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장이 사라진 세계에서 ㅣ 바일라 27
이병승 지음 / 서유재 / 2026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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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기란, 자기 꿈을 크게 믿는 것, 불가능이 가능하다고 믿는 마음가짐, 그리고 목표를 향해 한 걸음씩 나아가는 자세다." ✨

책상 위 모니터나 휴대폰 메모장에 모토가 되는 문장 한 줄쯤은 누구나 저장해 두고 살아간다. 내 사무실 모니터 포스트잇에는 위의 문장이 적혀있다. 
《문장이 사라진 세계에서》를 읽는 내내 모니터 옆에 붙은 이 문장에 자꾸만 눈길이 갔다.
아르고스의 검열 감시 시스템을 뚫고, 금서와 금지된 콘텐츠를 위해 은밀하게 모여드는 인물들의 모습이 바로 불가능을 가능하다고 믿는 '용기'의 구체적인 실현처럼 보였다.
소설에서는 AI 기술에 대한 대단함을 과시하기보다, 그 이면에 내포된 '사람과 사람을 이어주는 문장의 힘💡'에 대해서 집중하게 만든다.

....💌
각기 다른 직업과 성향을 지닌 인물들이 '우아한 금서 클럽🚫📚'이라는 공동체에서 '문장'이라는 공통의 언어로 연결되는 과정을 통해 자연스럽게 우리를 아르고스의 촘촘한 감시망 속으로 초대한다.

소설 속 인물의 서사를 따라가다 보니, 어느새 내 안의 '우정❣️'이라는 개념이 새롭게 정의되어 있었다.
우리는 흔히 "우정"을 또래나 오랜 시간 쌓아온 친구 관계로 한정 짓곤 한다. 하지만 금서 클럽 내에서 만나는 사람들의 우정은 금지된 콘텐츠를 공유하고, 나아가 문장의 힘을 믿는 이들이 만들어 가면서,
소설 속 오랜 친구 사이에서 배신과 탐욕으로 파멸하는 클래식한 권력의 서사와 극명하게 대비된다.
같은 취향을 공유하며 끈끈하게 결속하는 ‘느슨하지만, 단단한 취향 공동체🕊️’의 우정은 무엇보다도 매력적으로 다가왔다.

이처럼 길 가다 스쳐 지나가는 인연, 사소한 인사를 나누던 식당 주인처럼 전혀 관계없어 보이던 평범한 이웃들이 위험에 처한 서로를 구하는 서사는 뻔하지만, 생각보다 더 깊은 감동을 준다. 
세상을 움직이고 구원하는 것은 거대한 권력이 아니라, 이토록 작고 다정한 연결🔗이라는 사실을 새삼 일깨워 준다.

이러한 연대는 혈연이라는 전통적인 관계의 한계마저 넘어선다. 금서 클럽 인물들과 그들의 아버지의 관계는 어딘가 조금씩 어긋나 있다.
하지만 이들은 결핍을 피를 나눈 가족이라는 틀 안에서 보상을 받으려 얽매이지 않는다. 대신 금서 속 문장✍️을 통해, 서로의 빈틈을 매워주고, 오해를 정면으로 마주한 끝에 자신들의 자리를 되찾아 간다.

"골동품 할아버지는 흐뭇한 미소를 지으며 사람들 사이를 걸어 다녔다. 입가에 웃음과 미소가 사라지지 않았다. 그렇지. 이게 사람 사는 세상이지! 마음껏 말하고🗣️, 마음껏 토론해라!💭 생각의 춤을 춰라!💃🏻🕺🏻 "(p.207)

...⌨️
그러나 감동의 끝에 작품이 남기는 가장 섬뜩한 질문은 결국 AI 기술의 본질로 향한다. 사회를 안정화하는 완벽한 시스템처럼 보이는 ‘아르고스’는 우리에게 치명적인 의문을 남긴다.
책의 끝 부분에서는 아르고스의 기술 자체보다  '검열의 기준을 누가, 어떻게 정하는가', '무엇을 입력하고 무엇을 믿게 만드는가'라는 질문을 통해 인간의 선택이 더 중요하다는 사실을 흔적처럼 남긴다.

인간의 편견이나 왜곡된 독재자의 신념이 AI의 철학으로 학습될 때 벌어지는 비극은 단순히 소설 속 허구가 아니라,지금 우리가 당면한 현실처럼 다가와 오싹함을 더 한다.😱
결국 이 소설은 AI에 대한 양면성을 다루면서도, 동시에 사람이 지닌 문장의 힘에 대해 말하는 작품이다.

