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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정한 죽음 - 생의 끝에서도 삶의 품격을 잃지 않는 지혜
능인 지음 / 불광출판사 / 2026년 10월
평점 :
"시님이 외로움이 뭔지 아요?"
다만 홀로 걷는 길 위에 외로움이 예고 없이 찾아오는 날이면, 어설프게 고춧가루를 들고 서 있던 나를 호통치며 환하게 웃으시던 할머니의 얼굴과 뜨거운 된장찌개 냄새가 마음속에 먼저 번져온다. 그러면 신기하게도, 차갑게 얼어붙던 내 마음의 한복판에도 잠시 단정한 쉼표 하나가 가만히 놓인다. (p.145)
모든 순간은 질문이고, 삶은 그에 대한 답을 찾아가는 여정이다.
능인 스님의 《단정한 죽음》은 호스피스 병동이라는 공간을 통해
죽음 곁에서 간병하는 보호자의 마음,
마지막 고통과 싸우는 환자의 마음,
저마다의 사연으로 가족과의 작별 인사조차
나누지 못한 이들의 마음을 들여다본다.
스님은 이들의 이야기를 가만히 듣되, 섣불리 대답하지 않는다.
질문을 던진 본인이 직접 답을 찾을 수 있도록 적당한 거리를 두면서,
스님 자신의 삶에 놓인 물음에도 답을 찾아간다.
섣불리 짐작할 수 없었던 영수 님의 이야기,
간병하는 지선 님에게 건넨 짧은 쉼의 권유,
아프지만 괜찮다는 환자의 말 뒤에 숨겨진 두려움과 외로움까지
조금이나마 알아갈 수 있었다.
만약 내가 병상에 누워 죽음을 기다린다면,
마지막 순간 내 이야기를 가만히 들어주는
사람이 곁에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깊은 위로를 받을 것 같다.
"아름다운 죽음은 무엇일까.
남겨진 사람들이 마지막 사랑을 전할 수 있었던 시간을
말하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p.168)
책을 읽으면서 많이 울었다.
문장에 담긴 타인의 마음을 헤아리다가
외할아버지의 장례식장이 떠올랐다.
애달픈 곡소리가 들리는 와중에도 남겨진 가족들은 마주 앉아 밥을 뜨고,
서로의 안부를 묻고, 지난 이야기를 나누며 웃음을 지었다.
외할아버지는 먼 곳으로 긴 여행을 떠나셨지만,
'죽음'이라는 매듭 앞에서 오히려 더 끈끈하게 이어진 가족애를 느꼈다.
이번 책에는 편지지가 동봉되어 있었다.
책을 덮고 소중한 사람에게
마음을 전해보라는 불광출판사의 뜻깊은 기획이었다.
펜을 쥐고 미래의 나에게, 그리고 곁에 있는 남편에게 편지를 적어 내려갔다.
손편지는 복잡한 생각과 감정을 차분히 엮어내는 도구다.
고마움과 미안함이 뒤섞인 마음을 한 글자씩 써 내려갔다.
《단정한 죽음》을 통해 남겨진다는 것은 상실로 끝나는 일이 아니라,
서로를 더 깊이 끌어안는 과정임을 배웠다.
훗날 남편과 내가 서로의 마지막을 배웅하게 될 때
조금은 덜 후회할 수 있도록,
지금 우리에게 주어진 시간을 함께 잘 살아가고 싶어졌다.
"평생은 너무 멀고 막막했지만
한 학기, 한 계절이라면 조금 가볍게 바라볼 수 있을 것 같다.
(•••) 오늘에서 다음 계절까지
진희와 내가 함께 바라봐야 할 시간은 딱 그만큼이면 충분했다." (p.203)
무너지고 싶은 마음이 일렁일 때마다
진희에게 능인 스님이 했던 당부가 생각날 것 같다.
미래의 나에게 쓴 편지 끝자락에는 '조금 더 버텨보기'라는 다짐을 남겼다.
지금껏 잘해 왔고, 앞으로도 잘할 것이며,
혹시 잠시 주저앉아 울더라도 툭툭 털고 일어날 것이라고.
단정한 죽음이란 생을 열심히 살아가다 언젠가 죽음에 당도할 우리가,
지금 곁에 있는 사람들과 작은 행복을 나누고
오늘을 즐겁게 마무리하는 일에서부터 시작된다고 생각한다.
정말 평범하고도 소박한 하루가 제일 소중한 지금이다.
《단정한 죽음》
지은이 능인 스님
발행인 박상근
펴낸곳 불광출판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