속도를 가진 것들은 슬프다 - 어제와 오늘, 그리고 꽤 괜찮을 것 같은 내일
오성은 지음 / 오도스(odos) / 2021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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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세이 속도를 가진 것들은 슬프다

사진에세이, 오성은, 오도스



오랜만에 사진 에세이를 읽어보는 것 같다. 

<속도를 가진 것들은 슬프다>라는 문구가 가슴에 콕 박히면서도 아스라한 필카 느낌의 사진이 마음에 들어서 읽게 된 책.

저자 오성은은 책도 쓰고 EP앨범도 내고, 단편영화도 만든 이를테면 종합예술인으로 보여진다.

그는 왜 이 책을 만들었을까? 왜 속도를 가진 것들은 슬프다는 제목을 달았을까.

에필로그에서 바로 답을 준다. 어느 정도 예상한 대답이지만 대충 가늠했음에도 이렇게나 공감이 갈까.


"중요한 건 속도를 체감하는 사적인 슬픔이다. 이를테면 어머니의 흰머리가 하루하루 늘어가는 게 보일 때, 

주름이, 통증이, 힘없음이 빠르게 진행된다는 걸 알아차릴 때 나는 슬픔을 감당하기 힘들다. 

속도를 가진 것들은 과연 슬프다. 속도가 당신을 자꾸만 앞으로 밀어붙이기 때문이다."


어릴 때는 그렇게 지나갔으면 했던 시간이, 나이를 먹을수록 내게서 도망치듯 빠르게 스쳐가버린다.

일부러 되짚지 않으면 나에게서조차 잊혀지는 시간들이 되어버린다.

그래서 그는 사진을 찍어 일상을 뷰파인더에 붙잡고, 슬픔을 다시금 들여다본다고 한다.

기억하고 싶은 시간과 추억들. 

왜 굳이 남의 일상을 엿보고 추억을 듣는걸까 싶다가도 읽다보면 절로 알게 된다.

그럼으로써 나의 일상을 떠올리게 되고, 나의 추억도 끄집어내게 되는 것이다.

잊고 있던 기억들. 어쩌면 잊혀지길 바랬던 기억들까지.




저자의 일상적인 사진들이 담겨져 있고, 그의 생각을 엿볼 수 있는데,
시작도 그렇고 고양이 사진이 몇몇 들어가 있어 애묘인인가 싶었다. 
어릴 적 이야기부터 삶의 무게, 이별의 아픔이 묻어나는 글들인데
덤덤하게 뱉는 말이 더 쓸쓸하게 느껴졌다.

'하지만 아무래도 어디로 가야 할지 잘 모르겠다.
그러니 누군가 내게 이런 방식으로 말해준다면 참 고마울 것 같다.
계단의 단계란 없다고. 
거기에는 올라도 좋을, 내려가도 괜찮을 계단이 있을 뿐이고,
계단은 계단일 뿐이라고.' -p.25

'어쩌면 문제는 '잘' 인지도 모른다.
있어. 
잘 있으려 너무 애쓰지 말고 그냥 그렇게
있어.' -p.47

'가끔 깜빡하고 살 때가 있습니다. 
기억해야 합니다. 남김없이 사라진다는 것을.' -p.109


내게 신선한 다른 시선을 느끼게 해준 글. 사진에서 소리를 느껴보기.
웬만해선 사진은 한 번 스윽 쳐다보고 말 뿐이었는데 말이다. 
사진은 보는 것이다 라는 어떤 편견을 깨고 새로운 인식을 심어주었다.
이젠 소리 말고도 다른 것들까지 상상하며 보게 될 것 같다.

'사진은 소리를 품을 수 없다고 생각해왔어요.
하지만 그건 완벽히 틀린 생각입니다.
사진을 보면서 가만히 귀 기울여보시기를.' -p.57


그리고 책에 관한 이야기들도 공감이 꽤 가는 문장이 많았는데,
그 중 무릎을 탁 치게 만든 것은 전에 읽은 기억나지 않은 책을 또 읽어야 하는 물음에 대한 답이었다.
'책은 기억력에 대한 의심을 판단하는 물성이 아닙니다. 책은 그저 된장찌개입니다. 
오늘의 책은 오늘의 양분이 되고, 내일의 책은 내일의 양분이 됩니다.'
그저 한 번 읽힌 채 쌓여가는 책들, 하지만 시간이 지나가면 내용이 기억나지 않을 때가 많다.
어쩌다 다시 꺼내보게 되지만 그것도 빈번하지 않으므로 자리만 차지하는 것 같아 고민이었는데
나의 그런 죄책감?을 좀 덜어주었다.



저무는 풍경, 아스라함과 연결되는 어머니의 장바구니,
할머니의 목소리 '오야',
'모두의 시장이었고, 모두의 젖줄이었는걸'
고향과 가족에 대한 그리움이 절절히 느껴지는 부분들에서 더욱이 나의 것들로 바뀌어 생각하게 만들었다.
<고양이 로쟈 님의 발을 밟다> 이야기는 너무 귀엽고 재미있게 느껴졌다.
이제 로쟈의 저주는 풀어지지 않았을까.

너무 빠르게 지나가는 시간, 속도에 지쳤을 때
이렇게 자신의 일상을 살피고 때론 추억이며 슬픔을 꺼내어 다시금 마주하는 것이
의외로 다시 살아갈 이유가 된다는 것을 느끼게 되는 시간이었다.
속절 없는 속도에서 한 번씩 빠져나와 일상의 흔적을 되돌아보며  잠시 시간을 멈춰보자.
모든 것은 언제나 변하고 사라질테니까.

'당신은, 당신은 어떠한가요.
바깥으로 나갈 준비가 되어 있는가요.
어디에서든 당신이 조금 덜 외롭고 그러하기를 바랍니다.'-p.155



- 리뷰어스클럽 소개로 출판사로부터 책을 제공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한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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