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노의 포도 1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174
존 스타인벡 지음, 김승욱 옮김 / 민음사 / 2008년 3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미시건에서 캘리포니아로 와서 잡인터뷰를 했을 때가 2월이었던 걸로 기억한다. 끊임없이 눈이 오고, 하늘이 흐린 미시건에 있다가 잠시 방문해서 느낀 2월 캘리포니아의 햇살은 따사로웠다. 텔레비전 일기예보에서는 일 주 내내 섭씨 20도의 날씨가 지속된다고 보도했다. 미시건을 떠나올 때도 많은 사람들이 날씨 좋은 곳으로 가네라고 부러워하였다. 캘리포니아 드림이라는 말이 있고, 노래가 있듯이 미국 내에서도 캘리포니아는 무언가 이상이 이루어지는 곳이라는 막연한 기대가 퍼져 있는 듯 하다. 캘리포니아는 Golden State라고 불려진다. 금이 발견되었고, Golden Poppy라는 꽃이 많이 보여서 그렇다고 한다. 막상 살아보니 비가 오지 않아 농사짓기 척박할 것만 같은데, 그래도, 여전히 그 상징성은 사라지지 않아 보인다.


분노의 포도라는 소설은 오클라호마에서 자신들의 터전을 버리고, 캘리포니아로 이주한 가족의 이야기다. 대공황이 발발하기 전, 가뭄으로 농사를 마치고 은행 빚 독촉에 밀려 거의 쫓겨나다시피한 가족들은 작은 트럭을 타고 캘리포니아로 향한다. 이 소설은 가족들이 이주 시에 겪는 여러 사건들과 또한 캘리포니아에 도착해서 겪게 되는 무수한 고생의 여정들로 가득 차 있다. 그 당시 수많은 다른 이주민들이 캘리포니아로 함께 들어왔기에, 그들은 노동시장에서 헐값에 자신들의 노동을 팔아 겨우겨우 천막살이를 이어가야했다. 이 가족들의 고단한 삶을 보게 되면서, 내가 처음 미국에 들어왔을 때, 그리고, 현재에도 수없이 미국땅을 밟는 이민자들을 떠올려 보게 된다.

아마존에서 이 책을 찾아 리뷰를 찾아보다, 한 플로리다 사는 분이 이 책을 읽고 나서, 자신 주변의 멕시코 이민자들을 다른 눈으로 바라보게 되었다는 글을 읽게 되었다. 이 소설은 우리를 둘러싸고 있는, 일명, 중심부에 들어오지 못하고 있는 많은 주변부 사람들의 얘기를 대표하여 들려주는 듯하다. 그들의 설움과 공포, 분노, 그 분노가 익어가지만, 주변부에서 어쩔 수 없이 아파하는 가족들과 불안한 내일에 시달리는 우리의 이웃에 대해 싸늘한 시선을 보내기만 한 중심부에 위치한 나를 되돌아보게 한다. 

이 소설은 미국에서 처음 출간했을 때, 볼세비키적이고 선동적인 소설이라고 비난도 많이 받았다고 한다. 여전히 한국에서도 통용되는 “빨갱이”라는 단어가 이 소설에도 등장한다. 

“하인즈라는 친구가 있었는데, 3만 에이커쯤 되는 땅에 복숭아하고 포도를 기르고 통조림 공장이랑 와인 양조장도 갖고 있었다네. 그놈은 항상 ‘망할 놈의 빨갱이’라는 말을 입에 달고 다녔어. .. 그런데 여기 서부로 얼마 안된 젊은이가 … 이렇게 말했지. ‘하인즈씨 `제가 여기 온지 얼마 안 돼서 그러는데요. 그 망할 놈의 빨갱이라는 게 뭐죠? 그랬더니 하인즈가 대답을 했지 우리가 시간당 25센트를 주겠다고 할 때 30센트를 달라고 하는 개자식들이 다 빨갱이야”  이 젊은 친구는 머리를 긁적이면서 말했지 “세상에 만약 빨갱이가 그런 거라면 저도 시간당 30센트를 받고 싶은걸요. 그럼 우리는 전부 빨갱이에요.”

