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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기 앞의 생 (특별판)
에밀 아자르 지음, 용경식 옮김 / 문학동네 / 2003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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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절


소설에서는 화자의 역할은 사진에서 카메라의 위치처럼 중요한 것 같다. 피사체를 찍을 때 카메라의 위치를 아래에 두는 것과 위에 두는 것 혹은 근접하거나 멀리 잡는 것에 따라 사진의 구도가 달라지고, 사진이 전달하는 인상이나 메세지가 달라진다. 마찬가지로, 소설에서 이야기를 진행하는 화자를 누구로 가져가냐에 따라서 이야기의 흐름이 달라진다. 그래서, 작가들은 시점에 큰 신경을 쓰는 듯 하다. 어떤 소설들은 각 장에 따라서 아예 이야기를 이끌어가는 화자를 번갈아가며 바꾸기도 한다. 아마도 다양한 각도에서 이야기를 포착하고 싶어서일 것 같다.

로맹 가리의 다른 필명 에밀 아자르가 지은 <자기 앞의 생>이라는 작품에서의 화자는 모모라는 10살이 넘은 소년이다. 그냥 소년이 아니라, 프랑스라는 백인 사회에서 모하메드라는 정식이름을 가진 회교도 알제리인이다. 거기다가 창녀였던 엄마가 젊은 시절 창녀로 살다가 창녀의 아이들을 돌보며 삶을 영위하는 로자 아줌마에게 자라난 거의 고아같은 아이이다. 프랑스에서 온갖 이방인들이 모여사는 할렘가 같은 골목에서 엘리베이터가 없는 아파트의 7층에 사는 아이이다. 이 아이의 눈을 통해서 이야기는 전개되기에, 에펠탑, 루브르 박물관, 베르사이유 궁전 등 최고의 예술을 자랑하는 그 프랑스가 아닌, 프랑스 뒤의 매캐한 냄새가 나는 곳에서 작가는 사람들의 삶의 이야기를 꾸려간다.

창녀촌의 그 어두운 구석을 조목조목 짚어내기에, 이상의 <날개>에 나오는 화자의 시선이 잡히는가 하면, 조숙한 어린아이의 눈으로 나이많은 이들의 인생의 우여곡절을 관찰하고 다루기에 은희경의 <새의 선물>에 나오는 12세 소녀 진희의 시선도 겹쳐지는 듯 하다. 책 중반까지 모모가 다루는 유대인 로자 아줌마와 여러 창녀들의 이야기, 그리고 하밀 할아버지의 이야기가 약간은 지루하게 흘러간다. 그 지루함은 죽음 앞에서 선 로자 아줌마와 모모라는 두 인간의 관계를 보다 잘 이해시키기 위한 꼼꼼함에서 비롯되는 듯 하다. 이제 여자로서의 매력은 다 잃어버리고, 95킬로의 몸무게에 하나의 드럼통같은 몸매에 병으로 인해 머리는 다 빠지고, 의식도 가끔 잃어버리며, 몸의 기력은 다해 버린 로자 아줌마는 죽음으로 향하고, 그 죽음을 모모가 쓸쓸히 바라보는 광경은 아카데미 작품상을 수상한 <밀리언달러 베이비>라는 영화를 상기시킨다.

인생의 막판에 선 여자 복서 매기와 그 코치 프랭키. 그 둘은 환상의 콤비가 되어 승리를 이어가다가 거친 독일 복서와 경기를 버리다가 매기는 불의의 사고를 당한다. 마비 증세가 와서 병원에서 누워서 움직이지 못하고, 욕창으로 인해 다리를 잘라내야 하는 지경에 이르자 매기는 자살을 시도하고, 자살 시도가 실패하자, 프랭키에서 자신을 안락사시켜 달라고 부탁한다. 프랭키는 매기를 안락사시키고는 쓸쓸히 사라지는 것이 대강의 줄거리이다.

