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 인생에 클래식이 있길 바래 - 모차르트, 베토벤, 쇼팽 우리가 사랑한 작곡가와 음표로 띄운 37통의 편지
조현영 지음 / 현대지성 / 2024년 5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피아니스트이자 작가, 예술강의기획 아트앤소울 대표인 조현영은 2016년에 펴낸 『조현영의 피아노 토크 – 클래식을 즐기는 여섯 가지 방법』(다른)를 시작으로 최근까지 꾸준히 클래식 감상과 음악 교육에 관한 책을 써왔다. 네이버 오디오 클립에서 <조현영의 올 어바웃 클래식>을 진행하고 있으며 2023년에는 국가공무원인재개발원 명강사로 선정되었다.



  『네 인생에 클래식이 있길 바래』는 그의 여덟 번째 책이다. 조금이라도 클래식에 관심이 있거나 강의를 통해 접한 분이라면 이미 친숙한 이름이지 않을까 생각될 정도로 활발한 활동을 하고 있다. 나는 클래식에 무지한 편이라 이번 책으로 처음 알게 되었다.



  저자의 활동 이력과 펴낸 책을 살펴보니 타깃 독자의 범위 또한 넓어 보였다. 음악실에서 클래식을 처음 접하는 십 대 학생, 교양 삼아 클래식 상식을 쌓고 싶은 초심자 대상의 입문서 뿐만 아니라 심도 깊게 서양음악사를 파악하고픈 독자를 위한 책도 펴냈다.



  이 책은 그저 친숙한 클래식으로 독자를 유혹하는 책이 아니다. 20년차 피아니스트이자 클래식 인문학 강의를 이어온 저자가 음악과 인생에 대한 생각을 펼쳐놓은 책이다. ‘하고 싶은 일을 하려면 먼저 해야만 하는 일을 묵묵히 해내야 하는 것을 음악을 통해 깨우쳤다’(12쪽)는 저자는 이처럼 음악과 동행하는 인생에서 얻은 삶의 세밀한 통찰을 독자에게 건넨다.







  책은 클래식을 처음 접하는 이를 위한 1장, 인간관계를 생각하게 하는 2장, 사랑, 일과 성공을 다룬 3장과 4장, 취향을 가꾸는 법을 전하는 5장, 클래식을 더 깊이 있기 즐기기 위한 추가 해설이 포함된 6장으로 구성되어 있다.



  각 장의 주제와 어울리는 일화가 있는 작곡가들의 사연과 저자에게 개인적으로 의미 있는 음악들을 소개한다. 음표로 띄운 추신에서 작품의 뒷이야기와 감상법과 더불어 바로 음악을 들을 수 있는 QR코드를 제공한다.



  이는 최근 출간되는 책에서 누릴 수 있는 특별한 경험이다. 예전엔 클래식 입문서를 읽어도 음악을 들으려면 음반을 직접 사서 들어야 했다. 그런데 음반을 사서 들으려고 해도 오케스트라별, 지휘자별, 연주자별로 어찌나 종류가 많은지 뭘 선택해야 할지 도무지 기준을 잡을 수 없어 포기하기 일쑤였다.



  이 책에선 저자가 직접 고른 클래식 실황 영상과 앨범 수록곡을 QR코드를 통해 들을 수 있다. 유튜브에서 양질의 음악을 바로 들을 수 있다니 얼마나 놀라운 세상인가 또다시 감탄하게 된다. 재생목록에는 세계에서 활약하고 있는 한국인 연주자들의 연주도 대거 포함되어 있다.





  음악을 직접 검색하고 고르는 걱정에서 해방된 독자는 좀 더 여유롭게 클래식과 삶에 관한 저자의 시선을 주목할 수 있다. 클래식은 집중과 침묵이 필요한 음악이다. 상념을 잠시 잊게 만드는 몰입의 순간은 흡사 명상과 같다. 작곡가의 힘든 위기를 반영하듯 구성된 악장별 감상을 접하면 길고 따분하기만 했던 음악에서 삶을 한 장면을 발견하게 된다.



  ‘도대체 왜 클래식을 들어야 하나?’ 묻는 사람에게 오랜 시간을 견디고 살아남은 고전은 그만큼의 가치가 있다는 말은 어쩐지 해묵은 변명처럼 다가온다. 문학도 그렇고 클래식 음악도 그렇고 고전을 권하는 사람들의 추천사는 왜 항상 판에 박힌 소리 뿐일까하는 생각도 든다.