이 소설은 어떤 사상을 주창한다기보다는 미국의 풍요와 번영 뒤에 감춰져있는 또 다른 부류의 미국인의 삶의 고단함과 갈등을 잘 드러내 우리 앞에 내민다. 현실의 어려움에 헉헉대고 불평하기만 했던 샤론의 로즈가 마지막에 보여준 그 감동의 장면은 어려움 속에서도 항상 꿋꿋이 생명을 이어갔던 인간에 대한 희망을 보여주는 듯 하다.

이 소설을 덮고는 아무 것도 하지 못하고 한참동안 거실을 서성거렸다. 안타깝게도 이 소설이 보여주는 광경은 우리 주변에서 여전히 현재진행형이다. 다른 위대한 문학이 그러하듯, 이 소설도 우리로 하여금 “고통에 전염”하도록 한다. 그리고, 그 전염으로 인한 고통의 흔적과 상기가 오늘 하루를 사는데 그리 나쁘진 않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2)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총 균 쇠 (양장) - 무기.병균.금속은 인류의 운명을 어떻게 바꿨는가, 개정증보판
제레드 다이아몬드 지음, 김진준 옮김 / 문학사상 / 2013년 3월
평점 :
구판절판


얼마 전 월드컵 게임 중 스페인과 칠레가 예선전을 치르는 게임을 우연찮게 오래 보게 되었다. 이 게임은 총균쇠를 읽은 나에게 근대사에서 가장 큰 충돌인 "아타우알파" 생포 사건을 떠올리게 했다. 이 사건은1532년 잉카 황제 아타우알타와 스페인의 정복자 프라시스코 피사로가 페루의 고지대 도시인 카하마르카에서 마주친, 즉 구대륙과 신대륙이 첨예하게 맞붙은 사건이다. 이 사건에서 잉카의 8만 대군은 고작 수백명에 불과한 스페인 탐험대에 처참하게 패배하고, 잉카의 절대군주인 아타우알타는 생포되었다가 처형을 당하게 되었다. 유럽을 대표하는 수백의 스페인 탐험대는 어떻게 남미의 잉카대군을 손쉽게 대파할 수 있었을까?


이 책에서 제렛 다이아몬드는 얄리라는 뉴기니 지역의 원주민에게서도 비슷한 형태의 질문을 받았다. "당신네 백인들은 그렇게 많은 화물을 발전시켜 뉴기니까지 가져왔는데 어째서 우리 흑인들은 그런 화물들을 만들지 못한겁니까?" 이 질문은 뉴기니 원주민 각각은 우수한 지능을 소유하고 있는데 어떻게 아직 석기시대에 머무르는 문명의 발전만 이룰 수 밖에 없을까로 이 책에서 이어졌다.

그리고, 필자가 현재 거주하고 있는 미국에서도 이 비슷한 질문은 이어질 수 있다. 실리콘밸리의 많은 테크회사에서 미국인들과 유럽인들, 그리고, 많은 인도, 중국, 한국 등 아시아 인종들은 많이 보이지만, 흑인들, 남미 사람들은 찾아보기 힘들다. 어떤 요인들이 선조가 유라시아 출신인 자손들이 더 명석한 두뇌를 필요로 하는 자리에서 두각을 나타나게 할까?

이 질문에 대해 많은 사람들이 공식적으로는 인종주의적 편견을 배격하고 있지만, 우리 맘 깊은 곳에는 아마존, 호주, 그리고 아프리카의 원주민을 보면서 떠오르는 미개하다는 은근한 인종주의가 자리잡고 있다.  이런 인종주의에 대해 다이아몬드는 과학과 인류학이 선사한 학문적 축적물을 이용해 반박하며, 지리적 생태적 환경이 잉태하게 한 인류 문명 발달의 불평등의 원인들을 조목조목 들고 있다. 

