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프스 자동차 여행 66
양영훈 지음 / 예담 / 2016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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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 만한 사람들은 모두 안다. 나는 절대로 운전 면허 교관이 통과시켜서는 안될 사람이라고. 과속 운전이나 음주 운전 경력이랑 무관하지만 내 입으로 말하기 쪽팔린다. 나는 방향 감각이 거의 전무하고 신호를 잘 못 보며 무엇보다 속도 공포증을 앓고 있다. 주변에서 운전은 연습이 중요한 거지 생각보다 별 거 아니라고 말하지만. 그 별 게 아닌 게 나에겐 무척 별 거란 것이 통탄할 지경이었다. 몇 번이나 떨어지고 겨우 붙어 안도의 한숨을 내쉬는 나에게 운전 교관이 그러더라. "불쌍해서 봐드립니다. 죽도록 연습하세요." 이 말을 들은 나는 곧장 받은 따끈따끈한 운전면허증을 장롱 깊숙한 곳에 봉인했다. 백만년 후에 그리우면 꺼내려고.


그런 내가 다짐한지 3년만에 면허증을 꺼낼 뻔 했다. <알프스 자동차 여행66>이라는 책 때문에!

<알프스 자동차 여행66>은 스위스,이탈리아,프랑스,슬로베니아,오스트리아,독일,리히텐슈타인 즉 알프스 근처 국가들의 자동차 여행 코스를 짠 여행 가이드북이다. ​현지 캠핑장 정보와 트레커들을 위한 상세 지도를 잔뜩 수록해놓았다. 뿐만 아니라 도시의 약력과 유래, 특이한 사건들을 설명하며 그 도시의 매력을 한껏 발산시키게 만든 매혹적인 책이다.

찰리 채플린의 고향인 브베는 고작 1만 7천여명이 사는 작은 마을일 뿐인데 찰리 채플린의 이야기를 꺼내면서 흥미진진해졌다. 그의 인생과 도시가 어떻게 연결되었는지 독자를 궁금해지게 하는 마력을 뿜어댄다. 내 다짐을 생각하며 어떻게든 이 유혹에서 이기고 말겠다고 하나하나 단점을 열거해 보았다.


지도 보기, 캠핑장 예약, 자동차 운행 방법, 정보, 방향치까지 나는 완벽하게 갖췄노라! 하고 불편한 고백(?)을 당당히 까발리고 책을 읽었는데 순간 어디서 저자의 비웃음소리가 들리는 듯 했다. 광장이나 동상을 기준으로 어느 방향 몇 키로미터라는 상세한 설명과 따로 캠핑장을 이용할 수 있는 방법, 자동차 운행 시 필요한 정보까지 알차게 첫장부터 수록했더라. 커억. 당했다. 저자가 이리 섬세한 사람일 줄이야. 하다하다 소금 광산 할인 쿠폰을 제공하지만 성격이 더럽다고 소문난 캠핑장 정보까지 깨알같이 적어놨다. 웃기자고 하는 말일까, 진지하게 하는 말일까.


글만 읽고 꿈과 이상으로만 남겨두고 싶었던 자동차 여행을 <알프스 자동차 여행66>작가가 너무 쉽고 간단하게 진행할 수 있는 루트를 제공해버려서 현실로 끌어당길 방법을 알아버렸다. 아아, 금단의 사과를 베어 문 기분이다. 내 집 앞마당에서 주차도 못하는 운전공포증 환자한테 자동차 여행을 꿈꾸게 하다니. 왠지 알프스가 아주 가까이, 내 곁에 있는 것 같아 더 암울하다.


자동차 여행을 못하는 사람마저 이럴진대 자유롭게 자동차 여행을 할 수 있는 사람이라면 얼마나 도움이 되겠는가? 나도 해외 여행 처음 갈 때는 여러 책 보며 이것저것 비교해봤는데 다 부질없더라. 좋은 책 한권이 모든 책을 대변해준다. 알프스 근처로 자동차 몰고 가실 분이라면 <알프스 자동차 여행66>. 이거 한 권만 안겨드리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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크레스 스토리콜렉터 27
마리사 마이어 지음, 김지현 옮김 / 북로드 / 2014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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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거의 반 평생을 인공위성에 갇힌 채 떠도는 소녀가 있다. 혼자 있기 심심해서 인공지능도 만들어서 제 이름을 갖다 붙이고 함께 논다. 영화 '캐스트 어웨이'의 윌슨 같은 존재에 마음을 터놓는 소녀의 이름은 크레스. 정식 명칭은 크레센트 문이다. 허허벌판 우주 속에서 브라운관 너머의 사람에게 반해 영웅처럼 떠받드는 순수한 소녀. 그녀는 브라운관 영웅과 사랑에 빠져 그를 도울 생각을 하게 된다. 세상이 떠드는 흉악범죄를 저지른 테러리스트를!​

