애프터 라이프 - 한 정신과 의사가 40년을 탐구한 사후세계, 그리고 지금 여기의 삶
브루스 그레이슨 지음, 이선주 옮김 / 현대지성 / 2023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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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식을 잃었던 환자가 전한 임사체험 이야기에 받은 충격이 계기가 되어 임사체험을 과학적으로 연구하기 시작한 정신과 박사 브루스 그레이슨의 40년 연구의 결실이 책으로 나왔다. 『애프터 라이프』는 1,000건 이상의 임사체험 사례를 모아 각 체험을 비교하고, 체험자들의 삶에 미친 영향을 두루 살펴보며 삶과 죽음, 정신과 뇌, 죽음 이후의 의식 등 여전히 밝혀지지 않은 신비한 세계에 대해 과학적인 관점으로 이야기를 풀어나간다.

임사체험에 대해 많이 알게 될수록 정신과 뇌에 대한 우리의 일반적이고 제한된 이해를 뛰어넘어 설명해야 할 것 같은 압박감을 느꼈다. 그리고 우리의 정신과 뇌에 대해 새롭게 생각하면서 육체가 죽은 후에도 의식은 계속 남아 있는지 탐구하게 되었다. 결국, 우리가 누구이고, 어떻게 우주와 조화를 이루는지, 어떤 삶을 살고 싶은지에 대한 개념을 다시 생각하게 되었다.

『애프터 라이프』 (브루스 그레이슨, 현대지성) p.29

사실 나는 이 책을 접하기 전까지 임사체험을 다룬 글에 별생각이 없었다. 냉담했던 가장 큰 이유는 상당수가 천국을 보았다, 신을 보았다는 식의 간증 목적으로 쓰인 글이 대부분일 것이라 지레짐작했기 때문이다. 종교도 없고 영적 체험에도 큰 관심이 없던 내가 굳이 찾아서 읽을 소재는 아니었던 셈이다. 관심이 없었으니 임사체험은 환각에 불과할 것이라 치부하기도 했다. 이런 독자가 수두룩할 것을 예상이라도 했다는 듯 저자는 머리말에서 ‘우리가 가진 신념 때문에 미신에 대해 예단하지는 말자.’ (p.29)라고 말한다.


책을 읽기 전에 혹시 저자가 신실한 종교인이어서 본인의 믿음을 증명하듯이 서술하면 어쩌나 우려했다. 나처럼 의심 많은 독자를 위해 다음의 인용으로 저자의 의도를 미리 알린다. ‘나는 십계명을 전하는 모세가 아니다. 나는 객관적인 자료가 무엇을 보여주는지 생각하고 이것을 해석하는 방법을 전하는 과학자다. 어느 한쪽의 관점을 믿으라고 설득하는 게 아니라, 두루 생각하도록 하는 게 이 책을 쓴 목적이다.’ (p.32)


책의 본문은 연구 방법론과 통계에 대한 구체적인 내용은 생략하고 일반 대중들이 흥미를 잃지 않고 읽기 쉽도록 임사체험자들의 일화를 중심으로 전개된다. 각각의 다양한 일화와 자연스럽게 이어지는 질문, 그에 얽힌 연구 내용들을 흥미진진하게 보여준다. 매 장의 마지막 문단 내용이 다음 장의 시작으로 매끄럽게 연결되어 마치 추리소설을 읽는 기분마저 들었다. 전체적으로 책의 짜임새가 좋다고 느꼈다.


‘어딘가 다른 곳’은 대개 우리가 사는 보통의 물질적인 환경과 달라 보이기 때문에 임사체험자들이 주로 ‘천국’이나 ‘영적인 세계’라고 이름을 붙인다. 하지만 그런 이름이 반드시 물질적으로 다른 장소라는 뜻은 아니다.

