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ㅋㅋㅋ


이 책은 1월 중순에 주책방에서 뒤늦게 사 놓은 것인데. 완독한 건 그러니까 4월 말쯤 되겠다. 딱 이맘때쯤 구입했으니 세 달을 꼬박 채워 쉬었다가 다시 펼친 것이다. 동네 책방을 꽤나 다니는 사람이라면 다 손에 한 권씩 쥐고 나올 만큼 입소문이 탄 책이기도 했다. (무려 내가 아는 작가님이 쓴 추천글이 올라가 있기도 하다...) 표지도 그렇고 내가 제일 좋아하는 '바탕체'로 적힌 그 제목은 얼굴을 붉히게 했지만 '언젠가 꼭 사보리...'하는 도전의식을 일으키기도 했지. 내가 구입할 때는 이미 모. 동. 섹의 유행(?)은 끝난 상태. 하지만 그게 무엇이 중요한가. 가끔 레이러답터(lateradopter)도 있어줘야 뭐든 '역주행' 공식도 쓰는 거지.. 이러쿵저러쿵... 중얼중얼... 각설하고.

작가의 글을 처음 폈을 때 이전의 호기심과 달리, 어딘지 모르게 불편한 느낌이 들었던 기억이 있다. 나와 비슷한 가족사, 왜 여자만 임신의 공포와 자궁경부암의 공포에 떨어야 하나. 남자친구의 부탁 아닌 반 강요로 '노 콘돔' 섹스를 하고 나서 여자만 죄책감을 가져야 하나.에 대한 다소 deep 한 사랑(가족과 이성을 포함한. 애증과 연민을 포함한) 이야기와 연애에 대한 고민 종류가 그때의 나에겐 좀 무겁고 무섭게 다가왔던 듯 하다. 겪기 싫어서라기 보단 마주하기 싫어서? 나에게 가스라이팅을 하며 연애, 그리고 나라는 사람에 대하여 알게 모르게 무력해졌던 순간들이 기억이 났다.

​ 


그래서 책장을 펴고 다시 덮기까지 다소 오랜 시간이 걸린 듯 한데 그래도 한 번 집중해서 읽으니 되게 속을 좀먹던 것들을 작가가 말끔하게 쥐

어짜준 느낌이 들었다고 해야하나. 나는 읽고 난 후의 느낌이 정말로 좋았던 것 같다. 작가가 썼던 챕터에서 마찬가지로 '가까워질수록 멀어지고 멀어질수록 가까워지는 것들.' 애쓰지 않아야 비로소 나에게 오던 감정들이 같이 느껴져 좋았던 듯. 요양병원에서도 나이 많은 친구들과 때로 싸우고 화해하면서, 길고 긴 스트레스의 시간을 보내고 있지만 좋아질 거라 생각하면서... 그리고 여전히 극적인 이별을 마주해야하는 순간을 각오하면서. 살아가야지.

오늘 포스팅을 하다가 문화 소개봇을 돌렸는데 괜찮은 시가 나왔다.

기대지 말고

이바라기 노리코 (1999 )