로자와 모모, 프랭키와 매기 이 두 인간 관계의 조합은 참 닮아있다. 모두가 인생의 막바지에 서 있고, 다른 의지할 가족도 없는 가운데, 피가 섞여 있지 않지만, 모자와 부녀의 관계로 서서히 발전해갔다. 그리고, 그 하나가 회복할 수 없는 병에 걸렸을 때, 그들을 조용히 보내는 결정을 한다. 아마도 너무나 사랑하기에 가능한 결정일 것 같다. 이 두 책과 영화는 우리에게 사랑이라는 것이 무엇인지 생각해 보게 한다. 죽음을 향해가는 그 추함을 함께 견디어주는 것. 그 옆에서 납작 엎드려 있는 것이 아닐까?  

김천의료원 6인실 302호에 산소마스크를 쓰고 암투병중인 그녀가 누워있다
바닥에 바짝 엎드린 가재미처럼 그녀가 누워 있다
나는 그녀의 옆에 나란히 한 마리 가재미로 눕는다
가재미가 가재미에게 눈길을 건네자 그녀가 울컥 눈물을 쏟아낸다
한쪽 눈이 다른 한쪽 눈으로 옮겨 붙은 야윈 그녀가 운다
그녀는 죽음만을 보고 있고 나는 그녀가 살아 온 파랑 같은 날들을 보고 있다
<문태준의 가재미 중에서>

(사족 : 로맹 가리의 삶도 드라마틱하다고 하네요. 혹시 관심이 있으신 분은 빨간책방의 “자기 앞의 생”을 들어보면 될 거 같네요.  https://www.youtube.com/watch?v=9HqEvRWLDu8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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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복한 책읽기 - 김현의 일기 1986~1989
김현 지음 / 문학과지성사 / 1999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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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판절판


김현 선생.. 대학 때 문학을 전공하는 친구에게서 들은 이름이었다. 전설적인 평론가라고.. 그래서 그의 책을 한 두권 그 맘 때 읽은 기억은 있다. 물론 무슨 소리인지 전혀 모르고 읽었지만. 간서치 효과를 통해서 다시 김현 선생의 이름을 듣고는 그 때의 아쉬움을 되살려 읽게 되었다.


“문학은 시대의 일기장”라는 표현처럼 이 책은 1986년에서 1989년의 시대를 가로지르며 기록하고 있다. 광주의 기억과 슬픔이 캠퍼스를 사로잡고 있던 때, 그는 낭만적 지식인이자 평론가로 수많은 책을 읽어내려간다. 이 책에서는 이제 권위있는 작가가 된 이성복, 황지우 시인들이 신인으로 등장한다. 그리고, 기형도 시인이 등장했다가 사라지기도 한다. 한국 현대 소설의 맥을 잇는 최인훈, 이청준, 이문열, 복거일의 이름도 스크롤되어 지나간다. 김현 선생이 읽은 여러 책들은 물론 내가 거의 읽어보지 않은 책이다. 그가 책에 대한 쓴 짧은 감상을 이해하지 못하더라도, 그 느낌은 충분히 전달된다. 그리고, 어려운 인문학 책들도 그 핵심을 참 쉽게 집어내는가 하면, 내가 어려워하는 시들도 툭툭 던지듯 가볍게 장점과 약점을 열거한다. 책 내용의 30~40프로만 이해한다고 해도, 대가의 시각을 생생히 느꼈다는 점에서 얻을 게 많은 책이다.

책을 읽다가 강하게 매료되는 대목들 중 몇 개를 여기에 옮겨보았다. 다시 읽어봐도 좋다.  

p. 30 낭만적 지식인은 조직력의 결여를 그 약점으로 갖고 있지만, 그것은 또한 장점이 되기도 한다. 왜냐하면 조직력이 없기 때문에 그는 싸움의 변두리로 밀려나지만, 그렇기 때문에 조직의 전체주의적 성격을 드러낼 수가 있다.

