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드르디, 태평양의 끝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91
미셸 투르니에 지음, 김화영 옮김 / 민음사 / 2003년 11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다니엘 디포의 ‘로빈슨 크루소(1719년)’는 동화로도 알고 있을 정도로 우리에게 익숙한 이야기이다. 비슷한 소재의 영화로 ‘캐스트 어웨이’가 있었지만, 현대적인 시각으로 재해석한 작품 ‘방드르디, 태평양의 끝’을 읽지 않고서는 완결되지 않았다고 생각될 정도로 투르니에의 작품은 신선했고, 그 인식의 끝에서 함께 전율했다. 미지의 세계를 동경하는 우리들에게 상상 이상의 재현은 소설적 공간이라는 좁은 울타리가 아니라, 태평양의 한가운데에 떨어진 로빈슨이 되게 한다. 거기에 방드르디와의 새로운 만남이 눈부시게 펼쳐진다.


  1967년에 발표된 이 소설에서 투르니에는 방드르디(프랑스어로 ‘금요일’이라는 뜻)를 로빈슨의 노예로서 친구 이상의 존재는 아닌 디포의 프라이데이를 뛰어넘어 개성적인 인물로 형상화한다. 또한 시대적인 한계일 수도 있겠으나, 디포의 로빈슨이 철저히 계획 아래 자신의 삶을 기계적으로 이끄는 반면, 투르니에의 로빈슨은 인간적이고, 그래서 절망하고, 사유와 인식으로 무장한 듯 보이지만 방드르디를 보며 흔들리는, 솔직한 내면과 대면하게 한다.


  로빈슨의 문명이 가진 한계를 뛰어넘어 자연의 질서 속에 녹아들기, 혹은 자연과 하나 되기를 통해 진정 자유로운 영혼이 되어 있는 방드르디를 보고서, 그렇게 되고 싶어하는 역시 문명인일 수밖에 없는 자유롭지 못한 영혼을 대비시키고 있다. 그래서 대미를 장식하는 선택 역시 원작과 크게 벗어나 있다. 자유롭다는 것은 무엇인가, 진정 자유롭다는 것은, 무엇인가. 묻지 않을 수 없게 된다.


  이 작품에서 가장 빛나는 부분은 프라이데이의 재창조에 있다. 방드르디의 자유분방함, 원시적이지만 본성에 충실하고, 본능 속에 이미 내재된 정신과 맞닥뜨리게 되는 즐거움이 무엇보다도 이 작품을 읽는 보람이 될 것이다.


  나는 가끔 상상한다, 무인도에서의 삶을. 무엇인가 만들려는 노력을 분명 할 것이다. 도구를 만들어 이용하고, 자연을 관찰하며, 투르니에의 로빈슨이 일기를 통해 자신을 발견한 것처럼 어떤 방법을 동원해서라도 글을 남길 것이고, 웅장한 자연 앞에 한 점이 되어 사라진다 해도 결코 흔들리지 않을 것이며, 방드르디 같은 자유분방함을 다 흉내내지는 못하더라도 스스로 자유로울 것이다.


  좋은 책은 그 향이 오래도록 가슴 속에 살아남아서 숨을 쉬고, 생각이 되어 번뜩이고, 말이 되어 나온다. 자유로운 상상으로 작가와 대면해 보고자 하시는 분은 이 책을 꼭 읽으시길.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