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대부 소대헌 호연재 부부의 한평생
허경진 지음 / 푸른역사 / 2003년 3월
평점 :
품절


사실 이 책을 처음 대하는 순간 가장 당혹스러웠던 것은, 대체 이 책의 주인공이 누구이고, 저자가 보여주려는 것이 무엇인가에 대한 정확한 언급이 없다는 점이었다. 소대헌과 호연재라는 당호를 그대로 쓴 탓에 책을 꼼꼼히 몇 페이지 읽어야만, 이 책의 주인공이 은진송씨 집안의 송요화와 그의 부인이라는 것을 알 수 있을 정도다. 시대적인 배경이나 연대마저도 명확하게 표기되어 있지 않아, 독자 스스로 은진송씨 집안의 가계도를 그려보아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자칫 책 속에 등장하는 동춘당의 일생을 따라 딴 길(?)을 가게 될지도 모를 일이다.

<사대부 한평생>이라는 제목에 충실하기 위함인지, 저자는 은진송씨 집안의 갖가지 책과 자료들을 토대로 관혼상제는 물론 일상사까지 다큐멘터리식으로 서술하고 있다. 그러나 그 중심이 되는 사람은 여전히 송요화도, 그의 부인 호연재도 아니다. 오히려 송요화의 증조부가 유난히 부각되고 있다. 그도 그럴 것이 동춘당의 일생에 대한 자료가 훨씬 더 다양하기 때문이다. 이쯤에 이르면 자칫 이 책의 주인공이 잘못 선정된 것은 아닌가하는 느낌이 들기도 한다.

읽는 동안 내내 혼란스러움이 머릿속을 떠나지 않았다. 송요화과 그의 부인의 일생을 따라간다고는 하지만, 몇 줄의 일기와 덕은가승을 통한 내용이 전부일 뿐, 그 둘의 일생을 깔끔하게 편집하지 못하고 있다. 은진송씨 집안의 무수한 자료들만이 붉은 색으로 2도 인쇄된 사진들과 함께 나열되어 있을 따름이다.

물론 정확한 사진 자료와 유물들은 독자들에게 분명 도움을 준다. 그러나 그보다 선행되어야 할 것은, 줄기가 제대로 잡힌 글일 것이다. 제목은 분명, 송요화와 그 부인의 일생을 통해 사대부의 한평생을 보려 한다고 되어 있다. 그러나 내용은 그와 반대이다. 오히려 사대부의 일평생이 어떠한가를 자료를 통해 나열한 가운에서 사이사이에 송요화와 삶이 하나의 예로 등장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 저작과 유사한, <홀로 벼슬하며 그대를 생각하노라>와 비교해보면, 글쓰기의 중심에 따라 저자의 의도가 얼마나 확실하게 전달될 수 있는지를 파악할 수 있다. 물론 두 책의 서술 방식은 전혀 다르다. <홀로->의 경우 일기를 소설로 재구하는 형식을 취하고 있고, 이 책에서는 다큐멘터리식의 사실 나열 방식으로 일관하고 있으니 말이다. 두 책의 차이는 비단 서술방식에서만 드러나는 것이 아니다. 주인공을 얼마나 뚜렷하고 명확하게 부각시켜, 그들의 삶을 미시적 관점에서 어떻게 조명하고 있는가도 확연한 차이로 드러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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