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늘 괜찮다 말하는 당신에게』 정여울의 심리 치유 에세이


5. ‘보이지 않는 시간’을 소중히 여겨라








콤플렉스는 참 변화무쌍하다. ‘나쁜 것’인 줄로만 알았는데 때로는 좋은 역할을 하고, 이제는 드디어 사라졌구나 싶으면 뭔가 다른 모습으로 변신해서 우리를 괴롭힌다. 내가 글쓰기를 시작한 것은, 실은 말하기 콤플렉스 때문이었다. 말하기가 싫어서 글쓰기로 도피했다. 많은 사람들 앞에서 시선 처리는 물론 목소리 강약을 조절하는 것도 어려웠기에, 나는 무대공포증을 피해 조용히 글 쓰는 삶을 선택했다. 그런데 글을 쓰다 보니 자꾸 말할 일이 생겼다. 여기저기서 온갖 종류의 강의를 해야 했고, 글을 쓰기 전보다 훨씬 더 다채로운 사람들을 만날 기회가 생겼다. ‘어, 이게 아닌데!’ 싶었지만 이미 늦어 버렸다. 내 글이 사랑받을수록 내 강의도 ‘출동’을 요구받았다.


그러던 어느 날 신기한 일이 벌어졌다. 가끔은 말하기가 글쓰기보다 더 행복한 일이 아닐까, 생각하기 시작한 것이다. 내 말을 들어 주는 사람들의 반짝이는 눈빛이 아름다웠다. 독방에서 원고를 쓸 때는 결코 확인할 수 없는 독자들의 생생한 반응을 오감으로 느끼며 ‘이것이 바로 말하기의 기쁨이구나!’ 감탄하게 된 것이다.










그때부터 나는 ‘콤플렉스와 대화하는 삶’이 중요하다는 걸 깨달았다. 콤플렉스를 꽁꽁 숨겨 두기만 하면 문제는 전혀 해결되지 않는다. 나에게 이러저러한 콤플렉스가 있다고 고백하는 순간 이미 치유는 반쯤 시작된 것이다. 나는 스스로 ‘말주변이 없고 어눌하다.’고 생각했지만, 자꾸 본의 아니게 말하기 훈련을 하다 보니 ‘생각보다 말을 잘한다.’는 뜻밖의 칭찬을 듣

기도 한다. 그때마다 쥐구멍으로 숨고 싶지만, 다행히 이제는 말하기가 예전만큼 두렵지 않다. 엄청난 말하기 비법이 따로 있는 것이 아니라 ‘내 마음, 내 분위기, 내 성격에 맞는 나만의 말하기’로 밀고 나가면 된다는 걸 이제는 알기 때문이다. 


‘말하기의 이상형’을 세워 놓고 따라 하려면 식은땀부터 흐르지만, 그냥 부족한 대로, 울퉁불퉁한 대로, 그리고 본연의 나 자신으로부터 한 발짝도 벗어날 수 없다는 것을 인정하면 신기하게 마음이 편해진다. 콤플렉스와 대화하는 삶이야말로 내면의 성숙을 위해 꼭 필요한 마음의 문턱이었던 것이다. 융은 말한다. 우리가 콤플렉스를 가지고 있는 것이 아니라, 콤플렉스가 우리를 가지고 있는 것이라고. 그래서 내가 콤플렉스를 조절하는 것이 아니라 콤플렉스가 나를 조종하게 내버려 둔다면, 문제는 더욱 심각해진다.










『도리언 그레이의 초상』은 바로 그 강력한 콤플렉스가 한 젊은이의 인생을 완전히 파괴시켜 버리는 비극이다. 이 이야기의 독특한 점은 ‘우월감도 콤플렉스의 일종’임을 흥미롭게 보여 준다는 것이다. 도리언 그레이는 자신의 외모가 대단하다는 것을 잘 몰랐다. 불세출의 화가 바질이 그의 초상화를 그려 주기 전까지는, 그 초상화를 쾌락주의자이자 염세주의자인 헨리 경이 극찬하기 전까지는. 자신을 그리스 신화의 아도니스급 으로 숭배하는 바질이 심혈을 기울여 그린 초상화를 통해 그레이는 자신의 외모가 국보급임을 깨닫는다. 현대판 나르키소스가 탄생하는 순간이다.


도리언 그레이는 이제 자신만을 사랑할 뿐 그 누구도 진정 사랑하지 못하게 된다. 여기에 언어의 마술사인 헨리 경이 비평의 기름을 붓는다. “미(美)는 천재성의 일종이야. 실은 천재성보다 더 위대한 것이 바로 미야.” “미는 그 미를 갖춘 사람을 절대군주로 만들지.” “유혹을 이기는 유일한 방법은 유혹에 굴복하는 거야.” 헨리 경은 그레이를 쾌락주의로 이끌며 ‘찰나의 젊음’과 ‘곧 사라져 버릴 아름다움’을 즐길 수만 있다면 뭐든 해도 좋다고 부추긴다.










