줄레이하 눈을 뜨다 <5+5> 공동번역 출간 프로젝트 3
구젤 샤밀례브나 야히나 지음, 강동희 옮김 / 걷는사람 / 2020년 9월
평점 :
절판


줄레이하 눈을 뜨다

구젤 샤밀례브나 야히나 장편소설
강동희 옮김
걷는사람


줄레이하를 통해서 러시아 이주민들의 삶을 보았다.

러시아는 나에게 마음에서 상당히 먼 나라이다. 그렇게 크게 관심을 갖아본 적이 없어서 자료를 찾아보거나 여행을 가거나 해 본적이없다. 러시아 부농의 시베리아 강제 이주 사건도 역사상의 이론으로만 알고 있었다. 하지만 줄레이하가 자신의 삶을 이야기 해 주었다. 러시아 부농을 대표해서 시베리아 강제 이주의 상황을 자세히 알려주었다. 그래서 그들의 마음을 느낄 수 있었다. 그들의 상황을 알아차릴 수 있었다.



마흔 다섯 살의 무르타자는 열 다섯 살의 줄레이하를 집으로 데려와 십오 년 동안 결혼생활을 했다. 지독한 시어머니인 노파 우프리하를 모시며 살고 있다. 결혼 한 그 해에 시어머니는 빠르게 눈이 멀고 귀도 먹기 시작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줄레이하를 젖은 닭이라고 부르며 쉴새없이 괴롭힌다. 이제는 줄레이하도 자신이 젖은 닭이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무르타자를 좋은 남편이라고 생각한다. 예지몽을 자주 꾸는 우프리하가 어느날 꿈을 꾸었는데 줄레이하가 죽을거라고 한다.

문장이 살아 움직이듯 묘사가 굉장히 잘 되어있다. 눈 앞에 줄레이하와 가족들, 그리고 그들의 동네 율바시가 선명하게 그려지는 것 같은 느낌이다. 초반부에 나오는 줄레이하는 굉장히 귀엽고 톡톡튀는 이미지를 가지고 있다. 나에게는 이기적으로 느껴지는 남편인데도 좋게 생각을 하며 모든 것을 따르며 순종적이다. 숲의 정령에게 부탁을 하고 알라에게 의지하고 있다. 시어머니를 묘사하는 부분 또한 너무나도 귀엽다.

"꿈 이야기는 이와 비교도 안 된다. 못된 할망구는 저녁 내내 못살게 굴 것이다. 줄레이하가 꿈 이야기 듣는 것을 못 견딘다는 것을 알고 있다. 고문이나  마찬가지이다." _p.42_

붉은 칸국인들의 약탈이 다시 시작되었고, 무르타자는 그들에게 이번에는 아무것도 빼앗기지 않을 거라며 흥분을 한다. 빼앗기느니 차라리 가축들을 죽이겠다고까지 하는 제정신이 아닌 것 같아 보이는 남편의 행동으로 줄레이하는 죽음의 위험에까지 처하지만 그래도 무르타자가 좋은 남편이라고 생각한다. 다만 그를 안타깝게 생각할 뿐이다.

공산주의 국가에서 일어난 무자비한 약탈과 러시아의 과거 소비에트 정권에 대해서 조금씩 알아갈 수가있었다. 하지만 나에게는 국가적인 역사보다는 자꾸 줄레이하의 자그마한 체구가 눈에 밟혔다.

줄레이하는 혼자서 이주민의 대열에 합류하게 된다. 무르타자는 죽고 우프리하는 그렇게 바라던 아들과 둘이서만 남게된다. 오래 견디지는 못할 것이다. 그리고 농민들의 길고 긴 시베리아로의 강제 이주의 여정이 시작된다. 수도 카잔의 임시수용소에서는 의사 볼프 카를로비치 레이베와의 첫 만남이 이루어지고, 혹한의 추위 속에서 한 달을 보낸다. 그 후 이주민들을 꽉꽉 실은 수송 열차는 출발한다.  

