 경험도 없었다. 운이 다하면, 갑자기 모든 상황이 바뀌면, 한 사람을 꺾어버리고 내팽개치는 어떤 힘 같은 게 이 세상에는 존재한다는 걸 그도 알고 있었다. - 「별 것 아닌 것 같지만, 도움이 되는」
"기도를 하고 있었어요."
그녀가 말했다.
"나도 그래. 기도하고 있어." - 「목욕」
"기도했어." 그녀가 말했다.
그는 고개를 끄덕였다.
"기도하는 법을 다 잊어버렸다고 생각했었는데, 하니까 또 되네. 기도라고 해봐야 눈을 감고 그저 '하느님, 우릴 도와주세요. 스코티를 도와주세요'라고 말한 게 다지만. 그것 빼고는 어려울 게 없으니까. 말이야 다 준비돼 있으니까 당신도 기도하고 싶으면"이라고 그녀가 말했다.
"나는 벌써 했어." 그가 말했다. "오늘 오후에, 아니, 벌써 어제구나. 당신 전화 받고 병원으로 차 몰고 오는 동안 기도했어. 내내 기도하고 있었어." 그가 말했다.
"잘했어." 그녀가 말했다. 처음으로 그녀는 자신들이 이 곤경 속에 함께 있다고 느꼈다. 그녀는 지금까지는 그 곤경이 자신과 스코티에게만 일어난 것이라고 생각했다는 사실을 갑자기 깨달았다. 내내 함께 있으면서 도왔음에도 그녀는 하워드를 받아들이지 않고 있었다. 그녀는 그의 아내라는 사실이 기뻤다. - 「별 것 아닌 것 같지만, 도움이 되는」
혼수상태에 빠진 스코티가 무슨 검사를 받기 위해 스코티의 침대를 끌고 갔던 간호보조원-「목욕」에는 '잡역부'라고 표현되어 있다-도 「목욕」에 없던 캐릭터가 생겼다. 검은 머리칼, 짙은 얼굴빛에 하얀 작업복을 입은 두 사람은 외국인이다.
스코티가 검사를 받은 다음날 스코티의 혈액을 체취하러 온 '기술자'도 「별 것 아닌 것 같지만, 도움이 되는」에서는 캐릭터를 부여받았다. 「목욕」에서는 여자인지도 남자인지도 몰랐던 그녀는 하얀 슬랙스에 하얀색 블라우스를 입고 병실에 등장하여 피를 뽑다가 "그런데 어디가 아픈 거예요? 이렇게 예쁜 애가."라고 부모에게 묻는다.
그리고 절망에 빠진 것이 분명해 보이는 부부 앞에서 시종일관 낙관적인 태도를 보여서 정말 바보 같아 보였던 의사도 「별 것 아닌 것 같지만, 도움이 되는」에서는 이름까지 부여 받았다. 닥터 프랜시스. 그리고 지면을 더 할애 받아 정말 '낙관적인 바보'(혹은 '선의에 가득차 있지만 별로 도움이 안 되는 사람')의 전형스런 행동들을 보여준다. 이 의사는 미남인데다가 상냥하고 친절하지만 '의사'라는 직업에도 불구하고 이 부부에게 도움을 주는 게 없다. 시종일관 스코티는 괜찮을 거라며 거짓 희망만 주다가 스코티가 죽은 다음에야 풀이 꺾인다. 작품 초반에 볼룩한 배를 가진 중늙은이인데다가 덜떨어지고 퉁명스러워서 스코티 엄마가 처음에 '평생 빵이나 만들면서 살 사람이라고 생각했던' 빵집 주인과는 정반대다. 이런 '분명한' 인물의 대조도 카버에게는 처음으로 목격한 것이라 흥미로웠다. 이제껏 카버를 읽으면서 아 이 작가는 짜여진 듯 쓴다기보다 뭔가 직관적으로 자연스럽게 쓴다는 느낌을 많이 받았는데 유독 이 작품에서 그런 것들을 굉장히 가다듬고 정돈한 느낌이었다. 그래서 이 작품을 굉장히 '공들여'썼구나 느끼면서도 뭔가 '내가 막연히 알고 있던' 카버가 아니라서 당황하기도 했다.
의사는 미남이었다. 그의 피부는 윤기가 흐르고, 햇빛에 검게 그을려 있었다. 스리피스 양복을 입었으며, 밝은 색상의 넥타이를 매고, 셔츠에는 커프스 단추를 달고 있었다.
