읽지 않은 책에 대해 말하는 법 패러독스 1
피에르 바야르 지음, 김병욱 옮김 / 여름언덕 / 2008년 2월
평점 :
구판절판


 


  책 제목이 경쾌하다. 불순한(?) 의도를 가진 사람을 끌어당길 법도 하지만 순수하게 그런 의도로 『읽지 않은 책에 대해 말하는 법』을 펼쳤다간 이내 "낚였군..."하고 내뱉게 될 것이다. 속물적으로 말해서, 파리 8대학 프랑스문학 교수이자 정신분석학자인 저자가 그런 꼼수를  가르치기 위해 책 한 권을 쓸 리가 없다. 오히려 "정말 읽지 않은 책에 대해서 그럴듯하게 말할 수 있단 말예요?"라는 우문을 품고 달려드는 독자들에게 저자는 독서에 대한 새로운 관점을 제시하며 현답을 선사한다고 볼 수 있을 거다.

 

  이 책을 읽으며 떠오른 다른 책은 2년 전에 읽은 사사키 아타루의 『잘라라, 기도하는 그 손을』이었다. 피에르 바야르의 『읽지 않은 책에 대해 말하는 법』은 사사키 아타루의 책과는 사뭇 다른 위치를 점하고 있는 책으로도 보인다. 개인적으로는 사사키 아타루의 책이 正이었다면 피에르 바야르의 책이 反으로 느껴졌으므로, 이 두 책에 대한 독서 경험을 적절히 참조하고 소화해서 合에 이르는 것이 내 개인의 과제라고 생각하기도 했다. 한마디로 사사키 아타루가 나무의 가지 하나하나, 가지들에 달린 이파리의 가느다란 잎맥 하나하나까지도 놓치지 않으려 했다면 피에르 바야르는 시원스런 조망으로 숲을 보라고 조언한다. 한 저자가 집요한 현미경을 들이대었다면 한 저자는 화각이 넓은 망원경을 들이대는 거랄까. 이건 어느 관점이 옳다 그르다를 논할 게 아니고 균형잡힌 독서, 진실된 독서를 하기 위해서는 두 관점 모두 자기식으로 소화해내야 하는 문제일 테다.

 

  한편 두 저자의 견해를 들여다보면 독서라는 경험이 결코 삶과 무관하지 않다는 사실을 깨달을 수 있다. 사사키 아타루의 책을 읽고 나면 보통 독자들에게 드는 생각은 이런 게 아닐까. '아, 그동안 얼마나 허술한 독서를 했는지.' '그동안 이 책이 감명깊다고 말하고 다닌 것에 비해 정작 내 삶은 그 책과 어떤 화학작용을 일으켰는지.' '과연 그 책을 읽기나 한 것인지.' '읽는다는 행위는 단지 활자를 훑는 것이 아니야!' '문학소녀, 문학소년이란 명칭에 안주하지 말지어다.'

 

  그러니까 사사키 아타루를 통해서 독자들은, 독서라는 행위 앞에서 우리의 내면이 얼마나 적극적으로 반응해야 하는 것인지에 대해서 숙고하게 된다. "책을 읽을 수 없습니다. 읽을 수 있다면 미쳐버립니다. 하지만 그것만이, 그것만이 읽는다는 것입니다."라고 피를 토하는 듯한 문장들에서도 명백히 드러나는 것처럼, 사사키 아타루는 독서를 통해 내밀한 삶에 이르는 문이 얼마나 더 활짝 열려야 할지, 독서와 삶의 그 치열한 삼투압에 대해서 한번쯤 정좌하고 진지하게 생각하는 계기를 마련해준다.

 

  사사키 아타루의 관점과 견해가 수직적이고 개별적이라면 피에르 바야르의 관점과 견해는 훨씬 수평적이고 총체적이다. 피에르 바야르는 일단 책에 대한 '신성'이나 '환상'을 걷어내내고 말한다. "독서는 정신셰계를 풍요롭게 해줌과 동시에 탈개성화 작용을 발생시킨다"고.  그는 '소득으로서의 독서'보다 '상실로서의 독서'에 주목한다. 어떤 대목에 빠져 길을 잃지 말고 자신을 상실하지 않기 위해서는 책과의 일정 거리를 유지해야 하며, 다른 사람들의 말의 무게에서 해방되어 마침내는 자기 자신에게 귀를 기울여야 한다고.

 

  특히 "독서가 자기 상실 과정이 아니어야" 하며 "잘 읽는 것"이란 결국 "작품으로부터 등을 돌리는 것"이란 피에르 바야르의 자유분방하며 통쾌한 견해를 대할 때마다 떠오른 것은 얼마전 출판계에 파문을 일으켰던 '신경숙 사태'가 아니지 않을 수 없었다.

 

  피에르 바야르는 독서를 물질적인 책과의 만남으로 보지 않고 '비물질적인 오브제와의 만남'으로 본다. 그래서 그에게는 '화면 책/ 내면의 책/ 유령 책'이라는 명칭이 존재하고 더 나아가 '집단 도서관/ 내적 도서관/ 잠재적 도서관' 같은 분류가 나온다. 이같은 분류가 가능한 것은 그가 '책'을 '순환되고 수정되는 어떤 발화 상황의 총체'라고 정의하기 때문이다. 『읽지 않은 책에 대해 말하는 법』이라는 제목에도 암시되어 있는 것처럼 피에르 바야르가 주목하는 것은 '담론으로서의 독서'다.

  ​피에르 바야르가 이끄는 대로 따라가다 보면 독자들은 '그동안 너무 접싯물에 코 박듯이 독서를 하느라 미처 큰그림을 보지 못한 것은 아니었는지.' '그동안 너무 교양 있는 사람으로 보여야 한다는 속박에 얽매여 있었던 건 아닌지.' '책에 파묻혀 정작 내 자신을 잃고 있는 것은 아닌지.' 에 대한 깨달음에 이르게 될 것이다. 저자가 말하듯이 "교양을 쌓았다는 건 이런 저런 책을 읽었다는 것이 아니라 그것들 전체 속에서 길을 잃지 않을 줄 안다는 것"일 테니까.

   책을 탐독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그 책의 위치와 책이 이야기되는 맥락 또한 중요하며 제일 중요하게는 자신만의 이야기를 할 줄 알아야 한다고... 피에르 바야르는 최종적으로 강조한다.

  결국 사사키 아타루, 피에르 바야르... 출발점은 다소 달랐지만 두 저자 모두 귀착점은 비슷하구나, 느끼며 이 책을 덮었다. 책을 어떤 식으로 소화해야하는지에 대해서는 바라보고 있는 지점과 시야의 폭이 다르지만, 책이란 고정되어 있는 사물이 아니라 끊임없이 유동하며 우리의 삶과 섞이는 그 무엇이라는 것, 독서라는 경험이 활자를 스치는 데 끝나지 않고 우리의 삶과 적절하게 녹아들어야 한다는 것...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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