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작은 새
에쿠니 가오리 지음, 양윤옥 옮김, 권신아 그림 / (주)태일소담출판사 / 2012년 2월
평점 :
절판


에쿠니 가오리. 그녀에 대한 내 인상은 이렇다. 작가소개에 나와있는 멋지면서 아름다운 사진 만큼이나 세련되고 담백한 문체로 특히 여성독자들의 마음을.시.. 떨리게 해주는 섬세한 작가. 하지만 몇개월 전인가 최근의 그녀 사진을 보고 사실 홀~딱 깼다는 말이 맞을 정도로 놀랐는데, 작가가 얼굴이 중요한 것은 아니니 나는 그냥 그녀의 글을 읽으면서는 그녀의 옛 사진을 생각하련다.

 

 

 

 

 

* 내가 좋아하는 에쿠니 가오리님의 사진. 대표적인 사진이닷!

 



여러이유에서 그녀의 작품을 항상 기다리곤하지만, 가장 큰 이유는 작품마다 내 평가 극과 극을 달렸다는 것이다. 어떤 책은 너무나 만족스러운 반면 또 일부는 '뭐야..'싶은 정도의 느낌밖에 없었기에 '이번은 어떤내용, 어떤 느낌일까'하는 생각에 그녀의 작품이 나오면 기대부터하게 된다. 물론, 작품의 내용이야 나와 맞지 않을 수는 있지만 보지 않아도 눈에 그려지는 것 처럼 조용조용하게 이야기하는 그녀의 글솜씨는 매번 백점 만점에 백점을 주고 싶다.

 

여기, 그간 보아왔던 그녀의 책중에서 한마디 한마디가 가슴에 깊이 새겨지며 많은 생각을 하게 해준 작품이 있다.

'나의 작은 새'.... 책을 읽고 검색해보니 이미 과거에 출판되었던 경력이 있는 책인데, 책의 뒷부분에 작가 가쿠타 미쓰요가 붙이 '해설'을 보고는 서평이고 뭐고 쓸 필요가 없다 싶을 정도로 내 마음을 고스란히 옮겨놓은게 아닌가. 물론 그는 빼어난 글솜씨로 느낌을 옮겨놓았지만 말이다...

 

가쿠타 미쓰요는 '나의 작은 새'를 '심술궂은 책'이라 명명했다. 아마, 과거의 나 또한 이 책을 그렇게 평가했을 것 같다. 여전히 '뭐야,, 이게 뭐.'하는 느낌으로 보고 이 얇은 책에 책정되어 있는 가격에 대해서 의문을 품었을지도 모르겠다. 다행인걸까? 삼십대 중반을 달리고 있는 지금의 나는 많지 않은 분량의 이책을 내가 경험한 그녀의 책중에 최고라고 이야기하고 싶다.

 

 

 

 

 

 

어느 차가운 겨울 아침, 밀크 커피를 마시고 있는 '나'의 창가에 작은 새 한마리가 불숙 나타난다. 몸길이는 약 10센티 미터에 새하얀 이 작은새는 교회를 찾다 길을 잃었다며 '나'의 집에 머물길 원하고 그렇게 둘의 오묘한 동거가 시작된다. 그런데 이 작은새는 크기만 작을 뿐 까다롭기는 국보급이라 원하는 것도 많고, 삐치기도 잘 삐친다. 하지만 이렇게 '제멋대로 건방진' 작은 새를 '나'는 온전히 받아준다. 그리고 그의 여자친구. 못하는 것도 없고 성격도 좋은 완벽에 가까운 그녀. 그와 작은 새와의 동거 또한 스스럼없이 받아들이며 많은 것을 조언해준다. 나와 작은 새 사이엔 사랑이라 부르기엔 뭣 하지만 그 둘만의 특별한 '사랑과 우정사이'같은 감정이 있었고 오히려 그의 그녀가 책 속에서는 타인처럼 느껴진다.

 

사실, 에쿠니 가오리의 책에서 주인공이 남자일 거라는 생각은 해보지 않았는데, 삽화에 나온 주인공이 남자라서 쓸데없이 깜짝놀랐다. 정말 쓸데 없이 놀란거다. 이런 이상한 편견을 내가 가지고 있다니.. 하지만 그녀가 그려낸 남자 주인공은 또 나름의 매력이 있고, 온전의 그녀의 글속에서 섬세한 모습으로 태어난다. 실제 이렇게 성격좋은 남자가 있을까 싶을 정도로, 어쩌면 작은 새가 나타나기 전까진 조금은 지루할 법 했을 일상을 보냈을 '나'의 모습을 보고 있자니 너무 잘 받아줘서 조금더 외로웠을 작은 새의 마음이 이해가 가기도 했다. 세 사람(?)의 오묘한 관계. 그것이 사랑이거나 우정이거나 하는 것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우리가 평생을 살아가면서 항상 맺어야하는 서로간의 관계에 대해 많은 생각을 하게 해줬던 것 같다.

