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름다운 마무리
법정(法頂) 지음 / 문학의숲 / 2008년 11월
평점 :
절판


아름다운 마무리

 

친구와의 대화속에 각자의 주된 관심사가 다르기에 상대를 봐주는 모양없이 말이 오갔다.
말이 오가지만 상대의 말에 대답은 없다. 서로 의식적으로 피하는 것도 있고 대답 안하는게 곤란을 피하는 길이기도 허다.
그러면 '그러려니...' 친구의 애써피함에.. 또 어려운.... 나에게 어려운 고민을 친구에게 던졌던거구나 싶어 얼른 친구가 답(?)한 다른 화두에 대답하곤 한다. 

넋두리하듯 대화(?)하고 나면 그렇게 내가 수다스러울 수가 없다.
그저 조용히 홀로 침잠할 걸... 하는 생각에 곧 책을 펴들게 된다.
그러기에 더 없이 좋은 대화상대는 법정스님의 책이다. 
훌훌 털어내듯 
한 마디 한 단락 한 페이지 한 권은 그렇게 길을 내어준다.
조용히 읽으며 말씀을 듣고 있노라면 지극히 세속적이며 수다스러웠던 나에게 지긋이 답과 조언을 해주는듯하다.
'그래.. 그래서 책이야..' 라는 탄성이 절로 나오도록...
아마도 법정스님의 책은 책을 통해서 가장 내면의 깊은 '나'를 만나게 해주는 책 중의 책이 아닐까 싶다.책을 읽고 있지만, 책의 말씀도 깊지만 순간 순간 읽고 있는 중간 내가 나를 향해 순례를 떠나는 듯한 느낌을 주는.. 그런 책.
파울로 코엘료가 그런면에서 대가인데... 이 책을 읽는 중간 [순례자]가 떠오르기도 했다.
물론, 다분히 개인적인 책읽기이기에 그렇지만.. 요번 내 경우엔 그랬었다.

'그곳을 알기 위해서 그곳에 가야 하는 것.' 154쪽

단순하지만 단순하지 않은 진리다. 잊기 쉽고, 쉽게 안다 말한다.

 '좋은 말씀을 찾아'라는 꼭지글이 인상적이었다. 마치 나를 두고 하는 말 같아 내심 찔리기도 했는데..
이유인즉슨, 좋은 말씀을 찾아 강연들으러 다니길 좋아하지만 번번히 잊고 살기 바쁘다. 

'천지 만물이 그때 그곳에서 좋은 가르침을 펼쳐 보이고 있지 않은가.' 175쪽 라며 순간을 살라 말하는 법정스님

 말씀(가르침)이란 그렇게 살기 위한 하나의 방편에 지나지 않는다. 실제의 삶에 이어지지 않으면 말이란 공허하다. 
자기 체험이 없는 말에 메아리가 없듯이 그 어떤 가르침도 일상적으로 생활화되지 않는다면 무익하다. 176쪽

깨어 있고자 하는 사람은 바로 그 순간을 살 줄 알아야 한다. 
좋은 친구란 주고받는 말이 없어도 마음이 편하고 투명하고 느긋하고 향기로운 사이다.
그 밖에 또 무엇을 찾는다면 그것은 헛된 욕심이고 부질없는 탐욕이다. 자신에게 주어진 바로 그 순간을 놓치지 말아야 한다.
좋은 말씀은 어디에 있는가? 그대가 서 있는 바로 지금 그 곳에서 자기 자신답게 살고 있다면, 그 자리에 좋은 말씀이 살아 숨쉰다.
명심하라. 176-177

 끝말의 '명심하라'가 푸욱 찌른다. 마치 그날 읽고 있던 그 당일날 나를 두고 말하는듯하여 심히 찌르르했다.
요즘은 사람들이 너나없이 너무 바쁘다. 다들 너무 바쁘긴 한데, 정신은 온전히 자기 자신으로 함께 하진 않는것 같다. 
다들 정신없다고 하니 말이다. 나부터도 상대의 시간과 의중을 묻고 대화를 시작하지만 내 심중은 결국 내말을 하고자 함이지 상대를 듣고자 함이 아니었던 것이다. 거기에 실망을 하고 대화가 뚝 뚝 곧잘 단절되는 거였다. 순간을 놓치지 않고 그 순간의 소중함을 안다면 그렇게 대화하지 않았을텐데 싶으면서 실망하지 않았을텐데 싶다. 

