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늘 괜찮다 말하는 당신에게』 정여울의 심리 치유 에세이


3. 내 영혼의 숨은 그림자를 사랑하라




심리학자 카를 구스타프 융




당신이 가장 싫어하는 것들의 목록을 적어 보라. 주저 없이, 생각나는 대로, 사람과 사물과 감정과 상태를 가리지 말고 마음껏 나열해 보라. 그런 다음 왜 싫은지, 왜 미운지, 왜 혐오스러운지를 낱낱이 적어 보라. 그것을 아무도 없는 곳에서 혼자 조용히 낭독해 보자. 그러면 알게 될 것이다. 당신 안에 도사린 그림자의 실체를. 인생의 갈피를 잡지 못하고 어둠 속을 헤맬 때 조용한 길벗이 되어 준 심리학자 융은 내게 그렇게 다가와 속삭이는 듯했다. 


융의 『인간과 상징』을 읽은 후에 나는 실제로 그런 글을 써 보았다. 싫어하는 것들의 목록을 헤아리며 누구에게도 보여 줄 수 없는 나만의 리스트를 적어 보았다. 시작할 때는 ‘외부의 살생부’였는데 끝내고 보니 ‘내면의 트라우마’ 목록이었다. 나는 타인을 향해 분노를 쟁여 두면서, 실은 나 자신의 지울 수 없는 상처를 속절없이 곱씹고 있었다. 그 ‘혐오 대상 목록’을 소리 내어 읽어 보니 낯 뜨거웠지만 은밀한 쾌감이 솟아나기도 했다. 내 안의 어떤 부분, 오랫동안 짓눌려 존재 자체를 잊어버렸던 부분이 풀려 깨어난 것이다. 그것이 바로 융이 말하는 ‘그림자(shadow)’다. 나는 그렇게 그림자의 세계에 입문했다.









내가 좋아하는 것들, 동경하는 것들, 사랑하는 것들로만 내 의식을 지배하고 싶었던 그 시절. 나는 내가 증오하는 것들, 슬쩍 눈감고 싶었던 것들, 미처 돌보지 못한 것들이 나의 무의식을 지배한다는 것을 인정하기 어려웠다. 하지만 머지않아 의식의 핸들을 붙잡고 간신히 ‘나’라는 자동차를 운전하려던 내 욕망은 ‘무의식’이라는 도로 사정을 염두에 두지 않은 철없는 폭주족이었음을 인정하게 되었다. 그 과정은 결코 쉽지 않았다. 게다가 이런 의식과 무의식의 불화는 살아 있는 한 끝없이 지속된다. 의식과 무의식의 거침없는 대화가 가능하려면 우리는 자신의 그림자에 대해 좀 더 솔직해질 필요가 있다.


나는 제인 오스틴(1775-1817)의 소설 중에서 『오만과 편견』보다는 『이성과 감성』을 더 좋아하는 내 취향 자체에 ‘그림자’ 문제가 얽혀 있음을 깨달았다. 말괄량이 둘째 딸 이야기인 『오만과 편견』보다, 평생 감정을 억누르며 살아왔던 첫째 딸의 이야기인 『이성과 감성』이 내 감각의 촉수를 더 아프게 건드렸던 것이다.










맏이인 엘리너는 매사에 감정을 억제한다. 아버지의 죽음으로 어려워진 집안 생계를 책임져야 하기 때문이다. 매리앤이 첫눈에 사랑에 빠진 월러비에 대해 모두가 우호적이지만, 엘리너만은 그 불같은 사랑에 의구심을 표한다. “사랑한다는 증거는 있죠. 하지만 약혼했다는 증거가 없어요.” 반면 둘째 딸 매리앤은 매사에 감정을 숨김없이 토로한다. 엘리너가 자신이 사랑하는 에드워드가 “꽤 미남이지 않냐”는 질문에, 매리앤은 언니의 감정 따위는 무시하고 솔직하게 자기 느낌을 말해 버린다. “지금 당장은 아니지만 곧 미남이라고 생각할게.”


엘리너와 매리앤은 아직 서로의 그림자를 인식하지 못한다. 두 사람의 사랑이 저마다 탄탄대로를 걷고 있다고 믿을 때까지는. 금방이라도 청혼할 것 같았던 월러비가 매리앤을 버리고 돈 많은 여인을 선택하자, 매리앤은 숨겨 왔던 우울의 그림자를 드러내기 시작한다. 여름 햇살을 받아 찬란하게 빛나는 해바라기처럼 지나치게 밝았던 매리앤은 매일 음울한 곡조의 피아노를 연주하며 주변 전체를 검푸른 멜랑콜리로 물들인다.








한편 결혼까지 생각했던 에드워드에게 약혼자가 있었음을 알게 된 엘리너는 급기야 그녀의 트레이드마크인 냉철한 이성을 잃어버리기 시작한다. 융 심리학의 눈으로 보면 이들의 심경 변화는 자신의 그림자와의 진정한 대면이며, 겉으로는 ‘후퇴’일지 몰라도 내면의 여정에서는 분명 ‘진전’에 속한다. 자매들은 각자의 그림자와 접촉하기 시작하면서, 아직 한 번도 밟아 보지 못한 무의식의 세계에 입문한 것이다.


