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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쩌다 노산
김하율 지음 / 은행나무 / 2024년 4월
평점 :
[ 세상 모든 엄마, 다 멋쪄 ]
<어쩌다 노산>
김하율 장편소설 | 은행나무
이 책을 읽은 몇 주 전만 해도 내가 아끼는 사람들의 뱃속에는 생명체가 들어있었다. 한 생명체는 드디어 세상으로 나왔고 나머지는 아직이다. 힘들게 건 예상치 못한 순간에 건 딱 맞춤이었던 건 간에 이렇게 주위에 예비 엄마들이 있다는 건 특별한 경험이다. 좋을 일이 별로 없는 세상에서 기쁜 소식을 전하는 이의 환한 얼굴을 보는 따뜻함이란! 자주 보거나 연락을 하고 지내는 건 아니었지만 종종 얼굴을 보고 연락을 할 때면 이들이 느끼는 새로운 감각들이 나에게까지 전달되었다.
"선생님, 이런 세상에서 아이를 낳는 건 잘하는 행동일까요?"
의자에서 내려오며 내가 물었다. 심 박사는 자리에 앉으며 말했다.
"그럼요. 어떠한 상황에서도요." _p.56_ 가을_
다들 만삭이 되어 출산이 코앞에 다가오자 왠지 나까지 떨리는 기분이 들었고, 나 나름의 준비로 책을 읽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때 떠오른 책이 김하율 작가님의 <어쩌다 노산>이다. 수림문학상 수상 작품인 <이 별이 마음에 들어>가 좋아서 두 번이나 그믐 모임에 참여를 했었고, 작가님의 얘기도 많이 들었는데, 난 왜 이 책이 에세이라고 생각했을까. 그래서 잠시 보류, 하면서 지금에 이르렀다. 심지어 최근에 나온 앤솔러지 <처음이라는 도파민>도 읽었는데 말이지.
삼십 대 중반만 되어도 노산이라고 한다. 결혼이 늦어지고 있고 비혼도 많은 세상에서 어쩌면 거의가 다 노산이 될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작가님의 표현에 따르면, 고령의 산모와 고오령의 산모. 노산과 노오산. 모두가 노산은 아니지만 임신과 출산과 육아라는 경험에 있어서 공감대가 생기며 위로가 되고 즐거움이 되면 좋겠다는 생각에 출산 전 선물로 주고 싶었다. 그런데, 다 읽고 나니.. 음.. 출산 전보다는 후에 읽으면서 이럴 때도 있었지, 그래도 잘 지났다, 생각하며 공감하는 게 더 나을 것 같다. 한 친구에게 이 얘기를 했더니 요즘은 글자가 눈에 들어오지도 않는다면서 선물 줘도 못 읽겠단다. 머리 빠질 걱정이 제일 된다는 얘기도 덧붙임.
장례가 끝난 지 일주일이 지난 후였다. 유화의 혼잣말 같았던 질문이 떠올랐다. 엄마의 마음은 뭐였을까.
엄마인 나는 알 것도 같았다. 설레면서도 수고로운 그 마음을. _p.199_ 다시, 봄_
김하율 작가님이 떠오르는 소설이다. 오토픽션이니까 당연하기는 한데 정말 재미있다. 임신과 출산을 경험해보지는 않았으니 간접적으로 아는 것만으로도, 으아, 정말 쉬운 게 아니네. 집안 사정으로 나도 둥이 조카들 육아를 함께 했으니 공감대 뿜뿜. 하지만 몰랐던 것도 흥미로운 점도 많았다.
더 좋았던 건, 작가이자 엄마로서의 인물만을 다루는 게 아니고 친구, 인간관계, 우리들의 엄마와 돌봄, 그 노동, 삶과 죽음, 그리고 사랑에 이르기까지 툭 툭 툭 짧고 굵게 던져주는 지점이 많았다는 거. 또 작가님의 상상력이 뻗어나가는 걸 보면 천상 이야기꾼이더라는 거.
"나는 그냥 조라는 사람을 사랑하는 거야. 조가 여성이어서가 아니라 그냥 조를 사랑하는 거라고." _p.117_ 겨울_
"엄마도 돌봄이 필요해요." _p.160_ 봄_
덧,
1. 표지의 일러스트가 마음에 든다.
2. 차례가 여름 / 가을 / 겨울 / 봄 / 다시, 봄 으로 이루어져 있다.
3. 각 계절 시작의 일러스트는 표지의 부분 부분과 보이지 않는 부분까지의 그림이다. 요런 디테일, 세세한 부분 넘 좋음!!
4. 뒤표지에는 정아은 작가님의 추천사가 적혀있다.
- 누군가의 부모인 이들, 늦은 나이에 부모가 되기를 계획하고 있는 이들, 부모가 될 계획이 없더라도 '우연'에 의해 완전히 다른 방향으로 흘러가기 마련인 인간의 '생'을 관조해보고 싶은 독자라면 누구나 이 경쾌한 소설에 빛의 속도로 빠져들게 될 것이다.
- 따뜻했던 그리고 맑은 에너지가 느껴지던 작가님이 그리워졌던 순간... 아직도 믿기지 않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