  하지만 사실 저 ‘세월이 검증한 가치’라는 건 몇 마디 말로 설득할 수도 없거니와 고유한 개인의 경험은 누구도 온전히 전달할 수 없기에 택한 최선의 대답이 아닐까. 각자 지금 처한 환경과 접한 시기에 따라 매번 다른 감정을 자아내는 복잡한 매력이 있으니 그저 직접 읽어보라 직접 들어보라 권할 수밖에 없는 처지인 것이다.



  여전히 1시간에 가까운 긴 곡을 집중력을 유지하며 듣기란 쉽지 않지만 인생이든 사람이든 음악이든 익숙해지기 위해선 오랜 시간이 필요하다는 저자의 말을 믿고 이제부터 천천히 다가가 보는 건 어떨까. 관심은 있지만 바빠서 직접 찾아볼 여력이 없다면 책의 후반부에 실린 수록 리스트와 추천 목록을 전부 모은 통합 재생목록을 들어봐도 좋다.



추천하고픈 사람

음악 수행평가 이후 클래식과 담쌓은 사람

클래식 음악 제목을 못 읽는 사람

클래식 음악 공연이 왠지 불편한 사람

피아니스트 임윤찬의 반 클라이번 콩쿠르 영상을 못 본 사람

검색도 귀찮다! QR코드로 바로 추천 음악을 듣고 싶은 사람



* 이 서평은 네이버 이북까페를 통해 출판사 서평단에 선정되어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했습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직업으로서의 정치·직업으로서의 학문 현대지성 클래식 57
막스 베버 지음, 박문재 옮김 / 현대지성 / 2024년 5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막스 베버는 독일의 사회학자이자 정치경제학자로 카를 마르크스, 에밀 뒤르켐 등과 함께 현대 사회학을 창시한 사상가 중 한 명으로 꼽힌다. 이 책은 뮌헨 대학 총장의 초청으로 사회적 자유주의 또는 좌파적 자유주의 성향의 학생단체인 자유학생연합이 주최한 “직업으로서의 정신노동”이라는 주제의 대중 강연회에서 두 번에 걸쳐 강연한 내용을 정리한 것이다. “직업으로서의 학문”은 1917년 11월 7일에, “직업으로서의 정치”는 1919년 1월 28일에 행해졌다.



  베버는 제1차 세계대전 패배와 독일혁명 발발, 독일 제국 붕괴와 공화국 수립으로 사회 전체가 혼란에 빠진 가운데 새 시대의 나아갈 길을 제시해 주길 간절히 바라는 독일 젊은이들 앞에 섰다. 베버는 “예언자”나 “구세주”를 찾는 이들에게 학문의 책무와 정치에 책무에 대해 논한다.




  1부 직업으로서의 정치에서는 정치와 국가, 지배의 내적조건과 외적조건을 분석한 후 근대국가에 등장한 직업 정치가에 대해 좀 더 자세히 살펴본다. 직업 정치가의 여러 유형과 근대 전문 관료층의 발전, 군주와 의회, 전문 관료와 정치 관료의 차이를 논한다. 근대 정당 출현과 최근 정당 구조를 살피며 영국과 미국의 사례를 토대로 독일의 현재를 진단한다.



  베버는 직업 정치가의 내적 조건으로 열정, 책임감, 안목을 꼽는다. 이어지는 정치 본령으로서의 윤리를 다루는 부분이 흥미로웠다. 정치와 절대 윤리, 신념 윤리와 책임 윤리, 정치와 종교 윤리 부분은 조금 까다로운 부분이었는데 옮긴이가 저자가 전하고자 하는 핵심과 인용된 사례의 배경을 각주에 상세히 실어주어 이해에 큰 도움이 되었다.




(...) 전쟁은 끝남과 동시에 적어도 도덕적인 논란도 종결되어야 합니다. 이를 가능하게 하는 것은 윤리 문제가 아니라, 오직 냉철한 현실 인식과 고결한 기사 정신, 그중에서도 특히 품위를 지키고자 하는 태도입니다.


막스 베버 『직업으로서의 정치·직업으로서의 학문』 (2024, 현대지성) p.104~105




윤리를 지향하는 모든 행위는 두 가지 서로 다른, 근본적으로 양립할 수 없는 원칙 중 하나를 따르게 되어 있습니다. 즉, 모든 행위는 신념 윤리를 지향할 수도 있고 책임 윤리를 지향할 수도 있습니다. 물론 그렇다고 해서 신념 윤리에는 책임이, 책임 윤리에는 신념이 결여되어 있다는 말은 아닙니다. 그러나 사람이 신념 윤리에 속한 원칙을 따라 행동하는 것―종교적으로 표현하자면 “기독교인은 옳은 것을 행하고, 결과는 하나님에게 맡긴다”―과 책임 윤리에 속한 원칙을 따라 행동하는 것―자신의 행동으로 인한 (예견 가능한) 결과에 대해서는 책임을 져야 한다는 것―은 완전히 다르고 엄청난 차이가 있습니다.