p. 47 미국영화가 자꾸만 애국심을 강조하는 것은 미국의 지적 힘이 자신감을 잃고 있다는 명백한 증거이다. 자기 나라가 좋은 나라라는 것을 선전해야만 안심이 되는 나라는 이미 그렇게 좋은 나라가 아니다. 자기 나라가 좋지 않은 나라라고 비판하는 것을 그대로 놔두고 그것을 수용하는 나라가 차라리 좋은 나라이다. 그 체제를 나는 부정적 신학이라는 용어를 차용하여 부정적 체제라고 부르고 싶다.

p. 81 도스토예프스키의 재능 중의 하나는 인간이란 두껍고 끈적끈적하고 더러운 혼합물이라는 것을 유감없이 보여주는 데 있다. 그가 그리고 있는 인간은 단순하고 명료하지가 않다.

p. 109  나 자신을 포함하여 이 사회의 제법 잘났다는 지식인들의 병폐 중의 하나는, 모든 역사적 사실을 자질구레한 사실들의 모음으로 변형시켜버려, 그 의미를 희석시켜버리는 데 있다. 예를 들어 민주화만 하더라도, 누구는 뭐라더라, 뭐는 뭐라더라, 라는 식이고, 그것이 더 악화되면, 거짓 우스갯소리로 진전해나간다. 그것은 우리가 진지하고 성숙하게 역사적 사실의 의미를 숙고하는 버릇을 갖고 있지 못함을 입증하며, 그만큼 우리가 억압되어 있음을 나타낸다. 억압은 바로 사실을 사실로 직시하지 못하게 하는 마음의 움직임을 지칭한다.

p. 167 박정희가 권력을 잡은 이후부터, 단 하나의 담론이 모든 것의 우위에 있다. 우리는 잘 살아야 하고, 잘 살 수 있다. 그러나 거기에는 전제가 붙는다. 물질적으로 잘 산다는 것을, 그는, 그냥 잘 산다고 표현한 것이다. 그러나 물질적으로 조금 부유해졌다고 과연 잘사는 것일까? 그는 물질을 올리고, 정신, 신앙, 문화를 낮춘다. 정신적인 가치는 물질적 가치에 종속된다. 언제까지? 다 피폐해져서 물질적 쾌락만 남을 때까지? 그는 상징적인 히로뽕 판매자였다!

p. 225 김정환의 <우리 노동자>의 전언은 분명하고 수사도 정확하다. 전언이 너무 분명하기 때문에 계속 읽기가 아주 고되다. 현실 파악도 직선적이고, 시의 논리도 그만큼 직선적이다. 직선적이기 때문에 깊이가 느껴지지 않는다. 현실은 논리 위에 떠 있거나, 논리 밑에 숨어있다. 삶을 영위하는 사람은 거의 없고, 소리 높여, 노동 계급의 해방을 외치는 목소리만 있다. 안타깝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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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년 동안의 고독 - 1982년 노벨문학상 수상작 문학사상 세계문학 6
가브리엘 가르시아 마르케스 지음, 안정효 옮김, 김욱동 해설 / 문학사상사 / 2005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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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중세 유럽의 풍경


문명화가 일어나기 이전, 중세 유럽에는 현대인의 눈으로 보기에는 상상하기 힘들도록 야만적이고 게으른 풍경을 이곳 저곳에서 찾아볼 수 있었다. 중세유럽의 식사의 긴 탁자에는 이전 식사 뿐 아니라 저번 식사의 음식 지꺼기등 역겨운 것들이 오랫동안 쌓여있고, 사람들은 양이나 돼지 등 도살한 동물을 통째로 요리해서 먹었다. 그리고 공동냄비를 돌려가면서 먹다가 입에 걸리는 뼈가 나오면 다시 냄비에 뱉기도 하였다. 

중세 영주의 저택에서는 수십 명의 친척과 하인들 그리고 친구와 친지들이 들끓고, 칸막이가 없는 공간에서 서로 함께 자고 먹고 생활하였다. 독일의 공중 목욕탕에서는 전라의 남자들과 반라의 여자들이 서로 부딪혔고, 남편들은 낯선 사람이 자기 아내를 건드려도 개의치 않았고, 욕실에서 사색하고, 잡담하고 장난을 쳤다.

