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들의 발칙한 궁리는, 독자로서의 우리들이 탈주하도록 놔 둘 생각이 없어 보인다. 꼼짝 없이 붙잡혀 한국문학에 미쳐버릴 수 밖에 없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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악취미들
김도언 지음 / 문학동네 / 2006년 9월
9,500원 → 8,550원(10%할인) / 마일리지 470원(5% 적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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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도언은 아주 바른 사람이다, 라는 말을 누군가가 한다면? 그의 사진을 보고 고개를 끄덕이다가도, 책을 읽어내려갈 수록 고개를 저으리라. 그리고 덮는 순간 그를 멀리할 것이다.
나는 유령작가입니다
김연수 지음 / 창비 / 2005년 5월
11,000원 → 9,900원(10%할인) / 마일리지 550원(5% 적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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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판절판
다성의 시학
류신 지음 / 창비 / 2002년 12월
12,000원 → 11,400원(5%할인) / 마일리지 600원(5% 적립)
*지금 주문하면 "6월 17일 출고" 예상(출고후 1~2일 이내 수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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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정의 픽션
박형서 지음 / 문학과지성사 / 2006년 10월
14,000원 → 12,600원(10%할인) / 마일리지 700원(5% 적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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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손님과 어머니’의 음란성 연구 - 달걀을 중심으로」라는 단편 만으로도 그의 소설집은 아깝지 않다. 기발하고 뛰어나며 냉소적이다. 그의 조롱을 대뜸 받아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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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이킹북 - 한 장의 종이로 만드는 팝업북 31가지 책만들며 크는 학교 1
폴 존슨 지음, 김현숙 옮김 / 아이북 / 2001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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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육 현장에서 아이들과 함께 팝업북(popup book)을 만드는데 사용하고 있습니다.

쉽고 재미있는 교재입니다.

국내에 소개된 팝업북 가운데, 최고의 책이라고 말씀드릴 수 있겠네요.

 

적극 추천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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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즈, 매혹과 열정의 연대기
스터즈 터클 지음, 이정득 옮김 / 이매진 / 2006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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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재즈, 신의 악기 박물관
스터즈 터클, 『재즈, 매혹과 열정의 연대기』, 이매진, 2006.


 “존 콜트레인은 멋진 친구였다.”(274쪽)
 나는 ‘듀크 엘링턴(Duke Ellington)’의 말을 한 음절씩 주의 깊게 발음하면서, ‘존 콜트레인(John Coltrane)’의 음반 『Blue Train』을 꺼냈다. 엷은 먼지가 앉았지만, 그는 여전히 “우주적 질서”를 색소폰으로 재현하기 위해서 영혼을 연소(燃燒)시키고 있었다. 나는 새벽빛 그 서늘한 기운에 앙당그러졌다. 그리고 감정이 응고된 유령 같은, 불멸을 예감한 제왕의 축제날이나 들릴 법한 소리가 내 암암한 날을 끄집어냈다. 존 콜트레인과의 위대한 만남을…….
 흔한 골목길에 ‘실뱀’이란 레코드점이 있었다. 이곳엔 혀와 피부로 소리를 흡수한다는 실뱀들이 모여들어 ‘클리포드 브라운(Clifford Brown)’을 닮은 사장님과 재즈를 완성해 나갔다. 나는 실뱀이 알토 색소폰으로 진화해 나가는 그림이 그려져 있던 구석에 서서 창백한 얼굴로 그들을 동경했다. 그걸 본 사장님은 내게 “격정을 이해할 나이니, 『Blue Train』을 가져가서 입으로 소리 낼 수 있을 때까지 들어봐.”라고 말했다. 심장이 두근거렸다. 나는 그 자리에서 비닐을 뜯고 플레이어에 걸어달라고 부탁했다. 그는 새로운 ‘실뱀’을 환영하듯 미소 지으며 첫 번째 트랙을 재생했다.
 나는 출입문 밖으로 나가 담배에 불을 붙이고 쪼그려 앉았다. 존 콜트레인은 시멘트 담벼락을 툭 무너뜨리고, 나와 재즈 단 둘이서 손을 마주잡고 마음껏 스윙 할 수 있는 캄캄한 우주를 보여줬다. 내가 내뿜는 담배 연기가 천왕성 적도면의 고리가 되었고, 재킷에 있던 존 콜트레인은 영하 200℃의 푸른 행성이 되어 서서히 공전했다. 정말 죽이는 아름다움. ― 그는 분명 ‘신의 악기’였다. 나는 다른 표현을 떠올리는 것이 불가능하다고 여겼다. 그리고 며칠 동안 젖몸살을 앓았다.
 간신히 몸을 추스르고 2번 트랙 ‘Moment's Notice’를 따라 입으로 소리 내는데 까지 수 주일이 걸렸다. 그러나 다시 찾아간 ‘실뱀’은 이미 문을 닫고 없었다. 그 후부터 클리포드 브라운의 트럼펫 연주를 들을 때마다, 인생을 살짝 옮겨놓고 금방 증발해버린 ‘무엇’을 상상한다. 내 영혼의 각질이 한 겹 벗겨졌던 날을 떠올리며.