 

평생 남는 건 친구밖에 없다는 말을 자주 들었는데, 결혼을 하고 아이를 낳고 직장을 그만두고 보니 그 말이 맞긴한가보다. 항상 우리 엄마는 내가 사귀는 친구의 수가 적은 것을 걱정했다. 언니와 동생은 수 많은 친구들이 있는데, 나와 관계를 맺고 있는 친구들은 그 수에 비하면 턱없이 모자라 보였던 모양이다. 그런데 실제 나는 친구가 적다고 생각해본적이 없다. 실속없이 아는 사람만 많은 관계보다 하나를 나누어도 진실을 나눌 수 있고, 불편함이 없는 관계를 더욱 소중하게 생각하기 때문에, 그리고 이런 관계야 말로 나에게 활력소가 되기도하고 재산이라고 생각하니까 말이다. 다른 사람들도 공감을 할지는 모르겠으나, 결혼을 하고도 외로운 날들이 있다. 외롭다는 말이 맞는 표현인지는 모르겠지만, 남편과는 나눌 수 없는 이야기들과 생각들. 그런 일들은 코드가 잘 맞는 오랜지기 친구들과 이야기를 하고 있으면 말 하는 것 만으로도 기분이 많이 좋아진다. 하지만 그런 중에도 혼자만이 간직해야하는 감정들이 있을때가 있다. '나'와 '작은 새'의 관계를 보면서 그런 느낌들이 많이 느껴졌다. 내가 지금 가슴 한쪽에 품고 있는 외로움들. 어쩌면 작은 새는 '나'가 만들어낸 '또 다른 자신의 모습이 아닐까'하는 생각도 해보게 된다. 조용하고 불필요한 말도 별로 없는 나의 내면속에 있는 욕구들 말이다. 이를 테면 투정부리거나 삐치거나, 요구하고 즐기거나 그런 감정들.. 그게 또다른 나인 '작은 새'로 보여진게 아닐까.

 

 

동화 같은 짧은 이야기를 보며, 마침 내가 요즘 많이 생각하고 있던 '관계'에 관한, 그리고 '외로움'에 관한 많은 것들을 생각해봤다. 새로운 관계, 오래된 관계, 관계를 맺기위해 겪어야하는 낯설음과 이해와 양보. 그리고 서로에 대해 알아가고 익숙해지는 수 많은 과정들... 요즘 많이 생각해왔던 부분이라 더욱 공감이 갔을지도 모르겠다. 더군다나 오래된 책임에도 불구하고 빛이나는 그녀의 문장력이란! 다시한번 내 가슴에 아지랭이 같은 불꽃을 피우고 간다. 아, 추운겨울 따뜻한 모닥불 앞에서 추위를 녹이는 커피한잔을 들고 읽고 싶은 그런 책.. 사랑이야기가 아니더라도 그녀의 문장에선 언제나 두근거림이 느껴진다.

 

 

 그녀와 나는 이제 곧 사귄 지 1년째가 된다. 그녀는 꽃으로 말하면 노란 카네이션처럼 청결하고 숫자로 말하면 2처럼 영리하다.    p15

 

 다음 날 아침, 대야의 물은 멋지게 얼어 있었다. 멋지게 하얗게, 멋지게 차갑게, 멋지게 꽁꽁.

 작은 새는 눈을 반짝였다. 스케이트를 신겨주자 머뭇머뭇 얼음판 위에 올라서서 가슴 가득 공기를 들이쉬며 말했다.

 " 아, 좋은 냄새!"       p67

 

 

 

가쿠타 미쓰요 작가는 『 처음 이야기를 읽은 나는 여자친구의 심정이 되어 있었던 것이다. 그래서  '작은 새'라는 존재에 경악했고, 그 존재를 태연히, 아니, 자진해서 적극적으로 자신의 장소에 받아주는 '나'의 존재에 아연했다. 얼른 말해서, 짜증이 났다. 여자친구보다 무력하고 작고 또한 제멋대로이고 건방진 작은 새에게 질투를 품었던 것이다. 여자친구인 내가 있는데! 그런 작은 새에게 자신의 방을 열어주다니! 흔하게 듣기도 하고 말하기도 하는 그런 소리를 마음속에서 부르짖은 뒤, 미묘하게 내 질투심을 자극하는..  p89 』  이유로 '나의 작은 새'를 심술궂은 책이라 말했다, 물론 세월이 지나 다시 이 책을 읽은 그녀의 생각은 180도 변했지만 말이다. 앞서 이야기 꺼냈듯이 얼마전의 나라면 그녀와 같은 이유로 '아무것도 얻을 수 없는' 책이라 이야기 했을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지금의 나는 이 짧은 이야기속에 오래도록 가슴에 남을 많은 것들은 새기게 되었다.

 

짧은 시간 읽을 수 있는 책이었지만, 생각의 깊이만큼은 얕지 않았던 책이다. 조금은 혼자 외로운날 내게도 이렇게 작은 새 한마리가 곁에 있었으면 좋겠다. 작가가 의도한 바는 관계에 대한 이야기였을지 모르겠지만, 나의 감정상태 때문인지 정서적 교감을 나눌 대상에 대한 부분에 맞춰 책을 보았던 것 같다. 그래서 인지 나에게도 작은 새 한마리가 찾아와 줬으면 좋겠다. 소소한 감정들과 조금은 쓸쓸하기도 한 서로의 일상을 채워줄 그런 작은 친구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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