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2.

사람들이 혼자 있을 때







오늘 소녀처럼 앳된 얼굴의 크림색 스타킹을 신은 금발의 자그마한 여인이 트로이츠키 다리 위에 서 있는 것을 보았다. 회색 장갑을 낀 손으로 다리 난간을 붙잡고 있었는데 마치 당장이라도 네바 강으로 뛰어들려는 듯 보였고, 달은 그녀가 내민 뾰족한 빨간 혀를 비춰 드러내고 있었다. 하늘에는 늙고 교활한 여우가 짙은 회색 연기구름을 뚫고 하늘을 향해 살금살금 기어가고 있었는데, 그 몸집이 아주 거대하고 술에 취한 것처럼 붉은 얼굴을 하고 있었다. 여인은 하늘의 여우를 희롱하는 데 완전히 정신이 팔려 여우에게 뭔가 앙갚음할 일이 있는 듯마저도 보였다.








그 여인 때문에 오래전부터 나를 늘 당혹스럽게 해 왔던 몇 조각의 ‘기이한’ 기억들이 되살아났다. 사람이 혼자 있을 때 하는 짓을 지켜보노라면 그들이 제정신을 잃는 것을 보게 된다. 그 밖에 달리 표현할 말을 찾을 수가 없다.


내가 처음 그런 모습을 본 것은 소년 시절이었다. 론달이라는 이름의 영국인 광대가 서커스극장 안의 인적 없는 복도에 걸린 거울 곁을 지나가다 실크해트를 벗고 거울에 비친 자기 모습에 대고 정중하게 절을 하는 것이었다. 복도에는 아무도 없었고, 나는 론달의 머리 위에 있는 물탱크에 앉아 있었다. 그는 나를 볼 수 없었고, 나도 그의 발자국 소리를 듣지 못했으나, 우연히 물탱크 밖으로 고개를 내민 순간 광대가 자기 자신에게 깍듯이 절을 하고 있었다. 그의 행동은 나를 어둡고 불쾌한 놀라움 속으로 몰아넣었다. 그때 나는 생각했다. ‘광대, 게다가 영국인이라는 사람은 기묘한 짓을 그의 직업 또는 재주로 삼고 있구나…….’

그런데 안톤 체호프가 자기 집 정원에 앉아 모자로 햇볕을 잡아 모자와 함께 머리 위에 써 보려고 부질없는 헛수고를 하는 것을 보았다. 하릴없는 실패가 햇볕 사냥꾼의 짜증을 돋우어 그의 얼굴은 갈수록 약이 올라갔다. 그는 그 짓을 그만두며 낙담한 듯 모자로 무릎을 내리치고는, 격한 동작으로 모자를 머리 위에 팩 눌러 썼다. 그러고는 짜증스럽게 자기 개 투지크를 발로 밀치고, 눈을 가늘게 뜨고 하늘을 힐끔 올려다보더니 집안으로 향했다. 그는 현관 앞 계단에서 나를 만나자 싱긋 웃으며 말했다. 

“잘 주무셨소! 발몬트의 ‘태양은 풀 냄새가 난다.’라는 시구 읽어 보셨소? 바보 같은 표현이죠. 러시아의 태양은 카잔 비누 냄새가 나고, 이 동네에선 타타르인 땀 냄새가 나거든요…….”

그는 또 굵은 빨간 연필을 작은 약병 주둥이로 밀어 넣으려 한참 동안 갖은 애를 썼다. 이는 명백히 모종의 물리법칙을 거스르는 시도였다. 체호프는 실험자의 집요한 끈기를 갖고 이 시도에 꼼짝 않고 몰두했다. 







톨스토이는 도마뱀을 향해 나지막이 물었다. 

“행복하냐, 응?”

도마뱀은 뒬베르 궁으로 가는 길가 덤불 사이의 돌 위에서 몸을 덥히고 있었고, 톨스토이는 양손을 가죽 허리띠에 찔러 넣은 채 그 앞에 서 있었다. 그러고는 조심스럽게 주위를 둘러보고 세계 최고의 위대한 이 인물은 도마뱀에게 고백했다. 

“난, 불행하단다.”







화학자 M. M. 티흐빈스키 교수는 우리 집 식탁에 앉아 놋쇠쟁반에 비친 자기 모습을 들여다보며 물었다. 

“사는 게 좀 어떻소, 형제?”

쟁반 속의 형제는 답이 없다. 교수는 깊은 한숨을 내쉬고는 손바닥으로 쟁반 속 자기 모습을 지우려는 듯 꼼꼼히 문지르더니, 얼굴을 잔뜩 찡그리며 언짢게 코를 실룩거렸는데 그 꼴이 갓 태어난 코끼리 코를 닮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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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세기 러시아 대표 지식인 막심 고리키 저널

인간 존재 자체에 대한 경외감, 삶에 대한 고결한 의지를 읽는다!


가난한 사람들


















* 1/29(월)부터 격일 업로드됩니다. (총 5회 진행) 

* 2월 9일 출간될 <가난한 사람들> 미리 읽어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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