 『재즈, 매혹과 열정의 연대기』는 ‘크리스마스의 유령’처럼 늦은 시간에 찾아와 옷자락을 잡아끈다. 저자 ‘스터즈 터클’은 나를 ‘실뱀’으로 부활시킨 것과 같이, 음을 정확하게 짚으며 몰아치는 존 콜트레인의 영혼을 보고 만질 수 있도록 주선 해 준 것과 같이, 독자를 재즈의 전설 속으로 친절하게 안내한다. 전설 속의 인물들 ― 조 올리버(Joe Oliver), 루이 암스트롱(Louis Armstrong), 베시 스미스(Bessie Smith), 듀크 엘링턴, 베니 굿맨(Benny Goodman), 빌리 홀리데이(Billie Holiday), 디지 길레스피(Dizzy Gillespie), 찰리 파커(Charlie Parker) 등 13인의 ‘신의 악기’들은 자신의 삶을 “재즈의 역사 한복판을 가로지르는 고리들”이었다고 고백했다. 신탁(神託)이 아니었다면, 소년원에서 갓 출소한 루이 암스트롱이 오전 9시부터 오후 5시까지 석탄수레를 끌다가 늦은 시간 술집 ‘폰스(Ponce's)’에 들러 코넷을 불 까닭이 없었다.
 그럼, 수많은 천재들을 매혹시켜 새로움을 위한 고리로 만들어버린 ‘재즈’란 무엇일까. 저자의 말에 따르면 “재즈는 개별 뮤지션들이 가진 경험의 총체이자 모든 뮤지션들이 지나온 경험의 종합”(282쪽)이다. 여기서 그간 수많은 이론 서적을 읽었음에도 재즈의 광활한 우주가 모습을 드러내지 않은 이유가 밝혀진다. 우리는 자학과 절망 대신 재즈의 혁신을 위해 죽어간 그들을 먼저 살펴야 했다. 그리고 끝없는 열망의 허기를 기억함으로서 연대와 우정을 돈독히 쌓아야만 했다. 그땐 나를 중심으로 공전하는 재즈가 꿈만은 아니다.
 나는 창문을 열고 베시 스미스의 ‘Down Hearted Blues’를 재생한다. 잠시 후 찬바람이 깨우고 지나간 내 몸을 조용히 끌어안는다. 거친 모래를 머금은 목소리가 값 싼 스피커와 잘 어울린다, 라고 생각하며 한 가지 소망을 품는다. 그녀의 노래가 어두운 골목길에 스며 있다가 지나는 사람들의 마음 속 마개를 슬그머니 열어주길.

