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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도였던 날들
AJ 덩고 지음, 임슬애 옮김 / 미메시스 / 2026년 9월
평점 :
🌊
“밀려오는 파도를 막을 수는 있지만,
파도를 타는 법을 배울 수 있다.”
_존 카밧진
며칠 전 외할아버지가 돌아가셨다.
갑작스러운 부고 소식에 모든 가족이 경황없이 장례를 치르면서도
서로를 부둥켜안으며 위로를 나누었다.
인생에서 소중한 존재를 잃는 일은 예고 없이 밀려드는 거대한 파도와 같다.
감당할 수 없을 만큼 커다란 상실감 속에서도 남아 있는 이의 시간은
속절없이 흐른다.
그래픽 노블 《파도였던 날들》은
골육종으로 세상을 떠난 연인 크리스틴에 대한 기억을
서핑의 역사와 결합해 풀어낸 치유와 회복의 기록이다.
작가 AJ 덩고는 사랑하는 연인을 잃은 지독한 슬픔에서 도망치는 대신
서프보드 위에 오른다.
파도를 맞이하는 서로 다르면서도 같은 ‘서핑’에 대한 두 이야기가 교차하며,
작가가 상실을 견디고 자신의 삶을 바라보는 과정이 펼쳐진다.
과거 서퍼들의 기원을 조명하는 모래 빛과
작가와 크리스틴이 나누었던 사랑을 담은 청록빛이 책 전체를 아우르고 있다.
“시선이 가는 곳으로 몸과 보드가 간다.
시선이 곧 균형의 시작.🏄”
모래 빛의 세계에는 서핑을 전 세계에 알린 하와이의 영웅 ‘듀크 카하나모쿠’와
최초의 서핑 책을 쓰고 서프보드의 기술적 혁신을 이끈 ‘톰 블레이크’가 등장한다.
듀크가 서핑이 지닌 찬란한 생동감을 상징한다면,
톰은 내면에 상처를 입은 이들에게 서핑이 어떻게 위로를 건네는지 보여준다.
“내가 죽으면, 네 그림을 통해 계속 살고 싶어.
우리 이야기를 전하겠다고 약속해 줘.”💍
크리스틴이 떠난 후 남겨진 공허함은 그대로지만,
상실의 고통은 한곳에 머물러 있지 않다.
파도처럼 밀려왔다가 밀려가고, 어느 순간 잊고 있던 기억을 데려왔다.
그래서일까. 청록빛 바다에서는 두 사람이 나누었던 사랑과
시간이 파노라마처럼 애틋하게 흐른다.
여덟 해 동안 일곱 번의 폐 수술을 버텨내면서도
신체적 한계가 자신을 정의하도록 내버려두지 않았던
크리스틴의 삶은 그림 속에 여전히 살아 숨 쉬고 있다.
〰️
서평을 쓰는 내내 작가와 함께 책 속의 크리스틴을 추억하다 보니,
나도 저 멀리 잊고 있던 할아버지와의 기억을 하나씩 꺼내게 되었다.
어린 시절 방학이면 찾아갔던 외할아버지 집과
사촌 동생들과 함께 뛰어놀던 시간이 떠올랐고,
나도 모르게 그 기억의 조각들을 흐르는 눈물과 함께 이어 붙이고 있었다.
누군가는 엄마보다 더 울고 있는 나를 보고
“외할아버지와 애틋했나 보네요.”라고 말했지만,
가족을 잃은 슬픔은 함께한 시간의 길이나
관계의 이름만으로 헤아릴 수 없다는 것을 이번에 알게 되었다.
소중한 사람을 잃고 여전히 슬픔의 바다 한가운데에 있는 나에게
책 《파도였던 날들》은 조용하지만, 큰 위로를 전해주었다.
밀려오는 파도를 막을 수는 없지만, 그 파도 속에서 흘러가는 마음을 바라보며
지금의 나는 조심스레 슬픔의 파도를 지나고 있다.
《파도였던 날들》
지은이 AJ 덩고
옮긴이 임슬애
발행인 홍예빈
발행처 미메시스
-본 도서를 출판사로부터 지원받아 작성된 주관적 서평입니다.
-미메시스는 열린책들의 예술서 전문 브랜드입니다.
세계 어디서든 이 책이 팔릴 때마다
한 권에 10센트씩 암 치료와 연구에 기부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