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리아 칼라스 - 내밀한 열정의 고백 삶과 전설 6
앤 에드워드 지음, 김선형 옮김 / 해냄 / 2005년 12월
평점 :
품절


마리아 칼라스 -내밀한 열정의 고백-

 

위대한 작품을 대함에 있어 작품이 가진 아우라가 크면 클수록 보는이는 위축되고 만다. 작품의 본질적인 매력이 아닌 명성과 가격에 놀라 감탄을 하고야 마는 경우가 허다하다. 특히나 그 작품이 오랫동안 사랑받았던 [고전]이라는 딱지를 붙이고 있다면 대다수의 사람들은 깊이 음미할 새도 없이 번쩍거리는 포장만 보고 정신을 잃는다. 소수의 사람들만이 이해하고 받아들이는 가치가 있는 것이라 멋대로 정의한 채 의례적인 탄사를 내뱉고 집으로 돌아와 익숙한 대중가요와 티비 프로그램들 사이에서 편안함을 느낀다. 과연 그럴까?

 

우리시대 고전이 되어버린 모든 음악과 그림들 역시 당시의 대중을 열광케한 힘을 가지고 있었다. 영혼을 울리는 특별함은 쉽사리 퇴색되지 않는다. 오래된 것들이 오래토록 사랑받는데에는 합당한 이유가 있다. 비록 달라진 시대적 상황과 관념들에 의해 작품의 위대함이 살짝 감춰졌을지라도 보고자 하는 이들의 눈에는 여전히 위압적이고 아름답다. 우리시대의 매체와 고전은 다수를 감동시키기 위해 태어났다는 점에서 동일한 출생의 이유를 갖고 있다. 뭐가 다른가? 오래되었단 이유만으로 주춤거릴 필요가 전혀 없다. 걱정과 근심은 위대한 작품들을 감상하는데 하등 도움이 되지 않는다. 그렇다면 대체 뭐가 필요하단 말인가?

 

마음을 여는 것만으로는 이해할수 없다. 현시대의 기준에 길들여진 우리의 눈과 귀에 고전은 난해하고 때로는 기묘할 따름이다. 여전히 어렵고 뜬구름마냥 막연하기만 하다. 세월이 지나도 변하지 않는다던 매력은 다 어디로 사라져버린걸까? 마음을 사로잡는 천재성은? 번득이는 착상은? 과거 그들을 감동시킨 샘은 말라버린 것이까? 그렇지 않다. 뒤로 물러났을 뿐이다. 고전을 이해하고 즐기기 위해서는 약간의 사전지식이 필요하다. 작품이 태어났던 당시의 시대적 배경과 예술가에게 영감을 불어넣어 준 사건들을 소스처럼 곁들여야 비로소 진정한 맛이 우러난다. 이러한 절차마저도 번거롭다는 사람은, 그래 괜찮다. 현시대인들을 위해 쏟아지는 매체들 역시 훌륭하다. 그것들만으로도 우리는 충분히 행복할 수 있다. 그러나 이것 하나만은 기억하기 바란다. 지금을 살고 명멸하는 무수히 많은 작품들 가운데 몇십년, 몇백년 후의 사람들에게까지 영감을 주는 작품이 몇이나 될까. 우리 가운데 그러한 가능성을 점칠 수 있는 사람은 또 얼마나 될까. 인간은 단 몇초 후의 세상도 예상할 수 없다. 우리에게 확실한 것은 이미 지나간 과거의 것들 뿐이다. 고전이라는 딱지를 붙이고 이미 질긴 생명력을 증명한 작품들은 앞으로도 많은 이들의 사랑을 받을 것이다.

 

여기 위대한 예술가가 있다. 화가는 붓을 놀려 작품을 낳았고 작곡가는 악보에 혼을 싫었지만 연주자와 가수들은 그럴수가 없었다. 그런면에서 레코드가 등장한 이후를 살았던 마리아 칼라스는 운이 좋은 편이다. 비록 그녀의 오페라가 영상으로 남진 못했지만 몇장의 사진과 목소리를 녹음한 음반은 남았다. 작가들 역시 직접 보고 듣지 못할 후세 사람들을 위해 그녀의 천재성과 위대함을 글로 남기기 위해 노력했다. 반편뿐인 찬사일지라도 사람들을 매료시킨 디바의 명성은 이어지고 있다.

