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연에서 멀어진 아이들 - 자연결핍 장애로부터 우리 아이들을 구해야 한다
리처드 루브 지음, 김주희 옮김 / 즐거운상상 / 2007년 4월
평점 :
절판



자연과 가까워지는 사고갖기

 

자연에 대해 환상을 갖고 있는가? 아니면 먼 거리감을 느끼는 나와 동떨어진 존재로 인식하고 있는가?

그도 아니면 나의 주변 환경에 늘 그 자리에 있는 존재로, 보호해야 하는 자연으로 인식하고 있는가?

 

이 책을 읽으면서 그동안 내가 자연과 가까이 가려 할 때 느꼈던 수치심이 어디로부터 왔는지를 알게 해 준 책이었다. 그간 우리가 어른들에게 받아온 교육은 꽃은 꺽지 않아야 하며 생명이 있는 모든 존재는 그 해함이 아주 죄악스러운 거며 그 행동은 마냥 훼손의 이미지로만 각인시켜 왔다. 그래서 예쁜 꽃을 보면 다가가 꺽고 싶고 만져보고 싶고 안에 들어 있는 열매도 관찰해보고 싶고 하던 충동은 자연스러운 우리네 본능임에도 불구하고 그건 자연을 해하는 위험하고도 못된 행동으로 치부되는 것이다. 하지만 그렇게 먼발치에서 자연을 바라만 보고 유리안에 갇혀 있는 식물을 육안으로만 봄이 과연 교육에 얼마나 도움이 될까? 아니, 실질적인 자연에 도움이 될까?

 

무엇인가를 잘 알려면 그 상대와 함께 놀고 가까이 다가가고 만지고 느끼고 자세히 들여다 보아야 체험을 통해서 깨달을 수 있다. 그래야 자신 스스로가 그 대상에 대한 관심도 늘고 주체적인 자각이 설 것이다. 그리고 그러한 경험이 있는자만이 그 대상에 대한 연구를 더욱 실질적으로 행동에 옮길 수도 있고 그 자연물에 대해 더 잘 알 것이다. 잘못된 자연에 대한 인식과 교육은 아이들로하여금 거리를 더욱 멀게 만든다. 자연은 결코 아름다움뿐인 에덴동산도 아니며 그렇다고 징글징글한 정글뿐인 그런 대상도 아니다. 그 모든 걸 다 지닌 하나의 우주다. 그런 우주와의 만남을, 교류를 자주 갖을 수 없는 환경 속에 지금 우리는 살고 있다.

 

멸종 위기에 놓인 식물도 아닌데 건드리면 움츠리는 식물(미모사 같은 신경초)을 전시해 놓고 아이들의 고사리같은 손이 닿기도 거절한 이런 문구가 있기 마련이다. "눈으로만 관찰해 주세요." 이런~! 아이들이 무슨 재주가 있어서 그 식물을 눈으로만 보고 다른 식물체나 생명이 날아온다하면 어떻게 움츠리는지 알 수 있겠는가? 누가 말해주기 이전에 그러한 사실을 어찌 짐작하겠는가? 그렇다고 그걸 TV화면에서만 보여주면 과연 실질적으로 자기의 손에 닿아 움츠러드는 그 신비스러운 순간의 체험이 같다고 할 수 있을까? 커다란 유리통 안에 사슴벌레 한 마리만 넣어놓고 제발 만지지 말고 눈으로만 봐달라고 말한 문구를 또 봤다. 안타깝다. 잘 보이지도 않을뿐더러 그 순간 주변의 아이의 말, "책이랑 똑같네.. 잘 안움직여.." 그 뿐이다. 그러고 지나간다.