어머니는 자신에게 이렇게 말하고 있었다. 이 의사는 청중과 함께 있다가 이제 막 돌아온 거야. 그는 특별한 메달을 받았어. - 「목욕」
의사는 그을린 어깨에 어깨가 떡 벌어진 미남이었다. 그는 줄무늬 넥타이에 아이보리 커프스단추가 달린 푸른색 스리피스 양복을 입고 있었다. 회색 머리칼을 머리 양쪽으로 잘 빗어넘겨서 이제 막 연주회에 갔다 온 사람처럼 보였다. - 「별 것 아닌 것 같지만, 도움이 되는」
의사가 들어왔다. 그는 햇빛에 그을려 있었고, 그 어느 때보다도 건강해 보였다. 그는 침대로 가서 소년을 진찰했다. - 「목욕」
문이 열리고 닥터 프랜시스가 들어왔다. 이번에 그는 다른 양복에 다른 넥타이를 매고 있었다. 잿빛 머리칼을 양옆으로 잘 빗었으며 막 면도를 한 사람처럼 보였다.- 「별 것 아닌 것 같지만, 도움이 되는」
「목욕」에서는 스코티가 죽는 걸 확실하게 보여주지 않는다. 스코티의 엄마가 병원에만 있다가 쉬기 위해 잠시 집에 와서 정체불명의 전화를 받는 것으로 끝이 난다. 먼젓번 남편이 목욕을 하기 위해 집에 들렀을 때 남편이 영문도 모르고 받았던 그 전화 말이다. 스코티 엄마는 아직 전화가 어디서 걸려왔는지 모른다(독자는 빵집 장수라는 것을 알지만). 소설의 마지막은 이렇다. 누군지 모를 그 목소리가 "그래요, 스코티와 관련된 일로 전화드렸습니다."하고 말하는 걸로 끝이 난다. 이렇게 스코티의 죽음을 암시하는 건지 모르겠지만 독자에게는 좀 생뚱맞고 당황스러운 결말이었다. 물론 이는 고든 리시의 (지나친)편집 탓인 것 같지만 말이다.
하여간 『대성당』을 출간하면서 레이먼드 카버는 예전만큼 고든 리시의 손길을 빌리지 않았고 그 덕에 고든 리시가 일찍이 삭제해버렸던 위로를 주는 결말을 다시 가져왔다. 「목욕」에서는 생일 케이크에 대해서 잊어버린 아이의 어머니에게 위협적인 전화를 거는 것으로만 역할을 다 하는 빵집 주인이, 그에게 화가 나서 찾아온 아이의 부모를 맞아서 여태까지 제대로 먹지 못한 부부에게 갓 구운 빵을 건네며 그들과 이야기를 나누는 결말 말이다.
알려진 바로는 『사랑을 말할 때 우리가 이야기하는 것』에 수록된 「청바지 다음에」 같은 작품에 대해서도 고든 리시는 비슷한 편집을 했다(고든 리시는 카버에게서 다른 문학 작품에 대한 언급이나 고급 문화가 묻어나는 부분, '기도 장면'처럼 종교적인 열망을 드러내는 부분을 다 없앴다고 알려져 있다). 아마도 작품 마지막에 제임스 패커가 병이 악화된 이디스 패커-아내-를 위해 기도하는 장면을 삭제해버린 듯하다.
「청바지 다음에」도 흥미롭게 읽은 작품이었는데, 『사랑을 말할 때 우리가 이야기하는 것』에 실린 몇몇 작품들이 너무 생략되어 있다는 인상을 풍기는 것처럼 이 작품도 상당 부분을 독자의 짐작으로 채워넣어야 했던 작품이지만 「별 것 아닌 것 같지만, 도움이 되는」과 궤를 같이 한다고 느꼈던 지점은 이러하다. 두 작품 모두 '운이 다하면, 갑자기 모든 상황이 바뀌면, 한 사람을 꺾어버리고 내팽개치는 어떤 힘 같은 게 세상에 존재한다'는 사실을 그려낸 작품이기 때문이다.
마지막으로 「별 것 아닌 것 같지만, 도움이 되는」에서 정말 좋았던 문장, 그러나 왠지 카버스럽지 않아서 한참을 들여다보았던 문장을 인용하며 이 글을 마친다.
"그들은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그럼에도 두 사람은 이제 서로의 속을 들여다볼 수 있을 것 같았다. 마치 하도 걱정해서 온몸이 저절로 투명해진 것처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