 

오페라는 무척이나 총괄적인 매체다. 오페라 가운데는 스토리가 있다. 삶과 죽음, 사랑과 분노, 인간의 본성과 이성을 아우르는 오페라의 레퍼토리들은 시대를 막론하고 작가들을 매료시키는 단골소재이다. 오페라에는 음악이 있다. 위대한 음악가들은 스토리와 만나 더욱 공고해지는 극적인 작곡을 마다하지 않았다. 지휘봉을 통해 언제고 다시 재현되는 오케스트라의 울림을 말이다. 그리고 오페라에는 디바가 있다. 스토리와 음악을 온몸으로 표현하고 전해야 하는 가장 빛나는 존재, 역설적이게도 오페라의 가장 강력한 무기인 인간의 목소리는 디바의 죽음과 함께 사그라들고야 만다. 오페라가 탄생한 이후로 얼마나 강력하고 화려한 디바들이 있어왔는지 우리는 알지 못한다. 다른 예술가들과는 달리 손과 목으로 감동을 전하고자 했던 연주자들과 가수들은 전해지지 않았다. 그들의 진가는 당시를 살았던 사람들만의 것이었다. 운 좋게 앨범 몇장과 드라마틱하게 아름다운 미모를 사진으로 남길 수 있었던 마리아 칼라스 역시 마찬가지다. 극에 대한 그녀의 깊은 이해를 극한으로 끌어올리는 표정과 제스쳐, 온 몸을 관통하는 그녀의 목소리는 죽음과 함께 사라졌다. 단지 전설적인 디바에 대한 찬사만이 남았을 뿐이다.

 

마리아 칼라스 평전은 쪼가리에 불과하다. 여타의 천재들과 마찬가지로 순탄치 못한 삶을 살았던 그녀, 타고난 재능을 날카롭게 벼린 고난에 대한 서사시를 읇? 결여된 애정을 예술로 승화시켜야만 했던 소녀, 무대위에서만 진정한 충일감을 얻을 수 있었던 여인, 천재들의 삶은 늘 그렇듯 지독히도 잔인하다. 저자는 고통으로 얼룩진 칼라스의 삶을 구구절절 늘어 놓으며 그녀에게 찬사를 보낸다. 어쩐지 다시는 들을 수 없는 그녀의 목소리에 대한 애도의 글처럼 느껴진다. 평전을 읽고 마리아 칼라스의 삶과 열정을 이해했지만(이해했다고 착각했을 따름일지라도) 어디에서도 그녀의 오페라는 볼 수가 없다. 칼라스는 말 그대로 전설이 되어버렸다. 때로 지나간 것들은 닿지 않기에 더욱 아름답게 추억되곤 한다. 지금의 나로써는 저자가 늘어놓는 찬사들이 미화된 애도의 마음인지 알 길이 없다. 또한 지나치게 스캔들 위주로 점철된 이 평전을 백펴센트 신용할 수도 없다. 칼라스의 극과 음악에 대한 성찰보다는 그녀의 불안정한 가정사와 애증에만 촛점을 맞추고 있으니 말이다.

 

다만 확실한 것은 마리아 칼라스의 죽음 후에도 공고한 그녀의 위명과 범인의 잣대로는 잴 수 없는 예술가의 치명적인 삶 뿐이다. 분명 불꽃처럼 매력적인 여인임에 틀림없다. 나에게 마리아 칼라스는 유명세를 치른 오페라 여가수에 불과했다. 지나치게 으르렁거리는 소리를 내며 고음으로 아리아를 부르는 소프라노 여가수, 클래식이나 오페라에 대한 깊은 이해가 없는 내 귀에는 그저 부드럽게 이어지는 기교로 점철된 예쁘장한 아리아가 달았다. 마리아 칼라스가 유명하단 사실은 익히 들어 알고 있었지만 어딘가 거칠고 과장된 그녀의 목소리는 추상화가의 그림처럼 머나먼 이야기었다. 나는 마리아 칼라스의 목소리를 즐길 준비가 되어있지 않았던 것이다. 고전이 갖는 아우라에 지레 포기하는 사람들처럼..

 

마리아 칼라스의 평전을 읽음으로 그녀에게 한발자국 다가갈 수 있었다. 지금 칼라스의 아리아를 듣는다면 그녀의 목소리만이 갖는 풍부한 질감을 어느정도는 느낄 수 있을 것이다. 그녀가 부른 아리아들이 갖는 스토리를 알고나면 더욱 즐거우리라. 오페라를 작곡한 작곡가들의 삶과 시대적 배경을 이해한다면 더욱 완벽히 극에 몰입할 수 있을 것이다. 결국 고전을 이해함에 있어 '아는만큼 보인다'처럼 좋은 명언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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