『애프터 라이프』 (브루스 그레이슨, 현대지성) p.244~245

임사체험자들이 신성한 존재들을 어떻게 알아보거나 이름 붙이느냐가 아니라 그 존재 앞에서 어떻게 느끼느냐가 중요한 것 같다. 이름을 붙였는지, 놀랐는지 아닌지와 상관없이 그들은 평화롭고, 평안하고, 고요하고, 편안하고, 감사하고, 무엇보다 사랑받는 느낌이었다고 다 함께 이야기한다.

『애프터 라이프』 (브루스 그레이슨, 현대지성) p.261

저자가 회의주의자라고 밝힌 만큼 다양한 임사체험자들의 증언들을 인용하면서도 특정 방향으로 치우치지 않게 객관적으로 의견을 정리하려고 노력한 흔적이 보인다. 천국과 지옥은 있을까? 신은 계실까? 같은 어그로성 제목을 단 장에서도 그래서 있다는 거야 없다는 거야 하며 결론만 말하라며 조급하게 쫓아오는 독자를 차분히 앉히고 숙고할 수 있는 질문을 던진다.


책을 읽어나갈수록 사실 생각보다 임사체험에 대해 뚜렷하게 밝혀진 것이 없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특히 뇌와 정신, 의식에 관한 부분에서는 그나마 최근까지 널리 인정되는 가설이 언급될 뿐 어느 하나 명확한 것이 없다. 하지만 실망은 하지 않는다. ‘과학은 본질적으로 언제나 진행 중인 작업’(p.152)이라는 것을 알았기 때문에.

과학자들은 어떤 증거는 탐구할 가치가 있고, 어떤 건 무시할 수 있는지를 골라서 선택할 수 없다. 우리가 회의주의자라고 자처한다면 자료를 보지도 않고 우리 세계관과 맞지 않은 경험은 거부하고, 우리 견해와 맞는 경험은 받아들이는 그런 일을 해서는 안 된다.

『애프터 라이프』 (브루스 그레이슨, 현대지성) p.26

나는 특히 저자가 과학이란 무엇인지 정의한 문장을 인용하고 자신이 믿는 과학적 태도를 여러 차례 강조하는 것이 인상적이었다. 임사체험이라는 주제가 주제인 만큼 미신을 연구 대상으로 삼는다는 오해도 많았을 것이다. 지극히 과학적으로 연구를 이어나갔음을 강조하는 게 처음엔 방어적으로 느껴지기도 했다. 그러나 몇 번 그런 문장을 마주한 후 이건 저자의 해명이 아니라 독자에게 던지는 질문이 아닐까 생각하게 됐다. 당신도 혹시 막연히 편견을 갖고 배척하고 있는 것이 없느냐고.


저자는 책의 마지막 장에서 ‘임사체험은 궁극적으로 죽음에 관한 것이 아니라 변화와 쇄신에 관한 것이며, 지금 우리 삶에 목적을 불어넣는 일이다’ (p.344)라고 말한다. 뒤로 갈수록 뭔가 자기계발서류의 메시지인 목적 있는 삶으로 마무리되어가는데서 김빠지는 기분이 들지도 모른다. 나는 오히려 이 책을 읽고 나서 내가 책을 읽는 이유는 무엇인가에 대해 생각해 보게 되었다. 도대체 나는 왜 읽는가? 책을 통해 어떤 깨달음을 얻고 그것으로 내 삶에 변화를 만들어 가고 있는가? 따위의 질문들. 아 이것도 결국 목적 있는 삶과 연결되는 질문인가?


주변에 임사체험을 한 사람을 알고 있거나 혹은 임사체험을 했으나 주변에서 믿지 않아 속시원히 밝히지 못하고 있는 사람, 사후 세계를 믿거나 믿지 않는 사람, 최근 뇌과학 책을 섭렵하고 있는 사람, 정신은 뇌의 산물이라고 믿는 사람, 간증 형태의 수기가 아닌 임사체험에 대한 글을 읽어보고 싶은 사람, 편견으로 둘러싸인 분야를 오랜 기간 묵묵히 연구하고 개척해 온 의사의 연구 철학을 접하고 싶은 사람들에게 추천하고 싶다.

* 이 서평은 네이버 이북까페를 통해 출판사 서평단에 선정되어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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