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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가 ㅣ 스토리콜렉터 79
미쓰다 신조 지음, 현정수 옮김 / 북로드 / 2019년 12월
평점 :
절판
미쓰다 신조가 그려내는 아이들은 특별하지 않은 적이 없었지만 [마가]의 주인공 유마는 그 중에서도 군계일학이라 할 수 있다.
감이 좋은 아이라는 설정에서 한발짝 더 앞서 유마는 상대가 던져주는 실마리로 사건 전체를 파악하는 어마무시하게 머리가 뛰어난 논리적인 아이다. 주변 사람들을 제대로 설득할 수 없었던 다른 시리즈의 아이들과 달리 유마는 어느 정도는 어른들을 설득시킬 말주변이 있다. 본인이 주제파악을 심각하게 잘 해서 설득까지 가는 일도 많지는 않았지만 만나는 인물마다 유마를 '똑똑하다'라고 표현하는 걸 보면 영 어설프지는 않다는 말이다.
[마가]는 미쓰다 신조가 그려왔던 기괴한 집 시리즈의 완결판으로, 전작의 소재와 연결되는 부분이 있었지만 결말 자체는 상당히 흥미롭고 현실적으로 끝났다는 신선함이 존재한다. 동시에 폐쇄된 공간이 주는 공포를 넘어서 주인공의 성장, 변화를 그려내는 데 공을 들인 작품이다. [마가]에선 집의 배경보다 집을 구성하는 구성원들에 대한 관계가 매우 중요하게 여겨지며 그들이 발생시키는 새로운 관계를 통해 사건을 만들어 나간다. 주인공의 성장 역시 마찬가지다. 유마의 성장 서사는 변칙적인 요소(아버지의 죽음, 부재, 어머니의 재혼, 새아버지와 삼촌의 존재, 동복 형제의 등장)들의 영향을 받아 자신의 자아를 확립하게 되기 때문에 사람과의 관계가 계속 중요하게 비춰진다. 일본 작가답게 여성캐릭터들은 매우 수동적(...)으로 그려졌기에 여기서는 남성캐릭터에 초점이 맞춰진다.
유마의 삶에 영향을 준 남성들을 통해서 [마가]의 주인공 유마가 보여주는 기괴한 사건들을 이해해보자.
「 아버지가 쓰고 싶었던 건 순문학이었다. 지금도 순문학이 무엇인지 유마는 알지 못했다.
하지만 짐작건대 관능소설은 여기 포함되지 않을 터였다. 」
유마의 첫 번째 표본 남성은 친아버지인 세토 마사오로, 순문학을 추구하는 작가였지만 인정받지 못한 채로 의문사로 명을 달리 한다. 그럼에도 그가 생계의 주체로 버틴 것은 다른 필명으로 관능소설을 써온 덕이었다. 인생 전반만 보면 꿈에 도달하지 못하고 실패한 인생이라 할 수 있다. 그럼에도 창의적인 직업을 갖고 있다는 그럴싸한 명분 덕에 유마의 동경을 사는 인물이다. 유마의 인생에 몇 번 찾아왔던 은밀한 세계에 대한 시작도 아버지를 통해 이루어졌다고 할 수 있다. 그야말로 친부 세토 마사오는 유마에게 있어서 동경과 부끄러움이라는 상반된 감정을 일으키는 절대적인 이상향인 것이다.
「 소설을 써서 아내와 자식을 먹여 살릴 수 있다면 훌륭한 직업이라 할 수 있지.
반대로 그러지 못하면 아무리 창조적인 일이라 해도 직업이라 할 수 없어.
...네 아버지가 순문학 작가로는 어땠을지 몰라도 다른 필명으로는 확실히 인정 받지 않았을까? 」
유마의 두 번째 표본 남성인 새아버지 세토 도모히데는 아마 유마의 인생에서 가장 뼈아픈 팩트 폭격을 날린 인물로 기억될 것이다. 무역회사의 중역으로 부, 가족, 취미 생활 모두 원하는 대로 할 수 있는 성공한 사람이다. 제 의견만 내세우고 본인이 가장 훌륭하다고 자랑스럽게 말할 수 있는 사람. 그러나 유마에게 있어서는 그저 동경하는 친부를 폄하하고 소중한 어머니와의 관계마저도 어그러뜨리는 불청객이다. 호적 상으론 가족이지만 진정한 정의로는 묶이기 어려운 관계랄까. 유마의 영리함에 대해 누구보다도 잘 알고 있으며 후계자로 삼을 거라 말하지만 곧 태어날 친자식에게 얼마든지 후계자를 물려줄 만큼 혈육에 대한 애정이 있는 편이다. 딱히 묘사되지는 않지만 방탕하게 살아가는 친동생의 뒤치닥거리도 얼마든지 해준다거나, 장기 출장을 앞두고 임신한 아내만을 데려가려는 행동에서 그의 영역에 '유마'가 차지하는 부분은 생각보다 크지 않다는 걸 암시한다.
「 잘된 일 아니냐. 발음은 똑같지만, 우리 성씨에는 '처세'라는 뜻도 있거든.
너도 장차 처세에 능한 사람이 될 수 있을 거야. 」
유마의 세 번째 표본 남성인 삼촌 세토 도모노리는 그야말로 기회주의자 그 자체다. 관계를 맺지도 못하고 죽은 친부나 관계성이 이어지지 않는 의부와 달리 유마가 가장 적극적으로 따르는 어른이다. 좋게 말하면 자유분방하고 낙천적이지만 실상은 허세만 그득하고 한방을 노리는 전형적인 사기꾼같은 사람이다. 의부와 친형제이지만 정반대의 삶을 살고 있어서 유마가 더 편하게 의지한다. 그는 본인이 말한대로 '처세'에 따라 삶을 살아가서 '성공'에 도달하고자 했지만 실패한 인물이다. 그러나 그의 실패와 달리 유마는 그의 '처세'를 본받아 성공하는 삶을 살게 되었으니 무엇이든 사람에게는 배울 것이 있다는 말이 거짓말은 아닌 듯 하다.
[마가]는 유마라는 소년이 겪는 기괴한 현상들을 다루고 있는 동시에 그가 겪어나가야 할 수많은 '현실'에 더 많은 초점을 두고 신중하게 사건을 전개한다. 악령에 씌여 인형처럼 구는 나약한 인간을 다룬 지난작과 달리 귀신마저도 이용할 줄 아는 인간의 전형적인 잔인함에 도리어 귀신에게 느끼지 못한 섬뜩함을 느끼게 될 것이다.
귀신이 아무리 무서워도 사람보다 무서울 수 없다는 만고의 진리가 다시금 빛났던 [마가]였다. 집이 무슨 문제가 있겠나. 사람이 문제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