암보스 문도스 - 양쪽의 세계
권리 지음 / (주)태일소담출판사 / 2011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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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습게도 책을 읽기전에는 아무런 정보도 없었다. 나에게 낯익은 작가도 아니었고 뜻을 알 수 없는 제목에 당연히 '소설'일 것이라 생각했었다. 수 많은 에세이를 읽어봤지만 이렇게 소설스러운 표지와 제목을 가진 에세이는 처음이었으니. 작가의 이름도 강렬하지만 온통 주황빛을 발산하고 있는 책의 표지도 강렬하다. 더불어 작가의 이름이 외자에 '리'이다보니 자꾸 '북한'이 떠오르기까지 한다. 동갑내기 작가와 통했다고 해야하나? 서른 셋의 나이에 45개국을 여행했다는 그녀가 가보고 싶은 나라는 '북한'이라고 한다. 한겨레문학상 수상 작가 출신이라고 하니 내가 낯을 심하게 가리는 '수상작가' 출신의 그녀가 풀어놓는 여행담은 어떨까?(분명 그녀는 여행기가 아니라고 주장했지만..)
 
 
 

이것은 여행기가 아니다.
 
 

1979년. 나와 동갑내기 작가의 글. 그래서 더욱 호기심이 일었다. 두 아이의 엄마로 살아가고 있는 서른 셋의 나. 그녀는 내가 가지지 못 한 자유를 한껏 누리고 있음이 부럽기도 하고 어린 나이부터 홀로 떠나는 여행을 감행했던 그녀의 용기가 대단해 보이기도 했다. 분명 작가는 여자라고 했음에도 불구하고 여러 사람과 뒤섞여 배를 타고 여행을 떠나고 해외 거리에서 노숙을 하는 등 수 많은 위험속에서 여행을 지속했다. 정말 간이 배밖으로 나왔다는 표현이 맞을 정도로 신변의 위험은 생각지 않는 대담함이 그녀가 얼마나 당찬 사람인지를 보여주었다. 자로 재듯이 계산하는 여행이 아닌 단순함. 그것 또한 그녀의 매력이 아닐까?
 
첫장을 펴는 순간 이건 철학서인지 문학분류인지 구분이 되질 않는다. 정말 에세이가 맞는 것일까? 그 흔한 여행사진 한장 나오지 않는다. 에세이나 여행서에는 글에 딱딱 맞아 떨어지는 멋진 사진이 함께 있음을 어쩜 당연하게 생각했던 나에게 '당황스러운' 상황이 아닐 수 없었다. 더불어 젊은 나이임에도 불구하고 그녀가 늘어놓는 방대한 문학적 지식이란~ 동갑내기 동성 작가의 이야기다보니 내가 가지지 못한 것들에 대한 질투가 날법도 했는데, 그러기 보다는 '참 많은 장점과 매력을 가진 사람'이란 생각이 든다.
 
 
 
어차피 이렇게 된 바에야, 나는 이 책이 서점과 도서관 직원들을 혼란스럽게 했으면 좋겠다. 여행기에 놓아야 할지, 철학에 놓아야 할지, 예술 일반에 놓아야 할지, 아니면 문학과 취미 사이 애매한 선반에 애매하게 놓아두어야 할지 토론이 벌어져도 괜찮다. p268
 
 

 

글을 쓰면서 의도했던 것일까? 작가의 말처럼 과연 이 책을 '에세이'로 분류하는 것이 맞을지에 대한 물음이 생긴다. 세계 곳곳의 여행담을 기록한 이 책은 어쩜 그녀의 일기장과도 같다. 우리가 흔히 접할 수 있는 '좋은 곳의 꼭 가봐야하는 명소'에 대한 언급도 없다. 지극히 주관적인 생활과 사람들과의 만남, 그리고 그와중에 겪는 수 많은 일들로 인한 그녀의 생각들... 더불어 앞서 말했듯이 많은 문학작품에 대한 언급까지.. 어쩌면 그때그때 생각하고 느꼈던 일들에 대한 기록이라고 하는 것이 가장 맞을 것 같다. 그런 느낌때문인지 남의 오래된 일기장을 훔쳐보는 듯한 느낌이 들었다가 친구를 마주보고 쉴새없이 릴레이 수다를 떨고 있는 것 같은 느낌마저든다.

 

조금은 냉소적인 그녀의 문체에 처음엔 적응이 안되어 여성작가라는 것을 몇차례나 확인하며 글을 읽는 웃지 못할 일들도 있었다. 철학적인 내용들과 잘 알지 못하는 문학에 대한 이야기가 많지만 그 사이에서 뿜어져 나오는 작가의 입담과 유머감각 때문에 그녀의 글에 빠질 수 밖에 없었다. 이렇게 많은 매력을 가진 친구를 알게 되었다는 사실에 작가에 대한 검색까지 해보았는데 그녀의 첫 인상은 글에서 처럼 '배짱이 두둑해 보였다'는 것. 인물검색 결과 그녀는 '소설가'로 되어있지만 '여행작가'라는 타이틀이 어쩜 더 어울릴 것 같다. 오랜만에 너무 괜찮은 책, 정말 괜찮은 작가를 알게 되었다는 것 만으로도 나에겐 큰 의미가 있을 것 같다. 그녀의 이야기를 읽고 나니 '권리'라는 사람이 더더욱 궁금해진다. 내 평생에 걸쳐서 그녀와 같이 '무모한'여행의 경험은 오지 않을 것임이 확실하기에 그녀의 이야기를 다시한번 기다리게 될 것 같다.

 

 

 

여행이란 삶의 장기적인 계획에서 옆으로 빗겨 나온 일부이다. 다시 말해 여행은 계획되지 않은 삶이다. 그렇기 때문에 여행 중에 내가 무언가를 계획하기 시작했다면, 그 여행은 이미 여행이 아닌 삶의 영역 안으로 들어가 버린 것이다. p 6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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