700쪽이나 되는 방대한 분량에서 드는 근거들이 워낙 세밀하여서 전부를 다룰 수는 없겠지만, 인류 문명 발달의 궤적에 영향을 미친 가장 큰 네 가지 환경적 요소로 다음을 들 수 있다.

1. 가축화, 작물화의 재료인 야생 동식물의 대륙간 차이 : 대륙마다 가축화, 작물화를 위한 야생 후보종의 수가 크게 달랐고, 홍적세 말기에 일어난 멸종의 차이도 크게 차이가 난다. 유라시아나 아프리카에 비해 오스트레일리아와 남북아메리카에서 그 멸종이 심해서 생태학적 다양성이 크게 차이가 났다.
2. 대륙 내 확산과 이동의 속도에 영향을 미치는 요인 : 가축과 작물이 개발되고 기술혁신이 생겼을 때, 동서로 넓게 펼쳐진 유라시아에 비해 남북으로 펼쳐진 아메리카나 아프리카 대륙은 현저히 낮은 확산 속도를 보여준다. 예를 들면 한 곡류가 작물화에 성공했을 때 동서로 펼쳐진 유라시아 대륙은 기후적 차이가 적기에 쉽게 전파가 용이하지만, 위도가 달라 기후적 차이를 가지는 아메리카 대륙에서는  작물화의 확산에 큰 어려움을 겪었다.
3. 대륙 사이의 확산에 영향을 미치는 요인 : 어떤 대륙은 다른 대륙에 비해 더욱 고립되었고, 대륙간 확산의 난이도도 차이가 난다
4. 각 대륙의 면적 및 전체 인구 규모의 차이 : 면적이 넓거나 인구가 많다는 것은 잠재적 발명가의 수, 경쟁하는 사회의 수, 도입할 수 있는 혁신의 수가 많다는 것을 의미한다.

이 책은 진화의 법칙에 의해서 보다 많은 혁신의 경쟁이 주어졌고, 그렇지 못했을 때에는 보다 혁신적인 부족 혹은 국가에게 멸종과 정복의 위기를 겪어야했던 유라시아 대륙에 비해, 남북간의 긴 위도로 서로 고립된 사회를 유지했던 남북아메리카나, 사하라 사막에 의해 유라시아 대륙으로부터 고립되었던 사하라이남 아프리카는 그 발전속도가 상당히 더디었음을 아주 자세한 지리 생태학적 증거와 기술 발전의 추이를 보여주면서 이야기하고 있다. 그리고  단기간의 인류의 역사는 역사적 체계들의 복잡성과 예측불가능성으로 인해 과학적으로 체계화하기 힘들지만, 오랜 기간 기후와 지리, 생태적 영향을 받는 인간사회의 성격을 고려하면 오랜 거시적 관점에서의 문명사의  과학적 역사연구의 가능성도 어느 정도 열었다는 데에서 이 책의 그리고 다이아몬드 교수의 연구의 의의를 찾을 수 있을 것 같다. 인문학적 도구로 파헤친 좀 더 인간이 중심이 된 에릭 홉스봄이 쓴 역사시리즈와 참 대비가 되는 책이다. 

