따뜻한 일상, 레이첼의 손뜨개 수업 - 크로쉐로 만드는 소박한 행복
양선영 지음 / 팜파스 / 2015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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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절하고 알찬 손뜨개 책.

티를 사랑하는 사람이라면, 더욱 각별할 크로쉐(코바늘 뜨개질) 책이다.

티코스터와 티포트 홀더 같은 다양한 티타임 소품의 도안이 수록되어 있기 때문이다.

사실 나처럼 티보다 커피를 사랑해도 상관없다.

티타임 소품에 소개된 아이템들은, 주위 사람들에게 고마운 마음을 표현하는 정성스러운 선물로 손색이 없으니까.

책에 나온 도안대로 넥워머를 짜서 남편의 목에 둘러주었고,

책에 나온 도안대로 티코스터와 티포트 홀더를 짜서 가족과 친구들에게 선물했다.

작년 여름에 사슬뜨기를 처음 해본 사람이 이 정도 했으면... ^^

크로쉐 도구 설명부터 실 잡는 방법과 바늘 잡는 방법, 특히 저자만의 팁을 설명할 때는 사진까지 곁들어져 있어 이해하는 데 어렵지 않다.

특히 다른 책에선 볼 수 없었던, 레이첼의 장미모티브를 만들어보는 것은 참 설레는 일이었다.

한 사람의 오랜 시간이 축적된 노하우를 배운다는 점에서.


△ 심플 티코스터 2


△ 장미 모티브

△팟캐스트를 들으며 심플 티코스터 한 쌍씩 짜서 내일 만날 친구들 선물로... ^^

 

 

△ 변형 구슬뜨기와 피코 빼드기는 처음 해보았는데, 큰 어려움 없이 책에 나온 설명만으로 완성할 수 있었던 티포트 매트. 


코바늘 기호와 뜨는 방법에 대해서도 사슬뜨기부터 피코뜨기까지 자세하게 나와 있고, 모티브를 연결하는 방법도 두 종류로 소개되어 눈여겨 볼 만하다. 아이템들은 머플러, 넥워머, 핸드워머 등의 패션 소품티타임 소품, 다양한 그라니 블랭킷(그라니 블랭킷, 하면 흔하다고 생각하겠지만 저자의 블랭킷을 보면 첫눈에 반해버릴 것이다), 그리고 커튼, 방석, 쿠션, 액자 등의 리빙 소품들로 구성되어 있다. 한 가지 놀라운 사실은 이 모든 아이템들의 도안이 손도안이라는 것...

이 책의 소품들이 내게 더욱 특별히 다가왔던 이유는, 저자의 배색이다.

지나치게 알록달록한 색 조합을 좋아하지 않는 나로서는 반길 수밖에 없는 은은하고 사랑스러운 색들이 많았다.

민트, 바이올렛, 흐린 핑크, 아이보리, 아침햇살이 내려앉은 듯한 겨자색, 연한 살구색, 부드러운 브라운, 차분한 카키, 회색에 가까운 블루 등등.

우아하고 차분한 배색을 좋아하는 사람들에게도 권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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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리산책자 2016-01-01 23:4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 광활한 공간은 왜 없어지지 않는 것인가 -_-;;
 
읽지 않은 책에 대해 말하는 법 패러독스 1
피에르 바야르 지음, 김병욱 옮김 / 여름언덕 / 2008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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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책 제목이 경쾌하다. 불순한(?) 의도를 가진 사람을 끌어당길 법도 하지만 순수하게 그런 의도로 『읽지 않은 책에 대해 말하는 법』을 펼쳤다간 이내 "낚였군..."하고 내뱉게 될 것이다. 속물적으로 말해서, 파리 8대학 프랑스문학 교수이자 정신분석학자인 저자가 그런 꼼수를  가르치기 위해 책 한 권을 쓸 리가 없다. 오히려 "정말 읽지 않은 책에 대해서 그럴듯하게 말할 수 있단 말예요?"라는 우문을 품고 달려드는 독자들에게 저자는 독서에 대한 새로운 관점을 제시하며 현답을 선사한다고 볼 수 있을 거다.