 아, ‘신의 악기 박물관’을 둘러보는데 도움이 될 만한 팁 한 가지. ― “새로운 소리는 언제나 상상이 가능하다. 새로운 느낌에도 언제든 다가갈 수 있다. 더불어 그런 느낌과 소리를 끊임없이 정화(淨化)해 나가야 한다. (…) 그래야만 듣는 이들에게 최상의 것, 즉 본질을 전달해줄 수가 있다.”(274쪽) ― 존 콜트레인의 이 말은 과거와 현재, 그리고 미래에도 유효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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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머릿속의 개들 - 제11회 문학동네작가상 수상작
이상운 지음 / 문학동네 / 2006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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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절


내 머릿속의 ‘개(요설의 현혹)’ 잡는 날
이상운, 『내 머릿속의 개들』, 문학동네, 2006.


 이 소설은 ‘현학적인 요설(饒舌)’로 가득 차 있다. 현상과 감정의 거친 원석을 능숙하게 세공(細工)하여, “세속적인” 현대사회를 과감하고 그럴싸하게 풍자한다. 대부분의 ‘우화(寓話)’가 그렇듯, 그의 작품도 소박한 문체로 쓰여 졌다. 그리고 희곡 작법의 차용(대화만으로 구성된 67~85쪽), 이 화법을 통해 드러나는 부조리, 생의 필연적인 부도덕과 비극에 대한 연민, 실존과 개화의 환상을 인식·표현한 점 등은 매우 인상적이다. 게다가 그의 가장 뛰어난 덕목은, 아주 쉽게 읽히며 도무지 남 얘기처럼 생각되지 않는다는 점이다.
 화자 ‘고달수’는 세상의 인간을 단 두 종류로 분류한다. ‘지금 실업자인 사람’을 뜻하는 ‘존재A’와 ‘조만간 실업자가 될 사람’인 ‘존재B’. 벌써 6개월 째 ‘존재A’ 상태인 고달수는 어느 날 대학동창 ‘마동수’로부터 연락을 받는다. 연극동아리 ‘변신’ 시절 화가 지망생이었던 마동수가 십여 년 만에 전화 걸어 온 용건은, “사랑의 구조조정을 위해서” 자신의 뚱보 마누라 ‘장말희’를 “꼬셔” “재배치”해 달라는 것이었다. 부도덕한 일이었지만 동시에 ‘존재B’로 변신할 수 있는 기회였다. 장말희의 외모는 비록 그로테스크했지만, “내면의 나라에서는 저와 같은 종족임을 알게” 된 고달수는 심각하게 고민한다. “나는 과연 대리석 덩어리 속에 있는 아름다운 비너스를 사랑할 수 있을까?”라고. 결국 고달수는 자신의 실존을 던져 장말희의 추한 육체를 사랑하기로 결심한다. 하지만 이런 “재활용”이 잘 될 리가 없다. 오죽하면 머릿속의 개들이 웃겠나.
 저자 이상운은 아직 젊다. 한 장의 사진이 아니었다면 어느 누가 그를 1959년生 작가로 생각할까. “전체가 한 문단으로 된”, 원래는 “행갈이가 전혀 없는 작품”을 문학상에 응모한 작가는 대체로 젊기 마련이다. 하지만 이 점은 심사위원 ‘박완서’의 머릿속에 “혹시 자기 문체가 경박하다는 걸 의식하고 무게를 잡아보려는 계략이 아니었을까”라는 의구심을 심어 놨다. 그리고 ‘남진우’는 “다수의 동의를 획득하지 못해 밀려난 다른 몇 편의 작품보다 결정적으로 뛰어난 작품이라고 말하기는 힘들”다고 모질게 평가한다. 나 역시 다른 다섯 명의 심사위원(이혜경·서영채·신수정·조경란·김연수)보다 박완서·남진우의 의견에 손을 들어준다. 그는, 그의 작품은, 다양한 장점보다 한두 가지 단점이 더 위협적이다.

