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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가 ㅣ 스토리콜렉터 46
미쓰다 신조 지음, 현정수 옮김 / 북로드 / 2016년 8월
평점 :
구판절판
기시감이 들었다. 맘씨 좋기로 소문난 부모님을 사고로 잃고 나서 이사간 집의 첫 인상이었다. 이제 중학생이 되는 코타로는 생전 처음 오는
마을이 어쩐지 낯이 익다. 전에 와본 적이 있는 것처럼 익숙했다. 등줄기를 더듬어오는 차가운 기시감과 석연치 않은 낯익은 마을. 그리고 마을
전체를 지배하고 있는 어둠이 웅크린 숲까지 코타로는 온 몸으로 알아챘다. 여기 정말 위험하구나.
"꼬마야, 다녀왔니....."
"역시 말이야, 카즈사 숲에 계신 신령님이 널 부르고 계신 게야."
"순서는 제대로 지켜져야 하니까 말이다."
"깨지게 되면, 새로운 순서가 필요해지지."
집 근처에 있는 폐가 같은 집의 할아버지가 코타로에게 한 말이었다. 순서? 순서가 뭐지? 괴상한 노인의 말로부터 코타로는 이해하기도 전에
도망쳐버렸다. 코타로는 집에 돌아와도 마음이 편치 않았다. 집에 발을 들인 순간부터 그는 악몽의 한복판에 빨려 들어간 듯한, 무시무시한 느낌에
사로잡혀 있었기 때문이다. 또한 동네 마을회장의 손녀인 레나로부터 동네의 괴소문이 깃든 집에 대해서 듣게 된다. 인형장 저택, 강변 유령의 집,
괴물의 집, 그리고... 레나는 뜸을 들이다 코타로가 만난 괴노인의 집을 꼽는다. 그러나 왠지 코타로는 레나가 코타로 자신이 사는 집을 말하려고
한 게 아닐까 라고 깨닫고 만다.
설명할 수 없는 기시감은 코타로의 집에서 가장 강렬하게 느껴지고 있었다. 계속해서 누군가가 자신을 쳐다보고 있는 듯한 어둠의 분위기를 읽던
나날을 보내고 있었다. 그러던 중 코타로 혼자 집에 남아 있었을 때 소년은 마주했다. 머리 없이 팔다리로만 움직이는 기형의 괴물을! 그 후로도
제방 근처에서 머리에 두건을 쓴 노파에게 이끌려 강에 빠질 뻔한 적까지. 코타로는 마을 어느 곳에서도 안전하지 못했다. 걷는 곳 어디든지 소년의
숨을 갈취할 증오의 시선이 따라 붙었다.
누구에게도 말할 수 없는 혼자만의 괴로움이 지속되자 코타로는 결심한다. 이 명백한 악의 역시 원인이 있을 것이라고. 그것을 한번
파헤쳐보자는 지금까지와 다른 당찬 모습을 보여준다. 그리고 그 옆엔 그를 도와줄 절대적 파트너, 레나가 있다. 마을의 온갖 소식통을 전달해주려고
노력하는 천사랄까. 코타로는 레나의 도움을 받아 현재 자신이 살고 있는 집에 대해서 조사하게 된다. 그리고 지역 신문에서 막내 아들을 제외하고
모든 일가족이 살해당한 참변이 실린 신문을 읽다 자신의 눈을 의심했다. 신문에 남은 막내 아들은 코타로 자신이었던 것이다!
10년 전, 숲에 모셔 있는 신을 집착적으로 믿었던 몰락 지주의 아들이 있었다. 중학생이 되자마자 자신이 마치 교주마냥 행세를 했고 집 안
사람들 모두 그에 미쳐 있었다. 특히 아내와 그의 누이는 광신도일 정도였다. 그러나 그의 교주생활은 그가 입시에서 실패하면서 끝났다. 그는 신이
자신을 배반했다고 생각했고, 증오에 눈이 뒤집혀 신을 처형해버리는 미친 짓까지 저지른다. 그가 사당을 부수고 난 후부터 마을 사람들은 연달아
죽기 시작했다. 아무 이유없이 순서대로, 차례대로. 악은 악인이 먼저 눈치채는 법. 몰락 지주의 아들은 그것이 신의 저주라는 걸 알아냈고,
그것을 중도에 끊으려 살인 사건을 저지른다. 그것이 코타로 가족을 무참하게 죽인 이유였다.
그러나 10년 전 살인을 저지른 소년은 그 자리에서 총살당했다. 그렇다면 지금 코타로에게 깊은 사념을 갖고 있는 건 도대체 무엇이란
말인가?
죽어버린 줄 알았던 저주가 다시 재생한 걸까? 그렇다면 코타로는 죽을 수밖에 없는 운명인 걸까? 코타로는 이 벗어날 수 없는 괴로운 현실
속에서 결국 싸우기를 다짐한다. 10년 전 그 날을 재현해 귀신과 맞서 싸우려는 코타로의 승부수는 통할 것인가.
나약한 인간이 질 수 밖에 없는 운명과의 싸움에서 승부수를 던진다는 일본 특유의 정신을 보여주는 소설의 분위기가 심장을 더 쫄깃하게
만든다. 스타카토로 밀려오는 공포심 속에서 점점 차분해지는 코타로를 보고 있노라면 왜 내가 더없이 착잡해지고 입술이 버썩 마르는 건지.
지긋지긋하게 사람 괴롭히는 데 도가 튼 미쓰다 신조의 악명은 전작 <흉가>로 경험했지만, 역시나 기대를 저버리지 않고 엔딩의
마지막까지 한시도 긴장의 끈을 놓지 않게 하는 그의 철저함에 두손두발 다 든 소설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