이미

만들어진 사상에는 기대고 싶지 않다

이미

만들어진 종교에는 기대고 싶지 않다

이미

만들어진 학문에는 기대고 싶지 않다

이제는

어떠한 권위에도 기대고 싶지 않다

오래 살아

마음속으로 배운 건 이 정도

내 눈 귀

내 두다리만으로 서서

어떤 어려움이 있다 해도

기대고자 한다면

기댈 건

의자 등받이뿐


우리는 과거 위에 지어진 집이라고 했다. - P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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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밤은 굶고 자야지 - 박상영 에세이
박상영 지음 / 한겨레출판 / 2020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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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개인적으로 박상영 작가의 [대도시의 사랑법]이 대형서점과 책방 등등.. 도처에 진열이 됐을때도, 세간의 화제작이라며 독서모임에서 여러차례 언급됐을때도, 가지 않았다. 고르지 않았다. 그 때 당시 커밍아웃이 대세였나. 뭐 여튼 그랬던것 같은데. 퀴어적 요소가 예술이라고 치부되며 점점 내 안에 익숙하게 들어오는 느낌이 불쾌하다고 생각되었기 때문이다. 그렇게 박상영을 보내고(?) 이번 달에 그의 신간이라며 에세이가 나왔을 때도. 또 온 곳에 그의 책이 깔렸을 때도 처음엔 썩 내키지 않아 한참을 돌고 돌았다. 그러고 나서 이번에 인문학 책과 몇 권의 소설을 알라딘에서 주문하게 되면서 그의 책도 구매하게 되었다. 표지와 글자가 아기자기한 디자인은 왠지 손이 잘 닿지 않아서 한참을 고민하다 장바구니에 담았더랬다. 그것을 고르기 전에 그의 작품을 먼저 읽어볼까 했지만 그 전에 작가의 실체(?)를 먼저 알고싶은 마음이 먼저 들었기 때문이다. 


 에세이는 처음에 '박상영식 위트'로 시작하는데, 나는 처음에 사실은, 그가 진지한 사람이 위트있는 척 농담을 하는 사람이라고 생각했을만큼 오글거리는 느낌을 받아서 책을 덮으려고 했다. 미국 시트콤 같은 발랄한 문체를 오랜만에 접해서 그런지 진짜 내부로 들어가기도 전에 이야기가 너무 가볍다고 생각한 나머지 실망할 뻔 한 것이다. 처음을 완성하기 위해 너무 질질끄는 그런 느낌...? 혹여 나처럼 인내심 없는 사람은 중도에 포기해버릴지도 모를...그런 느낌.  

 그러나 나는, 그러기에는 에세이를 너무나 사랑하는 에세이스트이자 소설가이다.(일단 두 편을 내봤으니 그렇게 칭하기로 한다.) 인내심있게 책장을 넘기며 그의 이야기 속으로 점점 들어가다보니 작가의 가벼운 말투 속에 어두운 내면들과 실패담. 그리고 살에 대한 절망감 등이 섞여 깊은 공감을 이루어냈다. 한 없이 공감이 되서 웃다가도 그가 처했던 상황이 나에게도 있었는데...이러면서 이내 씁쓸해지는 것이다. 추천사나 소개글의 말대로 '웃픈' '단짠단짠'맛의 그의 인생담. 인생사담이었다. 김 반장님과 친한 형님들이 봐도 돼요..?내가 되레 걱정할만큼 솔직했다. 그냥 그의 일기를 읽은 느낌이었다. 


 나도 책을 내지 않으면 그저 직장인. 3교대를 하는 간호사에 지나지 않는다. 얼마 전까지만해도 총 합이 10이라면 글쓰는 일이 9. 돈 버는 일이 1. 그러니까 글을 쓰기 위해 간호사를 한다고 외치며 살아가고 있었다. 하지만 끝없는 직장 안에서의 대인관계 스트레스는 점점 비율을 반대로 엎어놓더니만 아예 그것으로 인해 감정의 기복 또한 심해져서 거의 글을 놓고 사는 지경에 이르렀었다. 당연 책도 읽지 못했고 글을 쓸 엄두는 더더욱 내지 못했다. 

 그런 와중에 혼술하는 재미를 알게 되었다. 나이트 출근을 하려면 오후 8시에 출근하러 나서야 하니, 그 때는 못하고 주로 오프나 오후에 퇴근하는 데이, 이브닝 퇴근 후가 되면 술을 마셨다. 그런 날은 마시지 않는 날이 없었다. 혼술을 시작한 지는 올해들어 3개월동안 지속된 일이었지만 이렇게 매일 혼술을 하며 안주 고르는 재미에 빠지고, 배달 어플을 깔아 찜닭, 햄버거, 떡볶이(특히 이거) 에 빠져 살은 찌고 정신은 혼란해져 갔다. 자기파괴적인 삶을 살아가고 있었다. 자주 우울해지고 외로워지기도 해서 커피도 많이 마셨다. 심할 때는 하루에 카페를 세 군데나 간 적도 있다. 커피는 거의 한 군데에서 기본 2시간 정도..? (책을 읽는다고 오래 있고 싶어서) 카페인 부작용과 불면증도 겹쳐 얼굴과 몸은 하루하루 썩어갔다. 책을 두 권이나 냈지만 아직도 글을 쓸때는 막막한 아마추어에 불과하고, 신입과 신인에게 당연한듯 따라붙는 '무시'와 '함부로 대함'에 대해 지쳐가기 시작했다. 그것에 대해 대항하고 싶었지만 그럴 때마다 '니가 아직 체력이 남아서 그래.' 라는 말만 들었다. 피해망상과 오해를 번갈아하며 살았던 것 같다. 정신이 매우 아팠다. 활동을 잘 하고 있던 인스타그램도 충동적으로 비활성화 시키고 한동안 글을 쓰지 않고 살았다. 좋아하던 책도 사모으기만 하고 첫 줄을 읽다가 다른 책을 고르기 일쑤였다. 기분에 따라 읽고 싶은 책이 달라져서 그랬는데, 결국 그렇게 하다가 단 한권도 끝내지 못하는 일이 부지기수였다. 