 

  이 책을 읽으며 떠오른 다른 책은 2년 전에 읽은 사사키 아타루의 『잘라라, 기도하는 그 손을』이었다. 피에르 바야르의 『읽지 않은 책에 대해 말하는 법』은 사사키 아타루의 책과는 사뭇 다른 위치를 점하고 있는 책으로도 보인다. 개인적으로는 사사키 아타루의 책이 正이었다면 피에르 바야르의 책이 反으로 느껴졌으므로, 이 두 책에 대한 독서 경험을 적절히 참조하고 소화해서 合에 이르는 것이 내 개인의 과제라고 생각하기도 했다. 한마디로 사사키 아타루가 나무의 가지 하나하나, 가지들에 달린 이파리의 가느다란 잎맥 하나하나까지도 놓치지 않으려 했다면 피에르 바야르는 시원스런 조망으로 숲을 보라고 조언한다. 한 저자가 집요한 현미경을 들이대었다면 한 저자는 화각이 넓은 망원경을 들이대는 거랄까. 이건 어느 관점이 옳다 그르다를 논할 게 아니고 균형잡힌 독서, 진실된 독서를 하기 위해서는 두 관점 모두 자기식으로 소화해내야 하는 문제일 테다.

 

  한편 두 저자의 견해를 들여다보면 독서라는 경험이 결코 삶과 무관하지 않다는 사실을 깨달을 수 있다. 사사키 아타루의 책을 읽고 나면 보통 독자들에게 드는 생각은 이런 게 아닐까. '아, 그동안 얼마나 허술한 독서를 했는지.' '그동안 이 책이 감명깊다고 말하고 다닌 것에 비해 정작 내 삶은 그 책과 어떤 화학작용을 일으켰는지.' '과연 그 책을 읽기나 한 것인지.' '읽는다는 행위는 단지 활자를 훑는 것이 아니야!' '문학소녀, 문학소년이란 명칭에 안주하지 말지어다.'

 

  그러니까 사사키 아타루를 통해서 독자들은, 독서라는 행위 앞에서 우리의 내면이 얼마나 적극적으로 반응해야 하는 것인지에 대해서 숙고하게 된다. "책을 읽을 수 없습니다. 읽을 수 있다면 미쳐버립니다. 하지만 그것만이, 그것만이 읽는다는 것입니다."라고 피를 토하는 듯한 문장들에서도 명백히 드러나는 것처럼, 사사키 아타루는 독서를 통해 내밀한 삶에 이르는 문이 얼마나 더 활짝 열려야 할지, 독서와 삶의 그 치열한 삼투압에 대해서 한번쯤 정좌하고 진지하게 생각하는 계기를 마련해준다.

 

  사사키 아타루의 관점과 견해가 수직적이고 개별적이라면 피에르 바야르의 관점과 견해는 훨씬 수평적이고 총체적이다. 피에르 바야르는 일단 책에 대한 '신성'이나 '환상'을 걷어내내고 말한다. "독서는 정신셰계를 풍요롭게 해줌과 동시에 탈개성화 작용을 발생시킨다"고.  그는 '소득으로서의 독서'보다 '상실로서의 독서'에 주목한다. 어떤 대목에 빠져 길을 잃지 말고 자신을 상실하지 않기 위해서는 책과의 일정 거리를 유지해야 하며, 다른 사람들의 말의 무게에서 해방되어 마침내는 자기 자신에게 귀를 기울여야 한다고.

 

  특히 "독서가 자기 상실 과정이 아니어야" 하며 "잘 읽는 것"이란 결국 "작품으로부터 등을 돌리는 것"이란 피에르 바야르의 자유분방하며 통쾌한 견해를 대할 때마다 떠오른 것은 얼마전 출판계에 파문을 일으켰던 '신경숙 사태'가 아니지 않을 수 없었다.

 

  피에르 바야르는 독서를 물질적인 책과의 만남으로 보지 않고 '비물질적인 오브제와의 만남'으로 본다. 그래서 그에게는 '화면 책/ 내면의 책/ 유령 책'이라는 명칭이 존재하고 더 나아가 '집단 도서관/ 내적 도서관/ 잠재적 도서관' 같은 분류가 나온다. 이같은 분류가 가능한 것은 그가 '책'을 '순환되고 수정되는 어떤 발화 상황의 총체'라고 정의하기 때문이다. 『읽지 않은 책에 대해 말하는 법』이라는 제목에도 암시되어 있는 것처럼 피에르 바야르가 주목하는 것은 '담론으로서의 독서'다.