융에게 그림자란 자기 안의 ‘열등한 인격 부분’이다. 우리 자신의 결핍, 콤플렉스, 트라우마, 집착, 질투, 분노, 이기심과 관련된 모든 부정적인 사실들이 그림자의 세포를 구성하고 있다. 엘리너와 매리앤은 생애 처음으로 사랑에 빠졌고, 그 사랑에 잔인하게 배신당한 후 비로소 자기 그림자와 만난다. 하지만 그림자와의 만남은 의식과 무의식의 하모니로 매끄럽게 연결되지 않는다. 상처로 얼룩진 무의식의 그림자를 자신의 적이 아닌 친구로 길들이는 방법은 그림자의 목소리에 귀 기울이는 것이다. 하지만 주인공들은 그림자의 속삭임을 처음에는 거부한다.









나도 처음에는 내 그림자의 본모습을 한사코 부정했다. 나 또한 앨리노어처럼 모범적으로 살기를 강요받았지만 실은 매리앤의 자유분방한 영혼을 지닌 사람이라는 걸, 나는 의식적으로 내가 앨리노어처럼 미련하게 자신의 감정을 꽁꽁 숨기는 사람이라고 생각했지만 무의식에서는 아무리 퍼내고 퍼내도 감정이 흘러넘치는 매리앤의 화수분형 영혼을 닮았다는 것을. 나는 내 억눌린 그림자의 뿌리가 매리앤이라는 사실을 거부했다. 내가 매리앤을 미워할수록 매리앤은 내 그림자-인격이라 는 사실이 확고해져 버렸다. 영화 속 어떤 인물을 보며 이상하리만치 강렬한 혐오감을 느껴 본 적 있는가? 바로 그 인물이야말로 당신의 그림자를 형상화하고 있는 최고의 스승일 것이다.


엘리너는 자신의 버림받은 처지보다는, 에드워드가 교활하고 이기적인 루시와 평생을 함께해야 한다는 상황에 절망한다. 타인에게는 한없이 사려 깊지만 정작 자신을 배려하는 방법을 모르는 엘리너는 자신을 위해서가 아니라 에드워드를 위해 눈물 흘린다. 한 번도 ‘나는 이것을 원한다.’고 말해 본 적 없는 사람은, 항상 동생들을 생각해서 ‘나는 이것을 원하지 않는다.’고 거짓말하며 살아온 맏이들은 엘리너의 슬픔에 처절하게 공감할 것이다.








나는 천성적으로 매리앤에 가깝지만 환경적으로 엘리너로 키워져서 언젠가부터 내 안에는 매리앤의 희미한 뿌리조차 남아 있지 않은 것 같았다. 월러비로부터 버림받은 후 열병에 걸려 사경을 헤매는 매리앤을 보면서 내가 왜 그토록 눈물을 쏟았는지 처음에는 알 수 없었다.


하지만 오랜 시간이 지나 작품을 다시 읽어 보니, 매리앤이 죽음의 문턱을 넘나들 때 그토록 가슴 아팠던 이유는 내 안의 또 다른 매리앤의 죽음을 두려워해서였다. 남들 눈치 따위는 보지 않고 어디서나 분명하게 자신의 의견을 밝히는 매리앤, 언니가 집안 형편 때문에 마음고생 하는 것을 알면서도 자신이 원하는 꿈만 좇는 매리앤. 그토록 이기적이고 충동적이고 열정적인, 그러나 턱없는 순수 그 자체인, 내 안의 억눌린 매리앤을 영원히 잃어버릴지도 모른다는 공포가 나를 울게 했던 것이다. 시간이 지나 심리학의 관점으로 나를 바라보니, 내가 그토록 한 대 때려 주고 싶었던 매리앤이 실제 내 동생을 닮아서가 아니라 바로 내가 가장 사랑하지만 차마 세상에 꺼내 보일 수 없었던 내 안의 또 다른 자아, ‘알터에고(alter ego)’였음을 알 것 같다.









이제 나는 내 안의 매리앤을 꾸밈없이 사랑한다. 매리앤이 나의 숨은 그림자라면, 엘리너는 내가 살아남기 위해 연기해 온 사회적 자아, 나의 페르소나다. 글을 쓸 때, 나는 엘리너인 척 침착하게 처신하면서 매리앤의 부서질 듯 덜컹거리는 영혼을 꺼내 쓴다. 그러나 엘리너는 단순한 가면이 아니다. 엘리너의 애교 없는 무뚝뚝함과 못 말리는 답답함은 나의 소중한 인격이며, 내가 죽을 때까지 벗을 수 없는 영혼의 피부다. 엘리너가 든든하게 나의 수문장으로 버티고 있기에 매리앤이 아련한 그림자로서 존재할 수 있다. 


글을 쓸 때, 나는 내 안에서 오래전에 죽은 줄로만 알았던 매리앤을 남몰래 조금씩 꺼내 맘껏 뛰어놀게 한다. 눈치 보지 말고 네 감정을 말해. 자신을 검열하지 말고 스스로에게라도 제발 솔직해 봐. 가끔은 소리 내어 흐느껴도 좋아. 한때 나의 철천지원수였던 내 영혼의 그림자는 이제 나의 가장 소중한 말벗이자 멘토가 되었다. 가장 어둡고 쓰라린 그림자를 내 친구로 만드는 것, 그리하여 그림자의 어둠조차 우리 삶의 에너지로 바꾸는 것. 그것이 ‘나를 지키는 또 하나의 나’를 만드는 비결이다.












다음 주 출간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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