수송열차의 감독자는 이그나토프다. 그는 당의 명령에 따라 가라는 곳까지 이주민들을 대리고 가고, 거기에서 대기하다가 또 다른 명령을 받으면 또다시 떠나고 대기하고를 반복한다. 이런 어렵고 긴 일정중에 이주민들은 탈주를 하기도 하고 죽어나가기도 한다. 하지만 이그나토프의 눈에는 그들의 얼굴이 자꾸 기억에 남는다.

이 수송열차 여덟 번째 칸에 있던, 탈주를 하고도 남은 인원들은 끝까지 함께한다. 무르타자의 아이를 임신한 것을 알게 된 줄레이하를 나름대로 챙겨주면서 지내는 모습을 보며 이곳에서도 봄이 찾아오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육 개월만에 시베리아에 도착을 한다. 하지만 바지선으로 강을 따라 이동을 하던 도중 배가 침몰하여 임신을 한 줄레이하를 제외한 모든 이주민들이 강에서 죽음을 맞이한다. 자리가 부족하여 탈 수 없었던 노인들과 힘없는 이들과 그들을 관리하라고 보낸 코렐로프만이 소형 발동선을 탔기에 그들만 살아남는다. 그리고 이그나토프를 감독관으로 한 이 서른 명은 버림을 받는다. 곧 돌아오겠다고 했지만 언제 돌아올지 모른다.

아무것도 없는 곳에서 줄레이하는 유주프를 낳았고 이제 서른 한 명이 된 이들은 혹독한 겨울을 버티며 살아남는다.

정말 잘 버텼다. 아무리 이그나토프가 그들을 혹독하게 부렸다고는 하지만 그가 없었다면 이들은 이 겨울에 살아남기 힘들었을 것이다. 서로를 도우면서 이들은 살아남았다. 앞으로 이들에게 빛이 있으면 좋겠지만 이들은 이주민이다.

드디어 다른 이주민들이 왔다. 그리고 이들은 감시병들과 감독자 이그나토프의 지휘 아래 새로운 수용소에서 생활을 하며 마을을 건설한다. 시간을 흐르고 유주프도 8살이된다. 이렇게 만들어진 마을이 감격스럽기까지 했다. 이주민들은 아직도 고된 일상을 보내고 있지만 그래도 그들은 마을을 이루며 살고 있다.

이렇게 버티는 삶을 살아가면서 변화된 줄레이하의 모습을 볼 수 있다. 아들만을 바라보며 버티며 살아왔다. 그녀는 내가 귀엽게만 바라보았던 남편에게만 의지했던 서른 살의 그녀가 더 이상은 아니다. 홀로 스스로 일어났고 스스로를 지켰으며 아들을 지키며 살아가고 있다. 사냥으로 자기 몫을 하고 의무실에서도 그녀의 몫을 다 해내고 있다. 아들의 몫까지도 열심히 살아가는 그녀의 모습이 아름답다. 그리고 더 강인한 모습이 보인다. 하지만 그런 강인함 속에서도 이전 그녀의 내면속에 있는 순수함은 더욱 빛이 나고 있는 것 같아서 다행이고 고맙기까지하다. 초반에 나왔던 우프리하의 예지몽은 과거의 줄레이하가 죽고 새로운 삶을 살아가는 것을 의미했을 것임을 알게 됐다.

"그녀는 의무실의 좁은 숙소에서 거주하며 피가 섞이지 않은 사람들 틈에서 생활을 하고, 외국어로 대화를 하며, 사내들처럼 사냥을 하고, 세 사람의 몫을 해내고 있다. 이 모든 것이 그녀는 맘에 들었다. 행복이라고 말할 수는 없었지만 좋았다." _p.540-541_

얼마전까지만 해도 러시아의 작가도 러시아의 문학도 나에게는 익숙하지 않았다. 하지만 한러수교 30주년을 맞이하여 한.러 <5+5> 공동번역 출간 시리즈를 읽기 시작하면서 점점 가까워지고 있다. 톨스토이 문학상을 수상했다는 이 작품 '줄레이하 눈을 뜨다'를 통해서 이 작가에게도 관심이 생겼다. 이렇게 담담하면서도 아름답게 러시아 이주민들의 삶을 조명할 수 있다는 것에 놀랐다. 앞으로도 기대가 많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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