2. 백년 동안의 고독 

1967년에 서구의 문학이 소설의 죽음을 얘기하고 있을 때 마르케스가 쓴 백년동안의 고독은 큰 충격을 안겨준 소설이라고 한다. 이 소설의 무엇이 "소설의 소생"을 일으켰는지는 잘 모르겠지만, 저널리스트였던 마르케스가 가지고 있던 리얼리즘이라는 한 축과 환상적이고 마술적인 요소의 다른 한 축이 만나 만들어 낸 환상적 혹은 마술적 리얼리즘 소설이라는 수사는 충분히 이해가 가고 느낌이 오는 소설이었다. 

이 소설은 호세 아르카디오 부엔디오와 스페인 상인의 딸 우르술라랑 결혼하면서 이야기를 열어가고, 부엔디오 집안을 중심으로 하여, 마콘도라는 상상 속의 공간에서 벌어지는 백년동안 이 집안에서 일어나는 일들로 이야기를 꾸며간다. 세계의 어느 지역이든 100년이라는 세월은 한 가계로 하여금 이 정도의 얘기를 만들 수 있겠지만은 카리브해의 마콘도에 불어닥친 여러 역사적인 사건들의 도전이 부엔디오 집안의 각종 등장인물이 겪어야 할 삶의 고단함의 무늬를 다르게 만들어간다.

부엔디오 집안의 선조인 호세 아르카디오 부엔디오는 그가 거주하는 원시 공동체에 집시들에 의해 소개되어진 서구 과학문명에 현혹되어 현실적 감각을 잃어버리고, 미쳐간다. 그의 아들 아우렐리아 부엔디아는 정부의 반란을 지지하는 자유파 대령으로서 32번의 반란을 일으키고, 14면의 암살과 73번의 매복공격을 감행하고, 한 번의 총살형을 모면하고, 이곳저곳에서 17명의 아이를 낳는다. 호세 아르카디오 부엔디오의 증손이 되는 호세 아르카디오 세군도는 미국에 의해 세워진 바나나 농장의 노동조건 개선을 외치며 파업을 주도하다가 3천명을 학살하는 사건의 중심에서 구사일생으로 살아나는 경험을 하게 된다. 

이 소설의 주인공들의 이름은 스페인어 이름이 어색한 우리에게는 기본적으로 어려운 데다가 누가 할아버지고 아버지고 손자인지 심하게 헷갈리게 지어놓았다. 어쩌면 이는 할아버지가 했던 삶의 행태를 아들이 따라하고, 손자가 또 되풀이하는 순환을 강조하면서 등장인물에 집중하지 말고, 이 집안 전체가 하나의 주인공임을 내보이는 작가의 장치인지도 모르겠다. 이에 대해 작품 속 인물인 우르슬라를 통해 다음과 같이 얘기한다.
 
"이 말을 했을 때 우르슬라는 자기가 옛날 죽음의 골방에서 아우렐리아노 부엔디아 대령이 했던 대답을 그대로 되풀이했음을 깨닫고는, 지금 자기가 말했듯이 시간은 흐르는 것이 아니라 커다란 원을 그리며 빙 돌고 있다는 생각에 몸을 떨었다."

3. 마르케스와 환상적 리얼리즘 

<"작가란 무엇인가>라는 책에서 마르케스는 이 책의 어조에 대해 다음과 같이 얘기한다.  

"제 할머니가 옛날 이야기를 들려주실때의 어조에 근거를 두었습니다. 할머니는 이야기를 초자연적이고 환상적으로 들리게 말씀하셨지만, 한편으로는 완전히 자연스럽게 말씀하셨습니다" 

그리고, 그는 환상적인 기법으로 백년동안의 일들을 묘사할 때 에피소드에 자세한 묘사를 넣음으로써 믿음직한 이야기로 만들고자 했다고 한다. 어쨌든 이 소설의 이야기들은 환상과 신화, 민속적 모티프로 가득차 있고, 근친상간과 같이 현대인들이 보기에는 비윤리적이고 야만적인 풍경으로 꾸며져 있어 현대인이 보기엔 이거 뭐야 할 수도 있겠지만, 이 풍경이 카리브해의 여러 마을의 모습을 대표하는 모습이며, 불과 몇백년 전의 현재 가장 문명화되었다는 유럽에서 보이는 풍경이다. 