인간이 어떤 문장을 읽고, 어떤 문장을 믿으며, 결국 미래에 어떤 문장을 남길 것인가에 대한 본질적인 질문을 던지게 만든다.💬

기술 발전이 불러오는 장밋빛 미래보다 인간들의 작은 연대와 뜨거운 문장의 힘을 되새겨 보는 흥미로운 시간이었다.🙌🏻

우리는 지금 어떤 문장을 삶의 지표로 삼고 살아가고 있을까. 과연 문장의 힘으로 세상을 바꿀 수 있을까?
그에 대한 대답을 《문장이 사라진 세계에서》에서 찾아보길 바란다.

삶의 지표가 되어물 문장의 힘을 믿는 분💪🏻
AI 기술이 가져올 미래의 편리함과 이면에 대해 생각해 보실 분📀
차가운 SF 세계관 속 숨겨진 인간미와 연대의 감동을 느끼고 싶은 분💛

《문장이 사라진 세계에서》
지은이 : 이병승
펴낸이 : 김혜선
펴낸곳 : 서유재
*본 도서를 출판사로부터 제공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한 서평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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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교와 친해지는 만화 사찰의 상징세계 - 8박사 자현 스님이 아낌없이 들려주는 매혹적인 사찰 이야기
일우 자현 지음, 김재일 그림 / 불광출판사 / 2026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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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자가 없던 시절, 인간은 소리와 그림으로 자신을 표현했다. 글을 읽지 못하는 이들도 소리로 마음의 울림을 간직하고, 그림으로 진리를 보게 하던 곳인 사찰은 아주 오래전부터 가르침의 공간이었다.

"아는 만큼 보인다"라는 말은 사찰을 향하는 발걸음과 더불어 이 책과 함께 시작한다. 사찰의 구조를 이해하고 나면 일주문을 지나 해탈문을 통과해 대웅전으로 향하는 여정 자체가 단순한 발걸음이 아닌, 그 자체로 명상이 된다.🧘

우리나라의 산지 가람(산에 있는 사찰)은 독특한 건축 미학을 보여준다. 해탈문은 대개 누각 아래를 통해 진입하는 '누하진입'의 형태를 띤다. '문 없는 문, 문 아닌 문'을 통과하기 위해 우리는 무의식적으로 고개를 숙이며 낮은 자세를 갖추게 된다.🧎‍♂️‍➡️

몸을 낮추고 걷다 보면, 마침내 탁 트인 대웅전에 이르렀을 때 말로 다 표현할 수 없는 경외감을 마주한다. 그동안 사찰을 찾으면서도 그 특유의 압도감이 어디서 오는지 몰라 서성였던 과거와 달리, 명쾌한 대답을 이 책에서 찾을 수 있었다.🫢

이 구조 속에는 세상의 그 어떤 것도 홀로 존재할 수 없으며, 모든 것은 그물망처럼 서로 연결되어 영향을 주고받는다는 상호 의존의 법칙, 즉 불교의 핵심 가르침인 '연기(緣起)의 논리'가 그대로 녹아 있다.

책 속에 담긴 친절한 그림과 설명 덕분에 어렵게만 느껴졌던 불교의 세계관도 쉽게 와닿는다.

석가모니불, 비로자나불, 아미타불의 차이를 불상의 손 모양(수인)과 함께 유래로 풀어내어, 이제는 사찰에서 불상을 마주했을 때 마음속으로 그 이름을 나직이 불러볼 수 있게 되었다. 🤲

특히 인상 깊었던 부분은 사찰에서 울려 퍼지는 불전사물 중 허공을 나는 조류와 고독한 영혼을 제도하는 '운판'의 상징성에 대한 것인데,
운판의 본래 청동 구름 모양으로 화재를 막아준다는 의미 덕분에 공양간 주방에 걸려 신호용으로도 쓰였다가,
의식의 공간에서 온 우주를 아우르는 자비의 도구로 확장되는 대목은 불교가 만물을 얼마나 서로 조화롭게 받아들이는지 보여준다.👀

자현 스님은 사찰에 관해 설명하는 데 그치지 않고, 자칫 무겁게 느껴질 수 있는 경전의 핵심 구절들을 현재와 다정하게 연결 짓는다.

🪷"수많은 꽃이 다 제각기 아름답고 개성 있으나 모두가 하나처럼 어우러진다(p.246)"라는 화엄의 철학에서 우리는 각자의 다양성을 존중하는 마음을 배운다.