  ​피에르 바야르가 이끄는 대로 따라가다 보면 독자들은 '그동안 너무 접싯물에 코 박듯이 독서를 하느라 미처 큰그림을 보지 못한 것은 아니었는지.' '그동안 너무 교양 있는 사람으로 보여야 한다는 속박에 얽매여 있었던 건 아닌지.' '책에 파묻혀 정작 내 자신을 잃고 있는 것은 아닌지.' 에 대한 깨달음에 이르게 될 것이다. 저자가 말하듯이 "교양을 쌓았다는 건 이런 저런 책을 읽었다는 것이 아니라 그것들 전체 속에서 길을 잃지 않을 줄 안다는 것"일 테니까.

   책을 탐독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그 책의 위치와 책이 이야기되는 맥락 또한 중요하며 제일 중요하게는 자신만의 이야기를 할 줄 알아야 한다고... 피에르 바야르는 최종적으로 강조한다.

  결국 사사키 아타루, 피에르 바야르... 출발점은 다소 달랐지만 두 저자 모두 귀착점은 비슷하구나, 느끼며 이 책을 덮었다. 책을 어떤 식으로 소화해야하는지에 대해서는 바라보고 있는 지점과 시야의 폭이 다르지만, 책이란 고정되어 있는 사물이 아니라 끊임없이 유동하며 우리의 삶과 섞이는 그 무엇이라는 것, 독서라는 경험이 활자를 스치는 데 끝나지 않고 우리의 삶과 적절하게 녹아들어야 한다는 것...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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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어 라이프 (양장) 문학동네 세계문학전집 113
앨리스 먼로 지음, 정연희 옮김 / 문학동네 / 2014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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먼로를 알게 되어 맹렬히 읽기 시작한 때를 떠올려본다. 처음에는 팟캐스트를 통해서였고, 얼마 안 가 노벨 문학상 수상 소식을 접하게 되었더랬다. 나는 국내에 번역되어 소개된 먼로의 책을 다 구입해 읽었다. 무엇보다 평소에 장편보다는 밀도 높은 단편을 선호하여 읽어왔는데, 먼로는 거의 단편만을 써온 작가여서 더욱 각별했다. 먼로의 3인칭 시점은 완벽했고, 시간 처리 기법은 눈여겨볼만한 것이었으며, 제일 좋았던 점은 먼로만의 균형 감각이었다. 먼로의 작가적 시선은 만물에 차별 없이 내려앉는 햇빛처럼 공평하고, 이제는 그녀의 나이만큼이나 성숙하며 기품이 넘친다. 그녀가 그려내는 절름발이 여인(코리)이나 언청이로 태어난 남자(자존심)나 파혼당한 여자(아문센, 기차), 어렸을 때 아버지에게서 성()적 트라우마를 겪은 여인(기차) 같은 인물을 보면 알 수 있을 테다. 그녀의 인물들은 좀처럼, 추한 고통의 제스처를 취하지 않는다는 것을. 나는 정말이지 그런 인물들을 대하면서 얼굴이 붉어졌다. 부끄럽게도 나는 나의 고통을 내세워 상대를 곤란하게 만들고 조종하려 한 적이 있었으니까. 봉합되어 감춰진 줄로만 알았던 나의 어리석음이 마구 터져나오는 것 같았다.

 

이 소설집에는 특별히 먼로의 자전적인 이야기들이 수록되어 있어 먼로의 인생을 조금 엿볼 수도 있다. 그 시대 캐나다의 평범한 시골 여자들처럼 농장에서 태어났지만 전혀 그렇게 보이지 않으려는 삶을 살았던, 그래서 주위 사람들과 자신 사이에 작은 공간이 절로 생겨났을 것으로 짐작되는 먼로의 어머니. 그러나 사십대에 파킨슨병이 발작한 어머니. 설상가상 아버지의 농장 사업도 사양길로 접어들어 아버지는 주물공장에서 일해야 했다. 그 시기에 대해 먼로는 이렇게 서술한다.

