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쿠다 히데오 지음, 임희선 옮김 / 북스토리 / 2006년 9월
평점 :
구판절판


의식하고 있진 않지만 사람들은 꽤 복잡하게 사고하고 있다.
구물구물 몰려있는 사람들은 모두 촘촘한 거미줄처럼 인연의 끈을 달고 있고 그 사이에서 벌어지는 사건들은 치밀하게 짜여진 인과관계에 묶여있다. 대다수의 사람들은 단지 물 위를 헤엄치며 수면 위로 떠오른 것들만으로 만족하고 산다. 아래까지 돌아볼 여유가 어딨느냐 핑계를 대더라도 사실 이유는 하나다. 관심이 없는 것이다. 물 아래는 잔잔하고 들어난 상황은 지독하게 치열하다. 치열한 생활에 매달려 관념적인 문제는 서랍안에 넣어버린다. 그런 와중에 세상에는 간혹 괴짜들이 태어난다. 한걸음 물러나 거미줄의 일부를 들여다보고 곰곰히 생각해 그럴듯한 이유를 붙이는 괴짜 말이다.
그런 괴짜들은 다양한 직업을 가졌지만 그 중 가장 대중적인 직업이 작가라는 사실은 그야말로 당연, 당연하다.

 

내가 살고 있는 나라는 일본과 닮은점이 많다. 그 섬에서 유행했던 것들은 바다를 건너 곧 여기서도 유행을 하고, 그 땅에서 일어난 경제적 용틀임도 비슷하게 답습해졌다. 더불어 그곳에 살고 있는 사람들이 겪는 개인적인 문제들도 사회라는 큰 틀을 따라 흘러들어왔다. 부인할 수 없게도 사람 사는 모양은 어디나 비슷한 모양이다.


무수히 많은 문제들 중에 오쿠다 히데오는 직장생활이 자연스럽게 되어버린 시대를 살고 있는 여성들을 관찰했다. 걸과 노처녀, 독신과 결혼, 맞벌이와 전업주부, 시대가 요구하는 선택 사이에서 길을 잃고 갈팡질팡 하는 여자들을 들여다 보았다. 오쿠다 히데오는 꽤 날카로운 시각으로 문제를 파악하고 가상의 인물들에게 적절한 답을 찾아주는 것으로 이야기들을 채웠지만 석연치 않는 부분이 있다. 사실.. 솔직히 털어 놓자면 식상하다.

 

나이많은 여자가 회사와 부모로 부터 받는 대우, 관리직의 여자와 남자부하직원과의 미묘한 알력, 안정된 가정을 꾸린 다른 여자들을 부러워하는 커리어 우먼, 그런 직장여성을 꿈처럼 바라보는 전업주부, 육아와 직장생활, 맞벌이와 싱글맘, 발에 밟힐 듯 많은 여성지들과 순정만화들에서 언급된 소재들이다. 심지어 요새 방영되는 드라마 속의 달자씨가 머릿속을 스쳐지나가기까지 한다.

그래, 이 분야의 문제들은 이미 충분히 화자되고 있구나. 몹시 뜨거운걸. 하는 생각이 다시 확인되었다.

 

남자가 어쩜 이렇게 여자의 심리를 꽤뚫고 있을까로 시작된 감탄은 끝으로 갈수록 기세가 약해진다.
'이미 충분히 여자들 사이에서 얘기되어 지고 있는걸 관심없어 하는 남자들이 대부분인게 세상이야. 그걸 편견없이 들여다보려는 자세를 갖춘 남자가 있다고 해서 그리 놀랄필요는 없어. 적을 뿐이지 충분히 그럴법도 하잖아. 어쨌든 여자는 남자만큼이나 머릿수가 많으니까.'
오쿠다 히데오는 들여다보려는 자세를 갖춘 남자다. 그는 젊고 재기발랄한 글을 쓰는 일본 작가다. 요즘 인기를 끌고 있고, 그럴 자격이 충분한 재밌는 책들을 쓰고 있다. 하지만 나에게 공중그네의 심리치료는 석연치 않았다. 왜그랬을까? 걸도 석연치 않았다. 즐겁고 공감가고 놀랍고 유쾌하고 날카롭지만 어딘가 석연치가 않다.

 

왜냐하면 오쿠다 히데오의 스타일은 하나도 새롭지 않으니까.
그의 세상은 명료하다. 모든 아픔엔 치유가 있고 문제엔 깨달음이 있고 난관은 극복되어진다. 사실 이런 이야기들을 읽으며 지친 마음이 위안을 받는것은 사실이다. 나는 위안이 절실한 현대사회의 한 개체일 뿐이다. 하지만 내가 살고 있는 세상은 명료하지 않다. 사실 앞에 구구절절 떠들어 놓은 것처럼 모든 일에 인과관계가 있는 것도 아니다. 나는 드라마 주인공처럼 거창한 이유를 붙여가며 '그래 나이를 먹는다는 것은..' 따위의 나레이션을 깔수 없다.
나에게 성숙은 어느날 갑자기 뒤를 돌아보았을때 지난날의 내가 지금으로썬 상상도 할 수 없는 모양일때 갑자기 느껴지는 것이다. 하나하나 계단을 밟듯 모든 문제가 맞춤표를 찍으며 앞으로 나아가지지 않는 삶이다. 그런 나에게 이런글은 너무 이상적이다.

 

약간의 석연찮음은 바로 이거였을까?
나는 책을 읽는 마음 그대로 걸을 읽어내렸다. 더도 덜도 말고 딱 책을 읽는 느낌 정도로만, 아 참 재밌는 책이였다. 그녀들이 맞서는 문제에 내 경험들을 비추어보며 통쾌함을 느끼기도 하고 고개를 끄덕이기도 하며, 혹은 나와 다른 입장에 서 있는 그녀들이 힘내는 모습을 보며 응원도 하고 그래, 재밌게 보았다.

 

그리고 끝.

더이상의 여운은 없다. 이미 이런 스타일에 할당된 여운은 이전에 만난 다른 작품들에게 모두 소비해버렸다. 더 솔직히 말하자면 나에게 오쿠다 히데오는 전형적인 트랜디 작가로 보인다. 이슈화되고 있는 문제들에 바람을 주입해 마음 먹먹해지지 않을 정도로만 가볍게 만드는 솜씨, 적당히 살을 붙이고 양념을 쳐서 이야기를 뽑아내는 재주, 그런 이야기꾼으로 밖에 보이지 않는다.

이렇게 쓰고 보니 나와 오쿠다 히데오는 궁합이 잘 안맞는 모양이다.
뭐 괜찮다. 누구든 모든 작가들에게 친한척 하며 살수는 없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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