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렁커 - 제2회 중앙장편문학상 수상작
고은규 지음 / 뿔(웅진) / 2010년 11월
평점 :
품절


Trunker : 멀쩡한 집 놔두고 트렁크에서 자는 사람

 

 

 참 그럴듯하다. 멀쩡한 집을 놔두고 트렁크에서 자는 사람들이 있다니 말이다. 요즘 같이 상상하기조차 어려운 개성을 가진 사람들이 많은 시대에는 '관도 아니고 트렁크에서 잔다는데..'하며 그런 이들이 있을 것 같은 생각이 절로 드니 말이다.  '트렁커'는 제2회 중앙장편문학상 수상작으로 아주 간략한 이력을 가진 고은규 작가의 작품이다. 현재 다른 일을 생업으로 하면서 글을 쓰는 고작가는 우연히 공원에서 트렁크를 여는 사람을 보고 글을 써야겠단 생각이 들었다고 한다. '000수상작'이라는 타이틀 자체페 선입견이 심한 나였기에 책장을 들추기전부터 '기대는 안해야지..'하는 주문을 걸면서 책을 집어 들었던 나였기에 결론부터 말 하자면 '새해에 들어서 읽은 첫 작품인데 참 잘 골랐다'는 결론을 내려야겠다. 2010년을 시작하면서 읽었던 '프라임 타임'도 너무 좋았던 기억에 한 해를 새롭게 시작할 수 있겠다~하는 생각이 들었는데 '트렁커'는 기대이상의 작품이라는 평을 감히 해본다.

 

 유모차 판매원으로 일하는 '온두'. 그녀는 저녁이 되면 집안을 정리하고 공원에 주차된 자신의 차 트렁크에서 잠을 청한다. 그러던 어느날 낯선 차 한대와 함께 그녀처럼 잠 취향이 독특한 밸런시스트 '름'을 만나게 된다. '슬트모(슬리핑 트렁커들의 모임'의 정회원인 그녀에세 무서운건 없다~ 하지만 '름'은 그곳이 자신의 땅이라고 주장하고 온두는 그 자리를 지키기위해 어쩔 수 없이 그가 개발한 '치킨차차차'게임을 하며 가깝게 지내게 된다.

 

 그들은 왜 트렁크에서 잠을 청하게 되었을까? 어떻게 보면 공포스럽기도 한 그들의 취향. 어릴적 다녔던 교회 수련회에서 야심한 밤에 관에 들어가는 체험을 한 적이 있다. 물론 공동묘지에서 진짜 관에 들어가는 그런 공포스런 체험은 아니었다. 예배당에 체험 코스를 여러군데 만들고 그중 한 코스가 관처럼 생긴 나무 상자를 짜 놓고 한 사람씩 들어가면 뚜껑을 닫고 밖에 있는 사람들이 못질을 하는 흉내를 내는 그런 체험이었다. 취지야 그동안 살아온 삶에 대해 반성을 하라는 것이었겠지만 어찌나 무서웠던지 눈물이 줄줄 흘러나올 정도였다. 트렁크에서 잔다고하니 문득 기억 저편에 숨어버린 어린시절 체험이 떠 올랐다. 칠흙 같은 어둠속에서 웅크리고 있을 그들의 모습을 생각하니 어쩌면 그 모습이 엄마 뱃속에 있는 태아의 모습과도 비슷할 것이란 생각도 든다. 소설에서 처럼 안에서 문을 열수 있는 장치와 밖을 볼 수 있는 작은 창, 개인에게 필요한 수면 용품들과 잠자리를 따뜻하게 해주는 난방장치까지 겸하면 나쁠 것도 없을 것이다. 더불어 그곳에 음악까지 있다면 외부와는 차단 된 전혀 다른 나만의 공간이 탄생될 테니 말이다.

 

 이쯤이면 이 둘이 정상적인 배경을 가지고 있지 않다는 추측이 자연스럽게 든다. 어느새 '치킨차차차'게임은 '진실게임'이 되어버리고 게임에서 진 사람이 자신의 과거를 풀어나가기 시작한다. 상상하기 조차 어려운 가정폭력을 겪으면서 살아온 '름'과 동반 자살에서 살아남아 성적 학대와 열악한 환경 속에서 자란 '온두'. 그들이 말하는 과거는 읽는 이로 하여금 자연스레 얼굴을 찌푸리게 하지만 당사자인 름과 온두는 너무나 덤덤하다. "무거운 주제일수록 서사는 가볍게 진행하고 싶다"고 말한 작가의 의도가 그대로 드러나 있는 것이다.

  

 그렇다면 나에게 가슴아프고 무거운 주제를 다룬 이 책이 나에게 많은 공감을 얻어낸 것일까? 시간이 갈 수록 아픔을 가진 사람들의 소외된 이야기들이 더 가깝게 느껴지는건 내가 나이를 먹어간다는 증거일까? 아니면 누구나 하나쯤의 아픔은 가지고 있다는 생각에 위로가 되어서일까? 어쩌면 이런 이야기를 접할때마다 자연스럽게 어린시절 엄마를 너무나도 힘들게 했던 할아버지가 떠오르기 때문일지도 모르겠다. 지워버릴 수 없는 큰 상처를 가지고 있는 주인공들이 서로에게 위로가 되고 힘이 되어 극복해간다는 희망적인 스토리 또한 나에게도 힘이 된다.

 

 책을 접한 독자라면 누구나 그랬겠지만 '슬트모','밸런시스트'같은 책에 등장한 단어에 대해서 실존 여부를 검색했을 것이다. 실제로 '트렁커'를 검색해보니 연관검색어에 '슬트모'가 자연스럽게 나올 정도니까. 하지만 어디까지나 작가의 기발한 상상력일 뿐. 오히려 상상에서 나온 이야기라는 것이 아쉽기만하다.

 

 누구나 완벽한 인간은 없다. 누구나 완벽한 삶을 사는 사람도 없다. 기울어지는 빌딩처럼 완벽한 균형이 없는 것이다. 모두 조금씩 기울고, 비틀어진 상태인 것을 인정하지 않거나 확인하지 않는 것일 뿐. 나만 상처를 가진 영혼이 아니라는 것을 알고 책을 읽는 독자들이 희망을 갖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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