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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노의 포도 1 ㅣ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174
존 스타인벡 지음, 김승욱 옮김 / 민음사 / 2008년 3월
평점 :
미시건에서 캘리포니아로 와서 잡인터뷰를 했을 때가 2월이었던 걸로 기억한다. 끊임없이 눈이 오고, 하늘이 흐린 미시건에 있다가 잠시 방문해서 느낀 2월 캘리포니아의 햇살은 따사로웠다. 텔레비전 일기예보에서는 일 주 내내 섭씨 20도의 날씨가 지속된다고 보도했다. 미시건을 떠나올 때도 많은 사람들이 날씨 좋은 곳으로 가네라고 부러워하였다. 캘리포니아 드림이라는 말이 있고, 노래가 있듯이 미국 내에서도 캘리포니아는 무언가 이상이 이루어지는 곳이라는 막연한 기대가 퍼져 있는 듯 하다. 캘리포니아는 Golden State라고 불려진다. 금이 발견되었고, Golden Poppy라는 꽃이 많이 보여서 그렇다고 한다. 막상 살아보니 비가 오지 않아 농사짓기 척박할 것만 같은데, 그래도, 여전히 그 상징성은 사라지지 않아 보인다.
분노의 포도라는 소설은 오클라호마에서 자신들의 터전을 버리고, 캘리포니아로 이주한 가족의 이야기다. 대공황이 발발하기 전, 가뭄으로 농사를 마치고 은행 빚 독촉에 밀려 거의 쫓겨나다시피한 가족들은 작은 트럭을 타고 캘리포니아로 향한다. 이 소설은 가족들이 이주 시에 겪는 여러 사건들과 또한 캘리포니아에 도착해서 겪게 되는 무수한 고생의 여정들로 가득 차 있다. 그 당시 수많은 다른 이주민들이 캘리포니아로 함께 들어왔기에, 그들은 노동시장에서 헐값에 자신들의 노동을 팔아 겨우겨우 천막살이를 이어가야했다. 이 가족들의 고단한 삶을 보게 되면서, 내가 처음 미국에 들어왔을 때, 그리고, 현재에도 수없이 미국땅을 밟는 이민자들을 떠올려 보게 된다.
아마존에서 이 책을 찾아 리뷰를 찾아보다, 한 플로리다 사는 분이 이 책을 읽고 나서, 자신 주변의 멕시코 이민자들을 다른 눈으로 바라보게 되었다는 글을 읽게 되었다. 이 소설은 우리를 둘러싸고 있는, 일명, 중심부에 들어오지 못하고 있는 많은 주변부 사람들의 얘기를 대표하여 들려주는 듯하다. 그들의 설움과 공포, 분노, 그 분노가 익어가지만, 주변부에서 어쩔 수 없이 아파하는 가족들과 불안한 내일에 시달리는 우리의 이웃에 대해 싸늘한 시선을 보내기만 한 중심부에 위치한 나를 되돌아보게 한다.
이 소설은 미국에서 처음 출간했을 때, 볼세비키적이고 선동적인 소설이라고 비난도 많이 받았다고 한다. 여전히 한국에서도 통용되는 “빨갱이”라는 단어가 이 소설에도 등장한다.
“하인즈라는 친구가 있었는데, 3만 에이커쯤 되는 땅에 복숭아하고 포도를 기르고 통조림 공장이랑 와인 양조장도 갖고 있었다네. 그놈은 항상 ‘망할 놈의 빨갱이’라는 말을 입에 달고 다녔어. .. 그런데 여기 서부로 얼마 안된 젊은이가 … 이렇게 말했지. ‘하인즈씨 `제가 여기 온지 얼마 안 돼서 그러는데요. 그 망할 놈의 빨갱이라는 게 뭐죠? 그랬더니 하인즈가 대답을 했지 우리가 시간당 25센트를 주겠다고 할 때 30센트를 달라고 하는 개자식들이 다 빨갱이야” 이 젊은 친구는 머리를 긁적이면서 말했지 “세상에 만약 빨갱이가 그런 거라면 저도 시간당 30센트를 받고 싶은걸요. 그럼 우리는 전부 빨갱이에요.”
이 소설은 어떤 사상을 주창한다기보다는 미국의 풍요와 번영 뒤에 감춰져있는 또 다른 부류의 미국인의 삶의 고단함과 갈등을 잘 드러내 우리 앞에 내민다. 현실의 어려움에 헉헉대고 불평하기만 했던 샤론의 로즈가 마지막에 보여준 그 감동의 장면은 어려움 속에서도 항상 꿋꿋이 생명을 이어갔던 인간에 대한 희망을 보여주는 듯 하다.
이 소설을 덮고는 아무 것도 하지 못하고 한참동안 거실을 서성거렸다. 안타깝게도 이 소설이 보여주는 광경은 우리 주변에서 여전히 현재진행형이다. 다른 위대한 문학이 그러하듯, 이 소설도 우리로 하여금 “고통에 전염”하도록 한다. 그리고, 그 전염으로 인한 고통의 흔적과 상기가 오늘 하루를 사는데 그리 나쁘진 않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