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밤이 선생이다
황현산 지음 / 난다 / 2013년 6월
평점 :
이 책을 덮고 나니 어떤 책에서 읽었던 글이 아주 어렴풋이 기억난다. 지식인이란 자신의 전문분야에서 갈고 닦은 학문적 방식을 다른 사회의 여러 분야에도 적용하여 이해하고 바꾸려는 시도를 하는 사람이라는 내용의 글이었던 걸로 기억한다. 오랫동안 프랑스 문학을 전공하면서 또한 문학비평가로 활동하면서 시와 예술에 대한 성숙한 미감과 또 그 감각을 수려한 언어로 풀어내는 데 오랫동안 천착해 온 전문가는, 우리 주변의 삶의 풍경을 포착해서 그려내고 삶의 성질을 이야기하는데에도 그 장인의 깐깐함을 놓지 않으셨다. 이 책에 담겨있는 글들은 쉬운 듯 하면서도 깊이가 있고, 생활의 평범한 부분을 건드리는 듯 하면서도 그 안에서 깨달음의 정수를 길어낸다.
이 산문집을 읽고나서, 내 오래된 두 기억을 끄집어 내게 되었다. 이 두 기억이 모두 다 공교롭게도 군대장교로 복무할 때의 것이다.
첫번째 기억은 낯선 곳에서 잠을 청했을 때와 관련한다. 부대에 주말에 계속 있는게 싫어 서울 가까이서 근무한 나는 종종 서울에 나와 친구도 만나며 시간을 보냈지만, 막상 잠잘때가 마땅치 않을 때가 많았다. 친구의 자취방에서 쪽잠을 자기도 했지만, 정 여의치가 않을 때는 찜질방에서, 그리고 이른바 캡슐방이라는 데서 잠을 그야말로 때울 때가 종종 있었다. 그렇게 잠을 때우고 아침에 거리로 나오면 내 시선이 참 낮아지게 된다. 내가 잠잘 곳도 마땅치 않은 나그네이구나라는 약간의 자괴감과 함께 이전에 보이지 않던 거리의 구석구석 찌든 곳들을 응시하게 되고, 또 낮은 곳에서 힘들게 사시는 분들에게 왠지 모르게 맘을 주게 된다. 선생의 글이 그러했다. 그의 눈은 항상 낮은 곳을 향하고 있었고, 효율성과 성과가 지배하는 사회의 어두운 뒷구석을 훓어보는데 부지런하다. 시멘트로 덮어버린 청계천을 바라보며 삶의 여러 이야기며 정다웠던 모습들이 덮어가려짐에 안타까워하고, 구럼비 바위를 폭파하는 시도 앞에선 황금을 보기를 돌같이 하라가 아니라 돌을 보기를 황금같이 하라는 생각을 전한다.
두 번째 기억은 고국의 산천들을 누비며 눈에 담았던 아름다운 풍경에 대해서다. 장기로 복무해야할 다른 장교들에게 중요한 보직이 다 주어졌기에 나에겐 선탑을 하는 업무가 많이 주어졌다. 환자들을 태우고 환자들을 실어나르기도 하고, 모기차를 끌고 이 부대, 저 부대를 돌아다니며 방역을 하기도 하면서 시간 때우는 일을 하다보니, 경기도와 강원도의 여러 산골길을 참 많이도 돌아다녔다. 그러는동안 한국의 냄새를 참 진하게 맡았던 것 같다. 선생의 글을 읽으면서도 고향인 전남 신안을 비롯한, 한국의 여러 토속적인 정취를 물씬 맡을 수 있었다. 사투리의 정서를 되짚어 보는가 하면 장옥이 각시의 노래를 통해 전통적 삶의 냄새를 전해주고, 삶의 준거로 작용하는 고향의 잣대의 중요성을 일깨워준다.
하지만, 선생의 글은 서정적인 데서 그치는 것이 아니라, 현실의 민낯을 드러내고, 그 폭력성을 고발하는 데에도 주저하지 않는다. 역사교과서에서 민주주의 앞에 자유라는 말을 넣는 시도에 대해 '한국적 민주주의'의 악몽을 통해 그 주위를 환기시키고, "과거도 착취당한다"의 글에서는 조선시대에 노비들이 당했던 고통도 현재일 수 있고, 한 사람의 감수성은 현재가 얼마나 두터우냐에 따라 가름된다는 말씀도 서슴치 않는다. 그리고, 교육, 군대, 종교,문화재 등등 여러 분야에 대해서도 프랑스 현대시를 파헤치며 형성된 꼼꼼함과 깊은 안목으로 놓치기 쉬운 문제점들을 잘 포착해서 드러낸다.
세계화 시장에서 세계의 기업들과 경쟁해야 하고, 가족을 먹여살리기 위해 직업전선에서 열심히 뛰어야하는 일상인 한 사람 한 사람에게 그리고 기업과 사회에게 효율과 성과는 무척 중요한 단어임에 틀림없다. 하지만, 선생은 그 두 단어에 우리 생을 몽땅 저당잡고 있는 현재를 위해 여러 아름다운 이야기와 삶의 모습이 묻어있는 과거를 다 파헤치고, 후세에게 물려주어야 할 우리네 삶의 정신과 터전이 되는 미래를 훼손하고 있진 않는지 질문을 던진다. 선생은 낮에는 보이지 않는 밤의 모습들의 중요성을 "밤이 선생이다"라는 책을 통해 말하고 싶었을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