​신데렐라도 시대를 따라간다. 심성 곱고 예쁜 것만으로는 왕자님을 쟁취할 수 있는 시대가 아니다. 지금 우리가 말하는 신데렐라는 능력치가 서류다발로 걷어 채일 정도로 넘치는 데다 심성과 외모는 필수 옵션에 지나지 않는다. 그 뿐이랴. 마음에 드는 사람은 먼저 반해서 고백하는데도 서슴치 않는다. 이 매력적인 캐릭터를 거부할 사람이 몇이나 있겠냐마는. 크레스는 마리사 마이어가 만들어낸 매력적인 '신데렐라'이다. 인공위성에 갇힌 천재 해커 라푼젤이라니. 1부 <신더>에서 보여줬던 주인공 '신더'보다 순수하면서도 열정적이고 솔직한 캐릭터 '크레스'가 3부를 이끌어 나가는 주인공으로는 손색이 없다.

3부는 여전히 신더가 폭군 레바나 여왕에게 쫓기면서 그녀를 쫓아낼 계획을 짜고 있다. 안 본 사이 동료도 얼추 갖췄다. 동료 중 하나가 카스웰 손. 흉악범죄 리스트를 꿰차고 있는 야무진 테러리스트다. 보상금도 걸려 있는 이 잘생긴 남자는 크레스의 '영웅'이다. ​그러나 그를 돕겠답시고 나선 것이 그녀의 목숨줄을 움켜 쥔 시벨(레바나 여왕의 최측근 마법사)에게 걸려 그녀를 구하러 온 카스웰 손과 함께 인공위성에 버려진다. 천재적인 컴퓨터 컨트롤 능력으로 지구에 낙하한 그들을 기다리는 건 낮에는 불지옥, 밤에는 얼음지옥인 사하라 사막이었다.

<크레스>는 크레스의 성장일기라도 봐도 좋다. 그리고 1부 답답하게 진행되었던 찌질이 커플(신더&카이토)에 비해 진도 나가는 것도 꿀이 떨어진다. 서로 꽁냥꽁냥하는 건 마리사 여사에게 기대할 만한 것은 못되니 일찌감치 집어 치워라. ​크레스의 사랑은 자신의 이상을 깨는 것부터 시작한다. '영웅'이라 여겼지만 사실 한량에 도박 좋아하는 나쁜 남자인 카스웰 손을 만나고, 인신매매범이라고 생각했던 얼랜드 박사가 사실 자신의 아버지였다는 걸 인정하게 되면서, 그녀 스스로가 카스웰 손의 모든 것을 사랑한다고 인정하게 되면서부터 그녀는 강해졌다. 어설피 요정의 도움을 받아 인생 뒤집어지는 신데렐라와 달리 왕자를 만나기 위해 스스로 머리를 내리는 라푼젤처럼. 크레스는 자신의 사랑을 강하게 끌어 당긴다. 자신의 사랑 앞에서 당당한 솔직한 소녀에게 박수라도 치고 싶은 심정이었다.

3부 <크레스>는 라푼젤과 빨간 모자에서 차용한 인물들로 새로이 구성되는데 그들의 연결고리가 다시 2부 <스칼렛>으로 이어진다. 3부의 끝에서 벌써 서로를 끌어당기기 시작한 풋풋한 커플 크레스와 카스웰 손, 사랑 위에 의심병을 엎어 위태롭게 사랑하는 신더와 카이토, 그리고 이미 서로를 완전히 이해했다고 생각했던 스칼렛과 울프의 커플이 방향을 달리한 채 2부 <스칼렛>으로 이어지고 있다.​

실수로 3부를 먼저 읽었지만 2부를 안 읽어도 3부를 이해하는데 큰 지장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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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라지고 싶은 날
니나킴 지음 / 콜라보 / 2016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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컴퓨터에 DELETE가 있는 것처럼 내 인생에도 리셋 키가 있었으면 할 때가 종종 있다. 남에게 말 실수 해놓고 아차 했을 때, 망신스러운 일을 경험했을 때, 아무 일도 없지만 그냥 스스로가 아무것도 아니라고 느껴져서 속된 말로 어디론가 꺼지고 싶을 때 말이다. 모든 시선과 인간 관계로부터 대피소가 있었으면 하는 때를 <사라지고 싶은 날>이 소소한 그림을 통해 증명해주고 있다.