어떤 이는 이 책에 대해 "국경을 넘어선 사랑"이라는 수식어를 덧붙였다. 현재 세계의 부와 권력을 잡고 있는 나라들은 선사시대에 환경적으로 유리한 지역에 거주했다는 우연에 의해서 그런 행운을 잡은 것 뿐임을 이 책은 간접적으로 암시한다. 이 과학적이고 논리적인 문명사의 불평등 기원에 대한 책은 나라사이의 불평등에 대한 이론일 뿐 아니라 개인간의 불평등도 비슷한 방식으로 설명해 준다. 그러기에 이 책은 현재 조금 좋은 자리에 놓여 있는 국가와 개인들은 그런 혜택이 자신의 능력과 인종적 우수성 때문이 아님을 인지하고, 우연히 좋지 않은 환경에서 시작한 다른 인류들과 함께 삶의 방식에 대해 고민하도록 설득하는 명저임에 틀림없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밤이 선생이다
황현산 지음 / 난다 / 2013년 6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이 책을 덮고 나니 어떤 책에서 읽었던 글이 아주 어렴풋이 기억난다. 지식인이란 자신의 전문분야에서 갈고 닦은 학문적 방식을 다른 사회의 여러 분야에도 적용하여 이해하고 바꾸려는 시도를 하는 사람이라는 내용의 글이었던 걸로 기억한다. 오랫동안 프랑스 문학을 전공하면서 또한 문학비평가로 활동하면서 시와 예술에 대한 성숙한 미감과 또 그 감각을 수려한 언어로 풀어내는 데 오랫동안 천착해 온 전문가는, 우리 주변의 삶의 풍경을 포착해서 그려내고 삶의 성질을 이야기하는데에도 그 장인의 깐깐함을 놓지 않으셨다. 이 책에 담겨있는 글들은 쉬운 듯 하면서도 깊이가 있고, 생활의 평범한 부분을 건드리는 듯 하면서도 그 안에서 깨달음의 정수를 길어낸다.


이 산문집을 읽고나서, 내 오래된 두 기억을 끄집어 내게 되었다. 이 두 기억이 모두 다 공교롭게도 군대장교로 복무할 때의 것이다.

첫번째 기억은 낯선 곳에서 잠을 청했을 때와 관련한다. 부대에 주말에 계속 있는게 싫어 서울 가까이서 근무한 나는 종종 서울에 나와 친구도 만나며 시간을 보냈지만, 막상 잠잘때가 마땅치 않을 때가 많았다. 친구의 자취방에서 쪽잠을 자기도 했지만, 정 여의치가 않을 때는 찜질방에서, 그리고 이른바 캡슐방이라는 데서 잠을 그야말로 때울 때가 종종 있었다. 그렇게 잠을 때우고 아침에 거리로 나오면 내 시선이 참 낮아지게 된다. 내가 잠잘 곳도 마땅치 않은 나그네이구나라는 약간의 자괴감과 함께 이전에 보이지 않던 거리의 구석구석 찌든 곳들을 응시하게 되고, 또 낮은 곳에서 힘들게 사시는 분들에게 왠지 모르게 맘을 주게 된다. 선생의 글이 그러했다. 그의 눈은 항상 낮은 곳을 향하고 있었고, 효율성과 성과가 지배하는 사회의 어두운 뒷구석을 훓어보는데 부지런하다. 시멘트로 덮어버린 청계천을 바라보며 삶의 여러 이야기며 정다웠던 모습들이 덮어가려짐에 안타까워하고, 구럼비 바위를 폭파하는 시도 앞에선 황금을 보기를 돌같이 하라가 아니라 돌을 보기를 황금같이 하라는 생각을 전한다.

두 번째 기억은 고국의 산천들을 누비며 눈에 담았던 아름다운 풍경에 대해서다. 장기로 복무해야할 다른 장교들에게 중요한 보직이 다 주어졌기에 나에겐 선탑을 하는 업무가 많이 주어졌다. 환자들을 태우고 환자들을 실어나르기도 하고, 모기차를 끌고 이 부대, 저 부대를 돌아다니며 방역을 하기도 하면서 시간 때우는 일을 하다보니, 경기도와 강원도의 여러 산골길을 참 많이도 돌아다녔다. 그러는동안 한국의 냄새를 참 진하게 맡았던 것 같다. 선생의 글을 읽으면서도 고향인 전남 신안을 비롯한, 한국의 여러 토속적인 정취를 물씬 맡을 수 있었다. 사투리의 정서를 되짚어 보는가 하면 장옥이 각시의 노래를 통해 전통적 삶의 냄새를 전해주고, 삶의 준거로 작용하는 고향의 잣대의 중요성을 일깨워준다.

