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낭콩 분도그림우화 22
에드몽드 세샹 지음, 이미림 옮김 / 분도출판사 / 1984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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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나는 분도의 이야기가 있고 그림이 있는, 짧고 얇은 책들을 좋아한다. 그래 몇 권 소장하고 있는데, 이 책도 그 중 하나다. 1962년 세샹은 영화 ‘강낭콩’으로 칸느 영화제에서 금상을 수상, 상영 20여 년이 지나고 책이 출판되었다. 책 속의 사진은 영화의 장면들로 여주인공 마리 마르끄는 의사로서 이 영화에서만 한 번 배우가 되었다.


  이 글은 강낭콩의 이미지를 강하게 심어 준 이야기로, 노부인의 일상 속으로 스며들어온 강낭콩은 그녀의 삶을 바꾼다. 오랜 세월 어두운 빌딩 안에서 꾸부정하게 앉아 재봉틀을 돌려 일하고 찾아오는 이도 없이 쓸쓸하게 살아가는 그녀에게 버려진 화분에 강낭콩을 심고 보살피게 되면서 생의 이면은 찾아온다. 똑같은 길을 걸어 산책을 하는 길도 예전의 그 길이 아니다. 어두운 공간에 갇혀 있는 듯 일만 하는 시간에도 이제 혼자가 아니다. 누군가를 보살피게 된다는 것은 일상의 삶을 자신의 중심에서 타인의 중심으로 옮겨 놓는다. 또는 무관심한 것들에 주의를 기울이고 생각을 하게 하는 계기를 만들어 준다. 그 대상을 중심으로 놓고. 노부인에게 그 대상은 바로 화분에 심어진 강낭콩이었다.


  햇빛이 부족해서, 비둘기가 날아와 쪼아대서 신경이 쓰이는 것, 그것은 타자를 향한 관심임과 동시에 자신에게 돌아오는 인간애이기도 하다. 화단 한켠에 심어 놓고 좀 더 나은 환경에서 잘 자라나 주기를 바라는 마음을 행간에서 읽어내면서, 정원사에 의해 강낭콩이 뿌리째 뽑혀나가는 것을 보아야 하는 현실 속에서 안타까움을 함께 느끼면서, 다시금 씨앗을 심는 노부인의 마음에 자리잡은 희망에 공감하게 된다. 나이 들어 홀로 살아간다는 것에 대해 생각하게 하는 글이기도 한 ‘강낭콩’은 나이나 시간의 무게에 짓눌려 아무것도 하지 못하는 것이 아니라, 작은 계기를 통해서도 관심과 애정을 쏟을 수 있음을, 그리고 그것은 세상을 향한 것이기도 함을 노부인의 일상을 통해 잔잔하게 보여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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