 




 




누군가에게 무엇이든 말하고 싶은 날. 하지만 시시콜콜하다 못해 쓸데 없는 말을 들어줄 이는 우리집 냥이 뿐. 집사들 중에선 고양이 붙잡고 얘기하는 사람도 꽤 많다. 외롭기 때문에 무언가 알아준다는 것보다 털어놓고도 아무말도 안 할 게 분명한 상대라서 더 안심이 되는 기분이랄까.


대화 중간에 '아 그런데 네가 거기서 이렇게 말했어야지'라는 안 해도 될 위로를 하는 친구는 사양. 그럴 바엔 표정으로 이 닝겐은 뭐라고 하는 걸까라고 해주는 고양이가 낫달까.




 


 




 






옷, 신발, 가방을 보관해주는 곳은 얼마든지 있는데 내 소중한 마음을 보관할 곳은 도대체 어디있는 건지. 어딘가에 숨기고 진심을 다하지 않아도 되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드는 때가 있다. 그러면 관계가 깨질 때도 그다지 아프지 않을 것 같은데. 너무 소중한 것은 보관할 때도 마땅치 않다. 너무 깊숙이 숨겨두다가 잃어버리면 안되니까.








 




 


 


 


살아도 지옥, 죽어도 지옥. 사는 게 너무 힘들어서 죽고 싶을 때가 간혹 있을 것이다. 이 충동은 남녀노소를 가리지 않고 누군가에게나 한번씩 찾아오기 마련이다. 그걸 백설공주의 일화에 비유해서 독사과를 택하겠다는 니나킴의 위트가 어쩐지 더 위로가 되는 기분이다. 어릴 때 읽었던 환상이 현실이 되어 갈 때마다 늙어가는 걸 느낀다면, 주저하지 않고 독사과를 택하고 말겠다.








<사라지고 싶은 날>은 읽기 어려운 책이 아니다. 한 문장씩 곱씹어 단맛이 나올 때까지 씹지 않아도 좋다. 그저 편하게 읽어라. 만화 속 백수가 자신의 모습처럼 비춰지는 모양새로 읽어라. 현실에서 사라져 공감 에세이에 등장하는 주인공이라고 생각하면 별 거 아닌 내 인생도 조금은 나아져 보이지 않을까? 현실의 괴로움을 위트있게 헤처나가고 싶다면, <사라지고 싶은 날>도 괜찮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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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귀의 예술
피에르 토마 니콜라 위르토 지음, 성귀수 옮김 / 유유 / 2016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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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상생활의 한 행위지만, 친구 사이라도 자랑스럽게 떠벌릴 수 없는 것이 있다면 바로 방귀다. 당연한 생리 현상이지만 집이 아닌 다른 곳에서 쉽게 방귀는 뀌는 장면을 목격한 적이 있는가? 하루에 사람은 평균 3번이상 방귀는 뀌는 게 정상이라고 하지만 하루종일 친구와 같이 있어도 친구가 방귀뀌는 걸 경험하기란 쉽지 않다. 현대 사회에서 타인 앞에서 방귀를 뀌는 행위는 매우 모욕적이거나 불쾌한 일로 느껴지게 만들기 때문이다. 나의 불편함을 해소하고자 남에게 폐를 끼칠 수 없는 게 마땅한 예의다. 도저히 방귀를 뀔 수 없는 경우에는 그냥 참고 만다. 이처럼 방귀는 예의의 마지막 제한선이거나 타인과의 벽을 담당하는 장벽의 표시로 느껴진다.


그러나 몸은 때때로 생각과 다르다. 지금이 아니면 안돼! 라는 강력한 경고로 복부를 불룩하게 만들어낸다. 또 너무 참아서 병이 된 사람도 실제로 발생한다. 방귀의 역할은 건강의 적신호를 시사하는 것까지 포함하게 되었다. 그럼에도 방귀는 차마 입에 올리기 싫은 부끄러운 것이다. 그걸 재미있고 해학적으로 연출한 사람이 있었다. <방귀의 예술>의 저자 피에르 위르토였다.