하지만, 선생의 글은 서정적인 데서 그치는 것이 아니라, 현실의 민낯을 드러내고, 그 폭력성을 고발하는 데에도 주저하지 않는다. 역사교과서에서 민주주의 앞에 자유라는 말을 넣는 시도에 대해 '한국적 민주주의'의 악몽을 통해 그 주위를 환기시키고, "과거도 착취당한다"의 글에서는 조선시대에 노비들이 당했던 고통도 현재일 수 있고, 한 사람의 감수성은 현재가 얼마나 두터우냐에 따라 가름된다는 말씀도 서슴치 않는다. 그리고, 교육, 군대, 종교,문화재 등등 여러 분야에 대해서도 프랑스 현대시를 파헤치며 형성된 꼼꼼함과 깊은 안목으로 놓치기 쉬운 문제점들을 잘 포착해서 드러낸다.

세계화 시장에서 세계의 기업들과 경쟁해야 하고, 가족을 먹여살리기 위해 직업전선에서 열심히 뛰어야하는 일상인 한 사람 한 사람에게 그리고 기업과 사회에게 효율과 성과는 무척 중요한 단어임에 틀림없다. 하지만, 선생은 그 두 단어에 우리 생을 몽땅 저당잡고 있는 현재를 위해 여러 아름다운 이야기와 삶의 모습이 묻어있는 과거를 다 파헤치고, 후세에게 물려주어야 할 우리네 삶의 정신과 터전이 되는 미래를 훼손하고 있진 않는지 질문을 던진다. 선생은 낮에는 보이지 않는 밤의 모습들의 중요성을 "밤이 선생이다"라는 책을 통해 말하고 싶었을 것 같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2)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세속의 철학자들 - 위대한 경제사상가들의 생애, 시대와 아이디어
로버트 하일브로너 지음, 장상환 옮김 / 이마고 / 2008년 10월
평점 :
구판절판


예전에 "신의 물방울"이라는 만화를 몇 권 읽은 적이 있다. 그 만화에서 와인감별사인지하는 사람이 와인을 테이스팅하고 나면, 와인의 맛을 시각화해서 맛을 표현한다. 예를 들면, 이 와인의 맛을 접하니 "이태리의 한 포도농장에서 따스한 햇볕 아래서 촉촉하게 젖은 흙을 밟으면서 그 흙들이 내 발가락 사이로 저며드는 촉촉함을 느낀다." 뭐 이런 식으로 말이다. 읽으면서 뭐 이런 개뻥이라 비웃긴 했지만, 그 표현과 그림이 인상적이고 재미를 더해 준 것도 사실이다.

비슷하게 로버트 하일브로너의 "세속의 철학자들"을 읽고 그려본 이미지는 다음과 같다. 어느 비가 오는 날 오후, 낮임에도 불구하고 캠퍼스는 흐린 날씨 때문인지 어두웠다. 그리고, 한 건물의 문을 열자 고풍 양식이 서려있는 건물의 복도는 희미한 실내 조명 때문인지 더 으스스한 느낌을 자아낸다. 그 복도를 걸어가다보니 연구실마다 이름표가 붙여 있는데, 하나하나 낯익은 이름들이 눈에 들어온다. 애덤 스미스, 맬서스, 리카도, 오언, 생시몽, 카를 마르크스, 배블런, 케인스, 슘페터 등등... 

하나의 문을 열고 이름만으로 듣던 대가를 만난다. 대가들은 음험한 시선으로 나를 바라보기도 하고, 혹은 미소띤 반가운 얼굴로 날 만나주기도 했다. 그리고는 자신들이 탐구한 학문의 세계를 경제학을 전혀 모르는 무지한 나에게 가장 간단한 말로 설명하고자 노력한다. 그리고, 그와 얽힌 자신의 생애의 단면들도 이야기의 실타래를 풀어간다. 한 시간에 한 명.. 대가의 심오한 사상과 이론을 한 시간에 다 담을 수 있을까? 그냥 대강의 내용만 스케치한 후 다음 방으로 향했고, 10시간이 넘는 긴 시간을 돌아 그 건물의 연구실의 방을 다 둘러보았다. 

