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고 온 여름 소설Q
성해나 지음 / 창비 / 2023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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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Q]


<두고 온 여름>


성해나 소설 | 창비



5월에 읽은 소설집 <빛을 걷으면 빛>에서 몇몇 작품이 인상적이어서, 성해나 작가님에 대한 궁금증이 일었다. 제목에 여름이 들어있고, 마침 여름이기도 하니. 너무 덥기는 하지만 나의 지난 여름에는 어떤 일이 있었을까 돌아볼 수도 있을 것 같은 생각으로 펼치게 되었다.


기하와 재하의 이야기가 담긴 연작 소설이다.


기하
열아홉살이 되었던 그해, 재하 모자가 집에 들어오면서부터 겪게 되는 기하의 마음이 담긴, 기하의 시선으로 쓰여진 이야기. 사진으로만 보던 어머니와 닮은 재하 어머니. 아버지와 둘만의 생활이 익숙해서였을까, 기하는 재하도 재하 어머니도 받아들이지 못한다. 어쩌면 변한 듯한 아버지에게 적응이 되지 않았을지도 모르겠다.


- 사진사였던 아버지는 여름마다 내 사진을 찍어 사진관 쇼윈도에 걸어두었다. 그건 아버지에겐 일종의 연례행사와 같아 나는 한해도 빠짐없이 카메라 앞에 서야 했다. _p.8_


재하
편지를 쓰는 듯, 누군가에게 속 마음을 이야기하는 듯, 덤덤하게 서술되는 재하의 이야기. 새아버지에 대한 회상과 형 기하, 그리고 어머니를 바라보는 재하의 시선. 아토피로 힘들었던 어린 시절, 도움을 받고 싶고 의지하고 싶었지만 속으로만 담아 두었던 그 마음들. 기하의 생각과는 달랐던 중국냉면의 기억.


- 사진첩을 덮습니다. 옷장 깊숙이 그것을 감추려다 원래 놓여 있던 자리에 그대로 올려둡니다. 언젠가 또 우리는 그것을 펼치겠지요. 우리 삶에서 가장 돌아가고 싶은 한 순간을 그리면서요. 잘 지내시냐, 건강하시냐, 이제는 만날 수 없는 이들에게 닿지 못할 안부 인사를 보내며 말입니다. _p.89_


기하
기하가 군대에 있을 때 아버지가 새어머니와 헤어진 이후로 시간이 많이 흘렀다. 서른일곱살 되던 해, 스트리트 뷰를 통해서 우연히 발견한 재하 모자. 기하는 재하를 찾아가고 그동안 재하가 알지 못했던 이야기를 듣기도 한다. 기하는 무엇을 바랬던 걸까. 재하가 보여주고 싶지 않았을 모습을 보았지만 자신의 모습은 결국 보여주지 못하고 말았던, 형제 비슷한 재하와 기하. 어쩌면 유일한 가족 나들이였던 인릉을 둘은 다시 찾게된다.


- 재하와 다시 만날 수 있을까. 그때 우리는 서로를 어떻게 부르고 또 어떤 말을 나누게 될까.
창밖을 보았다. 버스는 탄천교를 들어서고 있었다. 아무것도 두고 온 게 없는데 무언가 잃어버린 듯한 기분이 들었다.
능에서 서서히 멀어지고 있었다. _p.132_


재하
고베에 정착하고 여섯달이 지나 기하에게 보내는 편지. 기하에게 가 닿을 수 없는 편지. 기하에게 솔직하게 고백하는 재하의 마음이 고스란히 담겨있다.


- 누구든 그곳에서는 더이상 슬프지 않기를 바라며 오오누키 씨에게 편지를 건넸습니다. 미처 못다 한 말이 봉해진 편지를요. _p.143_


아버지는 요양원에 계시고 새어머니는 돌아가셨는데 기하는 재하에게 끝까지 마음을 열지 못하는 것 같다. 어쩌면 형제 비슷한 관계가 아니라 서로 믿고 의지할 수 있는 형제 사이가 될 수도 있었을 텐데 너무 안타깝다. 지나간 시간을 통해 우리는 각자 다른 기억을 가지게 된다. 시간은 그렇게 흘러가서 다르게 생각하게 만들기도 하고 틀리게 기억하게 만들기도 한다. 우리 뇌가 작용하는 방식일 수도 있겠지만 사람이라는 개체는 어찌되었든 자신을 위주로 세상을 돌아가게 만들기 때문이지 않을까.


재하 어머니의 시선과 기하 아버지의 시선도 궁금하다. 그들의 마음을 조금이나마 느낄수있어서 가슴아팠는데, 내면 깊은 곳으로 더 들어가보고싶은 내 욕심.


시간이 지나고 2023년 이 여름을 나는 어떻게 기억하게 될지...



* 소설 뒤에 부록처럼 있던 '성해나 X 김유나 인터뷰'를 통해서 작가님께 조금 더 가까이 다가갈 수 있어서 좋더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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