 

너무하다고 생각될지 모른다. 사업은 망했고 어머니는 건강을 잃어갔다. 소설에서도 그런 일은 일어나지 않을 것이다. 하지만 신기하게도 나는 그때를 불행한 시기로 기억하지 않는다. 집에 딱히 절망적인 분위기가 감돌지는 않았다. 아마 그때는 어머니가 호전되지 않고 더 나빠지기만 할 거라는 사실을 몰랐던 것 같다. 아버지는 아직 기력이 있었고 앞으로도 한참 동안은 그럴 것 같았다. 아버지는 주물공장에서 함께 일하는 남자들을 좋아했는데, 그들도 대부분 아버지처럼 침체기를 경험하거나 더 많은 삶의 짐을 떠안게 된 사람들이었다. (405, 앨리스 먼로, 디어 라이프)”

 

소설 속 인물에게나 소설 속 인물이 된 자신에게나 자기연민 같은 감정은 절대 보이지 않는 먼로. 작품마다 먼로 식의 냉정하다고 느껴지리만치 공정하고 강인한시선이 존재하는 것은 먼로의 삶과도 무관하지 않겠지, 하고 나는 당연한 사실을 매우 당연하게 확인하는 기분이었다고 할까.

 

이 세상에 무서워할 건 없어. 자기만 조심하면 돼. (341, 앨리스 먼로, 시선)”

사람들은 말한다. 어떤 일들은 용서받을 수 없다고, 혹은 우리 자신을 결코 용서할 수 없다고. 하지만 우리는 용서한다. 언제나 그런다. (416, 앨리스 먼로, 디어 라이프)”

 

이런 문장들을 읽을 때에는 과연 먼로의 작품을 읽으면 전에는 미처 알지 못했던 무언가를 반드시 깨닫게 된다(맨부커 인터내셔널 상 선정 이유).”라고 말한 찬사에 깊이 동감할 수밖에 없으리라. 한마디로, 어느덧 여든을 넘은 노()작가의 통찰력이 구석구석 빛나지 않는 데가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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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가의 일
김연수 지음 / 문학동네 / 2014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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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 5회 젊은작가상 수상작품집』에 수록된 최은영의 쇼코의 미소」에는 이런 문장이 나온다.

 

순결한 꿈은 오로지 이 일을 즐기며 할 수 있는 재능 있는 이들의 것이었다. 그리고 영광도 그들의 것이 되어야 마땅했다. 영화는, 예술은 범인의 노력이 아니라 타고난 자들의 노력 속에서만 그 진짜 얼굴을 드러냈다. 나는 두 손으로 얼굴을 가리고 눈물을 흘렸다. 그 사실을 인정하기가 어려웠기 때문이다. 재능이 없는 이들이 꿈이라는 허울을 잡기 시작하는 순간, 그 허울은 천천히 삶을 좀먹어간다. (271, 최은영, 쇼코의 미소)”

 

나는 소유의 말에 그저 먹먹해져서 어떤 도움이 되는 위로도 못 건넸을 테지만, 어쩌면 소설가의 일을 쓴 김연수라면 쇼코의 미소속 인물, 소유에게 이렇게 말했을 것이다(그렇다면 소설의 결말과 달리, 소유가 영화 쪽 일을 계속 할 수도 있었을까?). 재능이란 말은 고속도로 휴게소 앞에 세워진 인사기계(인사하는 인형)’나 몽골의 사원에 있는 기도기계(마니차)’ 같은 거라고. 인사하는 인형이 연신 알아서 인사를 해주니 정작 사람들은 인사를 하지 않고, 그 안에 경전이 들어 있어서 손으로 한 번 돌리기만 하면 경전을 읊는 효과가 있다는 마니차덕분에 사람들은 손수 경전을 읽으며 기도를 하지 않는 것처럼 소설가가 재능에 대해서 말할 때는 소설을 쓰고 있지 않을 때다. 소설가에게 재능이란 인사기계나 기도기계 같은 것, 그러니까 마치 나 대신에 소설을 써주는 것처럼 느껴지는 소설기계 같은 것(23, 김연수, 소설가의 일)”이라고.