 하지만 쪽마다 밑줄이 잔뜩 그어져 있다는 사실만은 고백해야겠다. 가령 ― 자신의 실직과 동시에 재미교포 치과의사와 결혼한 옛 여자에게 “저는 단지 반동용 로프에 지나지 않았던 것”(17쪽)이라는 재치 있는 투정, “난 미학적으로 교환가치가 형편없는 여자죠”(72쪽) 혹은 “내 영혼은 너무 추워서 이젠 이 두꺼운 살을 벗어날 수 없어요”(82쪽) 등 자기연민의 고백, “구조조정은 사물의 좌표를 강제로 바꿈으로써 불안과 긴장을 조장하는 이념과 기술이야. 왜 그렇게 하느냐? 그래야 새로운 에너지를 쥐어짜낼 수 있기 때문이지”(98쪽)와 같은 통찰, “당신의 몸은 존재의 낭비입니다.(…) 오직 한 사람 당신을 위해서 그렇게 많은 살들이 있다는 것은 낭비”(140쪽)라고 외치며 사유하는 몸의 물성(物性), “뚱보가 된 장말희를 모방해보기로 했습니다. / 그것은 또다시 실존적 정치경제학적 실험이었고, 또다시 구조조정이었습니다”(162쪽)라는 고백을 통한 비극의 암시, “비효율적인 인간이 되기 위하여 이토록 효율적인 자기 관리가 필요하다는 아이러니”(163쪽) 같은 농담에서 드러나는 긍정, “자본주의적으로 보아서 결혼식은 새로운 소비자의 탄생을 소란스럽게 선전하기 위한 장치였고, 장례식은 한 소비자의 소멸을 소란스럽게 은폐하기 위한 장치였습니다”(164쪽)라는 철저한 자본주의적 시각, “남녀노소 가릴 것 없이 온갖 종류의 날씬한 효율주의자들이, 밤마다 어마어마한 양의 역겨운 비곗덩어리들을 몰래 내다버린다”(166쪽)고 토로하며 가공된 미(美)를 향해 드러내는 환멸, “장말희처럼 뚱보가 되어서 장말희와 재회함으로써 진정한 교류를 시작한다. 그것은 극도로 수단화된 자본주의적 인간관계에 대한 자기반성이자 조롱이다”(170쪽)라는 선언으로 내비치는 역설과 비난 ― 등에 나는 밑줄 긋지 않을 수 없었다.  그런데 가끔 등장해서 고달수의 욕망에 따라 짖고 웃다가 종국엔 내던져지는, ‘내 머릿속의 개들’이란 무엇일까. 박완서는 “현란하고 부박한 우리 사회의 온갖 기호들”을 “관망하는 천박한 욕망과 정직한 관점을 겸비한 내 마음속의 개”라고 썼다. 심각한 혼란을 겪으며 고달수는 자신의 개와 마동수의 개들 간에 교환을 경험하지만, 유사한 얼굴로 인해 구별 짓기를 포기한다는 점에서 ‘온갖 기호들’이란 표현은 적당하다. 하지만 개들과 인물의 욕망이 일치하거나 개들이 인물의 내적욕망을 솔직하게 반영하고 있어, 고대극의 ‘코러스(chorus)’ 같은 장치로 여겨진다.

 그럼에도 나는 앞으로 작가 ‘이상운’을 기억할 수 있을까. 다른 ‘문학동네 작가상’의 수상자와 마찬가지로, 곧 잊을 것 같다. 문장은 효율적이고 가볍지만 경쾌하진 않고, 시사적이지만 진한 감동이 없고, 실존에 대한 고민은 화자의 독백에서 머뭇거리고, 분노와 연민은 놀이판을 지배하는 장치에 머무른다.
 나는 밑줄 친 요설을 머릿속에서 꺼내기 시작한다. 그것은 “아무리 끄집어내고, 아무리 밖으로 던져버려도 자꾸자꾸 생겨나서, 영원히 꺼내야 할 것 같은 개들”이다. 다른 한편으론, 무슨 일이 일어날 것 같은 밤을 집요하게 깨우는 ‘개들’을 그려본다. 진짜 거리를 배회하다가 도로위에 죽은 비둘기를 앞발로 툭툭 건드리고 경계의 눈빛을 번뜩거리며 한 바퀴 맴돌다가 킁킁거리는 ‘개들’이 보고 싶다. 지나치게 단순화 된 세상은 어째 나는 거짓말 같다. 영 믿기지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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희망의 인문학 - 클레멘트 코스 기적을 만들다
얼 쇼리스 지음, 이병곤.고병헌.임정아 옮김 / 이매진 / 2006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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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민(citizens)은 언제나 부유하다
얼 쇼리스(Earl Shorris), 『희망의 인문학 - 클레멘트 코스 기적을 만들다』, 이매진, 2006.


