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폴른 : 저주받은 자들의 도시 ㅣ 스토리콜렉터 74
데이비드 발다치 지음, 김지선 옮김 / 북로드 / 2019년 7월
평점 :
'사람은 언젠가 기계로 인해 몰락할 것이다.', 이 말은 기계의 발명 이후 끊임없이 제기되어왔던 문제의식이었다. 한 때 영국인들은 기계에게 패해 기계 파괴 운동, 일명 러다이트 운동을 벌이며 살아남고자 했던 역사가 있다. 그리고 인간은 기계에 적응하고 또 새로운 기계를 만들어나가고 있다. 인간을 넘어서는 혁신이 곧 이루어진다해도 믿을 수 있는 그런 시대를 살아가고 있다. 하지만 거기에 따른 러다이트 운동은 더 이상 일어나지 않는다. 사람은 일찍이 패배했고, 이젠 순응하고 적응하는 방식을 선택했기 때문이다.
높은 데 자리 잡은 집에서, 그는 시립 묘지를 향해 천천히 이동하는 장례식 행렬을 자주 굽어보았다.
수많은 교회 묘지들은 다 찬지 오래였다. 그는 치명적인 약물 과용이 너무 자주 일어난다는 것을 알았다.
아무런 희망도 없으니, 사람들은 자신의 삶이 얼마나 밑바닥으로 떨어졌는지를 잊게 해줄 주사와 약물에
의존하고 있었다.
한편으로 그는 들어오는 이삿집 차들도 굽어보고 있었다. 새 희망을 품고 오는 새로운 가족들을 실은 차들.
그는 그들이 이미 속이 완전히 파먹힌 시체를 찔러보고 있는 것이 아닌가 하는 의심을 품었다.
이 시에 과연 다시 일어날 기회가 있을까…….
펜실베이니아 주에 위치한 활력을 잃은 도시, 베런빌의 주민들은 마약에 의존하며 도시와 함께 죽어가고 있었다.
한 때 석탄, 제지, 철강 사업을 주류로 황금기를 이루었던 도시라고 도저히 믿을 수 없는 곳이다. 알랙스와 데커는 이곳에 발령받고 이사를 온 알랙스의 언니 가족과 휴가를 보내고 있었다. 데커는 사실상 안팎으로 휴가 쪼가리라도 내라는 닦달에 못 이겨 온 것이었지만.
그리고 그는 이 곳에서 살인 현장을 목격한다. 3권에 이어 또다. 이쯤되면 데커도 김전일과 코난하고 친구 먹는 게 모두를 위해 좋은 선택이지 않을까.
살인 현장에서 두 구의 시체를 발견한 그는 이 신원미상의 시체를 추적하기 시작한다. 휴가까지 왔으니 지역경찰에게 맡기고 우린 쉬자는 알랙스의 권고는 깡그리 무시하고 데커와 그의 촉이 달리기 시작한다. 말하지만 데커가 끼어든 이 사건은 결코 평범한 살인사건이 아니었다. 배런빌에는 어마어마한 폭풍의 전조가 시작되고 있었다.
마지막 광산과 공장이 문을 닫자 쫓겨난 피고용인들과 배런 시 전체가 오로지 한 사람만을 비난하며 책임을
지웠다. 당시 겨우 20대 후반이었는데도, 그는 시 전체의 불만을 고스란히 뒤집어 썼다.
심지어 시 이름을 바꾸자는 청원이 나돌기까지 했다. 청원이 실패로 돌아간 이유는 시민들이 자신들의 문제에
대해 배런 집안을 계속 비난하기 위해서였으리라. 그러자면 배런이라는 이름이 남아 있어야 하니까.
배런빌의 유래이자 이 도시의 역사를 세운 배런 가문은 이제 존 배런, 4대째인 53세의 남자만을 남겨두고 사라진지 오래였다. 존 배런은 배런빌의 흥망성쇠에는 조금의 영향도 주지 않았지만 조상의 죄와 업을 한 몸에 다 받으며 살아가고 있는 불행한 남자이다. 배런빌에 살아있는 것들은 모두 그를 싫어한다. 그는 증오를 일상처럼 받는 사람이었다.
그리고 배런빌에서 벌어지는 살인 사건에 대한 유력한 용의자였다. 도대체 이 망해가는 소도시에는 무슨 참혹한 일이 일어나고 있는 것일까?
"나를 믿어요, 알렉스. 나는 내가 뭘 하고 있는지 알 고 있어요."
배런이 끼어들었다. "음, 나는 남을 잘 믿지 않아서요."
데커가 말했다.
"내가 당신이라면, 마찬가지일 겁니다. 사실, 이 망할 동네에서 누굴 믿을 수나 있을지 모르겠네요."
스릴러 소설 읽으면서 살인사건보다 더 무서운 게 존재하리라는 걸 깨달을 줄이야. 심지어 살인 사건이 있었다는 사실마저 까먹을 정도로 배런빌이라는 딱한 동네에 완전히 빠져 있었다.
기계에게 밀리고, 좋은 학벌과 고스펙을 가진 사람에게 밀리고, 부모에게 유산을 물려받은 자들에게 밀리고 남은 찌꺼기같은 인생을 살아가는 사람들. 일을 갖고 싶은데도 일 자리를 구할 수가 없어 전기도, 수도도 들어오지 않는 남의 빈집에 몰래 살아가야 하는 사람들. 이런 사람들이 배런빌에서만 살고 있지 않고, 불경기는 특정 지역에서만 일어나는 전염병이 아니다. 빈곤은 세계 곳곳에서 일어나고 있는 불길이다.
우리나라에는 '가난은 나라님도 구제할 수 없다.'라는 속담이 있다. 안정된 사회를 만들어나가는 건 한 사람의 몫으로는 어렵다는 말이 포함되어 있다. 다만 이들을 안정시키는 정책과 시설의 확충을 통해 그 비율을 억제하고 줄여나가는 것이 올바른 정책자의 역할인 것이다. 그렇지만 우리 사회는 그런 정책자를 더 이상 찾아볼 수 없고, 이는 세계적인 추세이며 이젠 나라님이 아니라 신도 구제할 수 없는 지경까지 왔다.
그렇다면 이제 우리에겐 몰락만 남은 것일까?
"나는 두 번째 기회가 있음을 믿습니다. 내게도 그런 기회가 찾아온 적이 있으니까요.
그것도 가장 절실했던 순간에요. 당신은 어떤가요? 당신은 그걸 믿습니까?"
배런빌에서 찾아 온 불행과 미스터리의 두 가지 사건은 이야기를 이끌어가는 원동력을 제시하는 것에서 그치지 않는다. 그것으로 하여금 인간은 어느 순간에도 생존의 의지와 희망을 잃지 않는다는 역설까지 보여주고 말았다.
폭풍이 지나간 자리에도 꽃이 필 수 있다는 생존미를 알려준 데이비드 발다치에게 올해의 별 5개를 주고 싶다.
아. 이미 줬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