대강 이런 식의 이미지가 머리에 그려진다. 그냥 상상에서만 나온 건 아니고, 이런 비슷한 경험을 한 적이 있어 연관이 된 듯 하다. 사실 이 책은 천재들에 대한 책이다. 각 시대마다 주어진 경제적 환경은 달랐다. 애덤 스미스 이전에는 경제라고 할 만큼 이름 붙인 체제가 존재하지 않았고, 마르크스가 살았던 시대는 1848년 혁명의 기운들이 사라지고 난 후, 자본주의가 꽃을 피운 시점이며, 케인즈는 대공황이라는 자본주의 체제의 위기의 순간을 살았다.

그리고, 그들의 성장 및 삶의 환경도 많이 달랐다. 존 스튜어트 밀은 아버지 제임스 밀의 교육 하에 일곱살 무렵에 플라톤을 읽고 여덟살에 라틴어를 공부하여 그리스 고전을 공부하고 기하학 대수학 미적분을 정복했다. 그리고 열세 살에 정치경제학 영역에서 유명한 책과 이론은 모조리 다 배웠다고 한다. 마르크스는 외투와 구두를 저당잡히기도 하고, 우표를 살 돈이 없어 출판업자에게 원고를 보내지 못할 정도로 가난하고 생활고에 시달렸다. 이와 대조적으로 케인스는 케임브리지 교수일 뿐 아니라, 아내는 수석 발레리나였고, 생명보험회사 회장직도 맡기도 했고, 국제외교의 명사 역할을 담당하기도 했고, 미술품 수집, 고전 수집, 극장을 경영하는 등 훌륭한 가문에 미모의 아내에, 부와 명예 그리고 학식과 예술에 대한 심미안까지 겸비한 인물이었다. 그리고 배블런은 학문적 천재성을 보였지만, 사회 부적응자로 고립된 생활을 고집하였다.

이렇게 다른 인물들은 각기 그들이 거친 다른 역사적 순간에서 저마다의 이론을 제시하였다. 애덤 스미스는 경이로운 사회적 기계인 '시장'은 그냥 내버려두면 사회의 요구를 충분히 충족하고 진화의 법칙으로 약속된 보답을 실현할 것을 주장하며 합리성과 질서가 자의성과 혼돈을 누르고 승리할 것이라는 18세기적 신념을 설파했다. 마르크스는 모든 사회적 변화와 정치적 혁명의 궁극적 원인은 사람들의 의식이나 통찰력의 증가가 아니라 생산 및 교환양식의 변화에서 찾아야 함을 즉 철학이 아니라 경제학에서 찾아야 한다는 논리하에 변증법적 유물론을 주장하였다. 배블런은 유한계급론에서 노동자들은 경영자를 없애려고 하는 것이 아니라, 그 지위로 올라가려 하고, 상류계급을 동경한다는 이론을 제시하였다. 또한 기술자의 존재를 중요하게 생각한 반면, 기업가의 역할에 대한 회의를 강하게 표현했다. 

케인스는 경제를 스스로 균형을 잡아가는 시소라기보다는 계속 오르내리지만 멈출 수도 있는 엘리베이터로 보았다. 경기침체에서는 저축이 늘어나서 금리가 떨어져서 기업들의 투자가 활성화되는 것이 시장의 법칙이지만, 실제로는 저축은 일어나지 않고 오히려 줄어듦으로 인해 경기침체가 지속될 수 있다는 점에 착안하여, 이 멈춰진 엘리베이터를 움직일 수 있는 정부의 적극적 개입정책을 주장하였다.

