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소설가의 일
김연수 지음 / 문학동네 / 2014년 11월
평점 :
품절
『제 5회 젊은작가상 수상작품집』에 수록된 최은영의 「쇼코의 미소」에는 이런 문장이 나온다.
“순결한 꿈은 오로지 이 일을 즐기며 할 수 있는 재능 있는 이들의 것이었다. 그리고 영광도 그들의 것이 되어야 마땅했다. 영화는, 예술은 범인의 노력이 아니라 타고난 자들의 노력 속에서만 그 진짜 얼굴을 드러냈다. 나는 두 손으로 얼굴을 가리고 눈물을 흘렸다. 그 사실을 인정하기가 어려웠기 때문이다. 재능이 없는 이들이 꿈이라는 허울을 잡기 시작하는 순간, 그 허울은 천천히 삶을 좀먹어간다. (271쪽, 최은영, 「쇼코의 미소」)”
나는 소유의 말에 그저 먹먹해져서 어떤 도움이 되는 위로도 못 건넸을 테지만, 어쩌면 『소설가의 일』을 쓴 김연수라면 「쇼코의 미소」 속 인물, 소유에게 이렇게 말했을 것이다(그렇다면 소설의 결말과 달리, 소유가 영화 쪽 일을 계속 할 수도 있었을까?). 재능이란 말은 고속도로 휴게소 앞에 세워진 ‘인사기계(인사하는 인형)’나 몽골의 사원에 있는 ‘기도기계(마니차)’ 같은 거라고. 인사하는 인형이 연신 알아서 인사를 해주니 정작 사람들은 인사를 하지 않고, 그 안에 경전이 들어 있어서 손으로 한 번 돌리기만 하면 경전을 읊는 효과가 있다는 ‘마니차’ 덕분에 사람들은 손수 경전을 읽으며 기도를 하지 않는 것처럼 “소설가가 재능에 대해서 말할 때는 소설을 쓰고 있지 않을 때다. 소설가에게 재능이란 인사기계나 기도기계 같은 것, 그러니까 마치 나 대신에 소설을 써주는 것처럼 느껴지는 소설기계 같은 것(23쪽, 김연수, 『소설가의 일』)”이라고.
아! 이 대목을 읽고 나서 얼마나 뜨끔했는지 모른다. 꾸부정하게 앉아 있던 등을 바로, 꼿꼿하게 세웠다. 김연수 작가가 어디서 나를 지켜보고 있었나, 하는 심정이었다. 내가 슬럼프에 빠질 때마다 입버릇처럼 해온 말이 바로 “내겐 재능이 없어.”였으니까. 물론 소설은 한 글자도 쓰지 않은 채(그렇다, 나는 작가지망생이다). 혹시라도 여기까지 읽고 『소설가의 일』은 작가 지망생이나 읽을 법한 책인가 보다, 라고 섣부르게 넘겨짚는 사람이 있다면 ‘쓰기’와 ‘읽기’는 결코 무관하지 않다는 말을 건네고 싶다. 위기철 작가가 “작가의 눈으로 읽고, 독자의 눈으로 써라!(위기철, 『이야기가 노는 법』)”라고 말했듯이, 나 역시 어쭙잖으나마 습작을 시작하고서부터 더욱 천천히, 섬세하게 읽는 법을 터득하게 된 사람이니까.
이 책을 처음 읽은 건 작년 겨울이었는데, 왜 그때는 이 부분을 지나쳤던 것일까. 의아했다. 당시에 읽으면서 메모해두었던 것을 찾아보았더니 1번부터 21번까지 번호를 매겨가며 적어 놓은 것은, 김연수 작가가 이 책을 통해 전수하는 ‘소설작법의 기술’ 같은 거였다. 작년에도 주위 사람들에게 이렇게 말했다. 『소설가의 일』은 ‘산문집을 빙자한(?) 소설작법서’라고. 그런데도 내가 간과한, 중요한 사실이 있다. 작가가 이 책을 통해 소설을 쓰는 기술만큼, 아니 기술보다 더 중요하게 여긴 것은 소설을 대하는 태도, 나아가 삶을 대하는 태도라는 사실. 이 책에는 얼마간 집중적으로 ‘바뀐다’라는 동사와 ‘변화’라는 명사가 빈번하게 출현하기도 한다. 김연수는 말한다. “용기는 동사와 결합할 때만 유효(53쪽)”하며 “해보고 나면 어떤 식으로든 우리는 달라져 있을(98쪽)” 거라고. 꼭 소설을 쓰는 사람에게만 유효한 충고는 아닐 테다. 몇 년 전에 『꾿빠이 이상』을 읽고 나서도 느꼈던 점인데, 김연수는 보기 드물게 인정할 수밖에 없는 낙관주의자에다가 삶을 송두리째 판돈으로 내거는 사람이다. 작가가 이렇게 말하는 것을 들어보라.
“인간은 누구나 최대한의 자신을 꿈꿔야만 한다고 믿는다. 어쨌든 결말은 해피엔딩이 아니면 새드엔딩이다. (41쪽)”
느껴지겠지만, 그는 성공과 실패에는 관심이 없다. 중요한 건 “우리의 영혼에 어떤 문장이 쓰여지냐는 것(262쪽)”이니까. 하여간 “고통과 절망은 우리가 충분히 오래 살지 못한다는 사실을 뜻할 뿐(264쪽)”이며 우주에 이토록 무의미한 삶이 많다는 것은 “우리에게 아직 미혹될 것이 남아 있기 때문이 아닐까?(252쪽)”라고 말하는 작가 앞에서 정말, 나는 두 손 두 발 다 들고 말았다. 내 안에 늘 앙금처럼 가라앉아 있었던 패배주의나 냉소 같은 것을 일순간에 걷어낸 느낌. 나는 이 책을 덮자마자 냉큼, 오랫동안 잠자고 있던 한글파일의 문서를 열어야만 했다. 이에 대해선 이런 말들로 부연할 수 있을 것 같다. 때론 열 마디 잔소리마다 한 권의 책이 효과적인 법이라고. 혹은 “책에 의해서 자기 생각이 바뀌거나 개조될 수 없다면 구태여 읽을 필요 없는 거죠(김 훈, 네이버, 〈지식인의 서재〉).”라는 김 훈의 말을 인용할 수도 있을 것이고, “책은 읽을 수 없습니다. 읽을 수 있다면 미쳐버립니다. 하지만 그것만이, 그것만이 읽는다는 것입니다(사사키 아타루, 『잘라라, 기도하는 그 손을』).”라는 문장을 되새길 수도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