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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기만의 방 ㅣ 에프 클래식
버지니아 울프 지음, 김율희 옮김 / F(에프) / 2021년 3월
평점 :
자기만의 방
a room of one's own
버지니아 울프
김율희 옮김
에프
![](https://image.aladin.co.kr/Community/paper/2021/0306/pimg_7380361362865613.jpg)
"내가 생각하기에 여러분은 부끄러울 만큼 무지합니다. 여러분은 어떤 종류든 중요한 발견을 한 적이 없습니다." _p.165_
이 두 문장은 이 책에서 결론 부분의 시작으로 버지니아 울프가 한 말이다. 이 말을 듣고서, 난 뒤통수를 한 대 얻어 맞은 듯이 눈이 번쩍 뜨였다. 만약 그녀가 이런말로 <자기만의 방>을 시작했다면 나는 이 책을 읽기도 전에 여성을 대표하는 작가의 작품이 여성을 이렇게 비하하는 말을 해도 되는지 의아해하며 심지어 분노까지도 했을 것 같다. 하지만 이 책을 다 읽고나서 저 말을 들으니 내 자신이 한없이 부끄러워졌다.
이 책은 버지니아 울프가 1928년에 '여성과 소설'이라는 주제로 여자대학, 뉴넘과 버튼에서 했던 두 강연과 1929년 같은 제목으로 잡지에 기고한 에세이를 수정하고 발전시켜 발간한 책이다.
버지니아 울프는 워낙 유명한 여성 작가중의 한 명이다. 나는 그녀의 작품을 고등 학생 때부터 관심을 갖고 읽었다. 난해한 문체도 많았지만 대부분은 그 독특한 느낌 때문에 나의 관심이 더 쏠리기도 한 것 같다. 특히 <델레워이 부인> 같은 경우에는 영화로도 개봉해서 몇 번을 읽게 되었던 책이기도 하다. 하지만 <자기만의 방> 만큼은 별로 마음에 와 닿지도, 공감이 많이 가지도 않았다. 다만 그 시대의 여성이 그런 억압속에서 살았구나 정도를 깨달았다고 얘기 할 수 있다.
하지만 이번에 이 책을 다시 읽으면서 나는 수없이 많은 공감을 할 수 있었다. 그것은 내가 여성으로서의 차별을 버지니아 울프가 살던 그 시대도, 그 이 전의 시대도 아닌, 93년이나 지난 이 시대에 사회에서 차별받은 경험을 했기 때문이었다. 물론 문학에 관련된 차별은 아니었지만 어느 곳에서건 여성과 남성이라는 두 성의 차이가 존재한다는 것에 대한 격한 공감이었다. 나는 건축을 전공하고 설계사무실에서 일했다. 그때 수 많은 남자들에게 둘러싸여서 여성이라는 이유하나만으로 많은 억압을 받았다.
"내가 할 수 있는 것은 사소한 한 가지 주장에 대한 의견을 제시하는 것뿐이었으니, 그 주장이란 바로 여성이 소설을 쓰고자 한다면 돈과 자기만의 방이 필요하다는 것입니다." _p.10_
버지니아 울프는 여자대학의 학생들을 대상으로 강연을 하고 있고, 편안하게 의식의 흐름대로 상상을 하게 하면서 말을 하고 있다. 그녀가 내 앞에서 우리에게 이야기를 해 주고 있는 듯한 기분이 든다. 그리고 그녀의 입을 통해서 이전에 여성 작가들이 어떤 환경 속에서 어떻게 작품 활동을 해 왔는지에 대한 이야기를 들을 수 있다. 수많은 여성 작가들이 나오고 그 여성작가들을 이야기 하기 위해서 또 수많은 남성들의 이야기가 나온다. 버지니아 울프는 두서없이 말하는 것 같지만 굉장히 구체적인 작품과 사람을 언급하면서 이야기를 하며 감정적으로 대하는 것 같지만 상당히 객관적으로 바라보며 말한다. 그리고 상상을 해보자고 얘기를 하지만 그것은 실제로 일어나고 있는 그 시대의 모든 사람들의 이야기였다.
