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끼리를 목욕시키는 여자
화바이룽 지음, 김소희 옮김 / 서사원 / 2026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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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비로운 표지와 제목에 이끌려 홀린 듯이 이야기 속으로 빠져들었다. 도파민이 터지는 치정 관계와 살인을 다루고 있는 대만 소설이라 그런지 더욱 매혹적으로 다가왔다. 특히 대만 특유의 기후적 특성이 배경에 짙게 깔려 있어, 마치 대만의 샹산(코끼리 산) 전망대에 앉아 책을 펼쳐 든 착각마저 들었다.

소설 제목에 등장하는 '코끼리🐘'에 꽂혀 찾아본 결과, 놀랍게도 코끼리는 일부일처제 동물이 아니었다. 철저히 남편이 없는 모계 가족의 형태로 살아가며, 수컷 코끼리는 육아에 전혀 관여하지 않은 채 쿨한 이별과 자유연애를 추구한다고 한다. 이야기의 주인이자 주인공인 뤼정팡의 남편, '밍런'의 특성이 이와 쏙 빼닮았다.

"내가 여기에 온 건, 그 사람을 이해하기 위해서라고. 역겨워만 하고 있으면 이해할 수가 없잖아."

평소 내가 자주 하는 말 중 하나가 "이해할 수 없다"이다. 실제로 타인을 완전히 이해하고 수용하기란 참 어려운 일이다. 나는 결코 그 사람이 될 수 없고, 그와 동일한 생각을 할 수도 없기 때문이다.

참 이상하게도 사랑이 반드시 '이해'라는 전제 위에서 시작되는 것은 아니지만, 오랜 연인 관계를 유지하기 위해서는 이해가 필수적인 모호한 감정이다.

'내일의 사람'이라는 그의 이름 풀이처럼 늘 내일만을 바라보며 살아가는 밍런을, 정팡이 온전히 이해하기란 애초에 불가능했을지도 모른다. 욕망에 갇혀 비밀을 유지하기 위해 처절하게 노력했던 밍런의 모습을 코끼리의 이기적인 생태를 통해서나마 조금은 이해해 보려고 노력했다.

소설 중심 서사는 코끼리에서 까마귀로, 그리고 '피안(彼岸)'의 세계로 확장된다. 🐘🐦‍⬛ 
과거 뱃사람들은 까마귀가 바다 위를 배회하는 것을 보고 육지가 가까워졌음을 알았다고 한다. 불교 용어인 피안은 '저쪽 언덕', 즉 '건너편'을 뜻하며, 우리가 사는 고통의 세계인 '차안(此岸)'과 대비되는 고통이 없는 이상적인 세계를 말한다.

정팡은 이혼을 원하는 밍런에게 화도 내보고, 분노를 표출하며 감정을 격렬하게 드러낸다. 하지만 밍런은 한결같이 그녀의 모습을 방관하며 흘려버린다. 자신만의 언어로 소통하던 밍런은 지독하고 이기적인 침묵 끝에, 극의 끄트머리에 이르러서야 자신의 비밀을, '밍런답게' 알린다.

정팡은 전남편의 숨겨진 진실을 마주한 순간, '꿈'이라는 단어 속에 묻어두기로 한다. 커다란 코끼리를 씻기듯 정성스레 과거를 씻겨낸 그녀는 마침내 어떤 미련도 남기지 않은 채 홀가분하게 그를 떠나보낸 것이다. 비로소 정팡은 그가 숨겨둔 비밀의 실체를 온전히 마주함으로써 밍런의 오랜 단절로부터 해방된다.

비밀을 사수하기 위해 처절하게 버텨온 밍런이나, 가혹한 현실 앞에서도 좌절하지 않고 새 삶을 결심한 정팡이나, 결국 두 사람 모두는 저마다의 언덕, 각자의 이상향인 피안을 향해 가고 있었던 게 아닐까.💡

삶에는 늘 예기치 못한 순간들이 찾아온다. 심장이 쿵쾅거리고 눈물이 앞을 가릴지라도, 그럼에도 우리는 현재를 살아내야 한다.

두 사람이 만나 결혼하고, 그 속에서 서로를 이해하며 살아간다는 것이 얼마나 지난한 일인지 새삼 느낀다. '동반자'라는 이름 아래 묶여 있다가도, 결국 삶의 마지노선까지 내몰리면 어쩔 수 없이 배우자를 떠올리게 되는 인간의 하찮고도 애틋한 본성을 이 책을 통해 깊이 배워간다.✨

🔖추천합니다.
타인에게 상처받고, 치유를 경험하고 싶은 사람 ❤️‍🩹
묵직한 서스펜스와 인간의 본성을 탐구하고 싶은 독자📝
대만 특유의 몽환적이고 독특한 미학에 목마른 사람🧐

이 책은 @woojoos_story 진행, 서사원출판사 도서 지원으로 우주서평단에서 함께 읽었습니다.


《코끼리를 목욕시키는 여자》
지은이 화바이룽
옮긴이 김소희
펴낸곳 서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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