또한 "사람이 살다 보면 잘못되는 경우도 있고, 또 윤회의 군상에서는 나쁜 환경에 처하기도 한다. 그러나 극락에 한 번 가기만 하면 깨달음에 이르기까지 영원한 전진만 있고 퇴보가 없다. (p.255)"라는 정토 신앙의 '불퇴전(不退轉)' 사상은 지친 일상에 구원의 메시지를 건넨다.🙏🏻

불퇴전은 본래 고통스러운 현생의 윤회를 떠나 아미타불의 정토에 왕생한 뒤에야 도달하는 절대적인 후퇴 없는 수행의 상태를 의미한다.

역설적으로 이 사후 구원의 약속은 현실을 살아가는 사람에게 큰 위안이 된다. 비록 지금 발 딛고 있는 삶이 불완전하더라도 궁극의 목적지에 이르는 길에는 오로지 전진만이 기다리고 있다는 믿음을 줄 수 있다.

책이 전하는 문장과 그림을 따라가다 보면 타인에 대한 존중과 배려심은 물론, 지독한 불안을 다독이는 위로의 언어가 되어 현재의 삶을 더욱 가치 있게 가꾸고 싶어진다.✨

바쁘게 돌아가는 일상에서 홀로 고립되었다고 느껴질 때 사찰의 고즈넉한 정취 속으로 가만히 걸어 들어가 보자.💡



《불교와 친해지는 만화
사찰의 상징세계》
글 자현 스님
그림 김재일
발행인 박상근
펴낸곳 불광출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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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로 포인트 - 그저 행동만 할 수는 없다. 우리는 올바른 말을 해야 한다
슬라보예 지젝 지음, 이혜진 옮김, 배세진 해제 / 우중몽 / 2026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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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이 어느 정도 안정되면 우리는 역설적으로 타인의 고통을 외면하곤 한다. 전쟁과 학살, 난민 문제와 같은 인류사적 비극도 어느새 뉴스 속 자극적인 사건으로 소비될 뿐이다. 《제로포인트》 는 바로 그 무관심에 미세한 균열을 내는 책이다.⛓️‍💥

처음 책을 펼치기 전에는 '철학적 지식이 부족한 내가 읽을 수 있을까?'하는 막연한 두려움이 앞서기도 했다. 그러나 책의 흐름을 따르다 보면 가자 지구에서 벌어지는 참혹한 현실을 통해 우리가 외면해 온 불편한 진실과 정면으로 마주하게 된다. 👀

오늘날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의 갈등은 어느 한쪽의 선악으로 단순화하기 어려운 지점에 이르렀다. 지젝은 과거 강제 추방과 종교적 박해를 경험했던 유대인의 역사적 상처를 깊이 인정하면서도, 그 아픈 기억이 또 다른 억압을 정당화하는 논리가 되어서는 안 된다고 지적한다. 이는 특정 민족을 향한 혐오나 비난이 아니다.

"말년에 에델만은 그가 투쟁해왔던 유대인의 자기방어가 선을 넘어 억압될 위험에 빠져있다고 주장하며, 팔레스타인의 저항을 공개적으로 옹호했습니다."(p.216-217)

바르샤바 게토 봉기의 마지막 생존 지도자 마렉 에델만이 말년에 팔레스타인의 저항을 공개적으로 옹호했던 파격적인 행보는 우리에게 엄중한 질문을 던진다. 💬

자신이 속한 집단의 신성불가침한 정체성을 스스로 깨부수면서까지 그가 지키려 했던 것은 무엇인가. 어떤 극단적인 상황에서도 인간의 존엄만큼은 결코 훼손되어서는 안 된다는 보편적 원칙에 대한 선언이라고 볼 수 있다. 어쩌면 지젝이 말하는 '제로 포인트'는 바로 이 지점인지도 모른다.

이 질문은 고스란히 우리 사회의 일그러진 여론 환경으로 이어진다. 인터넷 커뮤니티와 SNS는 이미 거대한 진영 논리의 재판소가 되었다. 많은 사람들은 사실 자체보다 오직 내가 속한 집단을 위협하는 의견을 찾아내 매장하는 데 열을 올릴 뿐이다.⚖️

정의를 울부짖는 군중은 남과 다른 생각을 ‘틀린 것’으로 규정하며 폭력성을 말하면서도, 자신들이 ‘올바른 진영’에 서 있다는 환상 덕분에 죄책감조차 느끼지 않는다.