지금은 세상을 떠나고 같은 하늘아래 없는 친구가 있다. 
짐정리를 하다가 그 친구와 주고받았던 엽서를 최근에 다시 읽게 되었는데, 그 순간 엄청나게 명치끝이 따끔하게 아파왔다. 
정말이지 찔끔한다는 것은 실제로 적용되는 구나 싶었던 순간이었다. 자주 연락을 못 주고받으니 손글씨로 쓴 편지를 주고받자는 것이다. 긴 편지는 부담스럽긴 매한가지이니 엽서로 하자고 말이다. 종이 한켠. 그게 어디 어렵던가 말이다. 그런데 어려웠다.
날아온 엽서에 서로 간간히 주고 받던 엽서가 내가 부치지 못한 엽서가 두 장이나 같이 있었던 것이다.
한 장을 써놓고 미쳐 못 부치고 세월을 흘려보낸 엽서가 한 장, 그리고 그 이후에 그걸 한 번 더 발견하고 나서 쓴 또 한 장의 엽서. 
그런데 그 두 장이 전부 내게 있다. 그 친구가 떠난지도 한 참후인데도 말이다.
내용 또한 그랬다. 오늘의 내가 친구와 나눈 대화에서 느꼈던 것처럼....
말을 걸고.. 서로 바쁜듯한 움직임이 서로에게 있고, 더이상 대화는 대화로 오고가는 것이 아니다.
그래서 결국 대화답지 않은 안부만, 물음만 던지다가 결국 대화창은 닫히는 것이다. 
그러한 내용의 엽서. 
그런데도 아직 나는 정신이 맑게 깨어있지 못했던지 그날 또 잊고선 그러고 대화를 나눴던 것.
그리고 그 친구처럼 느꼈던 것. 
지나고 나서 책을 읽다가 불현듯. 아차, 싶은 거다. 
순간을 살라.. 는 말을 곱씹게 된다.
자꾸 마지막즈음에 나눴던 대화들이 떠오르기때문에 후회가 동시에 같이 밀려오기 때문이다.

법정스님이 책 읽기에 양서읽기를 강하게 말씀하신다. 
나 또한 실감하는 순간이다. 사람에게 끈을 놓지 않게 해주는, 희망을 갖게 해주는 책이 있는 반면,
무서운 결단을 내리게 하는 책들이 있기 때문이다. 물론 그것 또한 받아들이는 사람의 주변환경 탓일 수도 있지만 무서운 영향력을 끼치는 것은 사실인 것 같다. 

'테레사효과'라고 있다고 한다. 
테레사 수녀의 선행같은 행동을 보거나 단지 글을 통해 읽는 것 만으로도 체내의 면역력이 증가된다는 것.
마지막 대화로 기억되는 것도 책에 관한 내용이었다. 그런데 그때 읽고 있었던 것은 살인을 주제로 펼치는 추리소설. 
책명을 밝히고 싶지도 않고 나 또한 아직 안 읽어봤다. 유혹은 느꼈다. 하지만 어느정도는 작용을 하지 않았을까 싶은 생각에 무서운 생각이 든 건 사실이다. 아마도 내용이 사람의 영혼을 맑히는 책이었다면 그런 결단을 내리게까지 되진 않았으리란 생각이 든다. 물론 나에게도 순간을 사는 최선을 보였더라면 친구에게 그런 친구가 되지 않았을 수도 있다는 생각을 해본다.
영혼을 맑히는 책을 많이 권했더라면, 혹은 순간 순간을 소중하게 진심으로 대화를 나누는 친구가 되었더라면 아마도 어려운 결단을 내릴 때 곁에 아무도 없는 친구로 만들진 않았을텐데.. 하는 생각을 해본다.

책와 버렸지만,
그때 그때의 내 생각의 움직임을 밝혀놓지 않으면 금방 금방 나의 하루 하루들이 무미하고 기록없이 흘러가 버리는 듯 하여 세세히 생각의 흐름대로 걸어와 버렸다.

아름다운 마무리.
그건 시작할 때 끝을 생각하며 시작하려고 생각되어지는 이름같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2)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