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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속의 철학자들 - 위대한 경제사상가들의 생애, 시대와 아이디어
로버트 하일브로너 지음, 장상환 옮김 / 이마고 / 2008년 10월
평점 :
구판절판
예전에 "신의 물방울"이라는 만화를 몇 권 읽은 적이 있다. 그 만화에서 와인감별사인지하는 사람이 와인을 테이스팅하고 나면, 와인의 맛을 시각화해서 맛을 표현한다. 예를 들면, 이 와인의 맛을 접하니 "이태리의 한 포도농장에서 따스한 햇볕 아래서 촉촉하게 젖은 흙을 밟으면서 그 흙들이 내 발가락 사이로 저며드는 촉촉함을 느낀다." 뭐 이런 식으로 말이다. 읽으면서 뭐 이런 개뻥이라 비웃긴 했지만, 그 표현과 그림이 인상적이고 재미를 더해 준 것도 사실이다.
비슷하게 로버트 하일브로너의 "세속의 철학자들"을 읽고 그려본 이미지는 다음과 같다. 어느 비가 오는 날 오후, 낮임에도 불구하고 캠퍼스는 흐린 날씨 때문인지 어두웠다. 그리고, 한 건물의 문을 열자 고풍 양식이 서려있는 건물의 복도는 희미한 실내 조명 때문인지 더 으스스한 느낌을 자아낸다. 그 복도를 걸어가다보니 연구실마다 이름표가 붙여 있는데, 하나하나 낯익은 이름들이 눈에 들어온다. 애덤 스미스, 맬서스, 리카도, 오언, 생시몽, 카를 마르크스, 배블런, 케인스, 슘페터 등등...
하나의 문을 열고 이름만으로 듣던 대가를 만난다. 대가들은 음험한 시선으로 나를 바라보기도 하고, 혹은 미소띤 반가운 얼굴로 날 만나주기도 했다. 그리고는 자신들이 탐구한 학문의 세계를 경제학을 전혀 모르는 무지한 나에게 가장 간단한 말로 설명하고자 노력한다. 그리고, 그와 얽힌 자신의 생애의 단면들도 이야기의 실타래를 풀어간다. 한 시간에 한 명.. 대가의 심오한 사상과 이론을 한 시간에 다 담을 수 있을까? 그냥 대강의 내용만 스케치한 후 다음 방으로 향했고, 10시간이 넘는 긴 시간을 돌아 그 건물의 연구실의 방을 다 둘러보았다.
대강 이런 식의 이미지가 머리에 그려진다. 그냥 상상에서만 나온 건 아니고, 이런 비슷한 경험을 한 적이 있어 연관이 된 듯 하다. 사실 이 책은 천재들에 대한 책이다. 각 시대마다 주어진 경제적 환경은 달랐다. 애덤 스미스 이전에는 경제라고 할 만큼 이름 붙인 체제가 존재하지 않았고, 마르크스가 살았던 시대는 1848년 혁명의 기운들이 사라지고 난 후, 자본주의가 꽃을 피운 시점이며, 케인즈는 대공황이라는 자본주의 체제의 위기의 순간을 살았다.
그리고, 그들의 성장 및 삶의 환경도 많이 달랐다. 존 스튜어트 밀은 아버지 제임스 밀의 교육 하에 일곱살 무렵에 플라톤을 읽고 여덟살에 라틴어를 공부하여 그리스 고전을 공부하고 기하학 대수학 미적분을 정복했다. 그리고 열세 살에 정치경제학 영역에서 유명한 책과 이론은 모조리 다 배웠다고 한다. 마르크스는 외투와 구두를 저당잡히기도 하고, 우표를 살 돈이 없어 출판업자에게 원고를 보내지 못할 정도로 가난하고 생활고에 시달렸다. 이와 대조적으로 케인스는 케임브리지 교수일 뿐 아니라, 아내는 수석 발레리나였고, 생명보험회사 회장직도 맡기도 했고, 국제외교의 명사 역할을 담당하기도 했고, 미술품 수집, 고전 수집, 극장을 경영하는 등 훌륭한 가문에 미모의 아내에, 부와 명예 그리고 학식과 예술에 대한 심미안까지 겸비한 인물이었다. 그리고 배블런은 학문적 천재성을 보였지만, 사회 부적응자로 고립된 생활을 고집하였다.
이렇게 다른 인물들은 각기 그들이 거친 다른 역사적 순간에서 저마다의 이론을 제시하였다. 애덤 스미스는 경이로운 사회적 기계인 '시장'은 그냥 내버려두면 사회의 요구를 충분히 충족하고 진화의 법칙으로 약속된 보답을 실현할 것을 주장하며 합리성과 질서가 자의성과 혼돈을 누르고 승리할 것이라는 18세기적 신념을 설파했다. 마르크스는 모든 사회적 변화와 정치적 혁명의 궁극적 원인은 사람들의 의식이나 통찰력의 증가가 아니라 생산 및 교환양식의 변화에서 찾아야 함을 즉 철학이 아니라 경제학에서 찾아야 한다는 논리하에 변증법적 유물론을 주장하였다. 배블런은 유한계급론에서 노동자들은 경영자를 없애려고 하는 것이 아니라, 그 지위로 올라가려 하고, 상류계급을 동경한다는 이론을 제시하였다. 또한 기술자의 존재를 중요하게 생각한 반면, 기업가의 역할에 대한 회의를 강하게 표현했다.
케인스는 경제를 스스로 균형을 잡아가는 시소라기보다는 계속 오르내리지만 멈출 수도 있는 엘리베이터로 보았다. 경기침체에서는 저축이 늘어나서 금리가 떨어져서 기업들의 투자가 활성화되는 것이 시장의 법칙이지만, 실제로는 저축은 일어나지 않고 오히려 줄어듦으로 인해 경기침체가 지속될 수 있다는 점에 착안하여, 이 멈춰진 엘리베이터를 움직일 수 있는 정부의 적극적 개입정책을 주장하였다.
하일브로너는 세속철학인 경제학의 토대는 바로 자본주의이며, 부의 추구라는 취득 욕구에 의존한 생산과 분배의 조직, 생산과 분배의 안내자인 시장의 장려와 억제, 공공과 민간의 권위의 상호 작용과 영향이라는 이전 사회가 가지고 있지 않은 특성들을 가지고 있음을 지적한다. 또한 한 가지 인상적인 지적은 경제학은 물리학, 생물학과는 달리 단지 데이터와 수치적 통계를 통해 사회를 분석하고 해석하는 데 그칠 수 없다는 것이다. 왜냐하면, 끊임없이 변화하는 미묘한 인간의 본성의 집합이 연구대상이며, 또한 사회생활 자체가 정치적이기 때문이다.
자본주의의 태생이후 이 세속철학자들은 두 개의 경제체제 - 자본주의, 사회주의- 사이의 수많은 스펙트럼을 오고 갔다. 다시 현실적인 실패를 경험한 사회주의의 회귀가 어려운 점을 고려하면 어떤 자본주의여야 하는가란 질문은 자연스레 따라오게 된다. 저자는 미국과 같이 경제적으로는 성공했지만, 사회적으로 실패한 자본주의가 있는 반면, 사회적으로 성공한 스칸디나비아 국가들을 예로 들며, 앞으로 경제학의 과제는 어떻게 경제적 그리고 사회적 모두 다 성공한 체제를 향한 해답을 던져질 수 있을까란 질문을 던진다. 경제적 성공을 위해 사회적 측면을 전혀 고려하지 않고 달려온 한국사회가 새겨 들어야 질문일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