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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년 동안의 고독 - 1982년 노벨문학상 수상작 ㅣ 문학사상 세계문학 6
가브리엘 가르시아 마르케스 지음, 안정효 옮김, 김욱동 해설 / 문학사상사 / 2005년 7월
평점 :
1. 중세 유럽의 풍경
문명화가 일어나기 이전, 중세 유럽에는 현대인의 눈으로 보기에는 상상하기 힘들도록 야만적이고 게으른 풍경을 이곳 저곳에서 찾아볼 수 있었다. 중세유럽의 식사의 긴 탁자에는 이전 식사 뿐 아니라 저번 식사의 음식 지꺼기등 역겨운 것들이 오랫동안 쌓여있고, 사람들은 양이나 돼지 등 도살한 동물을 통째로 요리해서 먹었다. 그리고 공동냄비를 돌려가면서 먹다가 입에 걸리는 뼈가 나오면 다시 냄비에 뱉기도 하였다.
중세 영주의 저택에서는 수십 명의 친척과 하인들 그리고 친구와 친지들이 들끓고, 칸막이가 없는 공간에서 서로 함께 자고 먹고 생활하였다. 독일의 공중 목욕탕에서는 전라의 남자들과 반라의 여자들이 서로 부딪혔고, 남편들은 낯선 사람이 자기 아내를 건드려도 개의치 않았고, 욕실에서 사색하고, 잡담하고 장난을 쳤다.
1967년에 서구의 문학이 소설의 죽음을 얘기하고 있을 때 마르케스가 쓴 백년동안의 고독은 큰 충격을 안겨준 소설이라고 한다. 이 소설의 무엇이 "소설의 소생"을 일으켰는지는 잘 모르겠지만, 저널리스트였던 마르케스가 가지고 있던 리얼리즘이라는 한 축과 환상적이고 마술적인 요소의 다른 한 축이 만나 만들어 낸 환상적 혹은 마술적 리얼리즘 소설이라는 수사는 충분히 이해가 가고 느낌이 오는 소설이었다.
이 소설은 호세 아르카디오 부엔디오와 스페인 상인의 딸 우르술라랑 결혼하면서 이야기를 열어가고, 부엔디오 집안을 중심으로 하여, 마콘도라는 상상 속의 공간에서 벌어지는 백년동안 이 집안에서 일어나는 일들로 이야기를 꾸며간다. 세계의 어느 지역이든 100년이라는 세월은 한 가계로 하여금 이 정도의 얘기를 만들 수 있겠지만은 카리브해의 마콘도에 불어닥친 여러 역사적인 사건들의 도전이 부엔디오 집안의 각종 등장인물이 겪어야 할 삶의 고단함의 무늬를 다르게 만들어간다.
부엔디오 집안의 선조인 호세 아르카디오 부엔디오는 그가 거주하는 원시 공동체에 집시들에 의해 소개되어진 서구 과학문명에 현혹되어 현실적 감각을 잃어버리고, 미쳐간다. 그의 아들 아우렐리아 부엔디아는 정부의 반란을 지지하는 자유파 대령으로서 32번의 반란을 일으키고, 14면의 암살과 73번의 매복공격을 감행하고, 한 번의 총살형을 모면하고, 이곳저곳에서 17명의 아이를 낳는다. 호세 아르카디오 부엔디오의 증손이 되는 호세 아르카디오 세군도는 미국에 의해 세워진 바나나 농장의 노동조건 개선을 외치며 파업을 주도하다가 3천명을 학살하는 사건의 중심에서 구사일생으로 살아나는 경험을 하게 된다.
이 소설의 주인공들의 이름은 스페인어 이름이 어색한 우리에게는 기본적으로 어려운 데다가 누가 할아버지고 아버지고 손자인지 심하게 헷갈리게 지어놓았다. 어쩌면 이는 할아버지가 했던 삶의 행태를 아들이 따라하고, 손자가 또 되풀이하는 순환을 강조하면서 등장인물에 집중하지 말고, 이 집안 전체가 하나의 주인공임을 내보이는 작가의 장치인지도 모르겠다. 이에 대해 작품 속 인물인 우르슬라를 통해 다음과 같이 얘기한다.
"이 말을 했을 때 우르슬라는 자기가 옛날 죽음의 골방에서 아우렐리아노 부엔디아 대령이 했던 대답을 그대로 되풀이했음을 깨닫고는, 지금 자기가 말했듯이 시간은 흐르는 것이 아니라 커다란 원을 그리며 빙 돌고 있다는 생각에 몸을 떨었다."
<"작가란 무엇인가>라는 책에서 마르케스는 이 책의 어조에 대해 다음과 같이 얘기한다.
"제 할머니가 옛날 이야기를 들려주실때의 어조에 근거를 두었습니다. 할머니는 이야기를 초자연적이고 환상적으로 들리게 말씀하셨지만, 한편으로는 완전히 자연스럽게 말씀하셨습니다"
그리고, 그는 환상적인 기법으로 백년동안의 일들을 묘사할 때 에피소드에 자세한 묘사를 넣음으로써 믿음직한 이야기로 만들고자 했다고 한다. 어쨌든 이 소설의 이야기들은 환상과 신화, 민속적 모티프로 가득차 있고, 근친상간과 같이 현대인들이 보기에는 비윤리적이고 야만적인 풍경으로 꾸며져 있어 현대인이 보기엔 이거 뭐야 할 수도 있겠지만, 이 풍경이 카리브해의 여러 마을의 모습을 대표하는 모습이며, 불과 몇백년 전의 현재 가장 문명화되었다는 유럽에서 보이는 풍경이다.
이 소설이 선사하는 숨가쁘고도 지루한 이야기들의 구성은 여러 개개인들의 몰락과 역사의 힘겨운 도전 속에서도 사랑은 인간의 삶을 풍성하고 아름답게 하고, 전체로서의 인류와 자연은 도도히 흐르고 있음을 느끼게 해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