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3.

상트페테르부르크의 목소리








뭉개진 코에 원숭이 얼굴을 한 털북숭이의 키 작은 남자가 거의 달리듯 빠르게 종종걸음을 치며 가고 있다. 그의 눈의 짙푸른 눈동자는 초초한 듯 부풀어 있고, 그 주위를 가느다란 오팔색의 둥그런 흰자위가 에워싸고 있다. 범포로 만든 외투는 그의 키에 맞지 않고, 가장자리가 불규칙하게 찢겨 나가 술 장식처럼 늘어져 있는 것이 마치 개가 물어뜯어 놓은 것 같다. 발에는 볼품없이 구겨진 펠트 장화를 신고 있다. 모자를 쓰지 않은 머리에는 잿빛 머리카락이 솟아 있고, 백발이 잔뜩 섞인 무성한 수염이 눈 밑과 광대뼈 아래, 귀에서부터 헝클어져 자라나 있다. 빠르게 움직이며 무언가 초초하게 중얼거리며 팔을 휘두르기도 하고 이따금 양손가락을 꽉 마주잡기도 한다.

인민의 집 근처 대로에서 그가 병사들을 상대로 말하고 있다.

“그걸 알아야 돼요. 특히 당신들이 알아야 해요! 사람은 자기가 아주 잠시 동안만 사람으로 산다는 걸 기억하고 그걸 받아들일 때만 행복하다는 것을 말입니다…….”







그는 낮고 가느다란 목소리로 말하고 있지만 그의 겉모습을 보면 꼭 사납게 으르렁거리는 것 같다. 다리를 휘청거리며 한 손으로는 가슴을 누르고 다른 한 손은 지휘하듯 휘젓고 있는데, 그 손에도 털이 잔뜩 나 있고, 손가락에도 시커먼 덤불이 자라 있다. 그의 앞 벤치의 병사 셋은 해바라기씨를 까먹으며 껍질을 그의 배며 다리를 향해 내뱉고 있고, 뺨에 빨갛게 패인 자국이 있는 네 번째 병사는 담배를 피우면서 말하고 있는 남자의 입과 코를 향해 연기를 뿜어 맞추려 애쓰고 있다.

“내 확실히 말하는데, 우리 사람들에게 뭔가 더 나아지리라는 희망을 불러일으키려 해봤자 소용없어요. 그건 비인간적이고 범죄적이기까지 한 짓입니다. 사람들을 불로 지지는 것이나 마찬가지라고요.”

병사가 피우던 담배꽁초에 침을 뱉어 손가락으로 튕겨 허공으로 날려 버리고는 다리를 쭉 뻗으며 물었다.

“누구한테 고용된 거요”

“뭐? 나요”

“아저씨 말이야. 누구한테 고용된 거냐고”

“무슨 말이오? 고용됐다니”

“말 그대로지 뭐긴 뭐야. 부르주아한테 고용됐나, 유대인한테 고용된 건가”

남자는 당혹스러운 웃음을 지으며 말문이 막혔고, 해바라기씨를 까먹던 셋 중의 하나가 질문을 하고 있던 병사에게 느릿한 말투로 한마디 보탰다.

“배때기나 한 대 차 버려.”

또 다른 병사가 끼어들었다.

“찰 만한 배도 없구먼.”







키 작은 남자는 한 걸음 뒤로 물러서더니 양손을 주머니에 밀어 넣었다가 다시 손을 잡아 빼어 주먹을 꽉 움켜쥐었다.

“나는 내가 할 말을 하는 겁니다. 누구한테 고용된 게 아니라니까요. 생각도 많이 해봤고, 책도 읽고, 신앙도 가져 봤소. 하지만 이제 알았어요. 사람은 아주 잠깐 동안 살 뿐이고, 모든 것이 스러져 사라진다는 걸. 그리고 사람은…….”

볼에 패인 자국이 있는 병사가 사납게 소리를 질렀다.

“저리 안 가!”

키 작은 남자가 흠칫하며 펠트 장화 주위로 먼지가 일도록 황급히 저만치 내빼자, 병사는 자기 동료들에게 말했다.

“감히 우릴 겁주려 해? 쓰레기 같은 새끼. 우리가 지가 뭔 말을 하는지 모르는 줄 아나 봐. 훤히 다 알고 있는데 말이야…….”

같은 날 저녁 남자는 트로이츠키 다리 부근 벤치에 앉아서 다시 자기 주장을 펼치고 있었다.

“이걸 알아야 해요. 실은, 대부분의 인간이나 우리 자신이 바보라고 여기는 단순한 인간이야말로 삶의 참된 건설자라는 것을 말입니다. 대부분의 사람은 바보거든요…….”

사람들이 그의 말에 귀 기울이고 있었다. 얼굴이 얽고 다리가 휜 수병, 육중한 체격의 경찰관, 푸른 원피스를 입은 뚱뚱한 여자, 노동자로 보이는 잿빛 머리의 세 사람, 검은 가죽옷을 걸친 유대인 젊은이. 발끈한 젊은이가 이죽거리며 물었다.