막스 베버 『직업으로서의 정치·직업으로서의 학문』 (2024, 현대지성) p.109~110




(...) 중요한 것은 나이가 아니라 삶의 현실을 냉철하게 직시할 줄 아는 훈련된 시각과 그 현실을 견뎌내고 내적으로 맞설 수 있는 능력입니다. 


막스 베버 『직업으로서의 정치·직업으로서의 학문』 (2024, 현대지성) p.128




  2부 직업으로서의 학문에서는 직업으로서의 학문의 외적, 내적 조건을 알아보고 진보 과정으로서의 학문의 의미, 교수와 지도자의 차이, 사실판단과 가치판단의 구분, 학문의 역할과 한계에 관해 논한다. 



  베버는 대학교수가 강의실에서 자신의 개인적인 입장 표명을 피해야 한다는 주장을 펼치면서 서로 다른 질서들이 싸우고 있는 이 세계에서 특정한 실천적 입장을 학문적으로 옹호하는 것은 원칙적으로 무의미하다고 말한다.





대학교수가 강의실에서 왜 이 두 가지를 모두 해서는 안 되는지 묻는다면, 예언자와 대중 선동가는 강의실의 강단에 서서는 안 된다고 대답해야 합니다. 그리고 예언자와 대중 선동가에게 거리로 나가서 대중 앞에서 말하라고 말해주어야 합니다. 즉, 누구나 비판할 수 있는 곳에서 말하라는 뜻입니다.


막스 베버 『직업으로서의 정치·직업으로서의 학문』 (2024, 현대지성) p.177




모든 쓸모 있는 교수의 첫 번째 책무는 자신의 학생들에게 그들의 당파적 견해에 불리한 사실들을 인정하는 법을 가르치는 것입니다.


막스 베버 『직업으로서의 정치·직업으로서의 학문』 (2024, 현대지성) p.179



자신과 생각이 다른 수강생들이 있을지 모를 강의실에서 침묵하도록 강요받는 수강생들 앞에서 교수가 자신의 신념을 일방적으로 피력하는 것은 용기라고 하기에는 부끄러울 정도로 너무나 쉽고 편안한 일입니다. 


막스 베버 『직업으로서의 정치·직업으로서의 학문』 (2024, 현대지성) p.187



  옮긴이 박문재의 해제는 제1차 세계대전 이후 시대 상황과 막스 베버의 삶에 대한 배경이 부족한 독자들의 빈 공간을 꼼꼼하게 채워준다. 사회·정치적 배경, 사상적 배경, 당시 독일의 상황을 설명하고 베버의 삶과 저작, 사상에 대해 간추린 후 『직업으로서의 정치』와 『직업으로서의 학문』 개요가 이어진다. 주요 항목별로 알기 쉽게 요약되어 있어 본문을 읽은 후 자신이 파악한 내용과 비교하며 정리하기 좋다.



  2018년에 나온 막스 베버의 『프로테스탄트 윤리와 자본주의 정신』에 이어 이번 책도 박문재 번역으로 나왔다. 현대지성클래식 시리즈에 박문재 번역이 많은데 그간 매끄러운 번역으로 그의 작업에서 만족을 느낀 독자라면 이번 책에서도 같은 만족을 느낄 것이다.



* 이 서평은 네이버 이북까페를 통해 출판사 서평단에 선정되어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했습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있는 힘껏 산다 - 식물로부터 배운 유연하고도 단단한 삶에 대하여
정재경 지음 / 샘터사 / 2024년 4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저자 정재경은 매거진 에디터, 뷰티 브랜드 마케터를 거쳐 현재 라이프 스타일 브랜드 '더리빙팩토리'를 운영하고 있다. 브런치에 연재했던 식물 200여 개를 돌보며 변화해가는 삶을 다룬 글이 추천작으로 선정되어 우리 집이 숲이 된다면(2018)을 출간했다. 첫 책 이후로 꾸준히 식물과 삶에 대한 책을 펴내고 있다.


 

이 책은 저자가 월간 <샘터>'반려 식물 처방'이라는 주제로 33개월 동안 연재했던 글을 바탕으로 엮은 것이다. 저자는 지난 7년을 돌아보며 식물에게서 스스로 사는 법, 자기주도적인 삶을 배웠다고 고백한다. 식물을 곁에 두기 시작하면서 깨달은 삶의 통찰, 식물이 연이 되어 만난 사람들과의 일화, 글쓰기에 대한 헌신과 노력, 꾸준히 이어온 도전을 향한 응원 등을 담고 있다.