그는 남들이 기피하는 방귀를 아주 철저히 분석하는 치밀함을 선보인다. 방귀란 것은 자연이 희구하는 건강일 수도 있고, 기술을 통해 얻어지는 희열과 쾌감일 수도 있다라고 방귀의 예술을 천명하기 시작한다. 다만 건강과 양식에 반하는 그 어떤 방귀의 목적에 대해서도 단호히 부정하는 입장을 고수하면서 분별 있게 예술의 영역을 제한하니. 방귀는 예술이 아니다라고 말하기가 참으로 애매해졌다. 예의를 지키는 방귀를 연구하겠다는 피에르의 주장이 사뭇 진지하면서 우스꽝스럽게 느껴지는 건 나의 착각일까.


"밥을 먹으면서 방귀 뀌는 사람은 죽을 때 악마를 본다"라는 프랑스 속담이 있다. 자라나는 아이들에게 예의범절을 가르치기 위해 전해 내려오는 말이다. 그만큼 방귀를 삼가는 태도는 우리의 의식, 무의식에 뿌리 깊다. 숨기고 싶은 것, 삼가야 할 생리적 현상을 의학과 철학 나아가 예술의 관점에서 재조명하고 그 가치를 적극 옹호하겠다는 발상에는 과연 18세기 계몽주의적 웰빙 사상의 영향이 뚜렷하다.

<방귀의 예술>을 번역한 번역가의 말이다. 뭔가 굉장히 좋은 말을 해주려고 노력한 듯 보이나 중요한 말에서 맞춤법이 틀리는 불상사가 나오는 바람에 그 뜻이 격하되는 참사가 일어났다. (이 글은 자체 수정한 것이다.) 어찌되었든 간에 문명과 관습에 얽매이기보다는 자연과 자유를 따르겠다는 심오한 뜻이 담겨있다고 한다. 내 방귀에 심오한 뜻이 담겨 있다 생각하면 어쩐지 더 지독해지는 기분이다.


<방귀의 예술>은 방귀가 갖는 사회적 역할과 정치적 일화, 방귀의 종류까지 보는 이의 엉덩이를 움찔하게 만드는 정보들을 담고 있다. 모르고 살아도 별 문제 없는 '방귀'에 대한 지식이지만, 그렇게 따지면 인문학은 모두 모르고 살아도 되는 것들로 치부되는 것이 아닐까?

'방귀'라는 소재를 누가 이토록 자세히 분석하려고 노력했겠는가? 방귀가 가진 사회적 의미가 있다고 누가 알았을까?


'방귀'에 담긴 편견을 깨부수고 체계적인 이론생리학을 보여주겠다는 마음이 알차게 담긴 <방귀의 예술>은 고맙게도 아주 얇다. <방귀의 예술>의 인기에 대해서 책은 이렇게 말한다. 분명 '웃음의 책'이지만 방귀 또한 인간의 정신을 매료하는 예술이 될 수 있다는 해학적인 주장이 휴머니즘의 메세지에 닿아 있다고. 인간을 사랑하지 않고서는 나올 수 없는 매력적인 인문학을 떠올린다면 <방귀의 예술>을 떠올리지 않을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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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가 스토리콜렉터 46
미쓰다 신조 지음, 현정수 옮김 / 북로드 / 2016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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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시감이 들었다. 맘씨 좋기로 소문난 부모님을 사고로 잃고 나서 이사간 집의 첫 인상이었다. 이제 중학생이 되는 코타로는 생전 처음 오는 마을이 어쩐지 낯이 익다. 전에 와본 적이 있는 것처럼 익숙했다. 등줄기를 더듬어오는 차가운 기시감과 석연치 않은 낯익은 마을. 그리고 마을 전체를 지배하고 있는 어둠이 웅크린 숲까지 코타로는 온 몸으로 알아챘다. 여기 정말 위험하구나.



   "꼬마야, 다녀왔니....."


   "역시 말이야, 카즈사 숲에 계신 신령님이 널 부르고 계신 게야."


   "순서는 제대로 지켜져야 하니까 말이다."


   "깨지게 되면, 새로운 순서가 필요해지지."


