푸른빛이 내리는 시간
브루나 단타스 로바토 지음, 김보람 옮김 / 다산책방 / 2026년 7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 부재와 그리움의 잔잔한 이야기 ] #광고

<푸른빛이 내리는 시간>

브루나 단타스 로바토 소설

김보람 옮김 | 다산북스


주위를 둘러보면 엄마와 딸의 관계는 애틋하기도 하고, 애증이기도 하고, 또 무심하기도 하다. 가족 구성원의 관계 중, 유독 엄마와 딸이 이렇게 다양한 모습으로 다가오는 건 내가 딸이어서 일지도.


<푸른빛이 내리는 시간>을 읽으며 엄마와 나는 언제부터 멀어졌는지를 생각해 보았다. 멀어졌다는 표현은 지금, 엄마와 내가 가까운 사이가 아니라는 걸 뜻하는 게 아니고, 그 어떤 시기 이전에는 엄마와 내가 상당히 가까운 사이였다는 걸 의미한다. 이 책의 딸과 어머니처럼 시시콜콜하게 대화하고 나누는 사이였다.


캠퍼스에 도착한 늦은 밤, 짐 가방을 질질 끌며 계단을 올랐다. 브라질에서 출발해 버몬트주의 외딴 마을에 도착하기까지 거의 서른 시간이 걸렸지만, 모든 게 새롭고 신기해서 잠을 잘 수가 없었다. _p.15_


소설의 시작이다. 딸은 엄마와 아주 멀리 떨어진 곳에서 새로운 생활을 시작한다.


느린 인터넷 연결을 뚫고 스카이프에 접속한 엄마가 어떻게 지내냐고 물었다. _p.18_


처음에는 매일, 학기가 시작하고 과제가 생긴 이후로는 일주일에 서너 번씩 통화를 하다가 점점 통화 횟수는 줄어든다. 어머니와 딸은 각자의 삶이 동일하게 반복된다고 생각해서 늘 똑같다는 이야기를 주고 받지만 서로의 삶이 궁금하고 새로운 무언가의 대화거리가 생기기를 바란다.


엄마와 통화한 지도 2주나 지나 있었다. 2주는 엄마 목소리를 못 듣고 보낸 가장 긴 시간이었다. 나를 '미냐 필랴 minha filha'라고, 내 딸, 사랑하는 우리딸 딸이라고 부르는 엄마의 목소리를 듣지 못한 가장 긴 시간이었다. _p.49_

이번 연휴는 엄마가 본인의 엄마 없이, 이제 딸도 없이 보내는 첫 명절이었다. 엄마를 옭아매는 사람도, 엄마에게 잔소리를 할 사람도 없으니, 엄마는 무엇이든 할 수 있고 어디에든 갈 수 있는 여자였다. 누구도 엄마를 돌보거나 지켜보지 않았고, 내 상황도 다르지 않았지만, 그건 자유롭다는 느낌과는 거리가 멀었다. _p.72-73_


소설은 "딸"의 이야기, "어머니"의 이야기를 거처 오랜 시간이 지난 후 "재회"에 이르기까지 차분하게 이야기를 이어간다. (차례 : 딸, 어머니, 재회 세 부분으로 이루어져 있다.) "딸"에서는 딸이 1인칭으로 '나'의 이야기를 이끌어 나가고, "어머니"와 "재회"에서는 3인칭으로 딸과 어머니의 이야기를 바라볼 수 있게 구성되어 있어서 가깝고 또 멀게, 내밀하게 또는 덤덤하게 소설에 빠져들 수 있어서 좋다. 어머니와 딸의 관계는 각자의 자리에서 술과 차를 한잔 하며 스카이프를 통해 친구처럼 또 다른 관계로도 발전하는데 떨어져 있음에 가능할 수도 있고, 나이가 들어가면서 경험할 수도 있는 관계의 변화가 아닌가싶어 더 따뜻해졌다.


소설에서 딸과 어머니는 늘 함께하던 사랑하는 이 없이 홀로 이루는 새롭게 변화된 삶을 이야기하고 있다. 어쩌면 너무 소소하고 평범하고 일상적으로 느껴질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그 안에서 각자가 느끼는 마음, 서로를 생각하는 마음, 표현하는 마음, 나타내고 싶어하는 마음 등을 책을 읽는 우리 독자들 만은 알 수 있어 그 모든 순간이 특별하게 다가온다.


'이곳에 너무 익숙해지지 않기, 너무 즐겁게 놀지 않기,' 나는 속으로 다짐했다. _p.91_ 딸_

내 미래도 이 나라에 있는 것 같은 느낌이 잠시 들었다. 그 순간만큼은 엄마도, 우리 모녀의 삶도 잊어 버렸고, 그랬다는 사실이 두려웠다. _p.117_ 딸_

딸은 기차를 타고 뉴욕에 가는 방법을, 엽서에 새가 그려진 우표를 붙여서 외국으로 보내는 방법을, 혼자 사는 방법을, 홀로 살아가는 방법을 알았다. 어머니는 늙고 지쳤으며, 자신에게 어머니가 되는 법을 가르쳐 줄 딸도 없이 홀로 앉아 있었다.

"제발." 엽서를 바라보며 하늘에 기도했다. "날 저기로 데려다주세요." _p.176_ 어머니_


정이현 소설가는 <푸른빛이 내리는 시간>을 읽고 이렇게 얘기했다. "사랑하는 사람들은 언젠가 어떤 방식으로든 헤어져야 한다. 그렇다면 누군가를 진심으로 사랑하는 것은 어쩌면 그의 곁에 머무는 일만이 아니라 그가 없는 세계를 단단하고 묵묵하게 살아내는 일을 포함하는 지도 모른다. 사랑은 사라지지 않는다."


사랑하는 이들과 멀리 떨어져, 헤어짐을 경험하는 사람들에게 이 책은 위로를 줄 것이다. 서로에게 애틋한 마음을 가진 세상 어머니와 딸들에게 따뜻하고 안타까운 마음을 가져다 줄 것이다. 요즘 마음이 조금 건조해 지고 있다는 생각이 드는 이들에게도 일독을 권한다.


덧,

<푸른빛이 내리는 시간> 제목에서 '푸른빛'을 '푸른 빛'으로 띄어쓰지 않고, 붙여서 번역하여 나는 이 단어가 더 좋아졌다. (영어 제목에는 Blue Light로 쓰여 있다.)


* 좋은 소설을 보내주신 다산 책방, 이키다 고맙습니다 :)


#푸른빛이내리는시간 #브루나단타스로바토 #BLUELIGHTHOURS #BLUNADANTASLOBATO #어머니와딸 #헤어짐 #유학 #이방인 #언어 #사랑 #변화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