 가난한 어미는 가난으로 죽은 딸에게 「마지막 편지」를 쓴다. ― “순아 오늘도 에미는 네가 보고 싶어 / (…) / 남들은 다 배우러 간다는데 / 원수놈의 돈을 벌어보겠다고 / 이른 새벽 종지불 밝혀서 쑥국밥을 먹고 / 네가 고향을 떠나던 날 / 웬놈의 진눈깨비는 그렇게 뿌렸는지 / (…)”(정호승, 『서울의 예수』, 민음사,1982.) ― 시인 서정주의 가난은 “한낱 남루에 지나지 않”았지만, 이 모녀의 가난에는 낭만적인 수사나 대책이 없다. 그렇다고 김수영처럼 “돈이 없다는 것도 오랜 친근(親近)이다”(「후란넬 저고리」, 『김수영 전집 1』, 민음사, 1981.)라며 빈곤을 아랫목에 뉘일 수도 없다. 매 끼니 걱정에는 그 어떤 낭만도 없으므로.
 우리 ‘순이’는 왜 이토록 가난할까. 어떻게 하면 치마저고리보다 쉽게 가난을 훌렁 벗어 버릴 수 있을까. 이 두 가지 물음은 ‘순이와 가난’보다 훨씬 오랜 세월동안 짝을 이룬 채 답을 기다려왔다. 그리고 동화 「개미와 배짱이」처럼 단순화 되어 그럴듯한 모범답안이 만들어졌다. ― 가난한 사람은 게으르다. 가난한 사람에겐 ‘교육’이 아닌 ‘훈련’이 필요하다. ― 이것이 ‘순이와 가난’에 접근하는 방법이었다. 미싱사 보조인 순이가 하루 네 시간씩 아껴 잠들며 미싱을 줄창 돌렸지만, 그럼에도 가난은 조금도 나아지지 않았다. 순이는 아직 게으른 걸까.
 하지만 ‘얼 쇼리스(Earl Shorris)’는 도덕적 가치가 제거된 ‘노동 그 자체’의 착취 요소를 지적한다. 지독한 노동을 ‘항상 선한 것’으로 강변하며 목구멍에 풀칠만 해주는 것은 지독한 폭력이다. 이 최저임금은 ‘부(富)의 게임’ 속에서 ‘자연적인 평등’이라는 환영과 만나 ‘순이’를 밑바닥에 결박한다. 하지만 어디부터 잘못된 건지 알 수 없다. 이력서에 쓴 것보다 부모님은 훨씬 더 근면하셨고, 순이의 옷장엔 작업복 한 벌이 걸려있을 뿐이었다. 이 “물질적 결핍과 숱한 도덕적 좌절”의 기원은 ‘순이의 저편’ 어디에서 잉태된 것일까.
 저자는 빈곤으로 인해 가장 먼저 빼앗긴 ‘정치성’에 관심을 기울인다. “남들은 다 배우러 간다는데” 자신의 정신과 노동력을 저렴하게 묶음 판매한 순이. 순이는 ‘정치’를, ‘합법적인 힘’을 착취당한 것이다. 만약 순이가 절대·상대적인 빈곤이 생산하는 ‘도덕적 좌절’을 극복하고 부당한 ‘무력(force)’의 포위망으로부터 벗어나고자 한다면, ‘인문학’은 희망이다.