지젝은 이처럼 양극단의 진영 논리 뒤에 숨어 안전하게 냉소를 즐기는 위선을 향해 가차 없이 일침을 가한다.

💡"여기에는 '이해'할 만한 것이 없습니다. 오히려 우리는 반유대주의에 맞서는 것뿐 아니라 팔레스타인의 권리를 지키는 것까지 양쪽 모두의 극단을 향해야 합니다. "(p.215)

이 선언은 "양쪽 다 잘못이 있으니 사이좋게 지내자"라는 식의 온건한 중립이나 기계적 균형을 뜻하지 않는다. 오히려 양쪽 진영이 짜놓은 가짜 선택지 자체를 거부하고, 양쪽 모두로부터 매장당할 위험을 감수하라는 도발적인 요구다.

지젝은 우리에게 "누구의 편에 설 것인가"를 묻지 않는다. 대신 우리가 정의라고 일컫는 도덕적 태도 자체가 얼마나 기만적인지를 들추어낼 뿐이다. 따라서 이 책은 친절한 해답을 주지 않는다. 📌오직 지독한 불편함만을 남긴다.

지젝이 말하는 ‘제로 포인트’는 희망적인 반전이나 새로운 대안이 싹트는 시작점이 아니다. 그것은 우리가 진실이라 믿었던 기존의 사실이 통째로 붕괴하는 원점이다.

그러나 역설적으로 모든 위선과 환상을 인정하는 순간, 우리는 비로소 진짜 질문을 시작할 수 있다. 세상이 주입하는 평온한 현실을 의심하고, 지배 권력이 '불가능하다'고 못 박아둔 새로운 가능성을 상상하는 힘은 바로 이 제로포인트에서 고개를 든다.📍


이 책은 @woojoos_story 진행으로 우주클럽_철학방에서 함께 읽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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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전의 탄생 - 신의 목소리와 인간의 응답
카렌 암스트롱 지음, 정영목 옮김 / 교양인 / 2026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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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전의 탄생》을 읽기 전까지 나에게 경전이란 그저 무겁고 난해한 책, 혹은 신앙심 깊은 신자들에게나 필요한 '나와는 상관없는 이야기'였다. 

경전을 신의 무결한 말씀으로만 여기는 태도 속에는 경전은 내 삶과 동떨어져 있다는 생각이 깔려있었다.

그러나 이 책은 경전을 신의 영역에서 인간의 영역으로, 즉 당대 사회와 인물들이 겪어낸 참상과 사건의 한복판으로 끌어낸다.

신화가 신들의 이야기이면서도 우리 일상의 담화로 즐겁게 읽히듯, 경전 역시 인간의 삶과 밀접한 관계를 맺고 있는 '이야기'로 시작할 때 전혀 다르게 와닿는다. 이 책은 신앙을 강요하는 딱딱한 교리가 아니다. 시대의 아픔 속에서 켜켜이 쌓인 인간의 내막과 변천사를 담은 거대한 일대기다.

2부. 미토스(신화)🪽

근대 이전의 경전은 분석하고 논쟁하는 대상이 아니라, 온몸으로 받아들이는 '미토스(신화와 수행)'의 영역이었다. 인도의 리시 같은 사람들이 경전의 말을 만트라로 암송하며 내면의 신성을 찾았을 때, 그것은 텍스트에 대한 해석이 아닌 "존재론적 앎"이었다. 

그리스인들이 경전 대신 비극과 영웅 서사를 통해 인간의 이중성을 인식하고 자만을 경계했던 것 역시 미토스의 힘이었다.

경전은 우리에게 괴로움으로부터 한 걸음 물러설 것을 요구하며, 나 자신의 슬픔을 넘어 타인과 심지어 '적의 고통'까지 인정하는 공감을 이뤄내게 했다.

아우구스티누스의 말처럼, 경전의 말을 조각내어 기억에 저장하고 되새기는 명상(인텐티오)의 목적은 명확했다. 시선을 나의 에고(Ego)에서 타인에게로 돌려, 더 이타적이고 동정적인 세상을 위해 힘차게 일하도록 만드는 실천적 동력이었다. 이때의 경전은 문자가 아니라 살아 움직이는 영성이었다.

3부. 로고스(이성)💬
그러나 15세기 인쇄술의 발달과 종교개혁을 거치며 커다란 방향 감각 상실이 찾아왔다. 공동체의 의례와 낭독, 스승과 제자의 역동적 관계 속에서 유연하게 흐르던 종교적 진리가 인쇄된 페이지라는 텍스트에 갇히기 시작한 것이다. 이것이 바로 '로고스(이성과 문자)'의 과잉 시대로의 진입이다.

