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보상자의 역습 - 대중문화가 어떻게 우리를 더 똑똑하게 만들었나?
스티븐 존슨 지음, 윤명지.김영상 옮김 / 비즈앤비즈 / 2006년 9월
평점 :
품절


바보상자의 역습.

 

이 저돌적인 제목 뒤에는 어떤 글이 숨어 있을까?
아무리 내가 잘못된 지식을 잔뜩 싸 안고 세상을 살아 간다지만, 그렇기에 역발상에 귀를 기울이기 위해 노력한다지만, 이건 좀 심하지 않는가. 바보상자라고 알고 있던 티비의 역습이라니. 부제는 더더욱 가관이다. '대중문화가 어떻게 우리를 더 똑똑하게 만들었나?' 란다. 기가 막히는 소리지만 사실 날때부터 컬러 텔레비전을 끼고 살아온 나로서는 마지못해 고개를 끄덕여 줘야 하는 부분이다. 적어도 하루 두세시간 이상씩을 꼬박꼬박 티비에 헌납해 왔다. 절대 티비에서 쏟아지는 것들이 질 좋은 정보라고는 못하겠지만(때때로 고급이 될때는 많다. 깊이가 부족해서 그렇지.) 그로인해 생활에 필요한 일상적인 정보들을 얻어 온 것은 사실이다. 요즘에 와서는 프로그램의 영역이 넓어지고 케이블이 보편화 되면서 티비가 부쩍 똑똑해졌다는 느낌이 들기도 한다. 추상적으로는 느껴지지만 구체적으로 설명하라면 꽉 막혀 버리는 기분.

 

이 책이 이 모호한 기분을 명쾌하게 설명해 줄 수 있을까?

 

결론부터 말하자면? 만족스럽다. 책의 저자 스티븐 존슨은 나의 기대보다 훨씬 명료하고 설득력 있는 주장을 하고 있다. 바보상자=텔레비전 이라는 공식을 넘어 티비 이후에 등장해온 대중문화(영화, 비디오 게임, 인터넷) 전반에 걸친 저자의 깊은 이해가 담겨 있다. 정말 뭔가 하나 잘 배워 간다는 만족감을 주는 책이다. 무엇보다 논제를 이끌어가는 페이스가 안정적이고, 다양한 에피소드들이 들어 있어 책을 읽는데 어려움이 없다. 잘 정돈되지 않아 난독의 어려움을 겪게 하는 책들을 만날때면 자꾸만 흐름이 끓겨 덮어 놓다가 결국 포기하고 마는 경우가 많다. 그런 이유로 특히 비문학에 약한 나에게 스티븐 존슨의 책은 입에 착착 달라붙는 감칠맛을 느끼게 해주었다. 몰입이 돈으로 이어지는 대중문화에 대해 논하는 사람이다 보니 그런 방면으로도 도가 튼 모양이다. 자꾸 칭찬만 늘어 놓아 미안하지만 사실이 그렇다. 텔레비전이 생긴 당시부터 당연스럽게 사람을 조급하고, 멍청하게 만든다 알고 있던 대중문화가 사실상 우리의 두뇌를 단련시켜 왔다는 어처구니 없는 주장을 하고 있다. 그리고 난 멋지게 설득당해 버렸다. 저자는 꼼꼼한 조사를 바탕으로 상대가 빠져나갈 틈 하나 없는 그물을 쳐버린다.

 

대중문화는 일정한 속도로 성장하고 있다. 점점 더 정교하고 치밀하게 변해간다.

 

그리고 그 속도는 갈수록 빨라지는 듯 하다. 특히 인터넷이 보급되면서, 누구나 아마추어 평론가나 학자가 되어 드라마나 롤플레잉 게임에 대해 평가하고 트릭을 풀어 자랑할 수 있게 되면서 더욱 급격해졌다. 지금 글을 쓰고 있는 나만 하더라도 아날로그 시대에는 직접 서점에 가서 페이지를 넘겨보는 수 밖에 없었던 책 고르기의 가능성을 넓히고 있다. 인터넷이라는 매체를 이용해서, 손쉽게 먼저 읽은 사람의 감상을 읽어 볼 수 있게 된 것이다. 이제 대중문화는 가볍게 폄하할 수 없을 만큼 똑똑해졌다. 갖가지 정보가 범람하는 이 시점에서는 사실을 인정하고 시대의 흐름을 정확히 꿰뚫어 볼 수 있는 눈이 필요하다. 다양한 가능성을 인정하는 넓은 시야를 갖는데 이 책이 일조할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문제는 남아있다.

 

책을 읽는 내내 마음을 찜찜하게 만든 무엇, 바보상자의 '역습' 이라는 제목의 바로 이 '역습' 마치 티비와 컴퓨터를 비롯한 각종 기기들이 인간의 역사와 함께한 아날로그적 문화를 잡아먹기라도 할 기세다. 로봇이 세상을 지배하게 되는 sf소설의 한 장면처럼 똑똑해진 대중문화 혁명이라도 일어난단 말인가? 각자의 장단점은 인정하지만 기술의 최첨단에 선 매체라 할지라도 삼백여페이지에 걸쳐 한가지 주제를 이야기하는 책의 진득함엔 비할 수가 없다. 다른 매체들로 인해 입지가 줄긴 했지만 책은 아직도 우리에게 가장 깊이 있는 전달수단으로 여겨지고 있다. 책만이 갖는 장점은 3D입체 영상으로 펼쳐지는 게임이나 블록버스터 영화로 도 표현 할 수 없다. 제 아무리 똑똑한 대중매체라 할지라도 책만은 대체할 수 없다는 믿음. 이 근거있는 믿음이 '역습'이란 단어에 불쾌감을 표하고 있었다.

 

우습게도 저자 스티븐 존슨은 제목 이후로 단 한번도 역습에 대해 이야기 하지 않는다. (그럴거면서 제목은 왜 저렇게 도발적으로 지었담?) 그는 어디까지나 조금씩 더 지적인 자극을 원하는 사람들의 욕구에 따라 상향 곡선을 그리며 똑똑해지고 있는(슬리프 커브) 대중매체에 대해 다루고 있지, 책을 비롯한 아날로그적 매체를 삼키고 당장이라도 지구정복이라도 할 기세의 대중매체를 논하고 있지 않다. 저자는 단지 우리가 편견에 사로잡혀 없수이 여기는 대중매체 역시 다양한 자극으로 우리의 뇌를 단련시키고 있으며, 계속 진화 함으로 그 정도를 더 하고 있다고 말할 뿐이다. 새로이 등장한 대중매체들이 독서, 만남, 대화, 마음을 전하는 포옹, 미소, 친절 등의 미덕을 대체 할 수 있단 터무니 없는 주장 따윈 하지 않는다. 무엇보다도 다른 매체가 아닌 책을 통해 자신의 주장을 펼침으로 아날로그적 매체의 중요성을 강조한다.

 

그가 하고 있는 얘기는 대중매체의 역습이 아닌, 대중매체의 진화이다. 충분히 공감할 수 있지 않은가?
영화들은, 드라마들은, 게임들은, 점점 더 똑똑해지고 있다. 우리 역시 다양한 자극으로 인해 (일부 측면에서만) 더 똑똑해지고 있다. 비록 대중매체가 우리에게 경험에서 우러나오는 지혜와 사랑은 가르쳐 줄 수 없을 지라도, 트릭을 풀어내고 문제를 빠르게 인지하는 능력 같은 부분은 충분히 가르칠 수 있다. 갈수록 진화하는 대중매체를 바르게 파악하고 활용하기 위해서는 바로 지금이 하나의 편견을 깨야 할 시점이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