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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술에 관한 살인적 농담
설재인 지음 / 픽셀앤플로우 / 2025년 8월
평점 :

연기 전공으로 대학을 졸업했지만, 지금은 콜센터에서 힘겹게 하루하루를 버티는 구아람. 시골에서 외조모 손에 자라 온 그녀는 서울에 올라와서야 자신과 다른 세계를 사는 동기들과 마주하게 됩니다. 입시 학원도, 개인 과외도 없이 입학한 연극학도라는 사실이 오히려 소외감과 적대감을 낳는 현실. 그런 그녀에게 유일하게 다가온 친구 소을 역시 부모와 인연을 끊고 홀로 살아간다고 말합니다.
그러나 하루아침에 모든 것이 뒤집힙니다. 오피스텔 지하실에서 발견된 소을의 시체, 곁에 남겨진 피로 쓴 다잉 메시지 ‘구아람’이라는 이름, 그리고 불쑥 나타난 소을의 미성년자 남자친구 김석원. 그의 입을 통해 소을이 강남 8학군 출신, 대치동 부잣집 딸이었다는 사실이 드러납니다. 여기에 소을의 죽음을 은폐하겠다며 천만 원을 요구하는 의문의 청소부까지. 집을 잃고 최저시급을 받는 아람에게 그 금액은 현실적으로 불가능합니다. 하지만 소용돌이에서 벗어나기 위해 그녀는 점점 더 위험한 선택지로 발을 옮기게 됩니다.
🎪가난과 선민의식이 맞부딪칠 때
소설은 가난과 고난에 대한 피해의식, 그리고 돈이면 뭐든 가능하다는 자본주의의 선민의식을 치밀하게 포착합니다. 흥미로운 점은 사회경제적 지위가 높은 사람일수록, 정작 그들이 가난한 이들에게 품는 시선이 결코 존중이 아니라는 사실입니다. 그러나 역설적으로, 가난한 이들이 부유층을 향해 보이는 태도 속에서도 일종의 순응과 존경이 공존합니다. 이 이중적인 감정은 주인공 아람과 주변 인물들 모두를 통해 드러나며, 독자에게 불편한 질문을 던집니다.
이야기를 따라가다 보면 단순한 미스터리 혹은 스릴러를 읽고 있다고 느끼다가도, 어느 순간 그것이 한국 사회에 깊이 뿌리내린 계층 문제와 직결되어 있음을 깨닫게 됩니다. 어린 세대가 부모로부터 물려받는 잘못된 가치관, 그리고 그것이 재생산되는 구조에 대한 작가의 시선은 무겁지만 결코 낯설지 않습니다.
설재인 작가는 책의 말미에서 이렇게 밝힙니다.
"세상에는 이런 사람도 있답니다, 그리고 우리는 기어코 함께 어울려 살아야 해요."
이 한 문장은 소설 전체를 통과해 온 감정의 잔열과 맞물려, 읽는 이를 깊은 침묵 속에 머물게 합니다. 결국 이 세계에서 함께 살아야 한다는 사실은 피할 수 없는 전제이며, 그렇기에 우리는 계속해서 스스로에게 묻게 됩니다. 그렇다면 나는 어떤 마음가짐으로 사람들을 맞이해야 할까?
『예술에 관한 살인적 농담』은 제목처럼 기묘하게 웃기면서도 섬뜩한 작품입니다. 사람의 속내를 가차 없이 파헤치는 문장들, 진담과 농담의 경계에서 튀어나오는 대사들, 그리고 그 뒤에 감춰진 위계와 욕망. 모든 요소가 무대 위 연극처럼 생생하게 다가옵니다.
이 책은 단순히 누가 범인이고 왜 죽였는가를 묻는 소설이 아니라, 우리는 어떤 사회에 살고 있는가를 묻는 작품입니다. 그리고 그 질문은 지금의 우리를 비추는 어두운 거울이기도 합니다. 마주보는 일은 쉽지 않지만, 설재인 작가는 그런 불편함 속에서 우리가 반드시 논의해야 할 이야기를 건넵니다.
※ 본 서평은 나무옆의자 출판사로부터 가제본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하였습니다.