'오직 경전(솔라 스크립투라)'을 외친 이들은 경전에 단 하나의 의미만 있다고 주장했고, 종교 전쟁의 당파들은 상대를 처단하기 위해 경전의 격언을 무기처럼 인용했다. 뒤이어 등장한 데카르트의 '오직 이성(솔라 라티오)' , 그 후는 모든 전통과 계시를 의심하며 형언할 수 없는 궁극적 실재를 인간 정신의 한계 속으로 축소해 버렸다.

서구 지식인들이 텍스트의 문자적 정답을 두고 피를 흘리며 싸울 때, "예수회는 언어의 한계를 깨닫지 못해 뜻이 말에 짓눌리고 만다"고 했던 17세기 중국 학자들의 비판은 뼈아프다.

성서의 미토스를 로고스로 읽기 시작하면서 경전은 본래의 목적인 '인간 변화'를 잃어버렸고, 현대에 이르러서는 종교를 그저 개인의 복지와 행복을 돕는 '개인 트레이너' 수준으로 사유화하는 주관적 오류를 범하게 되었다.

맺음말. 경전 이후📚
역사서를 읽듯 경전의 변천사를 따라가다 보면, 이성과 감성이 격렬하게 충돌했던 지점들을 마주하게 된다. 그리고 그 충돌을 삶으로 체현해 냈던 '의례'와 글로 기록된 '경전'이 인류 역사에서 얼마나 중요한 축이었는지 다시금 깨닫는다.

인류에게 언제나 완전히 새로운 이야기만 존재하는 것은 아니다. 오랜 신학의 역사와 잔혹한 종교 전쟁, 그리고 현재에도 끊이지 않는 비극 속에서, 경전 속 단 한 줄의 문장은 여전히 누군가의 인생을 송두리째 흔들어 놓는 역동성을 품고 있다.

그렇다면 경전은 오늘날 우리에게 어떻게 작용하고 있을까.👀

로고스(이성)에 갇힌 경전의 오류와 해석에 대한 갈등은, 역설적으로 현재 우리가 무엇을 놓치고 있는지 정확히 알려준다. 타인의 고통을 차단한 채 오직 나의 안락함에만 집중하는 현대 사회의 불평등 앞에서, 경전은 여전히 우리에게 대안적 이상을 일깨우는 목소리(디크르)로 작동하며 생각지 못했던 실존적 해결책을 건넨다.

오늘의 나 역시 내일이면 과거가 될 뿐이며, 지금 우리가 통과하고 있는 시대의 고뇌와 흐름 또한 언젠가 인류 정신사의 새로운 한 페이지를 채우게 될 것이다.

 저자가 책을 통해 전하는 메시지는 바로 여기서 명확해진다. 🔖

"…. 경전에 대한 비판적 태도를 장려했다. 《중용》에 대한 해설 : 그와 의견 교환에 참여하여 그를 자극할 것이고, 그는 생각을 시작하게 될 것이다. 주의 깊이 생각하면 생각이 다듬어지고 혼탁함에서 벗어나게 될 것이다. 그러고 나면 스스로 무언가를 얻게 된다. 그는 이제 자기가 성취한 것을 살필 수 있다. 따라서 의심에서 자유로워져 자기 생각을 행동으로 옮길 수 있다." (p.590-591)

인용한 문장에서 보여주듯, 경전 해석에 대한 맹목적 추종이 아닌 끊임없는 의심과 비판적 토론이 선행되어야 한다. 그렇게 텍스트의 혼탁함을 걷어내고 주체적으로 수용할 때 오늘날 일상의 성스러움을 회복하는 진짜 무기가 된다. 

이로써 우리가 오늘 여기에서 경전을 다시 읽어야 할 이유는 이미 충분해졌다.

이 책은 @woojoos_story 진행으로 우주 서평단에서 함께 읽었습니다.

#우주서평단 #카렌암스트롱 #경전의탄생 #교양인 #벽돌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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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교와 친해지는 만화 사찰의 상징세계 - 8박사 자현 스님이 아낌없이 들려주는 매혹적인 사찰 이야기
일우 자현 지음, 김재일 그림 / 불광출판사 / 2026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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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잡미묘한 세상 속, 흩어진 나를 찾아 떠나는 여행. 이 책과 함께 진정한 불교의 세계로 빠져들어 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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