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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튜브, 제국의 탄생 - 무명의 언더독에서 세계 최대 콘텐츠 플랫폼으로 성장한 유튜브의 20년 비하인드 히스토리
마크 버겐 지음, 신솔잎 옮김 / 현대지성 / 2024년 4월
평점 :

아마 영어 사용자가 아니라면 뉴스를 통해 접한 유튜브의 창업자, 역대 CEO의 이름 말고는 여기 등장하는 인물들 상당수가 생소할지도 모른다. 실리콘밸리에서 ‘구글을 가장 잘 아는 기자’라고 인정 받는 한 남자가 유튜브의 역사를 함께 한 사람들, 논란과 사고가 끊이지 않는 격동의 현장 한가운데에 있던 인물들을 소환한다.
책은 유튜브 내부 뿐만 아니라 전 세계인들에게도 충격적인 기억으로 남아있을 어떤 총격 사건으로 이야기를 시작한다. 평범하게 연대별로 플랫폼의 성장 과정을 담았으리라 생각하고 책장을 넘긴 독자를 사건의 정중앙에 바로 꽂아 넣는 시작이 얼떨떨했고 흥미진진했다. 마치 범죄 영화의 도입부 같은 출발이다.

이 책의 저자 마크 버겐은 2010년부터 구글의 모든 것을 취재해 온 비즈니스 저널리스트다. 제법 신랄한 어조로 유튜브의 태동부터 우당탕탕 좌충우돌(수준으로 귀엽고 상큼하게 포장할 수 없을 수준이지만) 결코 순탄치 않았던 지난 20년 간 유튜브를 둘러싼 사회 문제들, 크리에이터들과의 갈등, 내부인들만 알음알음 알았던 비화 등 온갖 시행착오 과정을 속속들이 파헤친다.
프롤로그 이후의 서술도 믿기지 않을 정도로 영화 같은 구석이 있다. 비약적인 성장 자체도 놀랍지만 사건에 대응하는 의사결정 과정도 기막힌(긍정과 부정을 모두 포함) 구석이 가득하다. 냉정을 유지하며 읽고 싶어도 ‘도대체 누가 나서서 책임 좀 지라고!’ 답답함에 속이 끓어오르기도 하고 키즈 유튜브에서 일어난 문제들에선 미간이 펴질 새가 없었다. 이거 생각보다 지독한 골칫덩이구나 실감하게 된다.
실제로 영어권에서 중요하게 다뤄진 몇몇 이슈들이 나에겐 처음 듣는 얘기여서 ‘같은’ 플랫폼을 이용한다고 해서 ‘같은’ 유튜브 이용자라고 말할 수 있을까 하는 의구심이 들었다. 서비스를 제공하고 기밀에 부치는 인공지능 기술을 제어하는 기업에서 벌어지는 일에 무관심한 채 전 세계의 유튜브 이용자들이 그저 편리하게 소비만 하고 있는 건 아닐까 생각하니 새삼 기이했다. 소비자들이 항상 기업의 내막을 검토하고 소비할 의무는 없지만 유튜브가 2020년대 사람들 생활에 깊숙이 침투한 정도를 상기하면 그간 정보를 접하는 창구에 많이 무지했음을 깨달았다.
트럼프 당선 이후의 이슈들은 국내에도 꾸준히 보도되었기에 이어지는 #미투 운동과 코로나 팬데믹 이후 폭발적인 시청 시간 성장(한국에서는 달고나 커피 붐이 있었다.)과 현재에 이르기까지의 과정은 친숙하게 다가왔다. 책의 중후반부는 2010년대 후반을 통과하면서 각종 소셜미디어들이 맞닥뜨린 부작용 중 하나인 극우 유저들의 부상과 선동을 위해 조작된 가짜 뉴스 문제를 다루고 있다.

언어와 지역 설정에 따라 그리고 국가별 규제 정책에 따라 유튜브를 이용하는 전 세계의 이용자들은 모두 저마다 다른 영상의 바다를 헤엄치고 있을 것이다. 하루에서 쉴 새 없이 업로드 되는 어마어마한 영상물과 하루 1억 시간에 달하는 시청 시간을 생각하면 까마득하기만 하다. 도대체 이렇게 커버린 플랫폼을 도대체 누가, 어떤 원칙을 토대로 제어할 수 있을까. 정말 쉽지 않은 문제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렇지만 재정적 타격을 주는 미국 정부의 결정에서는 알고리즘을 수정하는 조치를 취하기도 한다는 점을 슬쩍 흘리기도 한다. 수전 워치츠키가 한 회의에서 직원이 던진 가장 두려워하는 것이 무엇이냐는 질문에 딱 한 마디 “규제요.”라고 답한 것이 인상적이었다.
견제가 없었다면 모든 것은 오디언스가 알아서 선택한다고 방관하던 유튜브가 자신의 영향력과 책임을 깨닫기까지는 더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을까. 앞으로 인류의 기억 보관소를 더욱 안전하게 유지하기 위해 어떤 노력이 필요할까 생각해 보게 된다.
자료 출처를 언급하는 장에서 저자는 책에 등장한 모든 이야기는 실제로 벌어진 일이며 유튜브 역사를 함께 한 300명 이상의 사람들을 직접 인터뷰하고, 직접 대화가 불가능한 경우 대변인을 통해서라도 철저한 사실 확인을 거쳤음을 명확히 언급한다. 베테랑 저널리스트가 저널리즘의 원칙에 따라 성실히 저술했음을 밝힌 부분에서 설마 이 내용도 과장되거나 왜곡된 건 아니겠지 우려하는 의심 많은 독자를 안심시킨다.
책은 떠들썩한 연대기를 속도감 있게 펼친 후 미련 없이 막을 내린다. 정신없이 달려온 영화 한 편이 강렬한 여운을 남긴 채 엔딩크레딧을 띄운다. 상업 영화의 쿠키 영상처럼 한때 아름다웠던 시절을 조명하거나 갑자기 심오한 질문을 툭 던지며 마무리하지 않는다.
그럼에도 읽고 나서 질문이 많아지는 책이었다. 한국의 인터넷 환경도 우려되는 부분이 많기에 더더욱 골치가 아팠다. 그럼에도 일단 유튜브라는 플랫폼이 어떤 정신으로 운영되고 있는지 알게 된 것만으로도 상당히 의미 있는 독서였다. AI 알고리즘으로 추천되는 영상들을 어떤 마음으로 시청해야 하는지 앞으로 좀 더 의식하며 정보를 취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유튜브 콘텐츠를 밥 친구 삼아 끼고 사는 현대인이라면 필수 교양으로 권하고 싶다.
<추천하고픈 사람>
유튜브 계정이 있는 사람
쇼츠 보다가 뜬 눈으로 밤을 샌 적 있는 사람
아이들의 영상 중독을 우려하는 양육자
가짜 뉴스가 진절머리 나는 사람
부업으로 유튜버를 고민하는 사람
* 이 서평은 네이버 이북까페를 통해 출판사 서평단에 선정되어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