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의 한 조각
크리스티나 베이커 클라인 지음, 이은선 옮김 / 문학동네 / 2021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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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의 한 조각>



크리스티나 베이커 클라인 장편소설

이은선 옮김 | 문학동네



❔ 내가 존재하고 살아가고 있는 세상은 이 곳, 단 하나인데 그 세상의 한 조각이라고 하면 어떤 부분을 나타내는 것일까?

❕ 어쩌면 수많은 '나'들의 '각자'라는 '조각'들이 모여서 '하나의 세계'를 이루고 있는 것일지도 모르겠다.


✍ 앤드루 와이어스의 작품

"크리스티나의 세계"를 처음 보았을 때, 제목 속 그 세계는 과연 어떤 것을 의미하는지가 궁금했다. 여인이 있는 이 황량한 벌판인가, 바퀴 자국이 나 있는 큰 집으로 통하는 길인가, 아니면 그 옆에 있는 작은 단층짜리 집인 것인가, 그것도 아니라면 아주 얇게 나와있는 저 뿌연 하늘인 것일까.


❔ 한 가지 더, 뒷 모습을 보이고 있는 이 여인이 크리스티나가 맞을까 궁금하기도 했다. 이 여인은 어떤 세계인지는 잘 모르겠지만 누구인지도 잘 모르겠지만 아무튼 '크리스티나의 세계'에 들어가 있는 것일지도 모르겠다는 생각도 했다. 이 여인에게는 어떤 사연이 있을까, 왜 이런 모습으로 이곳에 앉아 있는가, 절망의 뒷 모습인가, 욕망의 뒷 모습인가, 보이지 않는 그녀의 표정은 어떨까, 모든 것들이 나의 호기심을 불러 일으키기에 충분했다. 그리고 그녀의 팔은 너무나도 가늘었고 심지어 땅의 흙을 움켜쥐고 있는 것 같아 보였다.


❕ 그래서 <세상의 한 조각> 이 책을 알게 되었을 때, '오! 역시 이 모든 궁금증은 나한테만 일어난게 아니었구나!'싶어서 반갑기도 했고, 작가의 이름이 크리스티나여서 혹시, 이 크리스티나가 저 크리스티나인가 의아해하며 작품의 년도를 찾아보기도 했다.


ℹ <세상의 한 조각>은 철저한 사전조사를 통해서 대부분의 실존 인물과 실제 장소를 배경으로 쓰여진 소설이다. 하지만 크리스티나 올슨의 자서전이 아닌 허구의 소설. 나의 궁금증은 작가에 의해서 풀렸다. 작가의 허구에 의해서 대부분을 상상할 수 있었다고 표현해야 옳을 것 이다.


✍ 책을 읽으면서, 크리스티나 올슨의 삶을 통해서 내가 지금 존재하는 세상과 타인과 함께 하는 삶에 대한 생각도 곰곰이 해 볼 수 있었다. 나는 내 삶을 어떻게 살아가고 있는가.


"모르겠다 정말 모르겠어. 하지만 이것만큼은 진실이란다, 크리스티나. 사랑을 하고 사랑을 받는 방식에는 여러 종류가 있다는 거. 너희 아빠가 무슨 이유에서 이 집을 찾아왔는지 몰라도 이제는 여기가 그의 삶의 터전이지." _p.55_


"성격이 우리의 선택을 좌우하는 걸까, 아니면 우리 힘으로는 어쩔 도리가 없는 상황 때문에 이런 생활방식을 선택하게 되는 걸까? 어쩌면 이 둘은 한데 뒤엉킨 바위 위의 해초처럼 뿌리부터 하나로 연결된 거라 서로 분리할 수 없는지도 모른다." _p.298_


ℹ 작가 노트에는 와이어스가 삼십 년 가까이 자신의 뮤즈이자 영감이었던 크리스티나에 대해서 한 말들이 나온다.