하일브로너는 세속철학인 경제학의 토대는 바로 자본주의이며, 부의 추구라는 취득 욕구에 의존한 생산과 분배의 조직, 생산과 분배의 안내자인 시장의 장려와 억제, 공공과 민간의 권위의 상호 작용과 영향이라는 이전 사회가 가지고 있지 않은 특성들을 가지고 있음을 지적한다. 또한 한 가지 인상적인 지적은 경제학은 물리학, 생물학과는 달리 단지 데이터와 수치적 통계를 통해 사회를 분석하고 해석하는 데 그칠 수 없다는 것이다. 왜냐하면, 끊임없이 변화하는 미묘한 인간의 본성의 집합이 연구대상이며, 또한 사회생활 자체가 정치적이기 때문이다. 

자본주의의 태생이후 이 세속철학자들은 두 개의 경제체제 - 자본주의, 사회주의- 사이의 수많은 스펙트럼을 오고 갔다. 다시 현실적인 실패를 경험한 사회주의의 회귀가 어려운 점을 고려하면 어떤 자본주의여야 하는가란 질문은 자연스레 따라오게 된다. 저자는 미국과 같이 경제적으로는 성공했지만, 사회적으로 실패한 자본주의가 있는 반면, 사회적으로 성공한 스칸디나비아 국가들을 예로 들며, 앞으로 경제학의 과제는 어떻게 경제적 그리고 사회적 모두 다 성공한 체제를 향한 해답을 던져질 수 있을까란 질문을 던진다. 경제적 성공을 위해 사회적 측면을 전혀 고려하지 않고 달려온 한국사회가 새겨 들어야 질문일 것이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신화의 역사 세계신화총서 1
카렌 암스트롱 지음, 이다희 옮김, 이윤기 감수 / 문학동네 / 2005년 10월
평점 :
품절


카렌 암스트롱은 예전 카톨릭 수녀원에서 수학하다 회의와 방황을 거쳐 거기를 나온 후에 종교학에 대한 깊이 있는 연구를 한 세계적 종교저술가이다. 암스트롱은 신화에 대한 깊이있는 시각과 역사적 흐름 그리고 자신만의 해석을 책을 통해 얘기한다. 이 책에 대한 느낌을 그냥 쓰는 것보단 신화에 대한 잘못된 인식이 팽배하기에 암스트롱의 생각을 짧게 전달함도 유용하게 보인다.


인간은 의미를 추구하는 동물이고, 이성적으로 설명할 수 없는 것을 생각하고 경험할 수 있는 상상력을 가진 동물이기에 이야기를 통해서 더 큰 시야를 갖고, 삶을 바라보고, 삶의 바탕에 깔린 원형을 드러냈다. 신화가 가지는 여러 가지 특징을 열거해 보자면 다음과 같다. 신화는 죽음의 경험이나 소멸의 두려움에 뿌리를 두고, 신화와 제의는 불가분의 관계이고, 전례나 제의를 통해서만 신화가 의미를 가지고, 우리가 이름붙이기 힘든 침묵의 중심을 응시하게 하고, 우리가 어떻게 행동해야 하는지를 보여주고, 이 세상과 더불어 존재하는 다른 어떤 세상에 대한 이야기한다. 

신화는 우리를 우리의 일상적 경험 너머로 내모는 숭고한 순간을 설명하고 싶어하고, 역사 저편에 있는, 인간 존재에 내재한 영원성을 지향하는 예술형식이다. 예를 들면, 천국으로 올라가는 예수, 메카에서 예루살렘으로 날아가 성좌로 오르는 마호메트, 예언자 엘리야가 불타는 마차를 타고 천상으로 올라가는 상승 신화의 이야기들은 글자 그대로 읽어서 중력을 극복한 얘기가 아니라, 인간조건의 속박으로부터의 자유, 초월에 대한 보편적 갈망을 드러내는  동시에 열악한 인간조건을 뒤로 하고 세속적 경험의 뒤편인 신성한 영역으로 인간이 옮아갔음을 표현하는 방식이다. 