“그럼 프롤레타리아트도 바보겠네요, 어?”

“나는 아주 최소한의 것을 바라는 사람들을 말하는 거요. 무엇보다도 그런 사람들이 자기에게 익숙한 대로 살아가는 것을 방해하지 말아야 한다는 거요.”

“그러니까 부르주아지를 말하는 거지, 응”

“잠깐만, 동무!” 수병이 근엄하게 말했다. “무슨 말인지 들어 봅시다…….”

말을 하던 키 작은 남자가 수병 쪽을 향해 고개를 굽혔다.

“감사합니다.”

“별말씀을요.”

“인간이 바보 같다는 것은 우리가 책에서나 말하는 관점일 뿐이지 그 자신은 자연이 준 지혜만으로도 전혀 모자람이 없을 뿐 아니라 그것을 어떻게 써야 하는지 잘 알고 있단 말입니다…….”

“옳은 말씀이네요!” 수병이 말했다. “계속하세요!”

“인간은 잠시 살다 가는 유한한 존재라는 것을 우리 인간은 알고 있을 뿐 아니라, 얼마 안 있어서 무덤에 드러누워야만 한다는 것 때문에 불안해 하지도 않습니다.”

“우리 모두 죽지요. 거 맞는 말씀입니다!”

수병은 거듭 맞장구를 치더니, 가죽옷의 젊은이에게 눈을 찡긋하며 정작 그 자신은 자기 불멸을 굳게 확신하고 있다는 생각이 들게 하는 이죽거리는 미소를 씨익 지었다.







털북숭이 남자는 변함없이 낮은 목소리로, 마치 자신의 말을 믿어 달라 부탁하고 간청하는 듯한 무척 야릇한 어조로 말을 이었다.

“인간은 희망으로 들뜬 불안한 삶을 원치 않습니다. 밤하늘의 별 아래 느릿느릿 흘러가는 조용한 삶이면 족합니다. 제가 확실히 말하지만, 잠시 살다 갈 뿐인 사람들에게 실현 불가능한 희망을 불러일으키는 것은 그들의 게임을 뒤죽박죽으로 만드는 것이나 마찬가지입니다. 공산주의가 뭘 해 줄 수 있겠습니까”

   “아하!” 수병이 외치며 양손바닥을 무릎 위에 받치고 몸을 앞으로 굽히더니 벌떡 일어섰다.

“자— 갑시다!”

“어디로 가자는 겁니까?” 털북숭이 남자가 뒷걸음질 치며 물었다.

“그건 내가 알아서 할 거고. 동무, 당신도 나를 따라와 주시오…….”

“아이, 그냥 내버려 둡시다.” 젊은이가 손사래를 치며 경멸스럽다는 투로 말했다.

“따라오시오!” 수병이 거듭 말했다. 조용한 목소리였지만 그의 얽은 낯은 흙빛으로 변했고 눈은 사납게 깜빡였다.

“난 무서울 게 없소.” 털북숭이가 어깨를 으쓱하며 말했다.

아낙네는 성호를 그으며 저쪽으로 가 버렸고, 경찰관도 메고 있던 소총의 걸쇠를 만지작거리며 물러갔으나, 남은 세 사람은 마치 한마음이 된 듯 기계처럼 일제히 자리에서 일어섰다.

수병과 가죽옷을 입은 젊은이는 자기들이 붙잡은 남자를 페트로파블로프스크 요새로 끌고 가려 하고 있었다. 하지만 행인 두 사람이 다리 위에서 그들을 잡아 세워 수병에게 철학자를 놓아 주라고 타이르기 시작했다.

“안 돼요, 안 돼!” 수병이 반발했다. “이 푸들 같은 놈한테는 인간이 얼마 못 산다는 게 뭔지 똑똑히 보여 줘야 해요.”

“난 무서울 게 없소.” 푸들이 자기 발끝을 바라보며 조용한 목소리로 되풀이해 말했다. “하지만 당신들이 그리도 뭘 모르다니 놀랍소…….”

그는 갑자기 홱 몸을 돌리더니 원래 있었던 광장 쪽으로 걸어갔다.

“저거 봐 도망간다!” 수병이 놀라서 나지막하게 내뱉었다. “가 버리잖아! 어이, 어디 가는 거야?”

“아이, 그냥 내버려 둡시다, 동무. 보시다시피 제정신이 아니잖아요…….”

수병이 털북숭이 키 작은 남자의 등 뒤를 향해 휙 휘파람을 불더니, 씨익 웃으며 말했다.

“제기랄, 소리도 없이 가 버렸네! 개자식이 용감하네 정말. 완전히 맛이 가서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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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세기 러시아 대표 지식인 막심 고리키 저널

인간 존재 자체에 대한 경외감, 삶에 대한 고결한 의지를 읽는다!


가난한 사람들












* 1/29(월)부터 격일 업로드됩니다. (총 5회 진행) 

* 2월 9일 출간될 <가난한 사람들> 미리 읽어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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