 

책은 4개의 장으로 구성되어 있다. 1장과 2장은 비교적 제목과 실린 글들의 주제가 통일성이 있어 요약할 수 있었다. 1장 그럼에도 불구하고 싹을 틔우는은 '생명력'에 관한 이야기, 2장 우리에겐 각자의 이야기가 있다는 식물과 얽힌 '사람들'과의 이야기로 읽었다.


 

3장 생명이 있는 모든 것은 있는 힘껏 산다는 이 책의 제목을 품은 문장으로 문을 연다. 식물이 힘껏 생명을 이어나가듯 힘을 내보자는 의미를 내포한 글을 모은 것 같은데 여기서부터는 식물에 경탄하는 인간이 아니라 인간 정재경의 삶이 전면에 드러나는 듯하다. 식물의 존재감은 엑스트라로 수준으로 축소된다. 4장 우리는 함께 자란다는 읽으면서 무얼 말하고 싶은 건지 잘 정리가 되지 않았다. 식물은 제목에만 등장할 뿐이고 이어지는 일화들을 주제와 연결하기엔 무리가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 책에 관심을 갖게 된 이유는 정세랑 작가의 추천사 때문이었다. 정 작가가 어떤 기준에서 추천사를 쓸 책을 선정하는지는 알 수 없었다. 다만 정 작가의 소설을 감명 깊게 읽어왔기에 나름 신뢰와 호감을 갖고 있었던 모양이다. 정재경 작가의 첫 책을 읽고 식물과 함께 하는 방식을 완전히 바꾼 경험이 있다고 언급했기에 궁금했다. '생명들과 단절되어 고립된 현대인들에게 연결점을 다시 찾아주는 글을 쓴다.'라고 정리하기도 했다.


 

벌써 여섯 번째 책이라고 하는데 나에겐 이 에세이가 첫 책이었다. 작가에 대해 너무 모른다는 생각이 도서관에 첫 책 우리 집이 숲이 된다면도 찾아 읽었다. 취미/원예 카테고리의 책이고 좀 더 실용적인 목적에 초점을 맞춘 책이다. 브런치에 연재했던 글이어서 그런지 사람들에게 좋은 것을 더 널리 알리고픈 의지가 곳곳에서 묻어났다. 실내 공간을 아름답게 채우고 있는 식물을 찍은 사진들도 감각적이다.


 

첫 책의 출간 시점을 생각하면 한국에 반려식물, 식집사 같은 말이 유행하기도 전에 앞서 플랜테리어 트렌드를 선도한 인물 같았다. 공간에 적합한 식물을 나름대로의 시행착오 끝에 정리한 부분은 그야말로 초보자들에게 유용한 꿀팁으로 가득했다. 자신의 경험을 전달하는 것에 작가 스스로가 신난 듯한 느낌이 들었다.


 

그 책을 읽은 뒤 이 책을 다시 읽으니 느낌이 달랐다. 마감의 피로가 느껴지는 글이랄까.. 왜일까 주제가 좀 더 진지해져서일까. 아쉬웠다.


 

이것은 곁다리인데 있는 힘껏 산다를 읽는 도중 정세랑 작가가 공저로 참여한 책에 관한 에세이도 읽게 됐다. 거기서 우연히 그가 추천사를 쓰는 이유도 알게 되었다. ‘이 책이 의미 있으니 한 번이라도 들여다봐주세요하고 말을 거는 목적이라고 했다.


 

추천사가 책의 판매에 크게 영향을 미치지 못함에도 계속 쓰는 이유는 무엇일까? ‘영향 없음의 가뿐함 속에, 번거로운 애정을 쏟아보는 일이라고 말했지만 나처럼 내적 친밀감이 생긴 인물의 독서 취향에 대한 호기심으로 책을 고르는 독자도 있으니 아주 소용없는 방법은 아닌 것 같다.



알고 보니 정세랑 작가는 추천사를 꽤 많이 쓰는 편이라고 한다. 그래서 나름의 추천사 쓰기 기준도 세워두었다는데 나는 그동안 그가 뿌린 씨앗을 많이 발견하지 못했다. 내가 그의 추천사를 쏙쏙 찾아내기엔 관심사가 협소했을지도 모르겠다 생각했다. 이 책을 읽으면서 내 기대와는 달라 조금 아쉬웠지만 그럼에도 다음번에 발견할 책에도 관심을 가져보려고 한다.

