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끼리도 장례식장에 간다 - 동물들의 10가지 의례로 배우는 관계와 공존
케이틀린 오코넬 지음, 이선주 옮김 / 현대지성 / 2023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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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목과 저자의 프로필만 보고 오로지 코끼리 연구 외길인생의 코끼리 얘기들로만 가득할 줄 알았다. 생각보다 폭 넓은 야생동물 세계의 의례에 대한 관찰기이자 잃어버린 또는 너무 당연해서 굳이 인식하지 않았던 인간의 의례를 되돌아보게 하는 책이었다.

 

  들어가는 글의 제목부터가 우리가 잃어버린 것이다. 소제목들로 서문을 요약하자면 우리도 동물 세계의 일부라는 것을 자각하고 과거와 현재, 나와 타인을 잇는 의례를 통해 동물처럼 의례하는 삶을 되찾자고 하는 것이 저자의 의도다.

 

  중간 중간 실린 사진들이 묘사된 문장만으론 상상하기 어려운 동물들의 접촉을 이해하기 쉽게 도와준다. 그 규모를 가늠하기 어려운 문장을 읽을 때면 더 많은 사진이 있었으면 하고 바랐지만 내 바람을 다 채우려면 사진집 하나를 따로 발간해야 할 것이다.

 

  나는 2장인 집단 의례에 가장 많은 포스트잇 플래그를 붙였는데 유독 와닿는 문장이 많았다. 인간 사회의 집단 의례가 사냥을 위해 협력하는 과정에서 발전했다는 말로 시작해 사냥에서 죽음으로 개체수 조절과 장례문화까지 이어지는 설명이 꽤 설득력 있었다.

 

  6장 무언 의례에서 호르몬 분비와 관련 있는 특정 태도를 설명하는 문단에선 파워 포즈가 연상됐다.

 

  7장 놀이 의례에선 놀지 않으면 살아남지 못한다는 말이 인상적이었다. 놀이를 적은 비용으로 위험을 감수하지 않고 새로운 것을 배울 수 있는 방법으로 접근한 것이 새로웠다.

 

  8장 애도 의례에서 드디어 이 책의 제목이 실린 페이지를 만났다. 코끼리도 장례식장에 간다는 의미가 무엇일지 궁금했다. 어른 코끼리의 몸집은 너무 커서 죽은 후 몇 달에서 몇 년까지 그 자리에 사체가 계속 남아있다고 한다. 죽음 이후에도 코끼리들은 죽은 코끼리를 몇 년이고 찾아가고 실제 흙을 덮는 등 매장과 흡사한 의식도 치르는데 이를 장례식과 비슷하다고 본 것이었다. 드디어 궁금증이 풀렸다.

 

  마지막 장은 여행 의례인데 92년부터 시작한 저자의 여정을 되짚어가며 근래까지의 이야기를 풀어간다.

 

  야생동물들의 생존을 위한 긴 이동을 여행 의례로 보고 인간의 여행, 정확히는 저자의 연구 여정을 돌아보는 후반부가 인상적이었다. 그리고 예전의 흔적이 거의 남아 있지 않은 지역에서 아직 그 자리에 남아있는 나무를 발견하고 안심한 듯한 문장을 읽고 나 또한 시골에 갈 때마다 변하지 않는 증표로 마음에 담고 있던 나무 한 그루를 떠올렸다. 저자는 여행을 하면서 전 세계의 중요한 자연보호 문제가 무엇인지 배웠다고 한다. 당연히 함께 생존해야 할 동물들과 어떻게 평화롭게 공존할 것인가를 생각하게 한다.

 

  옐로스톤 국립공원에서 마주친 늑대가 숲속으로 사라지는 모습을 지켜보며 늑대를 따라 야생의 세계를 여행하는 장면을 상상했다는 문장을 보고는 할아버지가 떠올랐다.

 

  돌아가신지 10년도 훨씬 넘은 할아버지는 햇빛이 거실 깊숙이 낮게 들어오는 초저녁시간이면 소파에 앉아 동물 다큐멘터리를 보곤 하셨다. 어린 내 눈엔 흙먼지가 풀풀 날리고 한국처럼 산등성이라곤 찾아보기 힘든 벌판 때문에 매번 같은 장면의 반복처럼 보였다. 납작한 그림처럼 보였던 건 아마 다큐멘터리를 촬영할 때 망원렌즈를 주로 사용해서일지도 모르겠다. 쫓고 쫓기는 동물들, 차마 보기 힘들었던 희생된 동물과 웅장한 때로는 너무나 초라한 죽음을 매 회 한 번씩은 마주하게 되는 그런 프로그램을 왜 항상 보고 계셨는지 모르겠다. 그 시간대에 볼만한 프로그램이 전혀 없었던 것도 아닐텐데. 긴박하게 생사가 갈리는 순간과 언제 그런 위기가 있었냐며 시치미를 떼는 듯한 무심한 자연의 순환을 보며 문득 어떤 생각을 하셨을 지 궁금해졌다. 초원을 달리는 얼룩말떼가 지겨워서 다른걸 보자고 졸랐던 것 같기도 하다. 책을 읽으면서 할아버지가 야생동물 다큐멘터리를 보는 장면만 반복해서 떠올랐다. 아마 앞으로도 야생동물의 생태에 관한 책을 읽는다면 계속 할아버지를 떠올리게 될 거라는 예감이 들었다. 아니 그럴 것이다.



* 이 서평은 네이버 이북까페를 통해 출판사 서평단에 선정되어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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