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드러운 양상추
에쿠니 가오리 지음, 김난주 옮김 / (주)태일소담출판사 / 2011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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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 한달만에 읽었던 책에 대해 리뷰를 쓰려고하니 마음은 있는데 어디서부터 시작해야할지 모르겠다. 에라, 정말 모르겠다.

에쿠니 가오리의 신간을 만났는데, 그녀의 책은 항상 나에겐 모험이었던 것 같다.

어떤때는 가슴에 깊은 여운을 만들어 한없이 그 골짜기에서 헤어나오고 싶지 않은 느낌을 주다가도, 또 어떤때는 그녀의 글이 활자 그 이상의 의미를 주지 못하는 경우도 종종있었다. 나에게 그녀의 그런글이 매력으로 다가왔는지 '이번엔 어떤 느낌일까?' 궁금해서 신간 소식이 들리면 손가락이 근질거린다.

 

 

부드러운 양상추. 제목을 보면서 전혀 어색함을 느끼지 못 했는데, 사실 난 양상추를 샐러드 이외의 것에서는 먹오보지 않는 그런류의 사람이라 그것이 원래 부드러웠는지, 서걱거렸는지, 딱딱했는지 단번에 생각이 나지 않았다. <그녀가 당신에게 전하는 따뜻한 마음 한 그릇>이라는 홍보글이 무색하지 않게 이번 책은 그녀의 일상에서 만날 수 있는 맛있는 음식들의 이야기, 하지만 그것은 음식이면서 추억이기도하고 그녀의 일상이기도 한 그러한 소소한 이야기들이 한가득 담겨져 있다. 맛있는 요리를 만들기 위한 레시피도 아니고 그렇다고 음식에 관한 대단한 철학이 있거나 비밀이 담겨 있는 이야기도 아니다. 다만 평소에 그녀의 글에서 접할 수 없었던 그녀의 소소한 일상들과 주변의 모습, 말 그대로 소설밖 평범한 에쿠니의 일상을 잠시나마 들여다 볼 수 있는 그녀의 일기일 수도 있겠다.

 

 

 

 

우체국 앞을 지나고 약국 앞을 지나고 생선초밥집 앞을 지나고 주유소 앞을 지난다. 이어 정육점 앞을 지나던 나는 진열 케이스에 든 닭 날개를 보고 걸음을 뗄 수가 없었다. 비닐에 꾹꾹 눌린 닭 날개가 몹시 추워 보였기 때문이다. 물론 정육점 진열 케이스는 바깥 기온과 상관없이 일정한 온도가 유지되는 냉장고고, 날고기는 그런 곳에서야 말로 느긋하고 신선할 수 있다는 것을 안다. 아는데도, '꽁꽁 얼어서 부들부들 떨고' 있는 것처럼, 심지어는 '비감하게' 보였다.  우리가 - 나와 개 - 걸을 때는 늘 그런 일이 생긴다. 오가는 데 겨우 한 시간 걸리는 길이 무작정 떠난 여행인 것만 같고, 현실이 조금씩 흔들린다. 어디를 걷고 있는지, 언제까지 걸어야 하는지 모른 채(이건 개), 아무 탈 없니 집에 돌아갈 수 있을까 하는 불안감을 안고서(이건 나), 마냥 앞으로 걸어간다.  p 8

 

 

'마더 구스'에 이런 노랫말이 있다.

잭 스플랫은 기름살을 싫어해요. 그의 아내는 빨깐 살을 싫어해요.둘이서 힘을 합했더니 어머나, 이것 봐요 접시가 깨끗해졌어요.

처음 읽었을 때, 이 부부는 참 편리하겠다고 감탄했다. 언젠가 만약 결혼을 한다면, 내가 싫어하는 음식을 대신 먹어주는 남자가 상대였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지금은 남편에게 기름살을 내 몫까지 먹어달라고 부탁할 수 없다. 건강검진 때 그 사람도 신경 쓰는 각종 수치가 올라갈지 모르니. p105

 

 