이 소설이 선사하는 숨가쁘고도 지루한 이야기들의 구성은 여러 개개인들의 몰락과 역사의 힘겨운 도전 속에서도 사랑은 인간의 삶을 풍성하고 아름답게 하고, 전체로서의 인류와 자연은 도도히 흐르고 있음을 느끼게 해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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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성당 (양장) - 개정판 문학동네 세계문학전집 119
레이먼드 카버 지음, 김연수 옮김 / 문학동네 / 2014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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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레이먼드 카버는 미국 단편소설의 대가라고 일컬어진다. 왜 카버는 단편소설을 많이 쓴 배경은 슬프다. 그는 '너무 장황해서 얘기하기 어렵다'는 얘기를 파리리뷰 인터뷰에서 다음과 같이 늘어놓았다.


"살아남고, 공과금을 내고, 식구들을 먹이고, 동시에 자신을 작가로 생각하고 글쓰기를 배우는 일은 참 어려운 일입니다. 여러 해 동안 쓰레기 같은 일을 하고, 아이들을 키우고, 글을 쓰려고 애쓰면서 제가 빨리 끝낼 수 있는 걸 써야한다는 것을 깨달았답니다. 한권에 2-3년이 걸리는 소설을 쓸 방법이 없었어요. 다음 해나 3년 후가 아니라 당장 보수를 지급받을 수 있는 것을 써야 했습니다. 그래서 단편이나 시를 썼지요. 삶이 제가 원하는 대로 돌아가지 않는다는 것을 깨닫기 시작했지요. 언제나 엄청나게 많은 좌절감에 직면해야 했어요. 예글 들면, 글을 쓰고 싶은데 글을 쓸 시간도 장소도 없다는 것 등이지요. 밖에 나가 차에 앉아서 무릎 위에 공책을 놓고 글을 쓰려고 애썼죠... 우리는 여전히 가난하고, 언제나 한 발만 내딛으면 파산이 기다리고 있었어요"

이런 그를 이해하고 나니, 그의 단편소설이 숙연하게 느껴진다. 그의 단편소설들을 좀 더 이해하기 위해서 신형철의 얘기를 들어보자.

"단편소설은 '무슨 일이 일어났는가?'를 묻고 삶에서 하나의 파열선을 발견해내는 작업이라고 말이다. 뒤집어 말하면 '삶을 가로지르는 아주 미세한 파열선 하나'를 포착하기만 해도 단편소설을 성립할 수 있다. 레이먼드 카버의 정자가 어째서 훌륭한 단편소설이 될 수 있었는가. 우리 삶을 내부에서부터 천천히 갉아먹는 파열선이 그 소설들에 있기 때문이고 그를 통해 우리가 이미 늦은 뒤에야 깨달았을 어떤 파열들을 미리 경험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단편소설은 무엇보다도 뛰어난 관찰력에서 탄생한다고 말해야 옳다."

신형철은 장편소설은 "사건, 진실, 응답"으로 이루어진 반면에 단편소설은 사건과 진실을 보여주는 것만으로 충분하다고 말한다. 사실 위의 두 인용만으로도 레이먼드 카버의 소설에 대해선 더 할 말이 없는 것 같다. "칸막이 객실"이라는 소설에서는 이혼으로 오랫동안 헤어진 딸을 만나러 가는 도중 열차에서 시계를 잃어버리는 파열적 사건으로 자신이 왜 오래전에 헤어져 만날 욕망도 없는 딸을 보러가는지에 대한 왜란 질문을 심각하게 제기하는 것으로 소설은 끝이 난다. "내가 전화를 거는 곳"이라는 소설에서는 알콜 중독 재활센터에서 알게 된 친구의 여자친구에게 가벼운 입맞춤을 통해 아내와의 관계에 대해 다시 생각하고 전화를 걸려는 장면에서 끝이 난다.