 

하지만 어느 화목원은 직접 만져보라고 써 놓기까지 한 걸 보았다. 울타리가 없기에 신기하다(들어가지 못하게 울타리를 쳐놓는게 더욱 당연한 요즘 현실) 싶었는데 다가가 만져보고 식물의 털과 까츨까츨함을 느껴보라고도 했다. 또 같은 사슴벌레인데도 뚤린 통유리안엔 많은 개채수의 사슴벌레들이 움직이고 있었다. 어른인 나마저도 신기하게 바라보게 만들었고 작은 꼬마아이가 옆으로 반갑게 다가와 열심히 눈으로 관찰하기 시작했다. 부모로 보이는 분이 만져봐도 된다고 써 있으니까 만져봐.. 라고 하자 조심스럽게 만진다. 그리고 신기해 하는 그 눈빛. 분명 그 아이가 보고 느낀 사슴벌레에 대한 생각과 관심은 '책이랑 똑같네'라며 시큰둥거리며 지나갔던 아이와 다를 것이다. 직접 자신이 느끼고 본 사슴벌레, 사슴벌레의 색깔, 촉감, 움직임을 기억할 것이다. '책이랑 똑같네'라고 말한 아이는 분명 책에서 나온 그대로의 사슴벌레의 모습과 특성을 기억할 뿐일 것이다. 자신이 주체적으로 느끼고 생각하고 관심있게 대상을 생각지 않을 것이란 말이다. 자신이 관찰하고 체득한 배움이 있었을까? 자연에 대한 놀라움이라던가 그런게 생길까? 아마도 그건 어려울 것이다. 직접 만져보고 가까이 다가가 바라본 그 아이의 관찰력만이 자신의 관찰에서 온 배움을 얻을 것이다.

 

이는 작은 차이같지만 커다란 차이를 가져오게 할 것이다. 이 책이 가지는 주된 주장도 이것이다.

우리가 지금 행동하고 갖게된 자연에 대한 생각(너무 높게 보는 이상화나 혹은 복잡하고 징그러운 정글스러움이나, 인간 환경 속에서 낯선이에 대한 경계와 두려움)이 정말 자연적인 것인가? 당연한 것인가? 어디로부터 잘못된 인식이 박히게 되었는가? 사회는, 환경은, 자연은 정말 인간만이 일방향으로 보호하고 스스로 주의해야만 하는 공간인가? 생태계 안에서 우리는 하나의 동물일뿐임을, 서로 상호작용으로 살아감을 인식하고 좀 더 자연과 자연적으로 가까워지는 방법을 모색하고자 하고 여러 대안들을 주장한다.

우리가 내걸은 자연보호란 구호는 정말 정당하고 앞으로 먼 미래에도 효율적인 교육인가?

인간의 정신적 건강과 육체적 건강, 환경의 조화는 어떻게 해야 이루어질 것인가 이 책을 필독으로 하여 한번 생각해 보는 시간을 갖기를 바란다. 우연히 도서관에서 빌리게 된 책이지만, 생각보다 너무 알차서 서평이 길어지게 되었다. 내가 그간 가졌던 자연을 훼손하는 길인가 하는 수치심은 이 책을 통해 말끔히 해소되었다. 오히려 내가 갖는 자연에 대한 입장과 생각으로 아이들과 함께 할 것이며 체험을 통한 경험이 많아지도록 도울 것이다.

 

우리나라 토종 종자를 찾아내고 보존하고, 실질적으로 자연에서 볼 수 있도록 한 길을 걸어오신 안완식님이 계시다. 그 분의 말을 빌어 내가 자행(꽃이나 열매의 종자를 채취하는 일 등)하고 다니는 수치심을 덜고자 한다.

 

"국제식물유전자원연구소에서 하는 얘기가 있어요. 토종 종자를 저온 저장고에 보존하는 방법도 있지만 농가에서 직접 재배하면서 보존하는 방법도 있다고요. 종자를 채집해서 저온 저장하는 건 잠을 재우는 거예요. 100년 후에도 똑같은 종자지요. 하지만 농가에서 보존하면 100년 동안 변화하는 환경과, 미생물, 병충해에 적응한 종자가 되죠."  <좋은생각> 2008. 11월호

 

그렇다. 자연 속 사람도 이렇게 자랐으면 한다. 위험한 곳에 노출을 적게 하여 아이를 기르는 것이 진정하게 위험으로부터 벗어나게 기르는 것일까? 그리고 위험하다고 생각되는 그 공원이나 자연도 정말 실질적인 위험 가득한 곳인가? 모든 물음에 우리의 바보스런 행동들과 편견의 그림자만 보일 뿐이다. 그렇게 길러진 아이들, 혹은 자라난 우리는 스스로의 강한 내성도 적응력도 행동력도 보이지 못하는 나약한 꽃이 되고 말뿐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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