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제로 포인트 - 그저 행동만 할 수는 없다. 우리는 올바른 말을 해야 한다
슬라보예 지젝 지음, 이혜진 옮김, 배세진 해제 / 우중몽 / 2026년 5월
평점 :
삶이 어느 정도 안정되면 우리는 역설적으로 타인의 고통을 외면하곤 한다. 전쟁과 학살, 난민 문제와 같은 인류사적 비극도 어느새 뉴스 속 자극적인 사건으로 소비될 뿐이다. 《제로포인트》 는 바로 그 무관심에 미세한 균열을 내는 책이다.⛓️💥
처음 책을 펼치기 전에는 '철학적 지식이 부족한 내가 읽을 수 있을까?'하는 막연한 두려움이 앞서기도 했다. 그러나 책의 흐름을 따르다 보면 가자 지구에서 벌어지는 참혹한 현실을 통해 우리가 외면해 온 불편한 진실과 정면으로 마주하게 된다. 👀
오늘날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의 갈등은 어느 한쪽의 선악으로 단순화하기 어려운 지점에 이르렀다. 지젝은 과거 강제 추방과 종교적 박해를 경험했던 유대인의 역사적 상처를 깊이 인정하면서도, 그 아픈 기억이 또 다른 억압을 정당화하는 논리가 되어서는 안 된다고 지적한다. 이는 특정 민족을 향한 혐오나 비난이 아니다.
"말년에 에델만은 그가 투쟁해왔던 유대인의 자기방어가 선을 넘어 억압될 위험에 빠져있다고 주장하며, 팔레스타인의 저항을 공개적으로 옹호했습니다."(p.216-217)
바르샤바 게토 봉기의 마지막 생존 지도자 마렉 에델만이 말년에 팔레스타인의 저항을 공개적으로 옹호했던 파격적인 행보는 우리에게 엄중한 질문을 던진다. 💬
자신이 속한 집단의 신성불가침한 정체성을 스스로 깨부수면서까지 그가 지키려 했던 것은 무엇인가. 어떤 극단적인 상황에서도 인간의 존엄만큼은 결코 훼손되어서는 안 된다는 보편적 원칙에 대한 선언이라고 볼 수 있다. 어쩌면 지젝이 말하는 '제로 포인트'는 바로 이 지점인지도 모른다.
이 질문은 고스란히 우리 사회의 일그러진 여론 환경으로 이어진다. 인터넷 커뮤니티와 SNS는 이미 거대한 진영 논리의 재판소가 되었다. 많은 사람들은 사실 자체보다 오직 내가 속한 집단을 위협하는 의견을 찾아내 매장하는 데 열을 올릴 뿐이다.⚖️
정의를 울부짖는 군중은 남과 다른 생각을 ‘틀린 것’으로 규정하며 폭력성을 말하면서도, 자신들이 ‘올바른 진영’에 서 있다는 환상 덕분에 죄책감조차 느끼지 않는다.
지젝은 이처럼 양극단의 진영 논리 뒤에 숨어 안전하게 냉소를 즐기는 위선을 향해 가차 없이 일침을 가한다.
💡"여기에는 '이해'할 만한 것이 없습니다. 오히려 우리는 반유대주의에 맞서는 것뿐 아니라 팔레스타인의 권리를 지키는 것까지 양쪽 모두의 극단을 향해야 합니다. "(p.215)
이 선언은 "양쪽 다 잘못이 있으니 사이좋게 지내자"라는 식의 온건한 중립이나 기계적 균형을 뜻하지 않는다. 오히려 양쪽 진영이 짜놓은 가짜 선택지 자체를 거부하고, 양쪽 모두로부터 매장당할 위험을 감수하라는 도발적인 요구다.
지젝은 우리에게 "누구의 편에 설 것인가"를 묻지 않는다. 대신 우리가 정의라고 일컫는 도덕적 태도 자체가 얼마나 기만적인지를 들추어낼 뿐이다. 따라서 이 책은 친절한 해답을 주지 않는다. 📌오직 지독한 불편함만을 남긴다.
지젝이 말하는 ‘제로 포인트’는 희망적인 반전이나 새로운 대안이 싹트는 시작점이 아니다. 그것은 우리가 진실이라 믿었던 기존의 사실이 통째로 붕괴하는 원점이다.
그러나 역설적으로 모든 위선과 환상을 인정하는 순간, 우리는 비로소 진짜 질문을 시작할 수 있다. 세상이 주입하는 평온한 현실을 의심하고, 지배 권력이 '불가능하다'고 못 박아둔 새로운 가능성을 상상하는 힘은 바로 이 제로포인트에서 고개를 든다.📍
이 책은 @woojoos_story 진행으로 우주클럽_철학방에서 함께 읽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