"내 호기심을 자극한 부분은 그녀가 엉뚱한 곳, 엉뚱한 시점에 등장한다는 거였어요. (...) 크리스티나와 함께 있으면 많은 일이 벌어졌어요. (...) 그 인물의 외로움이 느껴졌어요. 내가 어렸을 때 느꼈던 것과 같은 감정일지 모르죠. 그건 그녀의 경험인 만큼 나의 경험이기도 했어요." _p.371-372_


✍ 와이어스는 크리스티나를 통해서 자기 자신을 보았던 것 같다. 그리고 그 세계를 표현해 주고 싶었던 것 같다.


"정신적으로 굴복하기를 거부하면 몸이 거기에 맞춰 적응하잖아요. ... 아주머니는 저랑 비슷하세요. 적응하며 지내고 계세요. 그래서 존경스러워요." _p.73-74_


📖

<세상의 한 조각>은 이제는 거동을 거의 할 수 없는 46세 크리스티나 올슨의 집에 17살이 된 벳시가 22살의 와이어스를 대려와서 이들이 처음 만나는 것부터 이야기가 시작된다. 그리고 크리스티나의 과거로 거슬러 올라가 어린시절부터 차근히 지금의 이야기와 번갈아 가면서 서술된다. 그녀의 삶은 평범하며 단조로운 것 같지만 그렇게 쉽지는 않고, 와이어스의 표현대로 많은 일들이 벌어진다.


책은 처음부터 끝까지 현재형으로 서술된다. 이것이 특이하게 느껴졌고 원서를 직접 읽어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과거도 현재도 다 지금처럼, 지금의 미래형처럼 이야기가 되어서 더 생동감이 넘치는 것 같다.


무엇보다도 크리스티나, 그녀는 상당히 인간적이다. 그 완벽하지 않은 모습이 나의 삶을 되돌아보게 해 주었고, 앞으로의 삶에 대해서도 어떻게 살아가는 것이 좋을지 고민하게 해 주었다.


"그럼에도 나에게는 그가 짜증나리만치 단순하게 느껴진다. 내가 평소에는 감탄했던 부분들이 지금은 못난 부분처럼 느껴진다. 그의 충실함은 미지의 세계에 대한 두려움에 다름 아니고, 예의가 바른 건 그냥 순진한 거고, 도덕관념은 고지식한 잣대질인 것이다. (관점만 살짝 비틀면 사람들의 장점이 얼마나 금세 단점으로 전락하는지!)" _p.193_


"하지만 한 꺼플만 들춰보면 내 심장이 다 벗겨져 건드리면 아플 것처럼 느껴진다. 미소를 짓고 고개를 끄덕이고 감탄하지만, 속으로는 소리 없이 울부짖으며 유령처럼 하루하루를 표류한다." _p.256_


"나는 그런 그가 안쓰럽지만 이해한다. 한때 즐거움을 주었던 것들을 향해 계속 희망을 품는 건 괴로운 일이다. 잊어버릴 방법을 찾아야한다." _p.274_

📕


🍀 자신과 이름이 같은 미술 작품 속 여성의 삶에 호기심을 느껴 소설을 쓸 수 밖에 없었던 작가를 통해서 이렇게 '크리스티나의 세계'가 <세상의 한 조각>으로 태어났다. <세상의 한 조각>의 표지 속 여인은 '크리스티나의 세계'를 확대 시켜 놓은 듯한 느낌이지만, 바로 앞에 살짝 보여지는 하얗고 노란 꽃에서 느껴지듯이 따뜻하고 보다 더 희망적인 아름다움이 느껴진다.


✍ 이 책을 다 읽고 난 뒤에 다시 바라보는 '크리스티나의 세계'는 이 책 표지의 그 느낌과 정확히 일치하였다. 크리스티나의 삶이었던 이 곳이 세상의 한 부분에 불과하지만 그녀에게는 전부였다는 것도 깨닫게 되었다. 그리고 내 입가에는 슬며시 미소가 지어졌다.


"내 머릿속 저 깊은 곳에서 단어 하나가 떠오른다. 제유법. 전체를 상징하는 일부. 크리스티나의 세계. 사실 이곳은, 이 집과 이 들판과 이 하늘은 세상의 작은 일부분에 불과할지 모른다. 하지만 벳시의 말이 옳다. 이것은 내게 세상의 전부다." _p.362_


🍀 크리스티나, 당신의 삶에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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