 박상영 작가도 마찬가지라고 했다. 작가들은 나에게 직접 말해주는 것은 아니지만 때로 그런 착각을 하게 만들 떄가 있다. 처음 호텔 알바를 하러 새벽 다섯시에 출근을 하다가 그 시간에도 사람들이 출근을 하는 지 그 때 처음으로 알았었다는 장면을 볼 때, 데이 근무를 하러가며 졸린 눈을 비비며 버스를 탔던 기억들이 스쳐지나갔다. 추운 겨울 손을 호호 불어가며 얼어가는 손을 녹이고 움직여지지 않는 다리를 억지로 움직여가며 각자의 이동수단을 타고 다니던 바쁜 사람들의 모습. 그리고 내가 쉴 때 늦게까지 비비적 거리던 카페 사장들과 직원들도 그렇게 쉬지 못하고 늦게까지 고생했었던 것을 생각했을때가 떠올랐다. 그리고 작가 자신도 한참 잘못됐다는 것을 알지만 고치지 못하겠음을 인정했을 때, 마음이 참 안타까우면서 나와 같은 사람이구나. 동질감이 느껴지곤 했다. 



 노력으로 쾌거를 이룰 수 있지만 그 안에서 반대로 커지는 외로움들도 공감 됐다. 다른 사람이 보기에 나는 간호사라는 번듯한 직장도 있고 또래보다 안정적인 월급을 받는 편이다.그리고 책도 두 권이나 냈고 작가님 소리까지 들을 수 있다며 부러운 인생이라고 한다. 하지만 그 속을 들여다보면 전혀 그렇지 않은데. 하며 혼자 외로움을 삭혀낸 시간들은 얼마나 또 많았는지. 작가가 그래서 끝내 몰려오는 허기짐을 참을 수 없어서 배달 앱을 키고 술을 들이켰다는 글을 볼 때마다 그 마음이 깊게 공감이 되어 누구보다 고개를 많이 끄덕거리며 책장을 넘겼던 것 같다. 그러면서 지구에서 한아뿐의 한아 같은 심지가 곧은 사람을 동경한다고. 내가 소신이 없고 어쩌고~ 하는 부분에서 그런 사람에게 사랑받고 싶어했던 내 모습이 떠올라서 아득해지기도 했었다. 이렇게 위트로 범벅된 글 속에 묻어놓은 슬픔과 씁쓸한 감정을 발견할 때마다 먹먹한 감정에 한동안 침묵하곤 했었다. 


 박상영 작가 덕분에 책과 글에 손을 대지 못하던 내가 책을 완독하는 기쁨을 얻었다. 이제 소설 한 권보다 이렇게 저자. 한 사람의 견해와 생활을 볼 수 있는 에세이를 더 사랑할 것 같다. 아무튼 시리즈와 박상영작가의 오늘 밤은 굶고 자야지 덕분에 다시 책을 읽을 수 있는 용기를 받은 것 같아 고맙다. 이 두책에게 인사를 건네며 . 

아무튼, 오늘 밤은 굶고 자야지. 