비파라는 과일의 모습과 맛에 대해 생각할 때 가장 먼저 떠오르는 형용사는 '친절하다'다. 그것은 고즈넉한 모양과 절도 있는 달콤함, 오렌지색은 절대 아닌 부드러운 색감과 술술 벗겨지는 껍질의 순순함, 과즙이 충분하지만(껍질을 벗겼을 때 드러나는 속살의 표면은 맛나고 달콤한 물을 듬뿍 머금고 빛난다) 튀거나 넘쳐흐르지 않는 수분, 차분한 기척.... 등의 인상에서 오는 것이지만, 아마도 동요의 영향이 더 클 것이라 생각한다. 마도 미치오가 노랫말을 붙인 <비파>.  비파는 친절한 나무 열매라서 서로를 껴안고 익어간다. 엷게 무지개 뜬 당나귀님의 귀 같은 나뭇잎 아래에서.

절로 한숨이 나올 만큼 멋진 노랫말이다. 서로를 껴안고 익어가기 때문에 친절한 것이 아니라, 친절하기 때문에 서로를 껴안고 익어가는 것이다. 정말 굉장한 비유다.   p139

 

 

 

 

사실 그녀의 책에 담아두고 싶은 이야기들은 많이 있다. 그런데 난 위의 글과 같은 그녀의 유머가 너무 마음에 든다. 그리고 무엇을 보든 아름다움을 발견해내는 마치 어린아이와도 같은 그녀의 순수함도 참 마음에 든다. 거기에 그녀의 담백한 글솜씨까지 어우러졌으니 이번 에세이는 여러모로 내 마음에 쏙들었다. 한없이 화창하고 파란 하늘을 가진 어느 날, 면으로 된 흰색 상의 한장을 걸치고 복숭아뼈까지 오는 나풀거리는 스커트에 굽낮은 신발을 신고 콧노래를 흥얼거리며 동네를 산책하고 있는 듯한 그런 느낌. 따뜻한 햇볕 덕분에 마음도 차오르고 맑은 공기 덕분에 머릿속까지 상쾌하지만, 그렇다고 100% 외롭지 않다고 말 할 수 없는 그런 느낌을 주는 글들이었다.

 

그녀는 일상에서 음식에 얽힌 추억을 많이 가지고 있었고, 많은 책들을 읽으며 나왔던 음식들도 줄곧 기억하고 있었다. 물론 지금은 그 많은 음식을 맛 보았다고는 하지만 읽는 내내 내게는 상상이 안되는 음식들이 많았는데,아마도 내가 한국에 평범한 주부로 살아가면서 그 음식들은 앞으로도 접할 기회가 많지 않을 것 같다. 그래도 비위가 약한 내가 새로운 음식을 원래 맛보지 않는 성격이니까 아쉬움은 없기로 한다. 아마도 그녀는 음식으로 몸의 양식과 영양분을 채웠다면, 책과 추억으로 마음과 정신을 채운 것 같다. 에쿠니 가오리라는 작가의 열렬한 팬은 아닌지라 그녀의 개인사는 거의 모르고 있었는데, 담배를 즐겨하고 나이차이가 나는 여동생이 있으며, 늦은 나이에도 자녀가 없다는 사실을 알고 나서일까? 그녀의 글들에서 채워지지 않은 2%가 보이는 것 같았다. 그렇게 그녀는 따뜻하고 행복한 일상을 보내고 있으면서도 그녀는 느끼지 못 하고 있을 그런 외로움이 내눈에는 한가득 보이는 것 같았다.

 

'무라카미 하루키'를 좋아한다. 그렇다고 그의 책을 매우 감명깊게 읽거나 이해를 잘 하거나 그런 수준의 독자도 아니다. 하지만 그의 책은 항상 어려워서 읽어보고 싶은 충동을 일으키는.. 그런 작가였는데, 그의 에세이 '달리기를 말할때 내가 하고 싶은 이야기'를 읽고나서 더욱 빠졌던 것 같다.

'부드러운 양상추'는 내게 있어서 무라카미의 그것과 같은 역할을 하게 될 것같다. 지금까지 그녀의 책을 많이 접하지는 않았지만, 그 중에서 가장 나에게 느낌을 줬던 책, 그녀에 대해서 생각하게 하고 상당히 많은 부분을 교감할 수 있었던 그런 책이었다.

 

깊어지는 겨울밤.. 싸늘한 공기를 느끼면서도 따뜻함을 피워낼 수 있는 그녀의 글이 참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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