 


시간순으로 정리한 것인지 편집 과정에서 분리한 것인지 모르겠지만 연재한 글에 편차가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3부와 4부는 식물 에세이라는 테마와는 조금 거리가 있는 글로 다가왔다. '반려 식물 처방'이라는 주제 아래 잡지에 이런 글을 실었다니 조금 의아했다. 허나 에세이에 정해진 틀은 없으므로 후반부의 글은 식물로 촉발된 다양한 영감을 풀어놓는 시도로 보았다.


 

지금 내가 궁금하고 관심을 갖는 것이 무엇이냐에 따라 이 책을 읽고 다가오는 감상이 다를 것이다. 내겐 1,2부가 좀 더 인상적이었지만 누군가에겐 인간적인 고민이 돋보이는 3,4부가 와닿을지도 모른다. <샘터> 연재 원고를 모은 것이라 각 글의 분량이 일정하고 읽기 쉽다는 점은 에세이라는 장르를 가벼운 마음으로 읽고 싶을 때 찾는 독자에게 어필할 수 있는 장점이다.


 

<추천하고픈 사람>

손에 들어오는 식물이란 식물은 족족 죽이는 프로 식물 암살단

삶이 고달플 때마다 자연을 찾는 사람

물가보다는 숲이나 산을 좋아하는 사람

식물을 가까이했을 때 겪게 되는 변화가 궁금한 사람

생물 다양성과 지속 가능한 미래에 대해 고민하는 사람

 


* 이 서평은 네이버 이북까페를 통해 출판사 서평단에 선정되어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했습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크리에이티브 웨이 - 도둑맞은 창조성을 되찾는 10가지 방법
리처드 홀먼 지음, 알 머피 그림, 박세연 옮김 / 현대지성 / 2024년 4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저자 리처드 홀먼Richard Holman은 작가, 강연가, 크리에이티브 코치로 내셔널지오그래픽, 워너브라더스, 아이맥스, 펭귄랜덤하우스, BBC 등 세계 각지에서 창의력을 필요로 하는 사람들과 함께 해왔다. 아티스트, 작가, 디자이너들을 초대해 이야기 나누는 팟캐스트 채널 <The Wind Thieved Hat>을 운영하고 있다.




나도 이런 내가 피곤해!


  이 책은 그간 저자가 보고 듣고 읽고 접한 골치 아픈 창조적(?) 악마들을 10가지 유형으로 설명하고 그들을 물리치고 창조의 여정을 멈추지 않는 방법에 대한 이야기다. 창조라는 말의 무게 때문에 오로지 예술가를 위한 책이라고 생각할 수 있지만 비단 예술 작업 뿐만 아니라 자기만 볼 일기 한 줄, SNS에 남길 한 마디 감상조차 시선을 의식하며 자기 검열의 날을 세우는 사람이라면 꼭 읽어볼 만한 내용이다.




  Creative Demons? 창조적 악마?


창작자의 의욕을 갉아먹는 ‘악마’같은 존재에게 ‘창조적인’이라는 수식어를 붙인 것이 흥미롭다. 창조의 불꽃이 반짝 빛날 때만 깜짝 등장하는 존재에게 어울릴 만한 꾸밈이라는 생각과 동시에 훼방 수법의 다양함이 실로 창조적이라는 말 밖에 설명할 길 없을 정도로 고약하기에 붙인 반어적 표현이라는 생각도 든다.




빌런 없는 히어로는 무슨 재미


  끊임없이 창작자의 발목을 붙잡는 악마들이 하필 창작의 순간에만 등장한다는 점은 아이러니하다. 이름처럼 다양한 가면을 돌려가며 창의적으로 창작자를 괴롭힌다는 점에서 ‘창조적인 악마’라는 이름이 퍽 어울린다. 여름밤 귓가를 맴도는 보이지 않는 한 마리 모기처럼 성가시지만 그 덕에 여름을 상기하는 것처럼 창조적 악마라는 건 창조 행위와 떼려야 뗄 수 없는 존재다.




죽이지는 말고 길들여보자


   저자는 창작자라면 누구나 언젠가 이 악마를 만나게 된다고 말한다. 큰 고난 없이 곧장 성공 가도를 달려온 것 같은 위대한 거장들도 저마다 방해꾼의 목소리를 극복하며 작품을 완성했다는 것을 알려준다. 그리고 이왕 반드시 맞닥뜨릴 존재라면 슬기롭게 잘 길들여서 깐깐한 조력자로 써보자고 설득한다.