"교수들, 아니 더 정확하게 칭하자면 가부장들은 어느 정도는 그런 이유로 분노하겠지만, 어느 정도는 겉보기에 그보다 좀 더 모호한 이유로 분노하는지도 모릅니다. 어쩌면 그들은 아얘 '분노'하지 않았는지도 모릅니다. 사실, 대개 그들은 개인적으로 맺은 관계에서는 여성을 흠모하며 헌신적이고 모범적입니다. 어쩌면 그 교수가 여성의 열등성을 지나치리만큼 단호히 주장할 때 그는 여성의 열등성이 아니라 자신의 우월성에 관심이 있었을지도 모릅니다. ... 남성에게나 여성에게나 삶은 고되고 힘들며 끝이 없는 투쟁입니다. 삶에는 크나큰 용기와 힘이 필요합니다." _p.53_
"남성에게 자랑하거나 고통을 주지 않고도 <오만과 편견>은 좋은 책이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어쨌든 <오만과 편견>을 쓰다가 들키더라도 부끄러운 일이 아니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제인 오스틴은 경첩이 삐걱거려 누군가 들어오기 전에 원고를 숨길 수 있다는 사실을 다행으로 여겼습니다. 제인 오스틴은 <오만과 편견>을 쓰는 것을 왠지 수치스럽게 여겼습니다. ... 그러나 제인 오스틴의 환경이 그녀의 작품에 조금이라도 해를 끼친 흔적은 전혀 찾을 수 없었지요. 아마 그것이 이 작품에서 가장 큰 기적일 것입니다. 1800년경에 증오도, 비통함도, 두려움도, 항의도, 설교도 없이 글을 쓴 한 여성이 여기 있었습니다." _p.102_
"샬럿 브론테에게 일 년에 삼백 파운드 정도의 수입이 있었다면, 분주한 세상과 도시와 활기로 가득한 지역에 대해 어떻게든 더 많이 알았다면, 실제 경험을 더 많이 하고 비슷한 부류와 더 많이 교류하며 다양한 인물을 알고 지냈다면 무슨일이 일어났을까?" _p.105_
"자, 클로이가 올리비아를 좋아하고 두 사람이 실험실을 같이 쓴다면, 메리 카마이클이 쓰는 법을 안다면, 그녀에게 자기만의 방이 있다면, 그녀에게 일 년에 오백 파운드라는 수입이 있다면, 그렇다면 제 생각에는 굉장히 중요한 일이 일어난 것입니다." _p.125_
이러한 모든 상황을 보았을 때 여성이 소설을 쓰기 위해서는 경제력이 있어야 하고 자기만의 방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하지만 맨 처음과 같이 말을 하는 이유는 여성들이 그 어렵고 힘든 시대로부터 많은 변화가 있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동시에 여러분에게 상기해 주고 싶은 사실이 있는데, 1866년 이래 영국에는 여자대학이 적어도 두 군데는 있지 않았나요? 1880년 이후에 기혼여성은 법적으로 재산을 소유할 수 있게 되었고, 1919년 즉 구 년 전에는 투표권을 얻지 않았나요? 또 십 년 가까운 지난 세월 동안 대부분의 직장이 여러분에게 열리지 않았던가요? 이 크나큰 특권과 여러분이 그것을 누려 온 시간과 지금 이 순간에도 이런저런 방식으로 일 년에 오백 파운드 이상 벌 수 있는 여성들이 이천 명 정도는 있을 거라는 사실을 곰곰이 생각해 보면, 기회나 교육, 용기, 여가, 돈이 부족하다는 변명은 더 이상 통하지 않는다는 점에 여러분도 동의할 것입니다." _p.166_
하지만 버지니아 울프가 우리 여성들에게 해 주고 싶은 말은 일침이 아니라 따뜻한 한 마디이다. 그녀는 우리의 마음 속에 있는 아직 살아있고 존재하는 시인을 끄집어 내었으면 간절히 바라고 있었다.
"나는 글 한 줄 쓰지 못하고 교차로에 묻힌 이 시인이 아직 살아 있다고 믿습니다. 이 시인은 여러분 속에, 내 속에, 그리고 설거지를 하고 아이들을 재우느라 오늘 밤 이 자리에 오지 못한 수많은 다른 여성들 속에 살 아 있습니다. 네, 그녀는 살아 있습니다. 위대한 시인은 죽지 않기 때문입니다. 그들은 계속 존재합니다. 그저 육체가 되어 직접 우리들 사이를 돌아다닐 기회가 필요할 뿐이지요. 내 생각에 여러분의 힘으로 그녀에게 그 기회를 줄 때가 다가오고 있습니다." _p.167_
우리가 삶을 주체적으로 살아가고 내면에 있는 우리를 끌어올릴 때가 온 것이다. 버지니아 울프로 인해서 나는 용기가 생겼고, 정말로 따뜻한 위로를 받았다.
*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지원받고 진지하게 읽은 후 작성한 지극히 주관적인 서평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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