 감히 말하자면, 인문학은 정치에 선행한다. 만일 인문학적 토양이 없었다면, 오늘날의 민주주의뿐만 아니라 ‘평등’과 ‘자유’ 역시 광장 처형대에 목이 매달렸을 것이다. ‘영혼을 고취시키는 삶’과 ‘음미하는 삶’의 중요성에 대해서 역설하다 처형당한 소크라테스처럼. 하지만 그의 부당한 죽음을 곁에서 지켜본 플라톤은 ‘철학자(philosopher)―시민(citizens)’의 개념을 발전시켰다. 순수하고 참된 섭리에 따라, 개인과 국가에게 선(善)의 지표를 제시한 것이다. 이렇듯 인문학은 ‘조용한 투쟁’이다. 언제나 가치중립적인 지식은 빛나는 ‘의지’로 탈바꿈되어 ‘공적 세계’로 나아가게 한다. 사회적 약자의 진지한 ‘성찰’이 윤리적인 이상을 목표로 하고 실현하는 ‘정치성’으로 거듭날 때, 강제적인 무력(force)이 긍정적인 힘(power)으로 정신에 깃들 때, 느린 걸음이나마 세계는 스스로를 재창조한다.
 이 시대에는 “인문학을 공부하는 것 그 자체가 부를 재분배하는 의미”가 있다. 하지만 ‘무력의 포위망’ 안에서 빈민들이 정치성을 갖기란 간단한 일이 아니다. 또, 헤게모니를 장악한 이들은 빈민들에게까지 고귀한 인문학의 성문을 열어줄 생각이 없어 보인다. 그들은 오직 빈민을 ‘위험하지 않은 상태’로 유지시키길 바랄 뿐이다. 대학은 부동산학과나 소방학과를 늘리고, 인문학을 축소시키고 있다. 이 상태에서 어떻게 우리가 평등과 자유에 대해서 논의하는 일이 가능할까. 우린 스스로를 구해야 한다.
 빈민들에게 인문학을 가르치는 ‘클레멘트 코스’의 기적은, 그들에게 “고대 아테네에서 실제로 그랬던 것처럼 성찰적 사고와 자율성을 몸에 익히고 공적 세계와 관계를 가질 수”도록 하는 것이다. 우리 순이도 인문학을 통해서 ‘정치적 주체’, 즉 ‘진정한 시민’이 되어야 한다. 이것의 장점은 ‘배제’를 벗어나 합법적 힘을 행사하는 집단에 진입하고, 정치적 기술을 통해 무력의 포위망을 뛰어넘는 것이다. 이것이 공적 삶, 즉 행동하는 삶이다.

 우리 ‘순이들’이 ‘클레멘트 코스’를 밟는다. 뜨거운 강의실에 앉아 소크라테스의 산파술(産婆術)을 통해 비판적 사고를 소유하고, ‘누군가를 위한’ 역사·사회·정치를 배우고, 삶과 지독하게 밀착 된 문학·미술의 주제를 짚어가며 정치적 삶으로 출발한다. 이 긴 여정(얼 쇼리스가 기획한 “하나의 실험”)은 빈민들이 위험하다는 것을, 순이가 “사랑스러운 여러분들의 전체의 일부”(1969년 12월9일 전태일의 편지)라는 당연한 앎을 끊임없이 보여줄 것이다. 물론 빈민들에게 이것은 자칫 소모적인 모험이 될 가능성이 있다. 마주 앉은 빈곤과 끼니를 함께 거르는 사람에게 알콩달콩한 인문학적 낭만은 한 줌 푸성귀보다 나을 바가 없을지 모른다. 그들에게 타협할 수 있는 힘은 결코 쉽게 주어지지 않는다. 그럼에도 그것을 얻기 위해 일어설 때, 위험을 무릅쓰고 추구할 때, 우리는 함께 ‘인문학의 희망’을 믿어야 한다. 그때야말로 기적은 반드시 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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