이 소설에서 좋았던 작품을 뽑으라면, "대성당", "열", "별것 아닌 것 같지만 도움이 되는"을 들 수 있을 것 같다. 카버도 "대성당"과 "별것 아닌 것 같지만 도움이 되는"이 최고로 아끼는 작품이었다고 한다. 이 세작품엔 공통점이 있다. 인간관계의 갈등이 타인과의 대화를 통해 해소가 된다는 점이다. 곤충은 서로를 교감하기 위해 더듬이를 사용한다. 인간은 서로를 교감하기 위해 대화를 사용해야하는 동물인 듯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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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은 왕녀를 위한 파반느
박민규 지음 / 위즈덤하우스 / 2009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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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 이야기를 다룬 이 소설을 읽고 나서 이런 자문을 해 보았다. 왜 드라마보다는 소설이 더 재미있을까?


요즘은 가끔씩 한국 드라마를 보다가도 중간에 그만 두게 될 때가 많다. 아무래도 극중 이야기가 전형성을 띠고 있어서 무슨 사건이 펼쳐질 지 대강 짐작이 가며 그 예상이 별로 틀리지 않게 되기에 그닥 재미를 못 느끼게 되는 면이 있어서일 것이다. 또 드라마는 사랑 이야기를 다룰 때에도 낭만적 형태의 사랑 형식을 보여줌으로 사랑에 대한 환상을 던져 주지만, 사람 자체에 대해 놓쳐버릴 때가 많기 때문에 그닥 흥미가 덜하게 되는 듯 하다.

이 소설은 절대 드라마나 영화화되기 힘든 이야기를 다룬다. 외모로 인해 사회에서 외톨이가 된 한 추녀와 그리고 그를 사랑하는 한 남자의 사랑을 다루기 때문에 대중적 인기를 힘든 서사 구조를 지니고 있다. 레미제라블에서 앤 헤서웨이가 한 역할을 못생기고 뚱뚱한 여자가 한다고 상상해 보면 그 영화가 결코 대중적 감동을 이끌어 내기 힘들었을 것이다. 이 등장인물들을 통해 이 소설은 사랑이라는 주제에 대해 곰곰이 생각하게 하고, 더 나아가서 그 뒤에 있는 인간을 여실히 보여주는 힘을 가지고 있다.

어쩌면 내가 이제 연애감정에서 멀어져서 그런지 모르겠지만, 난 이 소설을 읽으면서 계속 세명의 등장인물이 보였다. 다들 들고양이처럼 상처받고 외로워하다가 서로를 만나 대화하고, 이해하고, 의지하고, 사랑하는 얘기는 읽는 내내 엄숙하게도 만들었고 지긋이 미소를 띄우게도 만들었고 마음 아프게도 만들었다.

타인의 것을 부러워하고 자기 것을 부끄러워하다가 자기 옆에 있는 소중한 것을 지나쳐 버리는 우리의 모습은 이 세 등장인물을 둘러싸고 있는 사회에 투영되어 있는 듯 하고, 그렇게 부러워하고 부끄럽도록 몰고 있는 우리 사회 속에서 괴로워하고 상처받아하는 젊은이들을 괜히 떠오르게 하는 책이다.

요즘 굵직굵직한 외국 소설들을 읽는 속에서 만난 책이라 그런지 완성도나 짜임새에 약간의 아쉬움이 남기도 하다. 그러나 한국인이 쓴 국문소설은 내 DNA에 각인된 느낌들, 감각들을 곧추세우게 하고, 사적 경험들이 공명되어 사정없이 빠져들게 하는 맛이 또한 있다. 방황하는 특히 사랑하고 있거나 사랑할 준비가 된 20대들이 많이 읽고 사랑과 인간에 대한 이해를 깊게 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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