 

! 이 대목을 읽고 나서 얼마나 뜨끔했는지 모른다. 꾸부정하게 앉아 있던 등을 바로, 꼿꼿하게 세웠다. 김연수 작가가 어디서 나를 지켜보고 있었나, 하는 심정이었다. 내가 슬럼프에 빠질 때마다 입버릇처럼 해온 말이 바로 내겐 재능이 없어.”였으니까. 물론 소설은 한 글자도 쓰지 않은 채(그렇다, 나는 작가지망생이다). 혹시라도 여기까지 읽고 소설가의 일은 작가 지망생이나 읽을 법한 책인가 보다, 라고 섣부르게 넘겨짚는 사람이 있다면 쓰기읽기는 결코 무관하지 않다는 말을 건네고 싶다. 위기철 작가가 작가의 눈으로 읽고, 독자의 눈으로 써라!(위기철, 이야기가 노는 법)”라고 말했듯이, 나 역시 어쭙잖으나마 습작을 시작하고서부터 더욱 천천히, 섬세하게 읽는 법을 터득하게 된 사람이니까.

 

이 책을 처음 읽은 건 작년 겨울이었는데, 왜 그때는 이 부분을 지나쳤던 것일까. 의아했다. 당시에 읽으면서 메모해두었던 것을 찾아보았더니 1번부터 21번까지 번호를 매겨가며 적어 놓은 것은, 김연수 작가가 이 책을 통해 전수하는 소설작법의 기술같은 거였다. 작년에도 주위 사람들에게 이렇게 말했다. 소설가의 일산문집을 빙자한(?) 소설작법서라고. 그런데도 내가 간과한, 중요한 사실이 있다. 작가가 이 책을 통해 소설을 쓰는 기술만큼, 아니 기술보다 더 중요하게 여긴 것은 소설을 대하는 태도, 나아가 삶을 대하는 태도라는 사실. 이 책에는 얼마간 집중적으로 바뀐다라는 동사와 변화라는 명사가 빈번하게 출현하기도 한다. 김연수는 말한다. “용기는 동사와 결합할 때만 유효(53)”하며 해보고 나면 어떤 식으로든 우리는 달라져 있을(98)” 거라고. 꼭 소설을 쓰는 사람에게만 유효한 충고는 아닐 테다. 몇 년 전에 꾿빠이 이상을 읽고 나서도 느꼈던 점인데, 김연수는 보기 드물게 인정할 수밖에 없는 낙관주의자에다가 삶을 송두리째 판돈으로 내거는 사람이다. 작가가 이렇게 말하는 것을 들어보라.

 

인간은 누구나 최대한의 자신을 꿈꿔야만 한다고 믿는다. 어쨌든 결말은 해피엔딩이 아니면 새드엔딩이다. (41)”

 

느껴지겠지만, 그는 성공과 실패에는 관심이 없다. 중요한 건 우리의 영혼에 어떤 문장이 쓰여지냐는 것(262)”이니까. 하여간 고통과 절망은 우리가 충분히 오래 살지 못한다는 사실을 뜻할 뿐(264)”이며 우주에 이토록 무의미한 삶이 많다는 것은 우리에게 아직 미혹될 것이 남아 있기 때문이 아닐까?(252)”라고 말하는 작가 앞에서 정말, 나는 두 손 두 발 다 들고 말았다. 내 안에 늘 앙금처럼 가라앉아 있었던 패배주의나 냉소 같은 것을 일순간에 걷어낸 느낌. 나는 이 책을 덮자마자 냉큼, 오랫동안 잠자고 있던 한글파일의 문서를 열어야만 했다. 이에 대해선 이런 말들로 부연할 수 있을 것 같다. 때론 열 마디 잔소리마다 한 권의 책이 효과적인 법이라고. 혹은 책에 의해서 자기 생각이 바뀌거나 개조될 수 없다면 구태여 읽을 필요 없는 거죠(김 훈, 네이버, 지식인의 서재).”라는 김 훈의 말을 인용할 수도 있을 것이고, “책은 읽을 수 없습니다. 읽을 수 있다면 미쳐버립니다. 하지만 그것만이, 그것만이 읽는다는 것입니다(사사키 아타루, 잘라라, 기도하는 그 손을).”라는 문장을 되새길 수도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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