순박한 청년 그레이에게 헨리 경은 ‘자기 예찬’이라는 밑빠진 독을 선물하고 만다. 그레이는 부모 없이 외롭게 자랐기 때문에 안타깝게도 헨리 경을 자신의 정신적 지주로 삼아 버

린다. 급기야 그레이는 지금까지 늘 당연한 것으로 여겼던 거울 속 아름다움이 이제 곧 사라질 것임을 절감하면서, 끔찍한 소원을 발설해 버린다. “초상화의 저 완벽한 얼굴이 내 것이 되고, 얼마 못 가 늙고 추해질 진짜 얼굴이 초상화가 되었으면!” 그럴 수만 있다면 영혼이라도 통째로 내주겠다고 말하는 그레이를 바라보며 독자의 가슴은 오그라든다. 이렇게 현대판 파우스트가 탄생한다. 괴테의 파우스트는 완벽한 지성을 위해영혼을 팔았지만, 도리언 그레이는 완벽한 미모를 위해 영혼을 판 셈이다.


놀랍게도 그레이의 얼토당토않은 소원은 이루어진다. 초상화 속 얼굴은 그가 나쁜 짓을 할 때마다 점점 추악하고 야비하게 바뀌어 가고, 살아 움직이는 그레이는 완벽한 방부제 미모를 과시한다. 현실과 환상이 완전히 뒤바뀐 것이다. 그레이는 그때부터 자신의 미를 인간관계에 이용하기 시작한다. 스스로의 아름다움을 더욱 적극적으로 과시하고, 남녀노소 가리지 않고 사람들을 유혹하여 쾌락에 빠지게 하며, 마약에까지 손을 뻗친다.





오스카 와일드





쾌락이 있는 곳에 그레이가 있다. 그리고 그레이가 있는 곳에 파멸이 있다. 그레이와 함께 쾌락에 도취된 사람들은 하나같이 중독이나 자살 같은 파국을 향해 치닫는다. ‘마흔 이후에는 자기 얼굴에 책임을 져야 한다.’는 속설에는 살아온 속사정이 얼굴에 드러나기 마련이라는 믿음이 깃들어 있다. 그레이는 그런 책임을 질 필요가 없기에, 끝없는 쾌락과 사악한 충동을 실현하며 급기야 살인까지 저지른다.


무의식에 도사린 콤플렉스, 그리고 겉으로 보이는 성격인 페르소나와의 거리감을 어떻게 조정하느냐에 따라 삶은 완전히 달라진다. 건강한 사람은 결핍을 있는 그대로 인정한다. ‘모자라면 어때, 이게 바로 나야.’ 하고 웃어넘길 줄 안다. 자신의 그림자를 돌보지 않는 사람, 콤플렉스와 페르소나와의 거리를 생각해 보지 않는 사람은 ‘이상적인 자아상’을 만들어 놓고 그것이 곧 자기라고 생각해 버린다.










바질과 헨리를 만났을 때 그레이가 겉으로 보이는 아름다움의 찰나성과 허무를 깨닫고 더 깊고 넓은 잠재력을 찾으려 노력했다면, 그의 삶은 분명 달라졌을 것이다. 그레이의 삶에는 참으로 소중한 인연들이 많았다. 그를 진정으로 사랑해 준 여배우 시빌의 지고지순한 애정을 받아주었다면 그레이는 타락을 멈추고 참다운 삶을 향해 나아갈 수 있었다. 바질이 그의 문제점을 알고 잘못을 일깨워 주려 했을 때, 그를 잔혹하게 죽이지 않고 그의 조언을 들었다면 그레이는 그때부터라도 새로운 삶을 살 수 있었다. 그레이에게 앙심을 품은 시빌의 동생이 그를 죽이려 했을 때 용서를 빌었다면, 다시 새 삶을 시작하려 애썼다면 그의 삶은 달라질 수 있었다.


그러나 오직 쾌락과 도취, 승리와 정복의 욕망에 길들여진 그의 신체는 말초적인 향락에만 반응할 뿐이다. 내적 깨달음이 주는 느리고 오래가는 기쁨을 이해하지 못한다. 그는 ‘우월감’이라는 콤플렉스에 도취되어 고개를 숙이고 잠시 타인의 조언을 경청해야만 들리는 삶의 진실을 듣지 못했다. 점점 추악하게 변해 가는 초상화가 바로 내면의 그림자였음을 감지했다면, 그는 자신의 그림자를 돌보는 것이야말로 멋진 인생의 시작임을 깨달았을 것이다.


오늘도 나는 내 무의식에게 묻는다. 너는 어디까지 네 모습을 보여 줄 수 있니? 얼마만큼 세상 밖으로 나올 수 있니? 무의식 속에서 유유히 헤엄치던 나의 콤플렉스는 내게 속삭인다. ‘남들에게 보이는 시간’보다 ‘남들에게 보이지 않는 시간’을 소중히 여기라고. 강의하고 글 쓰고 사람들과 대화하며 나를 표현하는 시간도 좋지만, 조용히 나를 돌아보고 한없이 공상에 빠져 보는 시간을 가지라고. 아직은 나보다 내 무의식이 더 똑똑한 것 같다. 다행히 나는 내 무의식의 조언을 기쁘게 받아들인다. ‘말로 표현할 수 없는 나’를 생각하는 ‘보이지 않는 시간’이야말로 내게 아직도 턱없이 부족한 마음챙김의 시간이다.












다음 주 출간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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