  

 

아몬드 열 주먹을 입안에 쑤셔 넣는다고 한들 산불처럼 번지는 이 허기를 해소 할 수는 없다. 결국 나는 핸드폰을 들어 배달 앱을 켜고 만다. 오늘의 메뉴는 순살 반반 치킨. 50분 뒤 내 방 안에 찾아드는 고소한 기름의 향. 고독하고도 따뜻한 인생의 맛. 도대체 내가 왜 웃고 있는지 알 수 없는 시시껄렁한 예능 프로그램을 보며 치킨 한 마리를 해치우면 비로소, 내가 그토록 바라던 잠이 오기 시작한다. 지금 바로 누우면 어김없이 위산이 역류할 거라는 사실을 너무 잘 알고 있지만, 쏟아지는 졸음을 참을 수는 없다. 나는 기어이 침대에 눕고 만다. 내일 밤은 기필코 굶고 자야지, 생각하면서. - P19

살찌면 더좋지. 그만큼 지구에 네가 차지하는 부분이 많아지는 거잖아? - P67

새벽 5시에 그토록 많은 사람들이 일을 하러 나간다는 사실에 놀랐다. 탈의실에서 유니폼을 갈아입다 말고 종종 울었다. 그 시절, 조도 낮은 조명과 따뜻한 공기에서 특별히 울기 좋다는 사실을 배웠다. - P79

"Always be young." - P80

나는 왜 상대방의 의도와는 상관없이, 또 나의 처지와는 상관없이 누가 나에게 아주 작은 호의라도, 무엇이라도 베풀어주기만 하면 고마워하는 걸까. 어쩌면 생각보다 오랜 시간 동안 내가 타인과의 교류를 단절한채 지내왔기 때문일 수도 있겠다. 이 때문에 관계의 아주 작은 실마리라도, 티끌만 한 호의라도 대단하게 받아들이는 건 아닌지. - P98

우리는 함께 웃으며 ‘그래, 우리 죽도록 먹고 운동하고 그럼에도 그냥 뚱뚱한 채로 살자‘라는 결론을 내리며 전화를 끊었다. - P130

나는 매일 싸우는 것처럼 살아온 것일지도 모른다. 내 뜻대로 되지 않는 세상과, 나를 둘러싸고 있는 환경과, 사람들과, 어쩌면 그 무엇보다도 나 자신과 말이다. - P147

오늘은 정말로 굶고 잘 생각인데, 도대체 왜 잠은 오지 않는 걸까. 도대체 어디서부터 뭐가 어떻게 잘못된 것일까. 나도 잘 모르겠다. 정말 모르겠다. - P170

다만 지금 이 순간의 내 모습이 지금까지 내가 살아온 결과임을 받아들이기로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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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밤은 굶고 자야지 - 박상영 에세이
박상영 지음 / 한겨레출판 / 2020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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직장인이라면, 끝없이 자기혐오에 빠져봤던 사람이라면, 밤 마다 티비나 넷플릭스를 보며 배달 앱을 켜고 음식을 먹으며 게걸스럽게 먹었던 모습이 한 두가지씩 있었을 것이다. 박상영은 철저히 자신의 모습을 공개하며 독자의 외로움을 끄집어내고 치유해준다. 나도 언젠가 저런 글을 쓰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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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출처 : 작가와의만남님의 "<나는 울 때마다 엄마 얼굴이 된다> 이슬아 작가 강연"

(1명) 이슬아 작가님의 글을 보며 많이 울었습니다. 이렇게 글을 솔직하게 쓸 수 있는데 나는 지금까지 대체 무얼 하고 있는 것인가. 에세이를 준비하면서도 항상 답답했고. 우울하던 참이었습니다. 작가님의 이야기를 들으며 질문하고 싶은 것이 많습니다. 창원에서 서울까지 멀지만 그래도 너무나 간절히 가고 싶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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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디단 내음
심윤주 외 지음 / 꿈공장 플러스 / 2018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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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오늘처럼 엄마가 보고 싶은 적도, 엄마에게 미안함을 가득 담은 적도 없는 것 같다. 연신 눈물을 훔치며 책장을 단숨에 넘겼다. 엄마. 미안해. 그리고 사랑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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