제목을 보고 떠오른 것


  나는 이 책의 제목을 보고 줄리아 카메론의 『아티스트 웨이』가 떠올랐다. (원제:The Artist’s Way: A Spiritual Path to Higher Creativity(1992년))로 예비 창작자라면 한 번쯤 추천 받았거나 읽어보았을 책이라고 생각한다. 한국어판은 2012년에 나왔고 현재 절판되었지만 예술 전공자들 사이에서 알음알음으로 널리 알려진 책이다. 슬럼프에 빠진 창작자들에게 서로 권하는 책이다. 이 책은 저자의 창조성 회복 프로그램 강의노트에서 비롯한 12주간의 워크숍으로 구성되어 있어서 실제 훈련용으로 활용할 수 있는 책이다.



  『크리에이티브 웨이』는 『아티스트 웨이』와 같은 워크북은 아니지만 그 영향력을 의식하여 지은 제목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뒤표지 하단에 적힌 ‘세상 모든 크리에이터를 위한 창조력 회복 비법서’라는 말도 ‘창조성 회복 워크숍’을 연상시킨다. ‘도둑맞은 창조성을 되찾는 10가지 방법’이라는 부제 또한 2023년을 뜨겁게 달군 책 『도둑맞은 집중력』을 떠올린다. 여러모로 전략적으로 보인다. 그래서 나쁘다기보다 그만큼 타깃 독자가 어떤 것에 익숙할 지 고민한 흔적으로 받아들였다.




아멘 브레이크와 감자 예수


  개인적으로 도둑질의 악마에서 언급한 아멘 브레이크 Amen Break가 반가웠다. 정글/드럼앤베이스 팬으로 이 비트가 가진 상징성을 잘 알고 있기 때문이다. 다만 실제로 이것을 연주한 밴드의 드러머는 이 창작물을 통한 어떠한 저작권료도 받지 못했고(책에는 단 한 푼의 로열티도 받지 않았다고 썼지만) 홈리스로 생을 마감했다는 얘기는 누락된 점이 아쉬웠다. 기꺼이 쓰라고 흔쾌히 프리 소스로 푼 게 아니었다는 말이다. 이 사연이 알려진 후 모금을 통해 밴드의 다른 멤버가 보상을 받긴 했지만 기여한 곡 수를 고려하면 턱없이 적은 보상이었다. 당시의 저작권 의식은 안타깝지만 여전히 이 6초에 얼마나 많은 곡이 빚지고 있는지는 구태여 강조할 필요가 없을 것이다.




  지금은 많이 잊혔지만 감자 예수 사례 또한 당시 세간의 화제였다. 사건의 심각성 때문에 화제였다기 보다는 어처구니가 없어서 웃음을 자아냈던 걸로 기억한다. 저자는 실패의 악마를 언급한 장에서 끝내 예수상을 원상 복귀하진 못했지만 그 지역 관광객이 늘어 잘 됐다는 식으로 해석했지만 나는 비난 여론에 살이 17킬로그램이나 빠지고 그 뒤로 종적을 감춘 여성의 삶은 뒷전인 듯한 서술이 조금 못마땅했다. 




  실력 없이 의욕만 앞선 아마추어의 실패 사례가 창작자의 실패 극복 사례로 적합한가? 어쨌든 지역 사회에 기여했으니 개인은 욕먹었을지언정 잘 된 거라는 의미인가? 사실 이 부분은 내내 농담조여서 우스개인가 보다 하며 읽긴 했으나 이것이 정말 창작자 개인에게 전화위복인 사례인가 묻는다면 잘 모르겠다.




  내가 언급한 두 사례로 이 책 전체의 의도를 오해하는 이는 없길 바란다. 두 가지는 개인적으로 떠오른 바가 있어 적은 것이고 다른 부분에선 침착하게 악마들을 분석하고 극복할 방법을 제시한다. 매 장 새로 시작할 때마다 ‘OO의 악마를 무찌르는 법’이라고 장식했지만 사실 책을 읽다 보면 이 악마들을 죽이고 없애는 방법은 없다는 것을 알게 된다.




이 책을 읽으면서 느낀 점을 저자가 나가는 장에서 정확하게 언급하고 있다. 이 문단이 내가 전달하고자 하는 이 책의 성격을 요약하고 있다.


곰곰이 생각해 보면 이 책의 제목이 완전히 적절하지는 않은 듯 하다.

‘창조적 악마와 그들을 죽이는 법’(이 책의 원제)이라는 제목보다는 ‘창조적 악마, 이전에는 몰랐지만 당신이 원하는 작품을 완성하는 데 너무나 중요해서 결코 벗어날 수 없는 자신의 일부인 악마들과 함께 살아가는 방법’이 더 정확할 것이다.