집 근처에 있는 폐가 같은 집의 할아버지가 코타로에게 한 말이었다. 순서? 순서가 뭐지? 괴상한 노인의 말로부터 코타로는 이해하기도 전에 도망쳐버렸다. 코타로는 집에 돌아와도 마음이 편치 않았다. 집에 발을 들인 순간부터 그는 악몽의 한복판에 빨려 들어간 듯한, 무시무시한 느낌에 사로잡혀 있었기 때문이다. 또한 동네 마을회장의 손녀인 레나로부터 동네의 괴소문이 깃든 집에 대해서 듣게 된다. 인형장 저택, 강변 유령의 집, 괴물의 집, 그리고... 레나는 뜸을 들이다 코타로가 만난 괴노인의 집을 꼽는다. 그러나 왠지 코타로는 레나가 코타로 자신이 사는 집을 말하려고 한 게 아닐까 라고 깨닫고 만다.



설명할 수 없는 기시감은 코타로의 집에서 가장 강렬하게 느껴지고 있었다. 계속해서 누군가가 자신을 쳐다보고 있는 듯한 어둠의 분위기를 읽던 나날을 보내고 있었다. 그러던 중 코타로 혼자 집에 남아 있었을 때 소년은 마주했다. 머리 없이 팔다리로만 움직이는 기형의 괴물을! 그 후로도 제방 근처에서 머리에 두건을 쓴 노파에게 이끌려 강에 빠질 뻔한 적까지. 코타로는 마을 어느 곳에서도 안전하지 못했다. 걷는 곳 어디든지 소년의 숨을 갈취할 증오의 시선이 따라 붙었다.



누구에게도 말할 수 없는 혼자만의 괴로움이 지속되자 코타로는 결심한다. 이 명백한 악의 역시 원인이 있을 것이라고. 그것을 한번 파헤쳐보자는 지금까지와 다른 당찬 모습을 보여준다. 그리고 그 옆엔 그를 도와줄 절대적 파트너, 레나가 있다. 마을의 온갖 소식통을 전달해주려고 노력하는 천사랄까. 코타로는 레나의 도움을 받아 현재 자신이 살고 있는 집에 대해서 조사하게 된다. 그리고 지역 신문에서 막내 아들을 제외하고 모든 일가족이 살해당한 참변이 실린 신문을 읽다 자신의 눈을 의심했다. 신문에 남은 막내 아들은 코타로 자신이었던 것이다!



10년 전, 숲에 모셔 있는 신을 집착적으로 믿었던 몰락 지주의 아들이 있었다. 중학생이 되자마자 자신이 마치 교주마냥 행세를 했고 집 안 사람들 모두 그에 미쳐 있었다. 특히 아내와 그의 누이는 광신도일 정도였다. 그러나 그의 교주생활은 그가 입시에서 실패하면서 끝났다. 그는 신이 자신을 배반했다고 생각했고, 증오에 눈이 뒤집혀 신을 처형해버리는 미친 짓까지 저지른다. 그가 사당을 부수고 난 후부터 마을 사람들은 연달아 죽기 시작했다. 아무 이유없이 순서대로, 차례대로. 악은 악인이 먼저 눈치채는 법. 몰락 지주의 아들은 그것이 신의 저주라는 걸 알아냈고, 그것을 중도에 끊으려 살인 사건을 저지른다. 그것이 코타로 가족을 무참하게 죽인 이유였다.



그러나 10년 전 살인을 저지른 소년은 그 자리에서 총살당했다. 그렇다면 지금 코타로에게 깊은 사념을 갖고 있는 건 도대체 무엇이란 말인가?

죽어버린 줄 알았던 저주가 다시 재생한 걸까? 그렇다면 코타로는 죽을 수밖에 없는 운명인 걸까? 코타로는 이 벗어날 수 없는 괴로운 현실 속에서 결국 싸우기를 다짐한다. 10년 전 그 날을 재현해 귀신과 맞서 싸우려는 코타로의 승부수는 통할 것인가.



나약한 인간이 질 수 밖에 없는 운명과의 싸움에서 승부수를 던진다는 일본 특유의 정신을 보여주는 소설의 분위기가 심장을 더 쫄깃하게 만든다. 스타카토로 밀려오는 공포심 속에서 점점 차분해지는 코타로를 보고 있노라면 왜 내가 더없이 착잡해지고 입술이 버썩 마르는 건지.


지긋지긋하게 사람 괴롭히는 데 도가 튼 미쓰다 신조의 악명은 전작 <흉가>로 경험했지만, 역시나 기대를 저버리지 않고 엔딩의 마지막까지 한시도 긴장의 끈을 놓지 않게 하는 그의 철저함에 두손두발 다 든 소설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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