근대 이전에는 이런 신화성인 미토스(Mythos)와 과학적이고 논리적인 사유방식인 로고스(Logos)는 상호보완적이었고, 누구도 신화를 과학적 사유방식으로 이해하려 하지 않았다. 로고스가 사냥꾼에게 사냥감을 죽이는 방법과 사냥원정을 조직하는 방법을 가르쳐 주는 것이라면, 미토스는 동물을 죽임으로써 생기는 복잡한 심경을 다스리도록 도와주었다. 로고스는 효율적이고 실용적이고 합리적이었지만, 인간 삶의 궁극적 가치에 대한 질문을 답해주지 안았고, 인간의 고통과 슬픔을 누그러뜨릴 수 없었는데, 이런 부족한 면은 신화와 그에 동반되는 제의를 통해서 사유되어지고 다스려졌다.

아쉽게도 근대 즉 계몽시대가 도래하면서 로고스와 미토스는 철저히 분리되었고, 확장된 로고스에 의해 신화는 허구이며 열등한 석기시대의 사유방식으로 폄하되었다. 다른 한편으로는  몇몇의 하지만 주류인 종교집단에서 신화는 오해되었다. 개신교 근본주의자들이 성경에 나와있는 신화적인 이야기들을 과학적이고, 역사적인 사실이아고 주장하기 시작한 것이다. 창조신화, 홍수설화, 상승신화, 동정녀신화, 부활신화 등 하나하나 신화로써 풍부한 의미를 가지고 있고, 사람들을 일상적 삶을 초월해서 상상하게 하고, 죽음과 무를 대하게 했던 이야기들은 왜곡되어졌고, 전례나 제의와 연결되지 못한 이런 신화들은 과학적이고 역사적 사실임을 주장하는 순간부터 이성의 영역을 강조한 이들에게는 허구적이고 미신적 이야기로 받아들여지게 되었다.

암스트롱은 신화가 이전에 주었던 역할이 사라지면서 신화와 비슷한 경험을 주는 예술형식으로 현대소설을 꼽는다. 소설읽기를 통해 독자는 며칠 혹은 몇주를 소설과 함께 살고 소설이 주는 또 다른 세계 속으로 던져진다. 소설의 세계는 허구이지만, 그 상상의 공간에서 독자는 한 동안을 머문다. 그리고, 책을 덮으면서 “휴”하는 탄식과 함께 일상으로 돌아온다. 하지만, 소설을 읽고 난 후 돌아온 독자는 소설을 읽기 전의 독자와 다른 상태가 된다. 다른 사람과 함께 느낄 수 있는 연민, 타인의 삶과 고통을 함께 하는 상상력을 배웠기에 말이다. 이런 변화와 경험은 제의와 연결된 신화가 주는 그것과 무척이나 닮아있다.

민주주의를 비판한다고 해서 현재 통용되는 한국의 민주주의를 보고 민주주의를 판단할 수 없듯이, 사회주의를 현실사회주의체제인 소련을 보고 한물 간 구시대의 실패한 낡은 사상이라고만 볼 수 없듯이, 현대의 현실종교만을 보고, 신화를 낡아빠진 석기시대의 미신적 이야기라고 얘기할 수 없을 것이다. 종교성, 숭고함, 이 시대 저편의 무언가 미지의 것, 죽음을 응시하는 태도, 타인의 고통에 공감하기 등 이런 사유방식과 거리두기를 하며 사는 현대인들에게 “신화란 무엇인가?”라는 질문은 중요할 것이고, 또 신화적 사유방식을 예를 들면 시나 소설 읽기를 통해 혹은 다른 예술을 통해 현대 시대에 되살려 내는 것도 소중할 것이다. 신화나 종교에 대해 관심있으신 분들에게 160페이지 밖에 안 되는 짧고 읽기 쉬운 이 책을 적극 권하는 바이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2)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