『크리에이티브 웨이』 리처드 홀먼 지음, 알 머피 그림 (현대지성, 2024) p.203


  내면의 감시자는 비단 창작자 뿐만 아니라 자기를 돌아볼 줄 아는 사람이라면 누구에게나 존재한다. 완벽주의 성향이 강하다면 방해의 목소리가 좀 더 클 것이고 창작욕보다 불안이 더 크면 시작조차 하지 못하고 있을 확률이 높다. 저자는 두려움에 사로잡힌 이들이 악마의 목소리에 휘둘려 자신의 꿈을 펼치지 못하는 것을 예방하고자 이 책을 펴냈다. 




  책에서 다루지 않은 창조성의 마지막 악마는 후회의 악마다. 후회의 악마는 깐깐한 비판자라기보다는 끊임없이 바닥으로 끌어당기는 물귀신에 가깝다. 방해하는 악마에 압도당해 포기한다면 채워지지 않은 창조의 빈 자리엔 후회의 악마가 자리 잡는다. 얼마나 지독한지 다른 악마들은 구태여 제 역할을 할 필요도 없을 정도다. 가장 두려운 악마를 품지 않기 위해서 반드시 시작해야만 하는 사람, 새로운 시도 앞에서 주춤하고 있는 사람에게 권하고 싶다.




본문에서 언급한 도서 목록


​존 스타인 벡 『분노의 포도』

하퍼 리 『앵무새 죽이기』

마거릿 애트우드 『시녀 이야기』

안드레 애치먼 『콜 미 바이 유어 네임』

올리버 색스 『의식의 강』

레너드 믈로디노프 『유연한 사고의 힘』

제임스 조이스 『율리시스』

매슈 사이드 『다이버시티 파워』

모리스 샌닥 『괴물들이 사는 나라』

힐러리 맨틀 『울프 홀』

칼 오베 크나우스고르 『나의 투쟁』

케이트 템페스 『온 커넥션』




추천하고픈 사람


오늘도 할 일을 미루고 이 리뷰를 보고만 사람

자기 의심과 자기 비판의 감옥에 갇힌 사람

자고 일어나면 모든 것이 하찮게 느껴져 폐기하기를 반복하는 사람

남들 크리틱은 기가 막히게 잘하지만 정작 자신은 슬럼프에 빠진 창작자



* 이 서평은 네이버 이북까페를 통해 출판사 서평단에 선정되어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했습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유튜브, 제국의 탄생 - 무명의 언더독에서 세계 최대 콘텐츠 플랫폼으로 성장한 유튜브의 20년 비하인드 히스토리
마크 버겐 지음, 신솔잎 옮김 / 현대지성 / 2024년 4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아마 영어 사용자가 아니라면 뉴스를 통해 접한 유튜브의 창업자, 역대 CEO의 이름 말고는 여기 등장하는 인물들 상당수가 생소할지도 모른다. 실리콘밸리에서 ‘구글을 가장 잘 아는 기자’라고 인정 받는 한 남자가 유튜브의 역사를 함께 한 사람들, 논란과 사고가 끊이지 않는 격동의 현장 한가운데에 있던 인물들을 소환한다.



책은 유튜브 내부 뿐만 아니라 전 세계인들에게도 충격적인 기억으로 남아있을 어떤 총격 사건으로 이야기를 시작한다. 평범하게 연대별로 플랫폼의 성장 과정을 담았으리라 생각하고 책장을 넘긴 독자를 사건의 정중앙에 바로 꽂아 넣는 시작이 얼떨떨했고 흥미진진했다. 마치 범죄 영화의 도입부 같은 출발이다.





이 책의 저자 마크 버겐은 2010년부터 구글의 모든 것을 취재해 온 비즈니스 저널리스트다. 제법 신랄한 어조로 유튜브의 태동부터 우당탕탕 좌충우돌(수준으로 귀엽고 상큼하게 포장할 수 없을 수준이지만) 결코 순탄치 않았던 지난 20년 간 유튜브를 둘러싼 사회 문제들, 크리에이터들과의 갈등, 내부인들만 알음알음 알았던 비화 등 온갖 시행착오 과정을 속속들이 파헤친다.



프롤로그 이후의 서술도 믿기지 않을 정도로 영화 같은 구석이 있다. 비약적인 성장 자체도 놀랍지만 사건에 대응하는 의사결정 과정도 기막힌(긍정과 부정을 모두 포함) 구석이 가득하다. 냉정을 유지하며 읽고 싶어도 ‘도대체 누가 나서서 책임 좀 지라고!’ 답답함에 속이 끓어오르기도 하고 키즈 유튜브에서 일어난 문제들에선 미간이 펴질 새가 없었다. 이거 생각보다 지독한 골칫덩이구나 실감하게 된다. 



실제로 영어권에서 중요하게 다뤄진 몇몇 이슈들이 나에겐 처음 듣는 얘기여서 ‘같은’ 플랫폼을 이용한다고 해서 ‘같은’ 유튜브 이용자라고 말할 수 있을까 하는 의구심이 들었다. 서비스를 제공하고 기밀에 부치는 인공지능 기술을 제어하는 기업에서 벌어지는 일에 무관심한 채 전 세계의 유튜브 이용자들이 그저 편리하게 소비만 하고 있는 건 아닐까 생각하니 새삼 기이했다. 소비자들이 항상 기업의 내막을 검토하고 소비할 의무는 없지만 유튜브가 2020년대 사람들 생활에 깊숙이 침투한 정도를 상기하면 그간 정보를 접하는 창구에 많이 무지했음을 깨달았다. 



트럼프 당선 이후의 이슈들은 국내에도 꾸준히 보도되었기에 이어지는 #미투 운동과 코로나 팬데믹 이후 폭발적인 시청 시간 성장(한국에서는 달고나 커피 붐이 있었다.)과 현재에 이르기까지의 과정은 친숙하게 다가왔다. 책의 중후반부는 2010년대 후반을 통과하면서 각종 소셜미디어들이 맞닥뜨린 부작용 중 하나인 극우 유저들의 부상과 선동을 위해 조작된 가짜 뉴스 문제를 다루고 있다.





언어와 지역 설정에 따라 그리고 국가별 규제 정책에 따라 유튜브를 이용하는 전 세계의 이용자들은 모두 저마다 다른 영상의 바다를 헤엄치고 있을 것이다. 하루에서 쉴 새 없이 업로드 되는 어마어마한 영상물과 하루 1억 시간에 달하는 시청 시간을 생각하면 까마득하기만 하다. 도대체 이렇게 커버린 플랫폼을 도대체 누가, 어떤 원칙을 토대로 제어할 수 있을까. 정말 쉽지 않은 문제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렇지만 재정적 타격을 주는 미국 정부의 결정에서는 알고리즘을 수정하는 조치를 취하기도 한다는 점을 슬쩍 흘리기도 한다. 수전 워치츠키가 한 회의에서 직원이 던진 가장 두려워하는 것이 무엇이냐는 질문에 딱 한 마디 “규제요.”라고 답한 것이 인상적이었다. 



견제가 없었다면 모든 것은 오디언스가 알아서 선택한다고 방관하던 유튜브가 자신의 영향력과 책임을 깨닫기까지는 더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을까. 앞으로 인류의 기억 보관소를 더욱 안전하게 유지하기 위해 어떤 노력이 필요할까 생각해 보게 된다.



자료 출처를 언급하는 장에서 저자는 책에 등장한 모든 이야기는 실제로 벌어진 일이며 유튜브 역사를 함께 한 300명 이상의 사람들을 직접 인터뷰하고, 직접 대화가 불가능한 경우 대변인을 통해서라도 철저한 사실 확인을 거쳤음을 명확히 언급한다. 베테랑 저널리스트가 저널리즘의 원칙에 따라 성실히 저술했음을 밝힌 부분에서 설마 이 내용도 과장되거나 왜곡된 건 아니겠지 우려하는 의심 많은 독자를 안심시킨다.


책은 떠들썩한 연대기를 속도감 있게 펼친 후 미련 없이 막을 내린다. 정신없이 달려온 영화 한 편이 강렬한 여운을 남긴 채 엔딩크레딧을 띄운다. 상업 영화의 쿠키 영상처럼 한때 아름다웠던 시절을 조명하거나 갑자기 심오한 질문을 툭 던지며 마무리하지 않는다.


그럼에도 읽고 나서 질문이 많아지는 책이었다. 한국의 인터넷 환경도 우려되는 부분이 많기에 더더욱 골치가 아팠다. 그럼에도 일단 유튜브라는 플랫폼이 어떤 정신으로 운영되고 있는지 알게 된 것만으로도 상당히 의미 있는 독서였다. AI 알고리즘으로 추천되는 영상들을 어떤 마음으로 시청해야 하는지 앞으로 좀 더 의식하며 정보를 취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유튜브 콘텐츠를 밥 친구 삼아 끼고 사는 현대인이라면 필수 교양으로 권하고 싶다.



<추천하고픈 사람>
유튜브 계정이 있는 사람
쇼츠 보다가 뜬 눈으로 밤을 샌 적 있는 사람
아이들의 영상 중독을 우려하는 양육자
가짜 뉴스가 진절머리 나는 사람
부업으로 유튜버를 고민하는 사람



* 이 서평은 네이버 이북까페를 통해 출판사 서평단에 선정되어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했습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